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33자)
7조 해석
재벌 3세의 경호원은 연애 금지 조항을 어겼다 · 오세림
12월 3일 목요일 아침 여섯 시 십 분, 한남동 빌라 식탁에는 다시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둘 다 식어 가고 있었다. 서진은 계약서 셋째 장을 펴 놓고, 은호가 지난달 그어 놓은 밑줄 두 줄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정리할게요. 7조는 피경호인과 연애하지 않는다예요. 연애하지 않는다.”
“네.”
“연애는 지속적인 관계를 말해요. 반복성이 있어야 해요. 어젯밤은 한 번이에요. 단발성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위반이 아니에요.”
은호는 식은 커피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지속될지 아닐지는 지금부터 정해지는 겁니까?”
서진의 손가락이 밑줄 위에서 멈췄다.
“그 질문은 반칙이에요.”
“계약서에 반칙 조항은 없습니다.”
“그럼 11조 신설할게요. 피경호인의 해석에 반문하지 않는다.”
“그건 소급 적용이 안 됩니다.”
“누가 그런 걸 가르쳐 줬어요?”
“어제 수사관이 도청 진술 얘기할 때 들었습니다.”
서진이 웃음을 터뜨리려다 커피잔으로 입을 막았다. 웃음은 잔 안에서 거품이 되었다. 은호는 그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창밖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회색 구름이 남산 꼭대기를 덮고 있었다.
“어젯밤 주차장 CCTV 봤습니다.”
서진의 웃음이 사라졌다.
“기둥 뒤에 있던 사람, 열한 시 사십 분에 출입구로 나갔습니다. 회색 패딩, 카메라 가방. 들어온 건 아홉 시 반이었고, 관리실 출입증을 찍고 들어왔습니다.”
“이 건물 관리 회사가 어디예요?”
“한성 계열 자회사입니다.”
서진은 계약서를 덮었다. 덮는 손이 조용했다.
“그럼 기사 나와요. 오늘 아침에.”
“나오기 전에 계약 해지하시겠습니까? 제가 사유를 쓰면 상무님 쪽은 피해자가 됩니다.”
“안 해요.”
“상무님.”
“안 한다고요. 그건 제가 정해요. 7조도 제가 썼으니까 제가 해석해요.”
*
일곱 시 정각, 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울리고 끊기는 게 아니라 끊기기 전에 다음 전화가 들어왔다. 화면 위로 알림이 줄줄이 내려왔다. 은호가 자기 휴대전화로 기사를 열었다. 연예인과 재벌가 뒷이야기를 주로 싣는 인터넷 매체 「데일리팝」의 단독 기사였다.
「단독, 한성가 막내 상무, 주총 앞두고 경호원과 ‘지하 주차장 키스’」
사진은 넷이었다. 깜박이는 형광등 아래, 넥타이를 쥔 손, 발끝을 든 다리, 니트 등에 펼쳐진 남자의 손바닥. 얼굴은 둘 다 선명했다. 기사 본문 셋째 문단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한 상무는 경호 계약서에 ‘피경호인과 연애 금지’ 조항을 직접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진은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읽고 나서 휴대전화를 식탁에 엎어 놓았다.
“7조를 아는 사람이 몇이에요?”
“저, 업체 대표, 상무님. 그리고 부회장님 쪽 법무팀이요. 어제 대표실에서 들었습니다.”
“오빠가 7조를 읽었다고 했어요?”
“읽었다고 했습니다.”
서진의 얼굴이 식탁 위 유리처럼 굳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마동구와 윤세라가 들어왔다. 동구는 신발을 벗다가 화분을 피해 몸을 비틀었고, 세라는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휴대전화 화면에 같은 기사가 떠 있었다.
“팀장님.”
세라의 목소리는 낮았다. 낮아서 더 날카로웠다.
“팀장님이 0을 만들면, 우리 셋은 어디 서요? 아니다, 이제 둘이네요. 우리 둘은 어디 서요?”
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동구가 거실 입구에서 큰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팀장님, 저는 팀장님 편입니더. 그건 아시지예. 근데 이건 3조 위반입니더. 반경 3미터. 어젯밤에 반경이 영이었다 아입니꺼.”
“동구 씨, 반경은 그렇게 쓰는 말 아니에요.”
서진이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서진은 식탁에서 일어나 거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세 사람 사이에 섰다.
“어젯밤은 제가 했어요. 팀장님은 피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게 잘못이면 저도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팀장님한테만 화내지 마세요. 저한테도 화내요.”
세라가 서진을 보았다. 그리고 은호를 보았다. 그녀는 신발을 신은 채 거실 바닥에 선 자기 발을 내려다보더니, 현관으로 돌아가 신발을 벗고 다시 들어왔다.
“상무님한테는 화 못 내요. 계약상.”
“계약서에 그런 조항 없어요.”
“그럼 지금 만들어 주세요. 12조. 경호원은 피경호인에게 화내지 않는다. 대신 팀장님한테는 두 배로 낸다.”
동구가 처음으로 웃었다. 세라는 웃지 않고 은호의 정강이를 구두 끝으로 한 번 찼다. 세게였다. 은호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
여덟 시 반, 빌라 대문 밖 골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카메라 일곱 대, 휴대전화를 든 사람 열몇, 골목 끝에 방송사 중계차 한 대. 그리고 하늘에서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굵지 않았다. 손등에 닿자마자 녹는 눈이었다. 기자들의 패딩 어깨 위에 하얗게 앉았다가 금세 검은 얼룩이 되었다.
“나가시면 안 됩니다.”
은호가 대문 안쪽에서 말했다. 서진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지훈이 박음질로 단 단추는 어젯밤 그녀가 가위로 잘라 냈고, 그 자리에 실밥이 몇 가닥 남아 있었다.
“숨으면 다음 기사는 숨었다예요. 그다음 기사는 주총도 숨을 거라예요.”
“그럼 1미터로 갑니다.”
“3미터요. 오늘은 3미터. 사진에 같이 찍히면 안 돼요.”
은호는 대답 대신 3미터 뒤로 물러섰다. 동구가 검은 장우산을 펴 들고 그녀 옆에 섰다. 우산이 너무 커서 서진의 머리 위만이 아니라 대문 앞 전체를 가렸다. 동구의 어깨에는 눈이 그대로 쌓였다.
대문이 열렸다. 셔터 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맨 앞에 회색 패딩을 입은 사십 대 남자가 섰다. 어깨에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은호는 CCTV 화면에서 본 그 가방을 알아보았다.
“「데일리팝」 노경수입니다. 상무님, 7조 직접 쓰신 거 맞습니까? 연애 금지요?”
서진은 그 남자를 보았다. 그녀는 대답하기 전에 그 얼굴을 오래 보았다. 은호는 그녀의 왼쪽 어깨가 아주 조금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있었다.
“노경수 기자님. 삼 년 전에도 저 찍으셨죠?”
노경수의 입이 반쯤 열렸다.
“그때 제 경호원이 제 사진을 기자님한테 팔았어요. 제 침실 창문 사진이었어요. 기자님이 그걸 샀고, 기사에 제 방 커튼 색깔까지 썼어요. 그래서 제가 7조를 썼어요. 경호원이랑 연애하면, 그 사람이 나를 팔 수 있으니까. 그거 쓰게 만든 분이 오늘 그 7조로 기사를 쓰셨네요.”
골목이 조용해졌다. 셔터 소리가 멈췄다가, 몇 대가 노경수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노경수의 얼굴이 처음으로 카메라에 찍혔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려다 그만두었다.
“그건 지금 사안과 관계없습니다. 상무님, 계약 조항을 스스로 어기신 거 아닙니까? 주총을 앞두고 판단력에 문제가…….”
“어젯밤 아홉 시 반에 저희 건물 주차장에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노경수가 말을 멈췄다.
“관리실 출입증으로 찍고 들어오셨죠. 그 출입증은 한성 계열 관리 회사가 발급해요. 누가 그 출입증을 줬어요? 그 사람 이름 말해 주시면 저도 7조 얘기 다 해 드릴게요.”
노경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걸음에 그의 운동화가 골목 바닥에 쌓인 첫눈을 밟았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셔터 소리 사이에서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서진은 돌아서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동구가 우산을 접지 않은 채 따라 들어왔다. 대문이 닫히자 그녀는 대문에 등을 기댔다. 다리가 풀린 것처럼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은호가 3미터를 1미터로, 1미터를 반 뼘으로 줄여 그녀의 팔꿈치를 받쳤다.
“3미터라고 했잖아요.”
“대문 안입니다. 사진 안 찍힙니다.”
“해석 잘하네요, 요즘.”
“배웠습니다.”
그녀는 그의 소매를 잡은 채 숨을 골랐다. 첫눈이 대문 위 처마 끝에서 녹아 한 방울씩 떨어졌다. 한 방울이 그녀의 코트 실밥 위에 떨어져 스몄다.
“삼 년 전에 그 사람이 판 사진이요. 그 사람도 처음엔 저를 업었어요. 비 오는 날 차까지.”
은호는 소매를 잡힌 팔에 힘을 주지 않았다. 빼지도 않았다.
“저는 안 팝니다.”
“알아요. 그래서 7조를 안 지우는 거예요. 지우면 그 사람이랑 팀장님이 같은 사람이 돼요. 팀장님은 그 사람 아니에요.”
그녀가 소매를 놓았다. 은호는 3미터로 돌아가지 않았다. 1미터에 섰다.
*
열 시, 빌라 지하 1층 관리실은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와 컵라면 냄새로 차 있었다. 관리실장은 오십 대 남자였다. 가슴에 한성 계열 관리 회사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은호가 어젯밤 아홉 시 반 출입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모니터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개인정보라서 안 됩니다. 경찰이 공문 들고 오면 드릴게요.”
“어젯밤 그 사람은 공문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건 출입증이 있었으니까요.”
“그 출입증 누가 발급했습니까?”
“그것도 개인정보예요.”
관리실장이 의자를 돌려 등을 보였다. 그때 은호 뒤에 서 있던 동구가 고개를 숙여 관리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문틀에 이마가 닿았다. 그는 관리실장의 책상 위 컵라면 옆에 놓인 플라스틱 반찬통을 보고 있었다.
“사장님, 그 깍두기 부산 서면 「고향집」 거 아입니꺼? 뚜껑에 스티커 보니까.”
관리실장이 돌아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거기서 그 깍두기 십 년 담갔습니더. 사장님 형님이 그 가게 단골 아니셨습니꺼? 해마다 겨울에 열 통씩 택배로 부치던 분. 받는 주소가 서울 한남동이었는데예.”
관리실장이 한참 동구를 보았다. 그리고 반찬통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은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관리실장은 한숨을 쉬더니, 모니터를 가렸던 손을 내렸다.
“출입증은 지난주에 본사 경호실에서 임시로 다섯 장 받아 간 것 중 하나예요. 서명한 사람 이름까지는 못 보여 줘요. 보여 주면 내가 잘려요.”
“그거면 됩니다.”
나오는 길에 동구가 은호에게 작게 말했다.
“팀장님, 사실 그 깍두기 제가 담근 건지 모릅니더. 스티커만 봤습니더.”
“알아.”
“아셨습니꺼?”
“동구 씨 거짓말할 때 사투리가 진해져.”
동구가 큰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그의 귀가 빨갰다.
*
오전 열한 시, 서진의 메일함에 한성홀딩스 이사회 사무국 공문이 들어왔다. 은호는 그녀 어깨 너머 1미터에서 화면을 읽었다.
12월 7일 월요일 오후 두 시, 임시이사회 개최. 안건 하나, 최근 보도와 관련한 한서진 이사의 소명. 안건 둘, 12월 23일 임시주주총회 안전 관리 방안. 제안자, 이사 한승원.
서진은 둘째 안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안전 관리 방안이요. 저 지키는 방법을 오빠가 이사회에서 정하겠대요.”
창밖에서 첫눈이 굵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녹지 않고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