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38자)

방송국 드론이 재채기에 날아갔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2월 2일 수요일 아침 여덟 시⁠, 금포마을 어귀에 커다란 흰 중계차가 들어와 멈췄다⁠. 차 옆구리에 하늘색 글씨로 「⁠한결방송⁠」이 박혀 있었다⁠. 설명회 천막에서 누가 찍은 영상이 이틀 동안 백만 번 넘게 재생된 뒤였다⁠. 맑은 하늘 아래 천막에만 쏟아지는 소나기⁠, 게양대에 턱을 괸 하늘빛 용⁠, 젖은 화면에 뜬 「⁠345kV 변전소 후보지(⁠안⁠)⁠」⁠. 영상 제목은 「⁠고흥 면사무소에 용 출현⁠, 변전소 반대 시위⁠?⁠」였다⁠.

중계차에서 빨간 롱패딩을 입은 여자가 내렸다⁠. 귀에 무전 이어폰을 꽂고⁠, 한 손에 대본⁠, 다른 손에 커피를 들었다⁠. 뒤로 카메라 감독 둘과 드론 기사 하나가 장비 가방을 끌며 따라 내렸다⁠. 마을 부녀회는 벌써 회관 앞에 어묵 솥을 걸고 있었다⁠. 「⁠방송국 손님 어묵 한 꼬치 천 원⁠」⁠.

“⁠통역하시는 분 어디 계세요⁠? 길연서 씨⁠?⁠”

여자는 언덕을 성큼성큼 올라와 대문 앞에서 명함을 내밀었다⁠. 「⁠한결방송 예능국 PD 맹하라⁠」⁠.

“⁠연서 씨⁠, 저희 이번 주 일요일 저녁 생방송 특집 잡았어요⁠. 제목은 「⁠세배 받는 청룡⁠」⁠. 연서 씨가 통역으로 나와 주셔야 돼요⁠. 연서 씨 없으면 방송이 그냥 파도 소리예요⁠.⁠”

“⁠일요일이요⁠? 2월 6일이요⁠?⁠”

“⁠네⁠. 대보름 사흘 전⁠. 시청률 제일 잘 나오는 시간이에요⁠.⁠”

지붕 위에서 용이 눈을 떴다⁠.

“⁠저 붉은 것은 누구냐⁠? 절도 안 하고⁠.⁠”

“⁠PD님⁠, 용님께서 먼저 세배를 하시래요⁠.⁠”

맹하라는 커피를 카메라 감독에게 건네고 대문 앞 흙바닥에 그대로 엎드렸다⁠. 빠르고 정확한 절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무전 이어폰을 눌렀다⁠.

“⁠절 했고요⁠, 바로 들어갈게요⁠. 일 번 카메라 지붕 잡아⁠.⁠”

“⁠너는 남의 집 일을 팔아 밥을 먹는구나⁠.⁠” 용이 말했다⁠. “⁠석 달째 네 어미 전화를 안 받았지⁠. 오늘은 받으렷다⁠.⁠”

연서가 그대로 옮기자 맹하라가 대본을 떨어뜨렸다⁠. 카메라 감독이 대본을 주워 주며 PD 얼굴을 살폈다⁠. 맹하라는 대본을 받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중계차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엄마⁠, 나⁠. 아니⁠, 그냥⁠.⁠” 목소리가 바람에 끊겨 들려왔다⁠.

*

드론은 열 시에 떴다⁠. 드론 기사가 조종기를 잡고 지붕 위로 드론을 띄웠다⁠. 작은 날개 네 개가 윙윙거리며 용의 얼굴 앞까지 다가갔다⁠. 맹하라가 중계차 모니터 앞에서 소리쳤다⁠.

“⁠더 가까이⁠! 눈 잡아⁠, 눈⁠! 금색 눈⁠!⁠”

드론이 용의 콧구멍 앞 한 뼘까지 들어갔다⁠. 용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용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재채기였다⁠. 지붕 위에서 바닷바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드론이 낙엽처럼 뒤집혀 날아가더니 언덕을 넘고⁠, 밭을 넘고⁠, 갯바위 너머 바다에 퐁당 떨어졌다⁠. 기와에 앉아 있던 참새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드론 기사가 조종기를 든 채 바다를 보았다⁠.

“⁠PD님⁠, 드론이⁠…⁠…⁠.⁠”

“⁠보험 들었지⁠?⁠”

“⁠그게⁠, 해상 추락은⁠…⁠…⁠.⁠”

“⁠용이 재채기한 걸로 처리해⁠!⁠”

“⁠약관에 용은 없을 텐데요⁠.⁠”

연서는 처마 밑에서 웃음을 참다가 어깨를 떨었다⁠. 할머니는 마루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용이 콧등을 한 번 찡그렸다⁠.

“⁠코가 간지럽다⁠. 저 벌레는 또 오느냐⁠?⁠”

“⁠드론은 하나밖에 없었대요⁠.⁠”

“⁠다행이구나⁠.⁠”

점심때 맹하라가 연서를 중계차 안으로 불렀다⁠. 모니터 열두 대가 켜진 좁은 차 안에 히터가 세게 돌고 있었다⁠. 맹하라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독점 출연 및 통역 계약서 — 출연료 금 오천만 원⁠」

“⁠오천이요⁠?⁠”

“⁠연서 씨 없으면 이 방송은 없어요⁠. 우리 국장이 그 정도는 써도 된대요⁠. 그리고요⁠, 마을에서 들었어요⁠. 할머니 땅 계약 물리려면 육천이 필요하다면서요⁠?⁠”

연서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0이 일곱 개였다⁠. 콜센터 월급으로 열두 해를 모아도 안 될 돈이었다⁠.

“⁠생각해 볼게요⁠.⁠”

“⁠금요일까지 주세요⁠. 연서 씨⁠, 이런 기회 두 번 안 와요⁠. 용도 두 번 안 오고요⁠.⁠”

*

같은 날 오후 세 시⁠, 대전 번호판을 단 트럭 두 대가 언덕 아래 공터에 멈췄다⁠. 한 대는 짐칸에 길이 십오 미터짜리 빈 수조를 싣고 있었다⁠. 수조에 「⁠한국미기록생물연구원 — 해양생물 이송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남자는 오십 대 초반⁠, 회색 등산복 차림이었다⁠. 남자는 대문 앞에서 연서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반석규입니다⁠. 생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반석규는 지붕을 올려다보지도 않고 먼저 절을 했다⁠. 누군가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나서야 지붕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눈이 젖어 있었다⁠.

“⁠너는 나를 상자에 넣으러 왔구나⁠.⁠” 용이 말했다⁠. 덕담 대신이었다⁠.

연서가 옮기자 반석규는 부정하지 않았다⁠.

“⁠네⁠. 그러러 왔습니다⁠.⁠”

*

저녁 일곱 시⁠, 큰삼촌이 순천에서 돌아왔다⁠. 1월 31일 설명회가 끝나자마자 대출 이자를 넣으러 올라갔다가 이틀 만에 오는 길이었다⁠. 승합차 뒷문을 열자 커다란 들통 두 개가 나왔다⁠. 하나는 돼지국밥이었고 하나는 국물만 가득했다⁠.

“⁠국물 통은 뭐예요⁠?⁠”

“⁠저놈 몫⁠.⁠”

큰삼촌이 턱으로 지붕을 가리켰다⁠. 연서는 눈을 끔벅였다⁠. 큰삼촌은 대답 대신 들통을 마당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사골 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지붕 위의 용이 고개를 늘어뜨려 냄새를 맡더니 수염 끝을 국물에 담갔다⁠. 수염이 국물을 빨아올리듯 들통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용이 혀로 입가를 한 번 훔쳤다⁠.

“⁠짜다⁠. 그래도 또 가져오라고 전하라⁠.⁠”

“⁠삼촌⁠, 용님이 맛있대요⁠. 또 가져오시래요⁠.⁠”

“⁠짜다고 했제⁠?⁠”

“⁠어떻게 아셨어요⁠?⁠”

“⁠국밥 스물두 해 했다⁠. 손님 얼굴 보믄 안다⁠.⁠”

마루에 상을 펴고 세 사람이 국밥을 먹었다⁠. 언덕 아래 중계차에서 맹하라가 카메라를 들고 슬금슬금 올라오다가 큰삼촌 눈과 마주치고 도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국밥에 밥을 말며 아들 얼굴을 보았다⁠. 설명회 날 하얗던 얼굴이 아직도 다 돌아오지 않았다⁠.

“⁠변전소인 줄 알았으믄 안 팔았겄냐⁠?⁠” 할머니가 물었다⁠.

큰삼촌은 숟가락을 든 채 한참 국물만 보았다⁠.

“⁠…⁠…팔았겄제⁠. 빚이 있응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낼 때 끄덕이는 고개가 아니었다⁠. 연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국밥만 떠먹었다⁠. 국물이 짰다⁠. 용 말이 맞았다⁠.

*

2월 3일 목요일 아침⁠, 어촌계장 왕석두의 배가 포구를 떠났다⁠. 연서와 반석규가 탔고⁠, 배 옆으로 용이 바닷물 위를 미끄러지듯 따라왔다⁠. 하늘빛 등이 물결 위로 드러났다 잠겼다 할 때마다 물보라가 배 난간을 적셨다⁠. 어촌계장은 키를 잡고 흥얼거렸다⁠. 용님이 배를 따라오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며 기분이 좋았다⁠.

반석규는 뱃머리에 앉아 바다를 보다가 연서에게 말했다⁠. 통영에서 났다고 했다⁠. 아버지가 멸치 배를 탔는데⁠, 반석규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에 배를 팔았다⁠. 그물을 내려도 멸치가 예전처럼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배 판 돈으로 제 등록금을 냈습니다⁠. 그래서 바다 공부를 했어요⁠. 고기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어서⁠.⁠”

“⁠찾으셨어요⁠?⁠”

“⁠더운 데서 찬 데로 갔더군요⁠. 북으로⁠, 깊은 데로⁠. 사람이 못 따라가는 데로⁠.⁠”

반석규는 일 킬로미터마다 배를 세우고 수온계를 바닷물에 내렸다⁠. 숫자를 수첩에 적는 손이 시려 빨갰다⁠. 갯바위 앞에서 12⁠.1도⁠. 일 킬로미터 밖에서 12⁠.9도⁠. 이 킬로미터 밖에서 14⁠.3도⁠. 반석규가 수첩을 연서에게 보여 주었다⁠.

“⁠용 둘레 이 킬로미터 안에서만 바다가 2도쯤 낮습니다⁠. 이 바다의 2월 수온이 삼십 년 전에는 대개 이랬습니다⁠. 고기가 돌아온 까닭이 이겁니다⁠.⁠”

“⁠그럼 대보름에 용님이 가시면요⁠?⁠”

“⁠한 주 안에 원래대로 데워질 겁니다⁠. 고기도 따라 나갈 거고요⁠.⁠”

반석규가 뱃전에 기대어 물 위의 용을 보았다⁠.

“⁠연서 씨⁠, 통역 부탁드립니다⁠. 저와 같이 대전으로 가 주십시오⁠. 연구원에 큰 해수 수조가 있습니다⁠. 거기서 정확히 재면 이 생물이 어떻게 바다를 식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알면 바다를 식힐 방법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생물 하나 빼고는⁠.⁠”

연서가 옮겼다⁠. 용이 물 위로 머리를 들었다⁠. 수염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다⁠.

“⁠수조라⁠. 나는 천 년을 바다에서 살았다⁠. 너는 나를 물 담은 상자에 넣겠다는 것이냐⁠?⁠”

“⁠천 년 동안 이 바다가 이렇게 빨리 데워진 적은 없었을 겁니다⁠.⁠” 반석규가 대답했다⁠. 연서가 옮기기 전에⁠, 용이 알아들을 거라고 믿는 사람처럼 용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저는 당신을 가두려는 게 아니라 이 바다를 붙잡으려는 겁니다⁠.⁠”

“⁠말은 바르구나⁠. 그래도 싫다⁠.⁠”

“⁠용님께서 싫으시대요⁠.⁠”

“⁠군청에 보호 조치 신청을 넣었습니다⁠.⁠” 반석규가 수첩을 덮었다⁠. “⁠어제 저녁에요⁠. 마을 사람들이 지붕에 사다리를 놓고 드론을 띄우고 생선을 달라고 줄을 섭니다⁠. 이대로 두면 누군가 다칩니다⁠. 이 생물이든 사람이든⁠. 허가가 나면 옮기겠습니다⁠.⁠”

“⁠용님이 싫다잖아요⁠.⁠”

“⁠생물한테 의사를 묻는 법은 없습니다⁠. 통역이 있는 경우는 저도 처음이지만⁠.⁠”

어촌계장이 키를 놓고 몸을 돌렸다⁠.

“⁠박사님⁠, 용님 데려가믄 우리 삼치는 누가 데려와요⁠?⁠”

“⁠삼치는 대보름 지나면 어차피 갑니다⁠, 계장님⁠.⁠”

어촌계장이 입을 다물었다⁠. 배가 포구로 돌아가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용은 배 옆을 따라오다가 갯바위 앞에서 혼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한참 뒤 언덕 위 지붕에 하늘빛이 다시 나타났다⁠.

*

밤 열한 시⁠, 연서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처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핫팩을 두 개 쥐었다⁠. 용은 바다 위에 뜬 달을 보고 있었다⁠. 초아흐레 달이 반보다 조금 더 차 있었다⁠.

“⁠용님⁠. 할머니한테 갚을 거⁠, 그게 뭐예요⁠? 생선은 아니잖아요⁠.⁠”

용이 한참 말이 없었다⁠. 달이 구름에 들어갔다 나왔다⁠.

“⁠칠십 년 전에 금례가 나를 치마에 싸서 물에 넣을 때 두 가지를 말했다⁠. 크거든 세배하러 오라고⁠. 그리고 하나 더⁠. 크거든 나 용궁 구경 한번 시켜 다오⁠.⁠”

연서는 사다리를 꽉 잡았다⁠.

“⁠대보름 달이 차면 금례를 등에 태우고 용궁에 간다⁠. 용궁 문은 한 번 들어가면 뭍 쪽으로 다시 열리지 않는다⁠. 거기서는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는다⁠.⁠”

“⁠안 돼요⁠.⁠”

“⁠금례가 그러자 했다⁠. 설날 첫날 밤에⁠. 네가 잠든 사이 금례가 마루에 나와 나와 이야기했다⁠.⁠”

연서는 사다리를 내려왔다⁠. 두 칸을 건너뛰어 발목이 시큰했다⁠. 안방 문을 열자 할머니가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았는데 깨어 있었다⁠. 창호지로 달빛이 희미하게 들어와 할머니의 흰머리를 비췄다⁠.

“⁠할머니⁠.⁠”

“⁠들었냐⁠?⁠”

“⁠용궁 가신다는 거⁠, 거짓말이죠⁠?⁠”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연서 손을 잡았다⁠. 할머니 손은 따뜻했고⁠, 손바닥에 갈라진 굳은살이 단단했다⁠.

“⁠가기로 했다⁠. 요양원 말고 바다로⁠. 내 발로 가는 거여⁠.⁠”

“⁠할머니⁠!⁠”

“⁠쉿⁠. 아무한테도 말 마라⁠. 춘배한테도⁠. 영자한테도⁠. 니만 알아라⁠. 니만 알아듣는 말이니께⁠.⁠”

지붕 위에서 용이 몸을 뒤척였다⁠. 기와가 끙⁠, 하고 한 번 울었다⁠. 할머니는 연서 손을 놓지 않았다⁠. 연서는 할머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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