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50자)

마을회관 안건 1번, 지붕 위의 용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1월 29일 토요일 아침⁠, 할머니는 어젯밤 일이 없었던 것처럼 떡국을 끓였다⁠. 남은 떡국 떡이 냉동실에 한 말이나 있었다⁠. 연서는 숟가락을 들고 할머니 얼굴을 살폈다⁠. 할머니는 김 가루를 손으로 비벼 연서 그릇에 듬뿍 뿌려 주었다⁠.

“⁠먹어라⁠. 회의 가믄 배고프다⁠.⁠”

“⁠할머니도 가세요⁠?⁠”

“⁠내 땅 얘기를 나 빼고 하믄 쓰겄냐⁠?⁠”

“⁠팔기로 하셨다면서요⁠.⁠”

“⁠판다고 했제⁠, 입 다문다고는 안 했다⁠.⁠”

마당에서 큰삼촌이 승합차 시동을 걸었다⁠. 지붕 위의 용이 꼬리로 굴뚝을 한 번 두드렸다⁠. 굴뚝에서 그을음이 뭉텅 떨어졌다⁠.

“⁠나도 간다⁠.⁠” 용이 말했다⁠.

“⁠용님은 이 집에 앉아 계셔야 한다면서요⁠.⁠”

“⁠앉은 자리는 이 집이고⁠, 마실은 다닌다⁠.⁠”

할머니는 승합차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회관까지는 언덕길로 오백 미터였다⁠. 연서가 할머니 팔을 끼고 지팡이 반대편을 받쳤다⁠. 할머니 걸음은 느렸고⁠, 내리막 돌계단마다 한 번씩 쉬었다⁠. 큰삼촌은 승합차를 몰고 먼저 내려가다가⁠, 백미러로 두 사람을 보고는 길가에 차를 세운 채 기다렸다⁠.

언덕 중턱에서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아래 밭을 가리켰다⁠. 밭은 겨울이라 비어 있었고⁠, 마른 보리 그루터기 사이로 서리가 하얗게 깔려 있었다⁠. 밭과 바다 사이를 돌둑이 길게 막고 있었다⁠.

“⁠저 둑⁠, 느그 할아버지가 스물여섯에 쌓기 시작했다⁠. 돌을 지게로 져다가⁠. 처음엔 바닷물이 밭으로 넘어와서 소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났어⁠. 보리가 처음 난 게 내가 서른 살 때여⁠. 보리 이삭 하나 들고 와서 울더라⁠, 그 양반이⁠.⁠”

“⁠할아버지가요⁠? 맨날 화만 내셨잖아요⁠.⁠”

“⁠니 앞에서만 화냈제⁠. 손녀가 이뻐서⁠.⁠”

연서는 웃다가 밭 끝을 보았다⁠. 둑 위에 붉은 리본을 단 말뚝이 꽂혀 있었다⁠. 바람에 리본이 펄럭였다⁠.

머리 위로 그늘이 지나갔다⁠. 용이 지붕에서 몸을 풀어 언덕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한 뼘 위를 헤엄치듯 지나갔다⁠. 서리 위에 몸이 지나간 자리만 길게 녹아 검은 흙이 드러났다⁠. 밭에서 소를 몰던 할아버지 하나가 고삐를 놓고 주저앉았다⁠. 소는 놀라지 않았다⁠. 소는 용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소가 절을 하네⁠.⁠” 할머니가 말했다⁠.

“⁠소도 세뱃돈 받아요⁠?⁠”

“⁠풀 한 짐 받겄제⁠.⁠”

*

오후 두 시⁠, 금포마을회관 마루방에 서른두 명이 모였다⁠. 마을 사람 절반이 넘었다⁠. 벽에는 「⁠금포마을 정기총회⁠」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고⁠, 종이 밑에 누가 매직으로 「⁠임시⁠」를 끼워 넣었다⁠. 부녀회장이 종이컵에 식혜를 따라 돌렸다⁠. 구석 텔레비전에서는 트로트 경연 재방송이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장 하판수가 안경을 코끝에 걸고 종이를 들었다⁠.

“⁠안건 1번⁠. 지붕 위의 용님 체류 건⁠. 안건 2번⁠. 해든솔라 마을 발전기금 건⁠. 1번부터 하겄습니다⁠. 당사자 출석하셨는가⁠?⁠”

마루방 남쪽 창문이 덜컹 열렸다⁠. 하늘빛 머리가 창틀을 꽉 채우며 들어왔다⁠. 회관 담장을 따라 몸이 한 바퀴 감겼고⁠, 꼬리 끝은 회관 앞 정자 지붕에 걸쳐졌다⁠. 앞줄 할머니 하나가 식혜 컵을 놓쳤다⁠. 이장이 헛기침을 했다⁠.

“⁠출석하셨네⁠. 통역 출석했는가⁠?⁠”

“⁠네⁠.⁠” 연서가 창문 옆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아직 내게 절 안 한 자가 여럿이구나⁠.⁠” 용이 말했다⁠.

“⁠용님께서 아직 세배 안 하신 분들 먼저 하시래요⁠.⁠”

“⁠회의 중에 무슨 절이여⁠!⁠” 갯가댁 영감이 소리쳤다⁠.

“⁠회의를 하려면 절부터 하라⁠.⁠”

“⁠회의를 하시려면 절부터 하시래요⁠.⁠”

열한 명이 일어나 창문을 향해 절을 했다⁠. 갯가댁 영감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절이 끝나자 이장이 다시 종이를 들었다⁠.

“⁠그라믄 1번⁠. 어촌계장 말씀하씨요⁠.⁠”

어촌계장 왕석두가 일어났다⁠. 손등이 바닷바람에 터서 갈라져 있었다⁠.

“⁠어제 녹동 위판장에 삼치를 넘겼소⁠. 세 척이 넘긴 게 작년 겨울 한 철 넘긴 것보다 많았소⁠. 물이 차졌어⁠. 용님이 지붕에 계신 뒤로⁠. 우리는 대보름까지 용님 계시믄 좋겄소⁠. 대보름 지나서도 계시믄 더 좋고⁠.⁠”

어민들이 박수를 쳤다⁠. 갯가댁 영감이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고기는 철 지나믄 가⁠. 땅은 안 가⁠. 해든솔라가 평당 십만 원 준다 했어⁠. 마을 발전기금 오천만 원 따로 내고⁠. 군에서는 에너지연금 준다 하고⁠. 텔레비전에서 봤어⁠. 네 식구믄 한 달에 육십만 원이라더라⁠. 용 한 마리 지붕에 앉아 있다고 그게 다 날아가믄 누가 물어 줄 거여⁠?⁠”

“⁠영감님⁠, 연금은 군청이 하는 거고 해든은 업자요⁠.⁠”

“⁠업자가 땅 사야 연금도 나오제⁠!⁠”

“⁠연금 목표가 그렇다는 거지 받은 사람 아직 아무도 없소⁠!⁠”

“⁠고기는 니가 잡았냐⁠? 용이 잡아 줬제⁠!⁠”

목소리가 겹치자 이장이 종이로 탁자를 두드렸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창문의 용이 콧김을 한 번 내쉬었다⁠. 마루방 안이 순식간에 서늘해지고 창호지가 흔들렸다⁠. 다들 입을 다물었다⁠.

“⁠용님께서⁠…⁠…⁠.⁠” 연서가 용을 보았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시끄러워서 숨을 쉬었을 뿐이다⁠.⁠”

“⁠용님께서 한 분씩 말씀하시래요⁠.⁠”

*

“⁠금례 성님 댁 얘기를 해야겄소⁠.⁠” 이장이 큰삼촌을 보았다⁠. “⁠성님 땅이 제일 크고 제일 바다에 붙었응께⁠. 춘배⁠, 너가 대리인이제⁠?⁠”

큰삼촌이 일어났다⁠. 국밥집 앞치마 대신 오늘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분명히 말씀드리겄소⁠. 어매가 팔자고 하셨소⁠. 도장도 어매가 찍으셨고⁠. 나는 심부름만 했소⁠. 용이 지붕에 있든 말든 계약은 계약이요⁠. 2월 15일에 중도금 받고 3월에 비웁니다⁠.⁠”

사람들이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맨 뒷줄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식혜만 마셨다⁠. 연서가 손을 들었다⁠. 회사 회의에서도 손을 든 적이 없었다⁠.

“⁠제가 말해도 돼요⁠? 통역 말고 손녀로요⁠.⁠”

“⁠해 봐라⁠.⁠” 이장이 말했다⁠.

“⁠할머니가 팔자고 하신 거 맞아요⁠. 근데 왜 그러셨는지는 삼촌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삼촌이 일요일마다 순천에서 한 시간 운전해 오시는 게 미안해서요⁠. 할머니가 가고 싶어서 가시는 게 아니에요⁠.⁠”

큰삼촌의 얼굴이 굳었다⁠.

“⁠그라믄 니가 오든가⁠. 일요일마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

“⁠제가 내려와 살면요⁠?⁠”

“⁠니 콜센터는⁠?⁠”

“⁠…⁠…⁠.⁠”

“⁠말로는 다 산다⁠. 할매가 밤에 부엌에서 넘어지믄 니 말이 일으키냐⁠?⁠”

마루방이 조용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트로트 가수가 소리 없이 큰절을 하고 있었다⁠. 연서는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큰삼촌은 서 있었고 연서는 방석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식혜 컵 하나가 미지근하게 식어 갔다⁠.

뒷줄에서 할머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둘 다 앉아라⁠. 내 일은 내가 정한다⁠.⁠”

*

이장이 2번 안건 종이를 들려다 말고 창문 앞으로 나갔다⁠. 아까 절을 하지 않은 사람 중 하나가 이장이었다⁠. 회의를 주재하느라 못 했다고 했다⁠. 이장은 방석을 깔고 창문을 향해 엎드렸다⁠.

“⁠용님⁠, 늦었소⁠. 새해 복 많이 받으씨요⁠.⁠”

용이 금빛 눈을 가늘게 떴다⁠. 덕담이 연서의 귀로 들어왔다⁠. 연서는 숨을 멈췄다⁠.

“⁠너는 해든에 도장을 이미 찍었구나⁠. 마을 동의서에⁠. 돈도 받았고⁠. 받은 돈을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지⁠. 말하렷다⁠.⁠”

연서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사흘 내내 깎아 옮긴 말들이 목 안에 줄지어 서 있었다⁠. ‘⁠건강 챙기세요⁠’⁠, ‘⁠가족 간 소통에 힘쓰세요⁠’⁠. 이번에도 깎으면 이장 얼굴은 편해지고 회의는 조용히 끝날 것이었다⁠. 용이 연서를 내려다보았다⁠. 재촉하지 않았다⁠.

“⁠이장님⁠.⁠” 연서가 말했다⁠. “⁠용님께서⁠, 이장님이 해든솔라 동의서에 이미 도장을 찍으셨고⁠, 돈도 받으셨다고 하세요⁠. 그 돈을 마을 분들께 아직 말씀 안 하셨으니 말씀하시래요⁠.⁠”

마루방이 터졌다⁠.

“⁠판수 형님⁠, 참말이요⁠?⁠”

“⁠동의서는 회의도 안 하고 누가 찍으라 했소⁠!⁠”

“⁠돈은 얼마요⁠?⁠”

이장은 엎드린 그대로 한참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안경을 벗어 점퍼 자락에 닦았다⁠.

“⁠이천만 원⁠. 선금이여⁠. 작년 11월에 받았어⁠. 마을 통장에 넣었다⁠. 회관 보일러 갈고⁠, 경로당 안마 의자 두 대 샀어⁠. 다들 겨울에 따숩다고 좋아라 했잖소⁠.⁠”

“⁠그걸 왜 말을 안 했소⁠?⁠”

“⁠말하믄 동의서 얘기를 해야 하니께⁠.⁠”

부녀회장이 안마 의자를 돌아보았다⁠. 의자 두 대가 회관 구석에서 빨간 불을 켜고 있었다⁠. 갯가댁 영감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판수야⁠, 나는 동의서 얘기 들은 적 없다⁠. 근디 내 밭은 벌써 해든에 넘기기로 도장 찍었다⁠. 지난달에⁠. 잔금은 아직이여⁠. 계약서 쓸 때 해든 팀장이 그러드라⁠. 금포에서 일곱 번째라고⁠.⁠”

“⁠일곱 번째요⁠?⁠” 연서가 물었다⁠.

어촌계장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갯가댁⁠, 아랫목 박씨네⁠, 정자 옆 문씨네⁠…⁠…⁠. 이름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누군가 고개를 숙였다⁠. 이장이 마지막 이름을 댔다⁠.

“⁠해안 따라 일곱 필지여⁠. 둑 안쪽 밭은 금례 성님네만 빼고 다 넘어갔어⁠. 성님 땅이 맨 가운데고 제일 커⁠. 해든은 그 땅 하나만 남겨 놓고 있다⁠.⁠”

마루방 사람들이 일제히 맨 뒷줄을 보았다⁠. 할머니가 식혜 컵을 내려놓았다⁠. 큰삼촌은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입을 벌리고 이장을 보다가 할머니를 보았다⁠.

“⁠일곱 필지를 왜 다 산다요⁠? 태양광 판 몇 장 까는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창문의 용이 바다를 오래 보더니 연서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검은 비늘을 깔 자리치고는 너무 넓다⁠. 저것들은 다른 것을 묻으려 한다⁠.⁠”

큰삼촌이 먼저 휴대전화를 꺼냈다⁠. 스피커를 켜지도 않았는데 마루방이 조용해서 신호음이 다 들렸다⁠. 석재학은 세 번째 신호에 받았다⁠.

“⁠네⁠, 사장님⁠. 석재학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은 됐고⁠. 석 팀장⁠, 금포 해안 땅 일곱 필지 다 샀소⁠?⁠”

잠깐 숨이 비었다⁠. 석재학의 목소리는 그대로 차분했다⁠.

“⁠네⁠. 공시된 거래라 숨길 일은 아닙니다⁠. 사장님 계약하고는 별개 건이고요⁠.⁠”

“⁠별개는 무슨⁠. 우리 어매 땅이 한가운데라믄서⁠.⁠”

“⁠말씀 맞습니다⁠. 다만 사업 부지 전체 계획은 월요일 설명회에서 군청 담당자분과 같이 말씀드리는 게 정확합니다⁠. 그리고 사장님⁠, 계약은 계약입니다⁠. 2월 15일 중도금 일정은 그대로 갑니다⁠.⁠”

“⁠알겄소⁠.⁠”

큰삼촌이 전화를 끊고 한참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연서는 큰삼촌의 엄지가 통화 기록의 「⁠해든 석팀장⁠」 위에서 한 번 멈췄다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화면 아래쪽에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해든 자문 계약 — 1월 3일⁠」⁠. 큰삼촌이 화면을 껐다⁠.

“⁠삼촌⁠, 자문 계약이 뭐예요⁠?⁠”

“⁠식당 일이여⁠. 신경 꺼라⁠.⁠”

부녀회장이 식혜 주전자를 들고 사이를 지나가며 큰삼촌 컵에 식혜를 넘치게 따랐다⁠. 큰삼촌이 컵을 들자 식혜가 손등으로 흘렀다⁠. 부녀회장은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 회관 보일러가 해든 돈이었다니⁠, 등이 다 서늘하네⁠.⁠”

연서가 옮기기 전에 이장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군청 에너지과에 전화할 거여⁠. 해든 팀장도 불러⁠. 월요일에 설명회 하자고 해⁠. 다 나오라 해⁠.⁠”

이장이 통화 버튼을 누르는 동안 회관 앞 정자 지붕에 얹혀 있던 꼬리 끝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창틀에서 하늘빛 머리가 빠져나가자 남쪽 창으로 바다가 다시 보였다⁠. 해안을 따라 붉은 리본을 단 측량 말뚝들이 한 줄로 박혀 있었다⁠. 일곱 필지를 꿴 말뚝 줄 한가운데⁠, 리본이 가장 촘촘하게 꽂힌 자리가 할머니 밭 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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