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74자)
할머니 몰래 큰삼촌과 손잡았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2월 4일 금요일 아침, 입춘이었다. 할머니는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벼루와 먹을 꺼냈다. 해마다 대문에 붙이는 입춘첩을 올해는 연서에게 쓰라고 했다. 한지 두 장을 길게 잘라 마루에 펴 놓고,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글자 자리를 짚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봄이 오니 크게 좋고, 볕이 드니 경사가 많다는 말이여.”
연서는 붓을 쥐어 본 적이 초등학교 서예 시간 말고는 없었다. 첫 획부터 먹이 번졌다. 대길의 길 자가 기울어 금방이라도 넘어지려 했다. 지붕에서 용이 고개를 늘어뜨려 한지를 내려다보았다.
“길 자가 술 취했구나. 다시 써라.”
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간밤에 한숨도 못 잔 눈이 따끔거렸다. 용이 한 번 더 말했다.
“획을 너무 누른다. 붓은 바닷물 위에 손을 얹듯이 쥐는 것이다.”
“용님은 손이 없으시잖아요.”
“발이 넷이다.”
할머니가 웃었다. 어젯밤 일은 할머니 얼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연서가 쓴 비뚤어진 글씨를 들어 햇빛에 비춰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사람 사는 집 글씨는 좀 기울어야 정이 붙어.”
할머니가 밥풀로 입춘첩을 대문 기둥에 붙였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붓 자국이 아직 축축했다. 연서는 대문 앞에 서서 글씨를 보았다. 할머니는 대보름 달이 뜨면 이 대문을 다시 들어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할머니 속을 아는 사람이 손녀 하나뿐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알면서 웃고 있었다.
*
열 시, 연서는 포구로 내려갔다. 큰삼촌은 어촌계 사람들과 삼치 상자에 얼음을 채우고 있었다.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낀 큰삼촌이 연서를 보고 허리를 폈다.
“삼촌, 잠깐만요.”
포구 끝 방파제까지 걸어가는 동안 연서는 말을 몇 번이나 고쳤다. 상담원은 나쁜 소식을 전할 때 순서가 있다. 먼저 공감, 다음에 사실, 마지막에 대안. 방파제 끝에 서자 순서가 다 무너졌다.
“할머니가 용궁에 가신대요. 대보름에. 용님 등에 타고요.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오는 데래요.”
큰삼촌이 고무장갑을 벗다가 멈췄다.
“뭔 소리여?”
“할머니가 그러자고 하셨대요. 설날 밤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삼촌한테도요. 저 지금 할머니랑 한 약속 깨는 거예요.”
큰삼촌은 한참 바다를 보았다. 방파제 아래로 파도가 와서 부서졌다. 큰삼촌의 턱이 떨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언덕 위 지붕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포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돌아볼 만큼 큰 소리였다.
“야, 이놈아! 우리 어매 데려갈라고 왔냐! 은혜 갚는다더니 그게 은혜냐!”
언덕 위 지붕에서 용이 고개를 들었다. 멀어서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큰삼촌은 고무장갑을 방파제 바닥에 내던졌다.
“요양원은 3월이 아니여. 당장 간다. 순천에 전화하께. 빈자리 있으믄 월요일에 들어가.”
“월요일이 7일이에요.”
“대보름 이틀 전이여. 됐어. 할매만 이 집에 없으믄 저놈이 어떻게 데려가.”
“용님은 순천까지 날아오실 수 있어요.”
“그라믄 저놈을 치워야제.”
연서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제 받은 명함 두 장이 화면 메모에 저장되어 있었다. 한결방송 맹하라, 한국미기록생물연구원 반석규.
“반석규 박사님이 군청에 보호 조치 신청하셨대요. 허가 나면 수조에 넣어서 대전으로 옮기신대요. 근데 통역 없으면 못 옮긴대요. 용님이 절 안 받으면 꿈쩍도 안 하시니까.”
큰삼촌이 연서를 보았다. 설날 아침 세뱃상 앞에서 맞서던 얼굴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니가 할 거냐, 통역?”
“할게요.”
큰삼촌이 손을 내밀었다. 생선 비린내가 나는 맨손이었다. 연서가 손을 맞잡았다. 큰삼촌의 손바닥은 국밥집 국자 자국으로 단단했다.
*
큰삼촌은 장화를 신은 채 언덕을 올라갔다. 연서가 뒤따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고 집에 없었다. 큰삼촌은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통역해라. 한 마디도 빼지 말고.”
“네.”
“우리 어매를 왜 데려갈라 하냐?”
용이 고개를 처마 밑까지 내렸다. 금빛 눈이 큰삼촌 얼굴 바로 위에 멈췄다. 큰삼촌은 물러서지 않았다.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금례가 가자 한 것이다. 칠십 년 전에 한 번, 설날 밤에 또 한 번.”
연서가 옮겼다. 큰삼촌의 목에 핏대가 돋았다.
“우리 어매가 가자 하믄 낭떠러지도 데려갈 거냐?”
“금례의 말이니.”
“그게 은혜 갚는 거냐?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만 알아묵으믄 그게 짐승이제!”
연서는 마지막 말을 옮기다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낮췄지만 빼지는 않았다. 용은 한참 큰삼촌을 내려다보았다. 바다에서 바람이 올라와 큰삼촌의 점퍼 자락을 흔들었다.
“너는 절은 안 해도 어미 일에는 바르다. 그래서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용이 고개를 돌려 연서를 보았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하려느냐? 상자 가진 자에게 가서 내 말을 옮기려느냐? 붉은 옷 입은 자에게 내 말을 팔려느냐?”
연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용이 처음으로 말을 천천히 끊어서 했다.
“네가 내 말을 팔면, 나는 네게 더는 말을 주지 않겠다.”
“용님, 그건…….”
용이 고개를 들어 용마루 위로 돌아갔다. 큰삼촌이 연서를 보았다.
“뭐라는디?”
“삼촌은 미워하지 않으신대요.”
“니한테는?”
연서는 고개를 저었다. 큰삼촌은 더 묻지 않았다.
*
열한 시 반, 연서는 중계차에서 맹하라와 마주 앉았다. 모니터 열두 대에 지붕 위의 용이 열두 각도로 떠 있었다. 연서는 계약서 마지막 장에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찍었다. 인주가 손가락 끝에 붉게 남았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일요일 생방송 때 반석규 박사님 이송도 같이 해 주세요. 방송에서요.”
맹하라가 눈을 크게 떴다.
“생방송으로 용을 옮긴다고요? 연서 씨, 그거 시청률 대박이에요. 국장님 기절하시겠다.”
“대신 할머니는 화면에 안 나오게 해 주세요.”
“할머니요? 왜요? 할머니가 제일 그림 되는데.”
“월요일에 요양원 가세요.”
맹하라가 펜을 멈췄다. 한참 연서를 보더니 계약서 여백에 무언가를 적어 넣었다. 「조금례 어르신 촬영 불가」.
반석규는 전화로 짧게 답했다. 군청에서 오후에 허가가 났다고 했다. 대보름 전, 용이 먼저 해를 끼친 적이 없더라도 주민 안전을 위해 옮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서의 휴대전화로 군청 문자가 들어왔다. 「희귀 생물 보호 조치 협조 요청 — 2월 6일 18시 · 고흥군」.
“연서 씨, 고맙습니다.” 반석규가 말했다. “통역하시는 분이 마음을 바꾸셨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압니다. 다치지 않게 옮기겠습니다.”
*
2월 5일 토요일 오후, 고모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큰삼촌이 아침에 단톡방 대신 고모에게만 따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화면 속 고모는 건어물 가게 계산대 앞이었고, 뒤로 마른 오징어가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연서야, 오빠 말이 참말이냐? 어매가 용 타고 용궁 간다고?”
“고모, 목소리 좀요. 할머니 마루에 계세요.”
“목소리가 문제냐! 어매가 바다에 들어간다는디!” 고모가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내주면서 화면에 대고 소리쳤다. “어서 오씨요, 쥐포 세 봉 오천 원. 연서야, 그래서 월요일에 요양원이라고?”
“네.”
“잘했다. 잘한 거여. 나도 일요일 밤에 갈란다. 월요일 아침에 어매 순천 모셔다 드리고 올라올 거여.”
“고모, 할머니 화나셨어요.”
“화나도 살아 있어야 화를 내제.”
고모가 쥐포 봉지를 손님에게 건네다가 화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붉었다.
“니 혼자 알고 있었으믄 어쩔 뻔했냐. 고맙다, 연서야.”
통화가 끊겼다. 고맙다는 말이 귀에 남았는데 연서는 기쁘지 않았다.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용은 아침부터 한 번도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
2월 5일 토요일 저녁, 큰삼촌이 순천 요양원 상담 실장과 통화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으로 저녁 뉴스를 보고 있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고흥 ‘세배 받는 용’ 외신도 주목… 한반도 바다 수온 상승 경고」. 할머니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어매, 월요일에 요양원 들어가요. 자리 났어요. 3월 말고 월요일.”
할머니는 큰삼촌을 보지 않고 연서를 보았다. 연서는 문지방에 서 있었다.
“니가 말했냐?”
연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연서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무한테도 말 말라고 했제.”
“네.”
“니만 알아들으라고 한 말을 니가 남한테 옮겼냐?”
“네. 옮겼어요.”
“니가 내 손녀믄 내 말을 들어야제.”
“할머니 손녀니까 안 들어요.”
연서는 문지방을 넘어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설날 아침 세배하던 자리였다. 콜센터에서는 고객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할머니, 용궁은 할머니 발로 가는 데 아니에요. 바다 밑은 발로 못 걸어요.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온대요. 할머니가 거기 가시면 저는 할머니 다시 못 봐요.”
“요양원 가믄 볼 것 같냐? 한 달에 한 번 니가 순천 오믄 나는 창밖 산 보고 앉아 있을 것이여. 그게 보는 거냐?”
“그래도 살아 계시잖아요!”
“산다는 게 뭐여? 누워서 밥 받아먹는 거냐?”
“네! 그것도 사는 거예요!”
큰삼촌이 두 사람 사이에서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쥔 손을 무릎에 올렸다. 손등에 푸른 핏줄이 돋았다. 한참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마루 밖에서 바람이 창호지를 두드렸다.
“칠십 년 전에 내가 그놈한테 약속했다.” 할머니가 낮게 말했다. “크면 데려가 달라고. 그놈은 천 년을 기다려 용이 돼서 약속 지키러 왔다. 나는 내 약속을 어기라는 거냐?”
“네. 어기세요.”
할머니가 연서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장롱 문을 열었다.
“그래, 가마. 요양원. 월요일에.”
“어매?” 큰삼촌이 먼저 놀랐다.
“가자는 데 가 준다는디 왜 놀라냐. 짐 싸라.”
*
밤 열 시, 연서는 마당에 나가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용은 용마루에 턱을 괴고 바다를 보고 있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래에서 불렀다.
“용님.”
용이 고개를 돌렸다. 금빛 눈이 연서를 내려다보았다. 입이 열렸다.
쏴아, 하는 파도 소리가 났다. 굴속을 치고 나오는 바닷물 소리였다. 창호지가 떨었다. 연서는 귀를 기울였다. 말이 없었다. 파도 소리만 있었다. 설날 아침 고모와 큰숙모가 듣던 소리, 태성의 휴대전화에 담긴 소리였다.
“용님, 뭐라고 하셨어요?”
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 파도 소리였다. 연서는 마당에 선 채 손을 귀에 댔다가 내렸다. 일곱 해 동안 수천 통의 목소리를 받아 온 귀에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용은 연서를 한참 보더니 고개를 돌려 다시 바다를 보았다.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큰삼촌이 순천에서 가져온 빈 라면 상자 다섯 개를 펴서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매직으로 상자마다 글씨를 썼다. 「어매 겨울옷」 「어매 약」 「어매 이불」. 할머니는 장롱 앞에 앉아 옷을 개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보라 한복을 꺼내 두 번 접고 한 번 더 접어 상자 맨 위에 얹었다. 연서는 문지방 밖에 서서 그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당 아래 공터에서 반석규의 트럭이 시동을 걸고 수조를 대문 쪽으로 천천히 옮기고 있었다. 후진 경고음이 언덕을 올라왔다. 지붕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내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