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84자)

모래 바닥 나이트클럽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춤추는 사람들의 발밑이 모래였다⁠.

화이트비치 한가운데⁠, 야자수 기둥 네 개에 마른 야자 잎 지붕을 얹은 가게였다⁠. 벽이 없었다⁠. 지붕 아래 모래밭이 그대로 춤추는 바닥이었다⁠. 해변의 모래와 가게 안의 모래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춤추던 사람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 바다였다⁠. 천장에 매단 색 전구가 바람에 흔들렸다⁠. 커다란 스피커 두 개가 모래 위에 놓여 쿵쿵 울렸다⁠. 스피커가 울릴 때마다 스피커 앞 모래가 조금씩 튀었다⁠.

“⁠형⁠, 여기 신발 벗어요⁠?⁠”

“⁠섬에서 신발 신은 사람 봤어⁠?⁠”

“⁠형이요⁠. 첫날 반나절⁠.⁠”

“⁠너도 스무 걸음⁠.⁠”

크리스마스 이틀 전이었다⁠. 화이트비치는 사람으로 붐볐다⁠. 대부분 유럽 사람이었다⁠. 독일 말⁠, 스웨덴 말⁠, 이탈리아 말이 음악 사이로 섞였다⁠. 다들 맨발이었다⁠. 맨발로 모래를 차며 춤을 췄다⁠. 발이 모래에 푹푹 빠져서 춤이 다 느릿느릿했다⁠.

대근은 처음엔 안 온다고 했다⁠. 세일 말려야 한다고 했다⁠. 로엘이 대신 세일을 말리겠다고 했다⁠. 대근은 로엘을 한참 봤다⁠. 로엘은 지난주 야자수 사건 이후 설거지를 엿새째 하고 있었다⁠.

“⁠세일 한 장씩⁠. 민물로⁠. 뒷면까지⁠.⁠”

“⁠네⁠, 사장님⁠! 뒷면까지⁠!⁠”

대근은 그렇게 따라왔다⁠. 모래 바닥 가게 구석 나무 의자에 앉아 산미구엘 맥주를 한 병 시켰다⁠. 필리핀 맥주였다⁠. 대근은 맥주를 반쯤 마시고 처음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수는 대근이 무언가에 등을 기대는 걸 처음 봤다⁠.

민하는 춤을 출 줄 몰랐다⁠.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

“⁠저는 춤을 못 춰요⁠, 형⁠. 대여점 카운터에 서서 육 년을 있으면 몸이 바코드 찍는 각도로 굳어요⁠.⁠”

삼십 분 뒤⁠, 민하는 춤판 한가운데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이수도 대근도 보지 못했다⁠. 맥주 한 병을 비우고 고개를 들었더니 민하가 스웨덴 사람 셋과 독일 사람 둘 사이에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춤이라기보다는 대여점에서 책을 꽂는 동작에 가까웠다⁠. 오른팔로 무언가를 들어 위 칸에 꽂고⁠, 왼팔로 무언가를 빼서 아래 칸에 꽂았다⁠. 책 꽂는 동작이 음악에 맞았다⁠. 이상하게 맞았다⁠.

유럽 사람들이 민하의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위 칸에 꽂고⁠, 아래 칸에 꽂고⁠. 모래 바닥 위에서 서른 명이 보이지 않는 책장에 보이지 않는 책을 꽂았다⁠. 디제이가 음악을 한 번 더 크게 틀었다⁠.

대근이 맥주병을 내려놓고 웃었다⁠. 처음으로 길게 웃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아서 대근은 무릎을 짚었다⁠. 왼쪽 무릎이었다⁠. 무릎 위 수술 자국이 색 전구 아래에서 하얗게 드러났다⁠.

“⁠저 사람 대여점 한다고 했죠⁠?⁠”

“⁠네⁠.⁠”

“⁠대여점에서 저렇게 해요⁠?⁠”

“⁠아마 저보다 저걸 더 많이 했을 거예요⁠.⁠”

대근이 무릎 위 수술 자국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웃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거 아시안게임 선발전 두 달 앞두고 터졌어요⁠.⁠”

이수는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대근은 이수를 보지 않고 춤판을 보면서 말했다⁠.

“⁠바람 센 날 카빙 자이브 하다가⁠. 속도 안 죽이고 보드 모서리를 밟아서 크게 도는 자이빙이요⁠. 원 한가운데서 물결 하나에 보드 앞머리가 걸렸어요⁠. 세일이 넘어가는데 발이 풋스트랩에서 안 빠졌어요⁠. 무릎이 반대로 꺾였죠⁠. 수술을 두 번 했어요⁠. 두 번째 수술 끝나고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걷는 건 된다⁠. 선수는 안 된다⁠.⁠”

“⁠그래서 여기로 오셨어요⁠?⁠”

“⁠바람이 있는 데로 왔죠⁠. 바다에서 떨어지면 갈 데가 바다밖에 없어요⁠.⁠”

대근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여기 장비 다 한국에서 빚내서 산 거예요⁠. 보드 스무 장⁠, 세일 서른 장⁠. 은행 빚⁠, 형님 빚⁠, 선수촌 동기 빚⁠. 다달이 갚아요⁠. 아직 반도 못 갚았어요⁠.⁠”

“⁠세일 한 장이 한 달이라는 게⁠…⁠”

“⁠세일 한 장 찢어지면 그달 갚을 돈이 없어요⁠. 보드 하나 부러지면 두 달이고⁠. 그래서 장비를 내 몸보다 아껴요⁠. 몸은 내가 찢어지면 내가 아프고 끝나는데⁠, 세일은 찢어지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아파요⁠.⁠”

이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대근이 맥주병을 들어 춤판을 가리켰다⁠. 민하가 독일 사람 하나를 업고 춤을 추고 있었다⁠. 왜 업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장님 카이트 말이에요⁠.⁠”

“⁠네⁠.⁠”

“⁠작은 거 하나 팔아요⁠. 둘 있잖아요⁠. 큰 거⁠, 작은 거⁠.⁠”

“⁠그냥 드릴게요⁠. 가르쳐 드렸으니까 타셔야죠⁠.⁠”

“⁠그냥은 안 받아요⁠.⁠”

대근이 이수를 똑바로 봤다⁠. 처음으로 똑바로 봤다⁠.

“⁠손님이 공짜로 주는 거 받기 시작하면 여기서 장사 못 해요⁠. 값 다 쳐서 살게요⁠. 석 달에 나눠서⁠.⁠”

“⁠알았어요⁠.⁠”

“⁠그리고 하나 더⁠.⁠”

“⁠네⁠.⁠”

“⁠저 사람 좀 말려 주세요⁠. 업은 사람이 내 손님이에요⁠.⁠”

다음 날 아침⁠, 대근은 이수에게 첫 달 치 돈을 봉투에 넣어 건넸다⁠. 봉투 겉에 연필로 「⁠카이트 1/3⁠」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근은 봉투를 건네고 나서 섬 가운데 작은 송금소에 들렀다⁠. 이수가 따라갔다⁠. 함석지붕 아래 창구 하나뿐인 가게였다⁠. 섬에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다들 고향에 돈을 부치러 온 사람들이었다⁠. 대근은 줄 맨 뒤에 섰다⁠. 맨발로⁠. 차례가 오자 대근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두 번 셌다⁠. 창구 직원이 대근의 이름을 불렀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손님의 이름을 아는 목소리였다⁠. 대근은 영수증을 받아 접어서 지갑 맨 안쪽에 넣었다⁠. 지갑 안쪽에 접힌 영수증이 두툼했다⁠.

“⁠한국 은행이에요⁠?⁠”

“⁠은행 하나⁠, 형님 하나⁠, 동기 셋⁠. 돌아가면서 부쳐요⁠. 이번 달은 동기 차례⁠.⁠”

“⁠얼마나 남았어요⁠?⁠”

“⁠사장님 카이트 값 빼고요⁠?⁠”

대근이 웃었다⁠. 웃고 나서 지갑을 바지 주머니 깊이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해변으로 돌아와 작은 카이트를 들고 물로 나갔다⁠. 제 카이트였다⁠. 처음으로 제 장비로 카이트를 띄우는 날이었다⁠.

바람이 셌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불라복에는 북동풍이 한층 세게 불었다⁠. 산호초 바깥에 하얀 물결이 빽빽했다⁠. 작은 카이트는 센 바람에 쓰는 카이트였다⁠. 대근은 작은 카이트를 띄우고 산호초 안쪽을 오갔다⁠. 사흘 만에 배운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이수는 해변에서 대근을 보다가 제 세일을 들고 물로 들어갔다⁠.

정오가 지나자 바람이 더 셌다⁠. 해변의 야자수가 한쪽으로 크게 휘었다⁠. 대근이 산호초 끝에서 방향을 트는 순간이었다⁠. 바람이 한 번 크게 몰아쳤다⁠. 작은 카이트가 하늘에서 휘청였다⁠. 카이트가 부채꼴 가운데로 떨어지며 바람을 한가득 먹었다⁠.

대근의 몸이 떴다⁠. 보드째로⁠. 물 위에서 1m⁠, 2m⁠. 대근의 몸이 카이트에 매달려 공중에서 옆으로 날아갔다⁠. 산호초 쪽으로⁠. 산호초 위는 물이 얕았다⁠. 떨어지면 산호에 그대로 박힐 높이였다⁠.

이수가 물속에서 소리를 지르기 전에⁠, 대근의 손이 움직였다⁠.

대근은 빨간 손잡이를 당겼다⁠.

고리가 풀렸다⁠. 카이트가 대근을 놓았다⁠. 대근의 몸이 1m 아래 물로 떨어졌다⁠. 산호초 바로 안쪽⁠, 허리 깊이였다⁠. 물보라가 솟았다⁠. 바람을 놓친 카이트가 하늘에서 힘없이 기울었다⁠. 카이트는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너무 셌다⁠. 라인이 풀린 카이트는 바람에 실려 산호초 위를 굴러 넘어갔다⁠. 산호초 너머 짙은 파란 바다로⁠.

대근이 물에서 일어섰다⁠. 카이트를 봤다⁠. 카이트가 바다로 굴러가고 있었다⁠. 하얀 물결 사이로 카이트의 천이 한 번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

대근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대근 씨⁠!⁠”

이수가 소리쳤다⁠. 대근은 돌아보지 않았다⁠. 산호초 위를 넘어 바깥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 바깥 바다는 물결이 높았다⁠. 대근의 머리가 물결 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이수는 세일을 놓고 해변으로 뛰었다⁠. 민하가 구명조끼를 들고 서 있었다⁠. 처음으로 구명조끼를 누군가에게 내밀었다⁠. 이수가 받지 않았다⁠. 이수는 로엘을 찾았다⁠.

“⁠로엘⁠! 배⁠!⁠”

로엘이 해변 끝으로 뛰었다⁠. 마을 어부들의 방카가 모래밭에 올라와 있었다⁠. 로엘이 섬 말로 무어라 외치자 어부 둘이 방카를 밀어 바다로 띄웠다⁠. 이수와 로엘이 방카에 뛰어올랐다⁠. 방카가 산호초 사이 물길로 빠져나갔다⁠.

바깥 바다에서 대근을 찾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대근은 물결 사이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카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방카가 다가가자 대근은 손을 저었다⁠. 오지 말라는 손짓이었다⁠. 저쪽⁠, 저쪽⁠. 손가락이 수평선 쪽을 가리켰다⁠. 카이트가 간 쪽이었다⁠.

“⁠대근 씨⁠, 타요⁠!⁠”

“⁠저기 있어요⁠! 저기⁠!⁠”

이수는 대근이 가리키는 쪽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물결뿐이었다⁠. 하얀 물결이 카이트의 천처럼 보였다가 다시 물결이 되었다⁠.

방카는 대근이 가리키는 쪽으로 한 시간을 더 갔다⁠. 어부들은 말없이 엔진을 몰았다⁠. 카이트는 없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어부 하나가 섬 말로 무어라 했다⁠. 로엘이 이수에게 옮겼다⁠. 대근의 말투로⁠.

“⁠더 가면 돌아올 기름 없어요⁠.⁠”

대근은 방카 뱃전에 앉아 수평선을 봤다⁠. 두 시간을 헤엄친 몸이었다⁠. 어깨가 떨렸다⁠. 이수는 방카 바닥에 굴러다니던 마른 수건을 대근의 어깨에 덮었다⁠. 대근이 수건을 걷어내지 않았다⁠.

“⁠당겼어요⁠.⁠”

대근이 말했다⁠. 수평선을 보면서⁠.

“⁠사장님이 당기라고 해서 당겼어요⁠.⁠”

“⁠잘하셨어요⁠. 그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카이트가 없어요⁠.⁠”

대근은 한 마디만 했다⁠. 방카가 섬으로 돌아오는 동안 대근은 한 번도 섬 쪽을 보지 않았다⁠. 바다 쪽만 봤다⁠.

방카 엔진이 통통거리는 동안 어부 하나가 대근에게 물병을 건넸다⁠. 대근은 물을 마시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로엘이 대근 옆에 쪼그려 앉아 섬 말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기도 같았다⁠. 이수는 뱃머리에 앉아 섬이 가까워지는 것을 봤다⁠. 불라복 해변의 야자수가 해를 등지고 검게 늘어섰다⁠. 해변에 사람 하나가 주황색 점처럼 서 있었다⁠.

해변에 내렸을 때 해가 졌다⁠. 민하가 모래밭에 서 있었다⁠. 오후 내내 서 있었던 것 같았다⁠. 구명조끼를 꽉 쥐고⁠. 민하는 대근을 보자 아무 말 없이 구명조끼를 대근의 손에 쥐여 줬다⁠. 대근이 구명조끼를 내려다봤다⁠. 이번엔 대근이 웃지 않았다⁠.

밤에 이수는 창고 앞을 지나다 대근을 봤다⁠. 백열등 아래⁠, 대근은 빈 바 하나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카이트 없는 바였다⁠. 라인 네 가닥이 바에 감겨 있었다⁠. 대근은 바 가운데 치킨 루프를 손가락으로 만지고 있었다⁠. 고리 아래 빨간 손잡이를⁠. 당기면 풀리는 손잡이를⁠.

대근이 이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다음 달 치 봉투는 그대로 드릴게요⁠. 카이트 없어도⁠.⁠”

“⁠안 주셔도 돼요⁠.⁠”

“⁠줘요⁠. 내가 잃어버린 거니까⁠.⁠”

대근이 빨간 손잡이를 엄지로 꾹 눌렀다⁠.

“⁠다시는 안 놓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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