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788자)
바꿔 가르치기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아침 일곱 시, 불라복의 바람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이수는 해변 모래밭에 카이트를 펼쳤다. 펌프로 바람을 넣자 카이트의 앞가장자리와 갈비뼈 같은 칸들이 단단하게 부풀었다. 라인 네 가닥을 모래밭에 늘어놓았다. 대근이 옆에 쪼그려 앉아 이수의 손을 봤다. 어느 라인이 어디로 가는지, 어느 매듭을 어떻게 거는지. 대근은 한 번 본 것을 묻지 않았다.
“가운데 두 가닥이 프런트 라인, 바 양 끝 두 가닥이 백 라인이에요. 프런트 라인은 치킨 루프를 거쳐 허리에 걸려서 카이트 힘을 받고, 백 라인은 방향을 틀어요. 바 왼쪽을 당기면 카이트가 왼쪽으로, 오른쪽을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요. 바를 몸 쪽으로 당기면 카이트가 바람을 먹고, 밀면 바람을 뱉어요.”
“세일이랑 반대네.”
“반대예요?”
“세일은 당기면 바람을 먹고 놓으면 뱉어요. 카이트는 밀면 뱉고. 손이 헷갈리겠네.”
대근은 바를 쥐고 손을 몇 번 밀고 당겨 봤다. 손목의 힘줄이 불거졌다. 국가대표 시절 십 년 넘게 붐을 쥐던 손이었다.
“카이트는 왜 둘이에요? 큰 거, 작은 거.”
“바람 따라 바꿔 써요. 바람이 세면 작은 거, 약하면 큰 거. 센 바람에 큰 카이트를 띄우면 사람이 감당을 못 해요. 약한 바람에 작은 걸 띄우면 사람을 못 끌고요.”
대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일이랑 같네. 바람 세지면 세일 줄이고, 약해지면 키우고. 우리 창고 세일 서른 장이 다 크기가 달라요. 손님 몸무게 보고, 그날 바람 보고 골라 줘요. 세일 고르는 게 반이에요.”
“윈드 윈도라는 게 있어요. 바람 창이요.”
이수는 모래밭에 막대기로 반원을 그렸다. 사람이 바람을 등지고 서면 앞쪽 하늘에 커다란 부채꼴이 생긴다. 부채꼴의 가운데로 카이트를 내리면 카이트가 바람을 가장 많이 받아 사람을 세게 끈다. 부채꼴의 가장자리로 카이트를 올리면 카이트가 바람을 덜 받아 순해진다.
“가운데가 파워 존이에요. 위험해요. 가장자리는 엣지라고 하고, 안전하고. 처음엔 엣지에만 두세요.”
“가운데가 제일 빠르겠네.”
“가운데가 제일 위험해요.”
“빠른 데가 위험한 거지.”
대근이 웃었다. 이수는 웃지 않았다.
첫날, 대근은 물에 끌려다녔다. 보드 없이 허리 깊이 물에 들어가 카이트만 띄우고 카이트에 끌려 몸으로 물을 갈랐다. 이수는 그걸 「바디 드래그」라고 불렀다. 대근은 바디 드래그를 한 시간 하더니 물 밖으로 나와 말했다.
“이거 세일 떨어뜨렸을 때 세일 쫓아가는 거랑 똑같네.”
“그럴 거예요.”
“세일은 내가 쫓아가고 이건 나를 끌고 가고.”
둘째 날, 대근은 보드에 섰다. 처음 세 번은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카이트를 너무 세게 당겨서였다. 네 번째에 대근은 카이트를 부채꼴 가장자리에 두고 바를 아주 조금만 당겼다. 보드가 물 위로 미끄러져 나갔다. 대근은 30m를 가서 넘어졌다. 다음엔 100m를 갔다.
해변에서 민하가 박수를 쳤다. 민하는 윈드피아에서 빌린 펀보드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물에 띄우지 않고 모래밭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민하야, 그건 물에 띄우는 거야.”
“알아요, 형. 지금 마음의 준비 중이에요.”
오후 두 시쯤 바람이 세졌다. 산호초 바깥에 하얀 물결이 줄을 지었다. 대근은 들어오지 않았다. 산호초 안쪽 얕은 물에서 카이트를 높이 띄워 놓고 보드에 서 있었다. 이수가 해변에서 손짓했다. 들어오라는 손짓이었다. 대근이 고개를 끄덕이고 해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향을 트는 순간 돌풍이 왔다.
야자수 잎이 한꺼번에 뒤집혔다. 대근의 카이트가 하늘에서 크게 휘청였다. 카이트가 부채꼴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쑥 떨어졌다. 가운데로 떨어진 카이트가 바람을 한가득 먹었다. 대근의 몸이 보드에서 뽑히듯 떠올랐다가 물에 처박혔다. 카이트는 멈추지 않았다. 대근을 끌고 물 위를 미끄러졌다. 산호초 쪽으로.
“당겨요! 빨간 거!”
이수가 소리를 질렀다. 바람이 소리를 해변 뒤로 가져갔다.
대근의 몸이 얕은 물을 갈랐다. 산호초 안쪽은 허리 깊이였다가 군데군데 무릎 깊이로 얕아졌다. 얕은 데엔 산호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대근의 몸이 얕은 데를 지나며 산호를 긁었다. 대근의 손은 바를 꽉 쥐고 있었다. 빨간 손잡이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대근은 끌려가면서 바를 밀었다. 카이트를 부채꼴 가장자리로 올리려는 것이었다. 카이트가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힘이 빠졌다. 대근은 50m를 끌려가서 멈췄다. 무릎 깊이의 물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카이트는 머리 위 하늘에 조용히 떠 있었다.
이수가 물을 헤치고 뛰어갔다. 대근의 다리에 붉은 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 산호에 긁힌 자리였다. 피가 물에 번졌다.
“왜 안 당겼어요?”
대근은 카이트를 올려다봤다. 카이트는 멀쩡했다. 천 한 군데 찢어진 데가 없었다.
“살렸잖아요.”
“누굴요?”
“카이트요.”
“다리는요?”
“다리는 낫잖아요.”
이수는 바를 대근의 손에서 빼앗듯이 받아 들었다. 카이트를 모래밭으로 끌어 내렸다. 카이트가 모래밭에 눕자 이수는 바를 들고 대근 앞에 섰다.
“그 카이트 제 거예요. 제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당기면 카이트가 날아가도 된다고.”
“사장님은 괜찮겠죠.”
대근이 일어섰다. 다리에서 피가 발목으로 흘러내렸다. 대근은 피를 보지도 않았다.
“카이트 하나가 여기 세일 세 장이라면서요. 사장님한텐 카이트 하나가 카이트 하나죠. 나한텐 세일 세 장이에요. 세일 세 장이면 손님 열두 명 받아요. 열두 명이면 한 달 방값이에요.”
“사람이 다치면 세일 세 장이 무슨 소용이에요.”
“사람이 다치는 건 처음 몇 번이에요. 장비 귀한 줄 알면 덜 다쳐요. 장비 귀한 줄 모르는 사람은 바다가 가르쳐 줘요.”
대근은 다리를 절며 해변으로 걸어갔다. 로엘이 소독약 병을 들고 뛰어왔다. 대근은 로엘에게서 소독약을 받아 다리에 그냥 부었다. 얼굴이 한 번 찡그려졌다. 다음 순간 대근은 카이트를 펴 놓은 모래밭으로 가서 카이트 천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천에 모래가 붙어 있었다. 대근은 모래를 털었다. 다리보다 먼저.
민하가 이수 옆에 와서 섰다. 구명조끼를 아직 입고 있었다.
“형.”
“응.”
“저 사람이 형 카이트를 형보다 더 아껴요.”
“알아.”
“시화호 마스트 아저씨보다 더해요.”
오후엔 대근이 이수를 가르쳤다. 약속대로였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도 대근은 해변에 나와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다.
대근은 이수를 넓은 보드에서 조금 작은 보드로 옮겼다. 하네스도 입혔다. 허리에 두르는 넓은 띠에 고리가 하나 달려 있었다. 붐 양쪽에 짧은 줄 두 가닥이 늘어져 있었다. 하네스 라인이었다.
“이 줄을 하네스 고리에 걸면 세일을 팔로 안 잡아도 돼요. 허리로 잡아요. 팔은 방향만 잡고.”
“걸 때 어떻게 걸어요?”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줄을 고리에 툭 걸어요. 툭.”
툭이 사흘 걸렸다.
이수는 엉덩이를 뒤로 뺐다. 줄이 고리 근처에서 흔들렸다. 줄을 고리에 걸려고 허리를 비트는 순간 세일이 앞으로 쏠렸다. 이수는 세일을 따라 앞으로 엎어졌다. 다시 일어나 엉덩이를 뺐다. 이번엔 줄이 걸렸다. 걸리는 순간 세일이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팔에 힘을 빼고 있던 이수는 그대로 세일 위로 날아갔다. 발이 보드에서 떨어지고, 몸이 붐을 넘어 앞으로 원을 그리며 세일 너머 물에 꽂혔다. 대근이 해변에서 호루라기를 길게 불었다.
“그게 캐터펄트예요! 투석기! 돌 던지는 기계처럼 사람이 날아가서 그렇게 불러요! 세일 위로 떨어지지 마요! 마스트 부러져요!”
이수가 물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시화호에서도 그 말 들었어요!”
“거기 사람이 맞는 말 했네!”
이수는 다시 보드에 올라 세일을 세웠다. 대근이 해변에서 다시 소리쳤다.
“세일 놓지 마요! 세일 놓으면 바람에 날려서 산호에 긁혀요!”
“제가 넘어지는데요?”
“넘어지면서도 세일은 잡아요! 사람은 물에 떨어지고 세일은 사람이 잡고!”
이수는 다음번에 넘어지면서 세일을 놓았다. 일부러였다. 세일이 바람에 굴러 산호초 쪽으로 몇 m 밀려갔다. 대근이 호루라기를 세 번 불었다. 세 번은 약속에 없던 소리였다.
셋째 날 오후, 대근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갔다. 카이트를 타고. 카이트가 바람 방향으로만 끄는 줄 알았던 민하가 입을 벌렸다. 대근은 보드 모서리를 물에 세워 비스듬히 나아가며 바람이 오는 쪽으로 조금씩 올라갔다. 윈드서핑으로 바람을 거슬러 오르는 몸이 카이트에도 그대로 붙었다. 윈드서핑에서는 대거보드와 핀이 보드가 옆으로 밀리는 것을 막는다. 카이트 보드에는 대거보드가 없어서, 대근은 바람 아래쪽 보드 모서리를 물에 박아 대거보드 대신 썼다. 클로즈홀드로 바짝 붙어 가다가, 세일을 뒤로 기울이던 손 대신 카이트를 하늘 가장자리로 올려 앞머리를 바람 쪽으로 밀었다.
“형, 저 사람 바람을 거꾸로 타요.”
“지그재그로 가는 거야. 바람 정면으로는 아무도 못 가.”
“형은 정면으로 가다가 빠졌잖아요. 시화호에서.”
“그래서 아는 거야.” 산호초 가장자리에서 방향을 틀어 돌아올 때, 대근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해변의 유럽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대근을 구경했다. 섬에 처음 뜬 카이트였다. 아이들이 모래밭을 따라 뛰었다.
이수는 같은 시각 산호초 안쪽에서 하네스 라인을 고리에 걸고 있었다. 툭. 걸렸다. 세일이 허리를 끌었다. 이수는 팔에 힘을 빼고 허리로 버텼다. 보드가 앞으로 나갔다. 팔이 편했다. 몸이 가벼웠다. 이수는 50m를 갔다. 넘어지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았다. 다들 하늘의 카이트를 보고 있었다. 민하만 보고 있었다. 민하가 손가락 하나를 폈다. 오늘 처음으로, 넘어진 수가 아니라 간 수를 세는 손가락이었다.
해 질 녘이었다. 이수와 대근이 창고 앞에서 세일을 헹구는 동안 로엘이 보이지 않았다. 카이트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로엘!”
대근이 소리쳤다. 대답이 없었다. 해변 끝 야자수 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났다. 이수와 대근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해변 끝 야자수 꼭대기에 카이트가 걸려 있었다. 반달 모양의 카이트 천이 야자 잎에 꿰여 축 늘어져 있었다. 라인 네 가닥이 야자수 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라인 끝 바에 로엘이 매달려 있었다. 발이 땅에서 한 뼘 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로엘이 그네처럼 흔들렸다.
“사장님! 빨리빨리!”
로엘이 대근의 말투로 외쳤다.
대근이 야자수로 뛰었다. 이수도 뛰었다. 대근이 먼저 닿았다. 대근은 야자수 꼭대기의 카이트를 올려다봤다. 이수는 바에 매달린 로엘을 봤다.
“로엘, 손 놔.”
이수가 말했다.
“손 놓으면 카이트가 날아가요!”
“놔.”
로엘이 대근을 봤다. 대근은 카이트를 보고 있었다. 로엘이 손을 놓았다. 로엘의 발이 모래에 떨어졌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람이 한 번 불었다. 바가 야자수 줄기를 타고 위로 끌려 올라갔다. 카이트가 야자 잎 사이에서 펄럭였다. 야자 잎이 천을 긁는 소리가 났다.
대근이 야자수 줄기를 끌어안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맨발로. 붕대 감은 다리로. 이수는 로엘에게 쪼그려 앉았다.
“어디 다친 데 없어?”
로엘이 고개를 저었다. 엉덩이를 문질렀다. 위에서 대근이 소리쳤다.
“로엘! 너 내일부터 일주일 설거지!”
“네, 사장님!”
로엘은 대답하고 이수를 봤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이수도 웃음을 참았다. 어섬 소나무 꼭대기에 빨래처럼 널렸던 날개가 생각났다.
대근은 해가 다 질 때까지 야자수 꼭대기에서 카이트를 한 칸씩 풀어 내렸다. 천은 찢어지지 않았다. 대근이 내려와 카이트를 모래밭에 펼쳐 놓고 손전등으로 한 칸씩 비춰 봤다. 다 보고 나서야 대근은 제 다리의 붕대가 풀린 것을 알았다.
로엘이 새 붕대를 들고 왔다. 대근은 붕대를 받아 들고 잠깐 망설였다. 다리를 먼저 감을지, 카이트를 먼저 정리할지. 대근은 카이트를 먼저 정리했다. 로엘은 대근의 말투로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