4화(5,119자) · 나루 · 10월 24일
B열 7번
내가 일등을 하자 짝꿍이 망가졌다 · 문가온
토요일 아침 여섯 시 오십 분에 나는 편의점 카운터에 서 있었다. 엄마가 정산을 한다. 정산은 삼십 분 걸리고 그동안 누가 카운터에 있어야 한다. 야간 끝나는 시간에 오는 손님은 셋쯤이다. 담배 하나, 숙취 음료 하나, 그리고 아무것도 안 사고 온장고 앞에 서 있다 가는 사람 하나. 그 사람은 매일 온다. 나는 그 사람을 안 본다. 안 보는 게 예의다.
편의점 새벽은 냄새로 안다. 온장고 위에서 데워지는 캔 커피 냄새, 튀김기 기름이 식은 냄새,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찬 공기. 형광등은 스터디 본보다 더 하얗다. 그 하얀 빛 밑에서 엄마는 열 시간을 서 있는다. 카운터 바닥에 고무 매트가 깔려 있는데 엄마가 서는 자리만 색이 바랬다. 나는 그 바랜 자리에 발을 놓고 삼십 분을 선다. 발이 그 자리를 안다.
엄마가 정산기 앞에서 눈을 비볐다. 이틀 연속 야간이면 엄마 눈이 저렇게 된다. 나는 내 눈을 비볐다. 엄마가 봤다.
“너도 눈이 왜 그래.”
“엄마 닮았나 봐.”
“장학은.”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지난주에 나는 토요일 여덟 시간을 채웠다. 채우긴 채웠는데 그 여덟 시간 동안 문제집 열한 쪽을 봤다. 봤다는 말이 맞다. 읽은 게 아니라 봤다. 열한 쪽 중에 남은 게 없다.
엄마가 정산을 끝내고 조끼를 벗었다. 조끼 이름표에 엄마 이름. 나는 그 이름표를 볼 때마다 엄마가 하루에 열 시간 남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손님들은 엄마를 이름으로 안 부른다. 저기요, 라고 부른다. 그 저기요를 열 시간 듣고 엄마는 집에 가서 잔다. 내가 여덟 시간을 채우면 학원비가 없다. 학원비는 한 달에 엄마 야간 여드레치다. 그래서 나는 채운다. 계산이 그렇게 돼 있다.
스터디 본은 오 층이다. 관리형 독서실. 출입 카드를 대면 로비 모니터에 이름이 뜨고 시간이 올라간다. 열람실 안은 칸막이 책상이 세 줄. 지정석. 자리는 원장이 정한다. 나는 B열 7번. 옆 B-8은 강하준. 길 건너 사립 이학년. 십월 오일부터 그 옆이었다. 그전에는 창가 A-3이었는데 원장이 옮겼다. 이유는 안 말했다. 나는 안 물었다. 장학생은 자리를 안 고른다.
일곱 시 삼십 분에 카드를 댔다. 모니터에 내 이름. 00:00. 오늘 저 숫자가 08:00이 되어야 한다.
하준은 여덟 시에 왔다. 그 애는 늘 얼굴이 좋다. 잘 잔 얼굴. 자리에 앉자마자 문제집을 펴고 한 시간 동안 고개를 안 든다. 나는 그 애가 그렇게 앉는 걸 보면 이상했다. 십월 초까지 하준은 삼십 분마다 나가서 휴대폰을 봤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안 나갔다.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되기도 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그만뒀다. 남의 일이다.
첫 시간은 괜찮았다. 아침에는 늘 괜찮다. 두 번째 시간부터 눈 뒤가 조였다. 조인다는 말이 제일 맞다. 아픈 게 아니라 조인다. 누가 눈알 뒤에서 나사를 한 바퀴 돌리는 것처럼. 그러면 읽고 있는 줄 위가 없어진다. 나는 필통을 열었다. 닫았다. 처음부터. 그러면 조금 남는다. 하준이 옆에서 한 쪽을 넘겼다. 그 애가 넘기는 소리가 났다. 사락. 나는 같은 쪽에 있었다.
열두 시에 점심. 열람실 밖 휴게실에서 컵밥. 하준이 옆 테이블에서 휴대폰을 봤다. 지금은 봐도 된다. 쉬는 시간이니까. 그 애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형, 아니 나루. 너 요새 왜 그래.”
“뭐가?”
“한 쪽에 삼십 분 걸리던데. 원장님이 너 보고 배우라고 옆에 앉혔는데 볼 게 없어.”
그 애는 놀리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궁금해했다. 나는 컵밥을 먹었다.
“잠을 못 자.”
“나는 요새 잘 자. 진짜 잘 자.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이렇게.” 하준이 손을 펴 보였다. 뭐가 이렇게인지는 안 보였다.
한 시에 하준이 문제집을 내 쪽으로 밀었다. 칸막이 너머로.
“나루, 이거 어떻게 풀어.”
수열이었다. 나는 봤다. 첫 줄을 읽었다. 둘째 줄로 갔다. 첫 줄이 없어졌다. 필통을 열었다. 닫았다. 첫 줄. 둘째 줄. 나는 문제를 세 번 읽었다. 하준이 기다렸다. 그 애는 기다리는 걸 잘했다. 십월 초에는 삼 분도 못 기다리던 애가.
“잠깐만.”
“아, 됐다. 알았어.” 하준이 문제집을 도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연습장에 뭔가를 적었다. 삼십 초. “이거 등차야. 공차 빼면 돼. 나루 이거 몰랐어?”
“……”
“내가 설명해 줄까?”
하준이 진지했다. 진지하게 나한테 등차수열을 설명하려고 했다. 나는 중학교 삼 학년 때 그걸 배웠고 그 애는 오늘 처음 안 것 같은 얼굴로. 나는 됐다고 했다. 하준이 어깨를 으쓱하고 문제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웃겼다. 웃기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웃겼다. 원장이 나를 여기 앉힌 이유가 하준이가 나 보고 배우라고였다. 오늘 배운 건 나였다.
두 시에 원장이 왔다. 구본혁은 토요일마다 오 층을 돈다. 열람실 뒤에서 앞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모니터를 본다. 내 자리 뒤에서 멈췄다. 나는 뒤통수로 알았다. 그 사람은 서 있을 때 소리가 안 나는데 있다는 게 느껴진다. 설명회장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나루, 잠깐.”
복도로 나갔다. 복도 창밖으로 학원가가 보였다. 낮이라 간판이 다 꺼져 있었다. 꺼진 간판은 회색이다.
“지난주 여덟 시간 채웠지.”
“네.”
“그 여덟 시간 동안 뭐 했어.”
“공부요.”
“몇 쪽.”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원장이 태블릿을 봤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시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것도 있는 모양이었다.
“원장님, 자리 좀 바꿔 주시면 안 돼요.”
“왜?”
“B열 형광등이 깜빡여요. 눈이 아파서.”
“형광등은 어제 갈았어.”
거짓말이었다. 형광등은 안 갈았다. 나는 형광등이 깜빡인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눈이 아픈 건 사실이고 형광등 때문이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원장은 그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자리는 못 바꿔. 하준이 옆이 네 자리야.”
“왜 하준이 옆이에요.”
“하준이가 너 보고 배우라고.”
“하준이 잘하는데요.”
“요새 잘하지.” 원장이 태블릿을 껐다. “너는 요새 못하고. 나루야, 나 너한테 학원비 한 달 이백 넘게 안 받고 있어. 그거 조건이 뭐야.”
“여덟 시간요.”
“여덟 시간 못 채우면 장학 끝이야. 이번 달까지 보고 정할 거야. 근데 시간만 채우는 게 아니라 채워서 뭘 해야지. 자리에 앉아서 필통이나 여닫고 있으면 그건 채운 게 아니야.”
그 사람이 필통 얘기를 했다. 뒤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필통 여닫는 걸 남이 안 본다고 생각했다. 하빈이 봤다. 원장도 봤다. 나만 못 봤다.
“그리고 학교에서 짝, 하빈이라고.”
“……”
“짝 잘못 만나면 성적 떨어져. 담임한테 자리 바꿔 달라고 해.”
나는 그 사람이 하빈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몰랐다. 하빈은 본 입시에 안 다닌다. 나는 하빈 이름을 원장한테 말한 적이 없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을 안 기다리고 열람실로 들어갔다. 나는 복도에 서 있었다. 회색 간판을 봤다. 눈 뒤가 조였다. 나사가 한 바퀴 더 돌았다.
여섯 시간째에 나는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에 찬물을 틀고 얼굴에 끼얹었다. 거울에 내 얼굴이 있었다. 눈가에 손가락 자국. 빨갛게. 내가 누른 자국이다. 나는 거울 속 사람이 열일곱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편의점 온장고 앞에 서 있다 가는 사람 같았다. 아무것도 안 사고.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았다. 눈을 감았다. 감으면 안 조였다. 감으면 읽을 게 없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 이십 분 있었다. 이십 분은 카드 시간에 안 들어간다. 열람실 밖은 안 센다.
열 시에 하준이 갔다. 토요일은 열 시까지만 한다고 했다. 그 애는 가면서 문제집 하나를 책상에 두고 갔다. 두고 간 건지 잊은 건지 모른다. 나는 열한 시 오십 분에 카드를 댔다. 모니터에 07:42. 십팔 분 모자랐다. 실장이 모니터를 봤다. 나를 봤다.
“나루, 십팔 분.”
“네.”
“열두 시에 닫아. 십 분 더 앉아도 여덟 시간 안 돼.”
“네.”
“원장님한테 그대로 올라가.”
“네.”
실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모니터 숫자를 원장한테 올리는 사람이고, 숫자는 그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다. 나도 안다. 아는데도 십팔이라는 숫자가 실장 입에서 나오니까 실장이 미웠다. 미워할 데가 거기밖에 없어서.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가방을 쌌다. 하준 문제집이 옆 책상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었다. 실장한테 맡기려고. 집는데 안에서 종이가 미끄러져 나왔다. A4 한 장. 반으로 접혀 있었다. 접힌 자리가 펴지면서 앞면이 보였다. 조항이 여섯 개. 번호로. 빌리는 것, 집중력. 기간, 석 달. 반환일, 일월 팔일. 다섯 번째 조항 옆에 손톱 자국.
나는 읽었다. 읽는 줄 위가 안 지워졌다. 그 종이는 안 지워졌다. 이상했다. 오늘 하루 열한 쪽이 다 지워졌는데 이 한 장은 첫 줄이 그대로 있었다.
대여물의 이자는 차용인이 지정할 수 없다. 다만 차용인 곁에 스스로 앉는 자가 있으면 그 자에게 나뉜다.
뒤집었다. 뒷면. 두 줄.
제7조. 이자는 빌린 것과 같은 종류로 받는다. 집중력은 집중력으로.
제8조. 이자는 차용인에게 받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다.
나는 내 자리를 봤다. B-7. 하준 자리를 봤다. B-8. 그 사이 삼십 센티. 칸막이 하나. 십월 오일부터. 하준이 얼굴이 좋아진 게 언제부터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십월 둘째 주. 그 애가 잘 잔다고 손을 펴 보인 게 오늘이었다.
원장이 자리를 정한다. 원장이 나를 여기 앉혔다. 원장은 형광등이 깜빡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안 갈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갈았다고 말했다.
나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접힌 자리 그대로. 하준 문제집 안에 넣었다. 제자리에. 하준 것이니까. 하준은 뒷면을 안 읽었을 것이다. 접힌 자리가 서명란 바로 아래였다. 읽었으면 거기서 안 접는다.
실장한테 문제집을 맡기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오 층에서 일 층까지. 내려가면서 나는 하빈을 생각했다. 원장이 하빈 이름을 아는 이유를. 하빈이 이십 초 만에 확률 문제를 푼 이유를. 잘 잔 얼굴을. 내가 잘 잔 얼굴이라고 말했을 때 하빈이 웃은 것을. 그 웃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가장 가까운 사람. 나는 삼 년 동안 한 뼘 옆에 앉아 있었다.
일 층에 내려와서 필통을 열었다. 닫았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려고. 읽을 게 없었다. 계단만 있었다. 그런데 그 종이 두 줄은 처음부터 다시 안 읽어도 있었다. 오늘 하루 중에 그것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