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91자)

설명회 천막에만 비가 온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1월 31일 월요일 아침 일곱 시⁠, 단톡방이 먼저 울렸다⁠.

「⁠오늘 설명회 나도 간다⁠!⁠!⁠! 가게 반나절 닫는다⁠!⁠!⁠!⁠」 고모였다⁠.

「⁠니가 와서 뭐 할라고⁠」 큰삼촌이 받았다⁠.

「⁠오빠가 또 혼자 도장 찍을까 봐⁠!⁠!⁠!⁠」

「⁠나 도장 없다⁠. 어매가 가지고 계신다⁠」

「⁠그라믄 어매 도장 내가 들고 있을란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신호 대기 중이라며 엄지 그림 하나만 올렸다⁠. 연서는 부엌에서 할머니가 끓인 시래깃국을 데우며 화면을 넘겼다⁠. 마루 끝에서는 큰삼촌이 면도를 하다가 턱을 베어 휴지를 붙이고 있었다⁠. 설명회에 간다고 면도를 하는 큰삼촌을 연서는 처음 보았다⁠.

지붕 위의 용이 처마 밑으로 고개를 늘어뜨렸다⁠.

“⁠설명회라는 것이 무엇이냐⁠?⁠”

“⁠높은 분들이 와서 이미 정한 걸 설명하는 자리요⁠. 질문은 받는데 답은 잘 안 해요⁠.⁠”

“⁠그럼 왜 가느냐⁠?⁠”

“⁠답을 안 하는 얼굴을 보러요⁠.⁠”

용이 수염을 한 번 꼬았다⁠. 아침 기온은 영상 4도였고 이웃집 처마의 고드름은 다 녹아 떨어졌는데⁠, 이 집 처마 고드름만 팔뚝만 하게 매달려 있었다⁠. 용이 누운 자리 기와에는 서리가 꽃처럼 피어 있었다⁠.

면사무소까지는 승합차로 십오 분이었다⁠. 할머니는 뒷자리에 앉아 창밖 바다만 보았다⁠. 연서는 조수석에서 안전띠를 매다가 운전석을 보았다⁠. 큰삼촌 턱의 휴지에 피가 동그랗게 배어 있었다⁠.

“⁠삼촌⁠, 그 계약금 두 배 얘기요⁠.⁠”

“⁠하지 마라⁠.⁠” 큰삼촌이 앞만 보며 말했다⁠. “⁠할매가 정했다⁠. 니가 할매 정한 걸 뒤집을라믄 육천이 있어야 돼⁠. 니 통장에 육천 있냐⁠?⁠”

“⁠없어요⁠.⁠”

“⁠그라믄 하지 마라⁠.⁠”

“⁠그럼 하나만 여쭤볼게요⁠. 그 자문 계약은 뭐예요⁠? 해든이랑 하신 거요⁠.⁠”

큰삼촌의 손이 핸들 위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승합차가 중앙선 쪽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뒷자리에서 할머니가 “⁠아이고⁠” 했다⁠.

“⁠식당 일이라 했제⁠.⁠”

“⁠해든솔라가 국밥집 자문을 왜 받아요⁠?⁠”

“⁠해든 직원들 회식을 우리 집에서 한다⁠. 메뉴 짜 주는 거여⁠.⁠”

“⁠메뉴 짜는 데 계약서를 써요⁠?⁠”

“⁠요즘은 다 써⁠.⁠”

큰삼촌이 라디오를 켰다⁠. 트로트가 크게 흘러나왔다⁠. 연서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송전선로 결사반대⁠」 현수막을 보았다⁠. 현수막 귀퉁이가 바람에 찢겨 펄럭이고 있었다⁠. 지붕 위에 있던 용이 승합차 위를 낮게 따라오며 그림자를 길에 길게 떨어뜨렸다⁠. 마주 오던 경운기가 길가로 비켜서 멈췄다⁠.

*

오후 두 시⁠, 영남면사무소 앞마당에 하얀 천막 두 동이 이어 붙여 쳐져 있었다⁠. 천막 안에 접이식 의자가 일흔 개 깔렸고⁠, 금포마을 사람들 말고도 이웃 마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의자가 모자랐다⁠. 천막 앞쪽에 빔프로젝터 화면이 세워졌고⁠, 화면 위에는 「⁠금포 해안 재생에너지 사업 및 군민 에너지연금 주민설명회⁠」라고 쓴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용은 면사무소 국기 게양대를 감고 올라가 꼭대기에 턱을 괴었다⁠. 태극기와 새마을기와 군기가 용의 수염에 감겨 펄럭이지 않았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창문마다 얼굴을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군청 에너지과 주무관은 서른 중반의 남자였다⁠. 남색 점퍼 가슴에 군 로고가 박혀 있었다⁠. 마이크를 잡기 전에 게양대를 한 번 올려다보고⁠,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석재학은 화면 옆 탁자에 노트북을 펴 놓고 앉아 있었다⁠. 오늘도 회색 코트였다⁠.

“⁠시작하기 전에⁠.⁠” 연서가 손을 들었다⁠. “⁠용님께서 처음 뵙는 분은 세배부터 하시래요⁠.⁠”

주무관이 석재학을 보았다⁠. 석재학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해 보시라는 뜻이었다⁠. 주무관은 점퍼를 벗지 않은 채 게양대를 향해 어색하게 엎드렸다⁠. 천막 안에서 웃음이 번졌다⁠.

“⁠너는 위에서 시킨 말과 네 생각이 다르구나⁠.⁠” 용이 말했다⁠. “⁠오늘은 네 생각을 말하렷다⁠.⁠”

연서는 이번에도 깎지 않았다⁠. 주무관은 일어나 무릎을 털다가 동작을 멈췄다⁠.

“⁠제⁠, 제 생각은 공무원이라⁠…⁠…⁠.⁠”

“⁠공무원 생각도 생각이여⁠!⁠” 고모가 맨 앞줄에서 소리쳤다⁠. 여수에서 막 도착해 숨이 찬 목소리였다⁠. 고모는 연서 옆자리에 앉으며 가방에서 할머니 도장 주머니를 꺼내 보이고는 다시 넣었다⁠. 큰삼촌이 뒷줄에서 이마를 짚었다⁠.

*

주무관이 화면을 넘겼다⁠. 군 지도 위에 색색의 동그라미가 떠올랐다⁠.

「⁠고흥 재생에너지 개발 약 10GW — 해상풍력 · 영농형 태양광 · 민간 태양광⁠」 「⁠군민 이익공유 에너지연금 — 4인 가구 월 60만 원 목표⁠」 「⁠마을총회에서 주민 50명당 1명 추천⁠, 주민조합 대표 구성 — 송전선로와 이익공유 방안 논의⁠」

“⁠군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군민 모두가 발전 수익을 나눠 받는 겁니다⁠. 태양광은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해상풍력은 송전망이 갖춰진 뒤에 본격적으로 나눠 드리는 계획입니다⁠.⁠”

“⁠목표는 누가 못 세우요⁠?⁠” 어촌계장이 말했다⁠.

“⁠말씀 맞습니다⁠.⁠” 주무관이 땀을 닦았다⁠. “⁠목표입니다⁠. 정해진 돈은 아직 아닙니다⁠.⁠”

용의 덕담이 들었는지⁠, 주무관은 원고에 없는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석재학이 노트북에서 눈을 들어 주무관을 한 번 보았다⁠.

다음은 석재학 차례였다⁠. 석재학은 마이크를 받지 않고 화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목소리가 크지 않은데 천막 끝까지 들렸다⁠.

“⁠어촌계장님⁠, 지난주에 삼치 많이 올리셨지요⁠.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용님 오시기 전⁠, 작년 겨울에는 몇 상자 올리셨습니까⁠?⁠”

어촌계장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 바다는 세계 평균보다 빨리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2024년 여름에는 고흥 두원면 양식장에서 넙치와 강도다리가 한꺼번에 이십오만 마리 죽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그 바다 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용님이 지붕에 계신 보름 동안은 바다가 식습니다⁠. 대보름이 지나 용님이 가시면 바다는 다시 데워집니다⁠. 바다를 오래 식히는 방법은 용 한 마리가 아니라⁠, 석탄과 가스를 덜 태우는 겁니다⁠. 해든솔라가 하려는 일이 그겁니다⁠.⁠”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갯가댁 영감이 박수를 쳤다⁠. 두 번 치다가 멈췄다⁠.

연서는 석재학이 말하는 동안 손가락을 하나씩 접고 있었다⁠. 콜센터에서 일곱 해 동안 듣고 쓴 말들이었다⁠. 먼저 상대 말을 맞다고 해 준다⁠. 상대가 모르는 숫자를 하나 댄다⁠. 상대가 할 말을 대신 해 버린다⁠. 그리고 정작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는다⁠.

연서가 일어났다⁠.

“⁠팀장님⁠, 말씀 맞습니다⁠. 다만요⁠.⁠”

석재학이 연서를 보았다⁠. 처음으로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그거 저희 콜센터에서 해지 막을 때 쓰는 말이에요⁠. 고객님 말씀 맞습니다⁠, 다만⁠. 그다음에는 꼭 고객님이 안 물어본 얘기를 하거든요⁠. 저희는 바다 얘기 안 물어봤어요⁠. 일곱 필지를 왜 사셨는지 물어봤어요⁠. 3메가와트 태양광에 금포 해안을 통째로 사셔야 해요⁠?⁠”

천막 뒤쪽에서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고모가 연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사업은 확장 가능성을 봅니다⁠.⁠” 석재학이 말했다⁠.

“⁠무슨 확장이요⁠?⁠”

“⁠그건 군 계획과 맞물린 부분이라 제가 단정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저희가 쓰는 말이에요⁠. ‘⁠담당 부서 확인 후 안내드리겠습니다⁠.⁠’⁠”

천막 안에 웃음이 터졌다⁠. 석재학은 웃지 않았지만 화를 내지도 않았다⁠. 연서는 석재학의 손이 노트북 덮개 위에서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

게양대 꼭대기에서 용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한 덩이가 생겨났다⁠. 천막 두 동을 겨우 덮을 만한 크기였다⁠. 구름이 천막 위로 내려앉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천막 지붕이 북처럼 울렸다⁠. 빗물이 천막 이음새로 줄줄 새어 들어와 맨 앞줄 의자를 적셨다⁠. 주무관이 화면을 붙잡았고⁠, 큰삼촌이 할머니 머리 위로 점퍼를 펼쳤다⁠. 천막 밖은 햇빛이 쨍했다⁠. 천막에 못 들어가 마당에 서 있던 이웃 마을 사람들이 비를 맞는 천막을 구경하며 손뼉을 쳤다⁠.

“⁠저 사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니 귀를 씻으라는 비다⁠.⁠” 용이 연서에게만 말했다⁠.

“⁠용님⁠, 할머니도 젖어요⁠!⁠”

“⁠금례 자리는 비켜 내렸다⁠.⁠”

정말이었다⁠. 할머니가 앉은 의자 둘레만 빗방울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큰삼촌이 펼친 점퍼만 쓸데없이 젖어 가고 있었다⁠.

석재학이 노트북을 들어 올렸다⁠. 화면 옆 탁자 위로 물이 고였다⁠. 노트북을 품에 안고 천막 기둥으로 물러서는 사이⁠, 빔프로젝터 화면이 깜박이더니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노트북이 물에 놀라 아무 파일이나 연 것이었다⁠.

화면에 도면 한 장이 떴다⁠. 금포 해안선을 따라 일곱 필지가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한가운데 가장 큰 필지 하나가 붉은 테로 둘려 있었다⁠. 할머니 밭이었다⁠. 붉은 테 안에 글씨가 박혀 있었다⁠.

「⁠금포 해안 345kV 변전소 후보지(⁠안⁠) — 해상풍력 육지 접속 · 해저 케이블 상륙 지점⁠」

빗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구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다시 천막 위에 쏟아졌다⁠. 일흔 명이 화면을 보았다⁠.

“⁠변전소⁠?⁠” 어촌계장이 먼저 말했다⁠. “⁠해저 케이블이 어디로 올라온다고⁠?⁠”

석재학이 노트북을 닫았다⁠. 화면이 꺼지기 전에 사람들은 이미 다 읽었다⁠.

“⁠주무관님⁠.⁠” 연서가 말했다⁠. “⁠아까 용님이 생각을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주무관은 젖은 점퍼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군 로고가 물에 번져 있었다⁠. 주무관은 석재학을 보지 않았다⁠.

“⁠맞습니다⁠. 군 계획에서 금포 해안은 해상풍력 전력을 육지로 올리는 변전소 후보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해저 케이블은 앞바다를 지나 갯바위 옆으로 올라오고⁠, 송전탑은 금포 뒷산을 넘어갑니다⁠. 주민 동의가 먼저입니다⁠. 그래서 주민조합을 만드는 거고요⁠.⁠”

“⁠동의는 누가 했는디⁠?⁠” 고모가 일어났다⁠. “⁠우리 어매 땅이 변전소인 줄 아는 사람이 여그 누가 있었소⁠?⁠”

모두가 뒷줄을 보았다⁠. 큰삼촌이 젖은 점퍼를 든 채 서 있었다⁠. 얼굴이 하얬다⁠.

“⁠나는 몰랐다⁠.⁠” 큰삼촌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태양광이라 했어⁠. 판 깐다고⁠.⁠”

석재학이 코트 깃의 물기를 털었다⁠.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천막을 채웠다⁠.

“⁠사장님⁠, 계약서에 토지 용도는 ‘⁠발전 사업 및 부대시설⁠’로 되어 있습니다⁠. 변전소는 부대시설입니다⁠. 계약 내용을 숨긴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변전소가 금포에 오지 않으면 다른 마을에 갑니다⁠. 송전선로는 어딘가로는 지나가야 합니다⁠. 그 마을에도 할머니가 계시고 어장이 있습니다⁠.⁠”

석재학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연서는 반박할 말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천막 안에서 누군가 이웃 마을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가 의자에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할머니 의자 둘레만 바닥이 말라 있었다⁠. 천막 안의 모든 얼굴이 할머니를 향했다⁠.

“⁠석 팀장⁠.⁠”

“⁠네⁠, 어르신⁠.⁠”

“⁠변전소 들어오믄 우리 집 마루에서 바다가 보이냐⁠?⁠”

석재학이 할머니를 보았다⁠. 지금까지 질문마다 바로 답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오래 머뭇거렸다⁠. 게양대 꼭대기에서 용이 고개를 내렸다⁠. 금빛 눈이 석재학을 보고 있었다⁠.

“⁠송전탑이 보일 겁니다⁠, 어르신⁠.⁠”

할머니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큰삼촌 손에 든 점퍼 끝에서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마른 바닥에 둥근 자국을 남겼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