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52자)

생방송 중에 그물이 떨어졌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2월 6일 일요일 오후 세 시⁠, 기와집 마당은 마당이 아니었다⁠. 대문 양옆에 조명 탑 두 개가 세워졌고⁠, 장독대 위에는 카메라 레일이 깔렸다⁠. 굵은 전선이 멍석 위를 뱀처럼 기어 다녔다⁠. 대문 밖 공터에는 반석규의 크레인 트럭과 수조 트럭이 나란히 서 있었다⁠. 크레인 끝에 부드러운 초록 그물이 둘둘 말려 매달려 있었다⁠. 큰 바다 동물을 다치지 않게 옮길 때 쓰는 그물이라고 했다⁠.

담장 밖은 구경꾼으로 빽빽했다⁠. 금포마을 사람들에 이웃 마을⁠, 읍내에서 온 사람들까지 섞였다⁠. 부녀회는 어묵 솥을 두 개로 늘리고 가격표를 새로 붙였다⁠. 「⁠생방송 특가 어묵 두 꼬치 이천 원⁠」⁠. 두 꼬치를 사면 한 꼬치 값을 깎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줄이 길었다⁠.

할머니는 이 마당에 없었다⁠. 낮에 큰삼촌과 고모가 경로당으로 모셔 갔다⁠. 방송 끝날 때까지 경로당에서 화투나 치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지팡이를 짚고 따라 나갔다⁠. 대문을 나서면서 입춘첩을 한 번 올려다보았을 뿐이었다⁠.

맹하라가 큐시트를 들고 연서에게 왔다⁠.

“⁠연서 씨⁠, 설빔 입어 주세요⁠. 분홍 저고리⁠. 그림 돼요⁠.⁠”

연서는 안방에서 분홍 저고리와 연보라 치마를 입고 흰 누빔 조끼를 걸쳤다⁠. 긴 갈색 머리를 하나로 다시 묶고 동그란 안경을 닦았다⁠. 거울 속 얼굴이 설날 아침과 같은 옷인데 다른 사람 같았다⁠. 맹하라가 큐시트를 내밀었다⁠.

「⁠18⁠:00 오프닝 · 18⁠:05 통역사 인사 · 18⁠:10 용님 세배와 덕담 · 18⁠:20 이송 시작 · 18⁠:40 수조 도착 · 18⁠:50 마무리 인터뷰⁠」

“⁠덕담은 짧게 받아 주시고요⁠. 이송은 박사님이 신호 주시면 연서 씨가 용님께 대전 가시자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PD님⁠.⁠”

“⁠네⁠?⁠”

연서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어젯밤부터 용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 큐시트는 종이 한 장이 되고 오천만 원도 종이 한 장이 된다⁠. 오천만 원이 있어야 할머니 집을 지킬 수 있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돌아올 집이었다⁠.

“⁠아니에요⁠. 잘할게요⁠.⁠”

지붕 위의 용은 오후 내내 한 번도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연서가 아침에 마당에서 세 번 불렀을 때 세 번 다 파도 소리만 돌아왔다⁠.

*

18시 정각⁠, 조명이 켜졌다⁠. 저녁 바다가 남색으로 가라앉는 사이 하얀 빛이 지붕을 통째로 비췄다⁠. 하늘빛 비늘이 조명을 받아 금빛 테를 번쩍였고⁠, 담장 밖에서 탄성이 터졌다⁠. 진행을 맡은 개그맨 출신 MC가 마이크를 잡았다⁠.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지금 보고 계신 것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닙니다⁠! 전남 고흥 금포마을⁠, 설날 아침 할머니 세뱃상에 나타난 세배 받는 청룡⁠! 그리고 이분이 용의 말을 알아듣는 단 한 사람⁠, 통역사 길연서 씨입니다⁠!⁠”

연서는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손이 귀로 올라가 헤드셋을 찾았다⁠. 귀에는 방송국에서 꽂아 준 이어폰이 있었다⁠. 맹하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서 씨⁠, 웃어요⁠.⁠”

“⁠연서 씨⁠, 용님께 인사 한번 여쭤 주시죠⁠!⁠”

연서가 지붕을 향해 말했다⁠.

“⁠용님⁠, 전국에서 보고 계십니다⁠. 한 말씀 해 주세요⁠.⁠”

용이 입을 열었다⁠. 파도 소리가 마당을 덮었다⁠. 창호지가 떨었다⁠. 담장 밖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연서의 귀에는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쏴아⁠, 하는 소리뿐이었다⁠.

연서는 일곱 해 동안 수없이 해 온 일을 했다⁠. 고객이 무슨 말을 하든 회사가 정한 문장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용님께서⁠…⁠… 시청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십니다⁠.⁠”

MC가 손뼉을 쳤다⁠. 담장 밖에서도 박수가 나왔다⁠. 앞줄에 서 있던 어촌계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장이 어촌계장 옆구리를 찔렀다⁠.

“⁠용님이 언제 저리 말했당가⁠. 맨날 절부터 하라 하셨는디⁠.⁠”

십 분이 지났다⁠. MC가 덕담을 청할 때마다 연서는 말을 지어냈다⁠. 용님께서 다들 건강하시라고 하십니다⁠. 용님께서 바다를 아껴 달라고 하십니다⁠. 용이 입을 열 때마다 파도 소리가 났고⁠, 연서가 지어낸 말이 파도 소리 위에 덮였다⁠. 용은 금빛 눈으로 연서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18시 20분⁠, 반석규가 크레인 기사에게 손을 들었다⁠. 맹하라가 이어폰으로 속삭였다⁠. “⁠연서 씨⁠, 지금⁠.⁠”

연서가 마이크를 입에 댔다⁠. 입술이 말랐다⁠.

“⁠용님께서⁠…⁠… 대전 구경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박사님 연구원으로 가시겠답니다⁠.⁠”

담장 밖이 웅성거렸다⁠. 이장이 “⁠아니여⁠!⁠” 하고 소리쳤다⁠. 크레인이 움직였다⁠. 붐대가 천천히 지붕 위로 뻗어 나가고⁠, 초록 그물이 풀려 내려왔다⁠. 그물은 넓고 가벼웠다⁠. 조명 빛 속에서 그물코마다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물이 용의 등에 닿았다⁠.

용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용이었다⁠. 꼬리 끝 하나 들지 않고 그물이 몸을 덮도록 두었다⁠. 그물이 비늘 위로 미끄러져 처마 끝까지 내려왔다⁠. 하늘빛 몸이 초록 그물코 사이로 갇혔다⁠.

*

연서의 귀에 바다 냄새가 났다⁠.

냄새가 귀로 들어온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그랬다⁠. 미역 냄새⁠, 물에 젖은 돌 냄새⁠, 여름 방파제의 뜨거운 시멘트 냄새⁠. 그리고 말이 들렸다⁠. 사흘 만이었다⁠.

“⁠여덟 살 여름이었다⁠.⁠”

연서는 마이크를 내렸다⁠.

“⁠네가 방파제 끝에서 게를 잡겠다고 몸을 내밀다가 떨어졌다⁠. 물을 먹고 가라앉았다⁠. 숨이 멎은 아이를 내가 건져 모래밭에 올려놓고⁠, 입에 내 숨을 불어 넣었다⁠. 너는 기침을 하고 하늘을 보았다⁠. 사람들은 파도가 너를 내던졌다고 했지⁠.⁠”

연서는 기억했다⁠. 뜨거운 모래⁠, 눈에 박힌 하늘⁠, 입 안 가득한 짠맛⁠. 큰삼촌이 맨발로 달려와 연서를 안아 들던 것⁠. 파도가 살렸다고 어른들이 말하던 것⁠. 기침을 할 때 바다에서 무언가 커다랗고 하늘빛인 것이 물속으로 가라앉던 것⁠. 꿈이라고 여긴 것⁠.

“⁠그래서 너는 내 말을 듣는다⁠. 내 숨이 네 안에 있으니⁠. 금례는 모른다⁠. 너도 몰랐지⁠.⁠”

“⁠용님⁠…⁠…⁠.⁠”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너는 어미의 어미를 살리려 한 것이니⁠. 다만 지어낸 말은 말이 아니다⁠. 내 입에서 나오지 않은 말로는 나를 어디로도 옮기지 못한다⁠.⁠”

크레인 기사가 그물 끝을 당기라는 신호를 받았다⁠. 그물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반석규가 무전기에 대고 “⁠천천히⁠” 하고 말했다⁠.

대문 밖이 소란해졌다⁠. 사람들이 갈라지며 길을 냈다⁠. 지팡이 소리가 들어왔다⁠. 할머니였다⁠. 뒤에서 고모가 쫓아오며 소리쳤다⁠.

“⁠어매⁠! 경로당에 계시라니께⁠!⁠”

할머니는 대문을 지나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씩⁠. 조명이 할머니의 흰머리를 하얗게 태웠다⁠. 카메라 셋이 동시에 할머니를 향했다⁠. 맹하라가 이어폰에 대고 “⁠할머니는 잡지 마⁠!⁠” 하고 외쳤지만 카메라 감독들은 이미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처마 밑⁠, 그물이 늘어진 자리 바로 아래까지 가서 멈췄다⁠. 초록 그물 끝이 할머니 어깨에 닿았다⁠. 할머니가 반석규를 보았다⁠.

“⁠그물 걷어라⁠. 우리 집 손님이다⁠.⁠”

반석규가 무전기를 내렸다⁠.

“⁠어르신⁠, 위험합니다⁠. 비켜 주십시오⁠.⁠”

“⁠내 집 마당에서 내가 어디로 비켜⁠.⁠”

*

연서가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지난 이십 분 동안 제가 옮긴 말은 전부 제가 지어낸 말이에요⁠. 어젯밤부터 저는 용님 말을 못 들었어요⁠. 용님이 제게 말을 안 주셨어요⁠. 제가 용님 말을 팔려고 했으니까요⁠.⁠”

MC가 맹하라를 돌아보았다⁠. 맹하라는 중계차 모니터 앞에서 손을 들었다가⁠, 내리지 않았다⁠. 신호는 ‘⁠계속 가⁠’였다⁠.

“⁠방금 용님 말이 다시 들렸어요⁠. 여덟 살 때 제가 이 앞 방파제에서 떨어졌는데⁠, 용님이 저를 건져서 숨을 불어 넣어 주셨대요⁠. 그래서 제가 용님 말을 알아듣는 거래요⁠. 저도 방금 알았어요⁠.⁠”

담장 밖이 조용했다⁠. 고모가 입을 막았다⁠. 경로당에서 뛰어온 큰삼촌이 대문 기둥을 붙잡고 서 있었다⁠. 스물네 해 전 여름 맨발로 모래밭을 달린 사람이 큰삼촌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우리 할머니가 대보름에 용님 따라 용궁에 가시겠대요⁠.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데요⁠. 저는 할머니가 가시는 게 싫어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용님을 대전으로 보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 방송을 했어요⁠.⁠”

연서는 반석규를 보았다⁠.

“⁠박사님⁠, 통역 없이는 못 옮기신다고 하셨죠⁠. 저 안 해요⁠. 이제 아무 말도 안 옮겨요⁠.⁠”

반석규가 연서를 보았다⁠. 그물 아래 할머니를 보았다⁠. 지붕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물을 쓰고 있는 용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크레인 기사에게 무전을 쳤다⁠.

“⁠그물 거둡니다⁠. 통역 없이 옮기면 다칩니다⁠. 생물도 사람도⁠.⁠”

크레인이 그물을 걷어 올렸다⁠. 초록 그물이 비늘 위를 거슬러 올라가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용이 그제야 몸을 한 번 크게 털었다⁠. 기와 위 서리가 조명 속으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담장 밖에서 누군가 먼저 박수를 쳤고⁠, 박수가 언덕 아래까지 번져 갔다⁠.

연서는 중계차로 걸어가 맹하라 앞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가 땀에 젖어 있었다⁠. 두 손으로 반을 찢었다⁠.

“⁠출연료 안 받을게요⁠. 위약금은 보내 주시면 갚을게요⁠. 천천히요⁠.⁠”

맹하라가 찢어진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모니터 열두 대에 시청률 그래프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위약금은 국장님이 정하세요⁠. 저는⁠…⁠…⁠.⁠” 맹하라가 말을 끊었다⁠. “⁠연서 씨⁠, 오늘 방송 제가 십 년 만든 것 중에 제일 잘 나왔어요⁠. 그게 화가 나네요⁠.⁠”

*

밤 아홉 시⁠, 구경꾼들이 다 내려가고 마당에 전선만 남았다⁠. 고모는 연서를 안고 한참 등을 두드리다가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했다⁠. 할머니는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라면 상자 테이프 뜯는 소리가 한 번 났다가 멈췄다⁠. 연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콜센터 팀장이었다⁠.

“⁠연서 씨⁠, 방송 봤어요⁠. 다들 봤어요⁠. 근데 연서 씨⁠, 위에서 그러는데⁠…⁠… 내일 출근 안 하면 계약 갱신이 어렵대요⁠. 연차가 남아 있어도요⁠. 승진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서는 마루 끝에 앉아 바다를 보았다⁠. 조명 탑이 꺼진 뒤의 바다는 검었고⁠, 반달보다 조금 더 찬 달이 물 위에 길을 내고 있었다⁠.

“⁠팀장님⁠, 그만두겠습니다⁠.⁠”

“⁠연서 씨⁠.⁠”

“⁠일곱 해 동안 고객님들 말을 제 말로 바꿔서 옮겼어요⁠. 이제 안 하려고요⁠. 감사했습니다⁠.⁠”

전화를 끊자 대문 밖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회색 코트였다⁠. 석재학은 생방송 내내 담장 밖 구경꾼 사이에 서 있었다고 했다⁠. 석재학은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턱 밖에서 고개를 숙였다⁠.

“⁠연서 씨⁠, 대보름 전날 밤에 찾아뵙겠습니다⁠. 어르신께 새 조건을 가져가겠습니다⁠.⁠”

“⁠무슨 조건이요⁠?⁠”

“⁠그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미리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석재학이 목소리를 낮췄다⁠. “⁠큰삼촌께서 1월 3일 저희와 자문 계약을 하시고 2천만 원을 받으셨습니다⁠. 저희 회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방송을 보니⁠, 숨기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석재학이 돌아서 언덕을 내려갔다⁠. 연서는 마루에 앉은 채 고개를 돌렸다⁠. 큰삼촌이 부엌 쪽문 앞에 서 있었다⁠. 들은 얼굴이었다⁠. 손에 순천 요양원에 다시 걸려던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요양원 입소 연기 요청⁠」이라고 쓴 문자가 보내지기 직전에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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