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93자)

한 번 당기면

승부조작 경주마 흑진주 · 윤새벽

경주 날 아침밥은 한 줌이다⁠. 한 줌이라는 것은 조교사의 손 하나 분량이라는 소리고⁠, 조교사의 손은 작다⁠. 귀리가 여물통 바닥에 깔리는 소리를 듣고 나는 고개를 처박았다⁠. 처박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바닥이 보였다⁠.

나는 여물통을 앞발로 긁었다⁠. 긁어도 귀리는 더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긁었다⁠. 쇠 여물통이 칸 벽에 부딪혀 덜그럭거렸다⁠. 옆 칸 회색 수말도 한 줌을 받고 여물통을 긁고 있었다⁠. 우리 둘은 처음으로 같은 일을 했다⁠. 마주 보고 긁다가⁠, 서로 긁는 것을 보고⁠, 둘 다 멈췄다⁠. 회색 수말이 콧김을 짧게 뱉었다⁠. 나도 짧게 뱉었다⁠. 경주 날 아침 처음으로 우리는 같은 말을 했다⁠. 배가 고프다⁠.

“⁠배부르면 못 뛴다⁠. 오늘 저녁에 실컷 묵어라⁠.⁠”

조교사가 내 칸 앞에서 말했다⁠. 눈 밑이 거뭇했다⁠. 밤새 자지 않은 사람의 냄새가 났다⁠. 땀이 말라 소금기가 남은 냄새⁠. 조교사는 오징어 봉지를 꺼냈다가 내 얼굴을 보고 도로 넣었다⁠.

“⁠오늘은 니 앞에서 안 씹으께⁠. 재채기 한 번에 니 힘 빠질라⁠.⁠”

대기 마방 사무실 텔레비전이 아침부터 떠들었다⁠. 관중석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이 길게 이어졌다는 소리⁠, 전국 장외 발매소마다 사람이 몰렸다는 소리⁠, 바다 건너 불법 사이트에 접속이 몰려 단속 기관이 지켜보고 있다는 소리⁠. 화면 속에서 검은 말 하나가 훈련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마에 하얀 별이 있었다⁠. 회색 수말이 화면을 보고 귀를 세웠다⁠. 나는 화면 속 말을 보고 귀를 눕혔다⁠. 저 말도 앞에 서 있었다⁠.

*

덕춘은 통로 바닥에서 잤다⁠. 내 칸 문에 등을 기대고 점퍼를 덮고⁠. 아침 순회를 도는 수의사가 덕춘의 다리를 넘어 다녔다⁠. 덕춘은 눈을 뜨자마자 내 이마의 별을 엄지로 문질렀다⁠. 봉지에 남은 사과는 없었다⁠. 밤새 내가 다 먹었다⁠.

일곱 시에 기수가 왔다⁠.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기수는 덕춘 앞에서 멈췄다⁠. 덕춘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수가 가방에서 천 뭉치를 꺼냈다⁠. 검은 바탕에 흰 줄이 굵게 들어간 윗옷이었다⁠. 경주 날 기수가 입는 옷이다⁠. 덕춘의 마구간 말들이 경주에 나갈 때마다 등 위의 사람은 이 옷을 입었다⁠. 늙은 암말도⁠, 회색 거세마도⁠, 나도⁠.

“⁠형님이 맡겨 두신 승부복이요⁠. 기수실에 두면 누가 손댈까 봐 들고 왔어요⁠.⁠”

나는 고개를 빼서 소매 끝을 물었다⁠. 천에서 세제 냄새와 늙은 암말의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스무 해 전 등 위의 사람이 흘린 땀이 천에 남아 있을 리는 없다⁠. 그래도 냄새가 났다⁠. 기수가 소매를 당겼다⁠. 내가 놓지 않았다⁠. 천이 길게 늘어났다⁠.

“⁠흑진주⁠, 놔⁠. 이거 형님 옷이야⁠. 찢어지면 형님 운다⁠.⁠”

“⁠놔둬⁠. 찢어지면 안 입으면 돼⁠.⁠”

덕춘이 말했다⁠. 기수가 소매를 놓았다⁠. 나도 놓았다⁠. 소매 끝이 내 침에 젖어 축 늘어졌다⁠. 기수는 젖은 승부복을 무릎 위에 개켜 놓고 덕춘 옆 바닥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람 하나가 앉을 만큼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형님⁠, 어젯밤에 다 말씀 못 드렸어요⁠.⁠”

“⁠더 있어⁠?⁠”

“⁠봄 뒤로 세 번 더 당겼어요⁠. 흑진주 말고 다른 말들로요⁠. 여름에 한 번⁠, 추석 지나고 한 번⁠, 지난달에 한 번⁠. 매번 이게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봄 거 지워 주겠다고⁠, 여름 거 지워 주겠다고⁠. 지워 준 적은 없어요⁠. 한 번 당기면 다음 달에 전화가 와요⁠. 사진을 보내요⁠. 어머니 가게 사진이요⁠.⁠”

덕춘은 앞만 보았다⁠. 통로 맞은편 칸의 낯선 말 하나가 덕춘을 보고 있었다⁠.

“⁠형님 빚도 똑같을 거예요⁠. 오늘 4코너에서 제가 당기면 오늘은 열두 마리가 살아요⁠. 다음 달에 전화가 와요⁠. 다른 경주⁠, 다른 코너요⁠. 형님한테도 오고 저한테도 와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이기는 날 돈을 버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계속 지는 날 버는 거예요⁠.⁠”

“⁠그래서 뭐⁠. 이기라고⁠?⁠”

“⁠…⁠.⁠”

“⁠이기면 월요일 아침 일곱 시야⁠. 아니⁠, 이제 월요일까지 안 기다릴걸⁠. 어젯밤에 저 사람 봤잖아⁠. 거세마 실어 갈 때 봤잖아⁠. 다음 달은 다음 달이고 오늘은 오늘이야⁠. 오늘 지면 오늘은 다 살아⁠.⁠”

“⁠다음 달엔요⁠?⁠”

“⁠다음 달에 내가 죽든지 하겠지⁠.⁠”

덕춘이 일어났다⁠. 무릎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기수가 따라 일어났다⁠. 기수가 덕춘의 팔을 붙잡았다⁠. 덕춘이 팔을 뿌리쳤다⁠. 뿌리친 팔이 내 칸 문을 쳤고⁠, 문이 흔들렸다⁠.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앞으로 나가서 문 위로 목을 뺐다⁠. 두 사람 머리 위로 내 머리가 왔다⁠. 둘 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말은 무리 안에서 다툼이 나면 둘 사이에 몸을 넣는다⁠. 우두머리의 일이다⁠. 언덕에서는 늙은 암말이 하는 일이었다⁠. 나는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목을 뺐다⁠. 콧김을 두 사람 얼굴에 길게 털었다⁠. 괜찮다는 소리였다⁠. 사람은 알아듣지 못한다⁠. 덕춘의 얼굴에 내 콧김이 닿아 앞머리가 날렸다⁠. 기수의 안경알이 뿌옇게 흐려졌다⁠.

기수가 안경을 벗어 닦았다⁠. 덕춘이 내 콧등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미는 손이 세지 않았다⁠.

*

조교사는 통로 끝에서 다 듣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나는 알았다⁠. 오징어 봉지를 넣어 둔 주머니의 냄새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조교사가 두 사람 앞으로 왔다⁠.

“⁠다음 달 얘기는 다음 달에 하자⁠. 오늘 얘기를 하자⁠.⁠”

“⁠선생님은 빠지세요⁠. 이건 제 일이에요⁠.⁠”

“⁠니 일이 내 마방 일이다⁠. 들어 봐라⁠. 오늘 경주는 오후 네 시 반이다⁠. 출전 십오 분 전에 내가 패독에서 안장 얹는다⁠. 안장 얹고 나면 내는 할 일이 없다⁠. 그때부터 언덕에 올라가 있을 끼다⁠.⁠”

“⁠언덕엔 왜요⁠?⁠”

“⁠트럭이 언덕에 오면 누가 발판 앞에 서 있어야 될 거 아이가⁠. 마구간지기 영감 혼자서는 쇠스랑 자루 하나 못 지킨다⁠. 어제 봤다⁠.⁠”

“⁠선생님⁠, 그 사람들 막대 들고 다녀요⁠.⁠”

“⁠내도 오징어 들고 다닌다⁠.⁠”

조교사는 웃지 않았다⁠. 기수도 덕춘도 웃지 않았다⁠. 나만 웃었다⁠. 오징어라는 소리에 윗입술이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조교사가 내 뒤집어진 입술을 보고 비로소 한숨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봐라⁠. 말은 아는 기라⁠.⁠”

“⁠조교사가 출전마 두고 경마장 밖에 나가시면 안 되잖아요⁠. 심판위원회에서 뭐라고 해요⁠.⁠”

“⁠뭐라 하라 해라⁠. 내는 면허 하나 걸고⁠, 니는 면허 하나 걸고⁠, 덕춘 씨는 열두 마리 걸고⁠. 공평하다⁠.⁠”

조교사는 조끼 가슴 주머니에 손을 얹었다⁠. 이빨 자국 난 종이가 있는 주머니였다⁠. 꺼내지는 않았다⁠.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

열 시가 넘어서 통로 끝 문이 열렸다⁠. 박하 냄새와 담배 냄새가 같이 들어왔다⁠. 실장이 모자 쓴 노인을 부축해 들어왔다⁠. 회색 수말의 칸 앞에서 노인이 각설탕을 내밀었다⁠. 회색 수말이 받아먹었다⁠. 오늘은 회색 수말도 아침이 한 줌이라 각설탕을 씹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나는 쇠창살 사이로 입술을 밀었다⁠. 노인이 놀라 손을 거두었다⁠.

덕춘이 실장 앞으로 갔다⁠. 실장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실장님⁠, 종이 하나 써 주세요⁠.⁠”

“⁠무슨 종이요⁠?⁠”

“⁠오늘 흑진주가 4등 밖으로 들어오면 내 차용증 찢는다⁠. 거세마 월요일 아침에 돌려준다⁠. 다음 달에 전화 안 한다⁠. 그렇게 써서 손도장 찍어 주세요⁠. 나도 찍었으니까⁠.⁠”

실장이 웃었다⁠. 노인의 팔을 놓고 덕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장님⁠, 약속은 지는 걸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기는 걸 보고 드리는 약속은 없고요⁠.⁠”

“⁠그럼 나도 지는 걸 보여 줄 이유가 없지⁠.⁠”

“⁠이유는 제가 보여 드리죠⁠.⁠”

실장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을 몇 번 밀어 덕춘 앞에 내밀었다⁠. 화면이 밝게 빛났다⁠. 나는 덕춘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사람들이 화면 속 그림을 어떻게 보는지 나는 모른다⁠. 내 눈에는 흐린 색 덩어리일 뿐이다⁠. 다만 덩어리의 모양은 안다⁠. 비탈진 나무판이 땅에 누워 있었다⁠. 발판이었다⁠. 발판 뒤에 큰 상자가 있었다⁠. 상자 너머에 마구간 지붕이 있었다⁠. 언덕 마구간의 지붕이었다⁠. 처마 끝이 한쪽만 내려앉은 지붕은 언덕에 하나뿐이다⁠.

“⁠아침 아홉 시에 올라가 있습니다⁠. 발판도 내려 놨고요⁠. 오늘은 월요일까지 안 기다립니다⁠. 결승선 넘는 걸 보고 바로 싣습니다⁠. 4코너에서 위를 보시면 다 보일 겁니다⁠, 기수님⁠.⁠”

기수가 통로 끝에서 승부복을 쥔 채 굳어 있었다⁠.

“⁠제가 무서운 사람처럼 보이시겠지만⁠, 사장님⁠,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면 안 싣고⁠, 이기면 싣는다⁠. 이건 지킵니다⁠. 그다음 약속은 그다음에 하는 거고요⁠.⁠”

“⁠다음 달에 또⁠.⁠”

“⁠다음 달 일은 다음 달에 정하시죠⁠. 오늘 경주에 집중하세요⁠.⁠”

실장이 휴대전화를 넣었다⁠. 노인을 다시 부축했다⁠. 나가면서 실장은 내 칸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실장이 지나간 자리에 박하 냄새가 길게 남았다⁠.

조교사가 덕춘의 등을 보았다⁠. 덕춘은 어깨를 웅크린 채 내 칸 문을 붙잡고 있었다⁠. 문짝이 덕춘의 손에서 조금씩 떨렸다⁠. 문을 사이에 두고 덕춘의 떨림이 내 가슴까지 왔다⁠.

“⁠나는 지금 올라간다⁠. 안장은 니가 얹어라⁠, 덕춘 씨⁠. 니 말이다⁠.⁠”

조교사는 패독에 남지 않기로 정했다⁠. 말을 끝내자마자 통로를 걸어 나갔다⁠. 출입증을 기계에 대는 소리가 났다⁠. 오징어 냄새가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냄새가 사라지는 문을 보며 처음으로 오징어 냄새가 그리웠다⁠.

*

정오가 지나 덕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덕춘은 화면을 보고 바로 귀에 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 누르고 휴대전화를 내 칸 문 위에 올려놓았다⁠. 판 속에서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엔진이 낮게 숨 쉬는 소리⁠. 사흘 전 밤 공터에서 한 시간을 숨 쉬던 소리와 같았다⁠. 엔진 소리 위로 말들이 칸 벽을 차는 소리⁠, 늙은 암말이 높게 우는 소리⁠. 마구간지기의 쉰 목소리가 모든 소리를 뚫고 나왔다⁠.

“⁠덕춘아⁠, 저놈들 아홉 시부터 공터에 박혀 있다⁠. 시동도 안 끈다⁠. 기사 놈한테 막걸리 한 사발 줬더니 받아 마시긴 하더라⁠.⁠”

“⁠형님⁠, 말들은요⁠.⁠”

“⁠말들이 냄새를 맡았지⁠. 할매가 아침부터 물도 안 마시고 문짝만 찬다⁠. 다른 놈들도 할매 따라 찬다⁠. 오징어 할매는 지금 흙길 올라오고 있고⁠.⁠”

판 속에서 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트럭 기사였다⁠. 사장님⁠, 저도 마리당 받고 하는 일입니다⁠. 실으라면 싣고 말라면 맙니다⁠. 애들 학원비가 다 이걸로 나가요⁠. 마구간지기가 기사에게 욕을 했다⁠. 기사는 욕을 받고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늙은 암말이 다시 울었다⁠. 높게⁠, 길게⁠, 끝을 끊지 않고⁠. 무리 전체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칸 문 위의 휴대전화에 코를 댔다⁠. 판은 차갑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냄새가 없는데 암말의 목소리가 거기서 나왔다⁠. 나는 대답했다⁠. 낮게⁠, 흐흥⁠. 이리 오라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는 소리로 들리게 하려고⁠, 아주 낮게⁠.

옆 칸 회색 수말이 따라 울지 않았다⁠. 귀를 세우고 나를 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수말이 다른 수말의 무리 소리를 들을 때 하는 얼굴이었다⁠.

덕춘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끊지 않고 오래 귀에 대고 있었다⁠. 판 속의 암말은 한 번 더 울고 조용해졌다⁠. 엔진 소리만 남았다⁠. 덕춘이 내 이마의 별에 엄지를 얹은 채 말했다⁠.

“⁠네 시 반이다⁠, 흑진주⁠. 네 시 반까지만 버텨⁠.⁠”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