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07자)

거꾸로 듣는 귀

재벌 3세의 경호원은 연애 금지 조항을 어겼다 · 오세림

12월 2일 수요일 아침 여섯 시 반, 한남동 빌라 1층 경비실 뒤 창고에서 마동구가 서진의 회색 캐시미어 목도리를 두르고 서 있었다. 목도리는 그의 목을 한 바퀴 반밖에 돌지 못했다. 끝자락이 쇄골 앞에서 대롱거렸다. 그는 서진의 챙 넓은 모자까지 썼는데, 모자가 정수리 위에 접시처럼 얹혀 있었다.

“팀장님, 이거 진짜 상무님으로 보입니꺼?”

“뒷좌석 선팅이 진해. 머리 숙이고 있으면 사람 하나로 보여.”

“사람 하나로는 보이겠지예. 상무님으로 보이냐고 여쭌 깁니더.”

윤세라가 운전석 문에 기대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그녀는 웃는 김에 휴대전화를 들어 동구를 찍었다. 동구가 손바닥으로 렌즈를 가렸다. 서진은 창고 문간에서 그 광경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동구 씨, 제 목도리 늘어나요.”

“이미 늘어났습니더. 죄송합니더.”

은호는 남색 코트를 들고 있었다. 지난밤 서진이 이불 세 겹으로 덮어 둔 그 코트였다. 그는 그것을 뒷좌석에 앉은 동구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코트 안감 왼쪽 아래의 두꺼운 단추가 동구의 허벅지에 눌렸다. 그리고 그는 일부러 차 안에 대고 크게 말했다.

“상무님, 마포대교로 갑니다. 여덟 시 이십 분 통과합니다.”

동구가 모자 밑에서 목소리를 가늘게 높였다.

“네에, 좋아요.”

서진이 창고 문간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은호는 문을 닫았다. 세단이 지하 주차장 경사로를 올라가 골목으로 사라졌다.

“제가 저렇게 말해요?”

“비슷하게 하셨습니다.”

“전혀 안 비슷하거든요.”

*

서진은 택시 뒷좌석에 앉았다. 칠 년 만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육십 대 남자였는데, 라디오 볼륨을 줄이며 백미러로 은호를 보았다.

“두 분 출근하세요? 부부세요?”

“아닙니다.”

은호가 대답했고, 서진이 동시에 말했다.

“계약 관계예요.”

“아, 요즘 그런 것도 있다더라고. 계약 연애. 우리 딸이 보는 드라마에 그런 게 나와.”

“계약은 맞는데 연애는 금지예요. 7조에 있어요.”

기사가 백미러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라디오 볼륨을 도로 올렸다. 택시는 원효대교로 들어섰다. 아침 햇빛이 한강 위에서 부서졌고, 다리 난간 그림자가 택시 안으로 줄무늬처럼 차례로 지나갔다. 서진은 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이마가 닿은 자리에 김이 동그랗게 서렸다가 사라졌다.

여덟 시 이십일 분, 은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세라였다. 숨이 거칠었다.

“팀장님, 마포대교 남단 내려오자마자 갓길에 서 있던 덤프트럭이 튀어나왔어요. 우리 차선으로 바로요. 깜빡이도 안 켜고요. 제가 핸들 꺾어서 피했어요. 십 센티 남기고요. 번호판 찍었어요. 동구 오빠가 모자 떨어뜨렸어요.”

“다친 사람?”

“동구 오빠가 목도리에 목 졸릴 뻔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동구가 “안 졸렸습니더!” 하고 소리쳤다. 은호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창밖 원효대교 난간을 보았다. 서진이 그의 손을 보았다. 휴대전화를 쥔 손의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마포대교였으면요?”

“덤프트럭과 저희 차 사이가 십 센티였습니다.”

서진은 그 숫자를 두 번 따라 했다. 십 센티. 그리고 다시 창에 이마를 댔다. 이번에는 김이 서리지 않았다. 숨을 참고 있었다.

*

여의도 한성바이오 사무실 로비 소파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서른여덟쯤, 회색 점퍼에 낡은 서류 가방, 그리고 이 건물 로비에서 커피를 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어나 신분증을 보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를 도와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수사관이었다. 권도윤.

“한성건설 비자금 사건을 봅니다. 오늘 아침 마포대교 남단 덤프트럭, 저희가 그 차를 석 달째 보고 있었습니다. 한성건설 하청업체 차예요.”

“그럼 왜 오늘 아침에 안 막으셨어요?”

서진이 물었다. 권도윤은 대답 대신 서류 가방을 열었다.

“막으려면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생겼습니다. 상무님 코트하고 본가 부엌에 붙은 기계요. 불법 감청이에요. 그걸 누가 붙였는지 말해 줄 사람이 있으면, 한성 경호실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호는 3미터 뒤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는 한 걸음도 다가가지 않았다.

“어떻게 아십니까? 기계를요.”

권도윤이 은호를 보았다. 그 눈에 사과가 없었다.

“한성 경호실 통화를 저희가 듣고 있어서요. 법원 허가 받고요. 거기서 지난주 내내 상무님 이름이 나왔습니다.”

“지난주 내내요. 그럼 저희가 강변북로에서 가드레일 긁을 때도 듣고 계셨습니까?”

“그건 저희가 못 들었습니다. 그건 다른 전화로 했더군요.”

서진은 소파에 앉지 않았다. 그녀는 권도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수사관님이 원하는 건 기계예요, 아니면 저예요?”

“둘 다요. 기계로는 경호실까지 갑니다. 한승원 부회장까지 가려면 상무님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건설 자금이 홀딩스로 어떻게 넘어갔는지, 상무님이 어머님 이사회 자료를 갖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서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은호는 그 얼굴을 보았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그의 턱에 힘을 넣었다.

*

오후 두 시, 경호업체 사무실은 마포의 오래된 빌딩 4층에 있었다. 형광등이 하나 나가 있었고, 정수기 물통이 비어 있었다. 은호는 대표 앞에 보고서 두 장을 내려놓았다. 대표가 읽는 동안 지훈은 창가에 서서 무전기를 벗었다. 이어폰 줄을 무전기에 둘둘 감아, 책상 위에 올렸다.

대표가 보고서에서 눈을 들었다.

“해지야. 오늘부로. 지훈아, 미안하다. 계약서에 그렇게 돼 있어.”

“압니다.”

지훈은 짐을 쌌다. 짐은 종이 상자 하나에 다 들어갔다. 컵 하나, 볼펜 몇 자루, 실과 바늘이 든 작은 반짇고리. 동구가 사무실 문 앞에서 그 상자를 들어 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세라는 은호를 보지 않았다.

“형이 살려 준다면서요. 아직이라면서요.”

세라가 그렇게 말하고 먼저 나갔다. 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훈이 상자를 안은 채 문 앞에서 돌아섰다.

“형. 권 수사관이 저 진술하면 빚은 법률구조공단에 연결해 준대요. 나라에서 무료로 변호사 붙여 주는 데요. 이자는 불법이라서 다 안 갚아도 된대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제가 처음부터 형한테 말했으면 됐던 거더라고요.”

“그래.”

“그 말만 하고 갈게요. 아, 그리고 상무님 코트 단추요, 제가 박음질로 달아서 진짜 안 떨어져요. 떼실 때 가위로 하세요.”

지훈은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그리고 나갔다.

*

네 시, 을지로 한성건설 본사 32층 대표실. 강철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은호를 불렀다. 서진은 여의도 사무실에 동구와 남았고, 은호는 혼자 왔다. 대표실은 넓고 텅 비어 있었다. 책상 위에 서류 한 장 없이 크리스털 재떨이 하나만 놓여 있었고, 재떨이는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다. 통유리 너머로 청계천이 회색 띠처럼 흘렀다.

한승원은 창가에 서 있었다. 강철규는 문 옆에 섰다. 두 사람과 은호 사이가 정확히 3미터씩이었다.

“앉아.”

“서 있겠습니다.”

“자네는 앉으라는 말도 안 듣는구나. 철규가 그러더라. 원래 그렇다고.”

승원은 창가에서 돌아섰다. 웃고 있었다. 병실에서, 김장 마당에서와 같은 웃음이었다.

“오늘 아침 마포대교는 잘 피했더라. 자네 아이디어지? 우리 쪽에서 들은 게 거짓말인 걸 알고 나서, 나 솔직히 감탄했어.”

“덤프트럭을 세우신 분이 감탄하실 일은 아닙니다.”

“덤프트럭? 무슨 덤프트럭?”

승원은 강철규를 돌아보았다. 강철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승원이 다시 은호를 보았다.

“자네 팀원 하나 잘렸다며. 백지훈이라고.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신다던데. 한 달에 이백팔십. 그거 내가 내 줄 수도 있었어. 지금도 내 줄 수 있고.”

은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승원은 그 주먹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걸 본 사람의 끄덕임이었다.

“차은호 씨. 주총 날까지만 내 동생 옆에서 조금 덜 부지런하면 돼. 하루만, 23일 아침 한 시간만. 그 대가로 지훈이 아버지 병원비, 자네 군 기록 정정, 우리 경호실 부실장 자리. 셋 다 줄게.”

“제 기록은 정정할 게 없습니다.”

“지시 불이행이 정정할 게 없어?”

“그날 지시를 따랐으면 정정할 게 생겼을 겁니다.”

승원의 웃음이 처음으로 한 박자 늦었다. 강철규가 문 옆에서 몸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은호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부회장님. 상무님 차에 다시 손을 대시면, 그때는 기계 말고 사람이 진술합니다.”

“누가?”

“제가요. 같은 부대에서 누가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부터.”

강철규의 숨이 문 옆에서 멈췄다. 승원은 은호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재떨이를 손가락으로 한 번 밀었다. 크리스털이 책상 유리 위를 미끄러지며 낮게 울었다.

“가 봐. 동생한테 안부 전해 주고. 아, 그리고.”

은호가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승원이 말했다.

“동생이 쓴 계약서 7조, 나도 읽었어. 우리 집안 법무팀이 다 검토하거든. 자네가 그걸 어기는 날, 동생은 계약 위반 경호원을 데리고 주총장에 들어오는 사람이 돼. 우리 이사들은 그런 걸 좋아해.”

*

밤 열 시, 한남동 빌라 지하 주차장. 기둥마다 붙은 형광등 가운데 하나가 깜박이고 있었다. 은호가 차에서 내리자, 엘리베이터 앞 기둥에 서진이 서 있었다. 코트 없이 니트 한 장만 입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혼자 갔다면서요.”

“불렀습니다.”

“부르면 가요? 오빠가 부르면? 팀장님이 저한테 그랬잖아요. 저쪽이 아는 곳은 가지 말라고.”

“상무님이 안 가시는 곳은 제가 가야 합니다.”

“지훈 씨 잘렸어요. 세라 씨는 팀장님이랑 말 안 한대요. 수사관은 엄마 자료를 내놓으래요. 오늘 아침엔 십 센티였어요. 그리고 팀장님은 혼자 을지로에 갔어요. 3미터도 아니고 1미터도 아니고, 저 없이.”

서진이 걸어왔다. 3미터가 2미터가 되고, 1미터가 되었다. 은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넥타이를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넥타이 매듭에 그녀의 손가락 관절이 닿았다.

“7조요.”

“네.”

“지금 위반하는 건 제 쪽이에요. 팀장님 말고.”

그녀가 발끝을 들었다. 은호가 고개를 숙인 것은 그녀가 넥타이를 당기기 반 박자 전이었다. 입술이 닿았다. 차가운 입술이었다가, 금방 따뜻해졌다. 그녀의 숨에서 낮에 마신 생강차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에 닿았다가, 니트 아래 그녀의 등이 떨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손바닥을 넓게 폈다. 0이었다. 몸으로 막을 때가 아니었는데도.

깜박이던 형광등이 한 번 완전히 꺼졌다가 켜졌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 옆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한 번. 그리고 연달아 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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