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40자) · 태식 · 10월 13일
도장
검은 화면 십오 초 · 윤재하
만 19세 이상 이용가
시월 십삼일 금요일 소각은 십 분 만에 끝났다. 시월에 잘린 것은 외화 한 편에서 나온 여덟 칸짜리 토막 하나였다. 곽병두는 확대경을 대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하태식은 제 손으로 그것을 드럼통에 넣었다. 여덟 칸은 타는 데 삼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곽은 손수건으로 손끝을 닦으면서 물었다.
“간판쟁이 손은 좀 어때?”
“붕대 풀었습니다. 왼손으로 하늘 칠합니다.”
“왼손으로도 칠이 되나?”
“하늘은 됩니다. 사람 얼굴은 아직 안 된답니다.”
곽은 드럼통 뚜껑을 제 손으로 덮었다. 쇠 뚜껑이 둔하게 울렸고, 뚜껑 틈으로 가는 연기가 한 줄 새어 나와 바다 쪽으로 누웠다.
“하 기사, 창선 마지막 날이 십일월 삼십일이지?”
“예.”
“그날 마지막 회, 내가 앉는다. 삼 년 동안 한 편도 끝까지 안 봤는데, 마지막이니까 끝까지 봐 주지. 사장한테도 그렇게 말해 뒀어.”
태식은 대답하지 않고 드럼통 옆구리의 구멍 셋을 보았다. 그 구멍으로 아직 빨간 불씨가 보였다가 꺼졌다.
곽은 손수건을 네 번 접어 주머니에 넣고 돌아갔다. 나영달이 도장을 찍고 먹지 사본을 태식에게 건넸다. 건네면서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창고로 와라. 잠깐.”
*
한영흥업 부산 지사 창고는 건물 지하였다. 쇠문을 밀고 들어가니 공기가 뚝 떨어졌다. 영사실의 40도와 정반대였다. 천장까지 닿는 철제 선반에 필름 통이 층층이 누워 있었고, 통마다 흰 종이에 작품 이름과 권수가 적혀 붙어 있었다. 다음 달 부산 극장가에 풀릴 필름과 지난달 돌아온 필름이 한 방에서 같은 냄새를 냈다. 쇠 냄새와 먼지, 그 밑에 아주 옅은 식초 냄새가 깔려 있었다. 전구 하나가 줄 끝에 매달려 영달의 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영달은 문을 닫고 등을 문에 기댔다.
“태식아, 곽 형사가 나를 불렀다. 지난주에.”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달이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도로 넣었다. 창고에서도 안 피웠다.
“팔 년 치 소각 확인서, 그거 사본이 지사에도 다 있다. 곽 형사가 그걸 다 가져갔다. 한 장 한 장에 내 도장이 있다. 빈 필름 태운 날에도 소각이라고 적고 도장 찍었다. 그게 공문서 허위 작성이란다. 몇 년짜리인지도 알려 주더라.”
“형님.”
“끝까지 들어라. 그 사람이 나한테 길을 하나 줬다. 십일월 삼십일까지 니가 가진 명부를 가져오면, 확인서 뭉치는 없던 걸로 해 준단다. 대구, 마산, 진주, 그다음 누구누구. 니 적었제? 내가 적지 말라 안 했나?”
태식의 손이 작업복 안주머니로 갔다가 멈췄다. 영달이 그 손을 보았다.
“거기 있구나.”
“형님 이름은 없습니다.”
“내 이름이 없어서 문제다. 내 이름이 있으면 나도 거기 한편이지. 없으니까 나는 그냥 가짜 도장 찍은 놈이다. 딸이 셋이다, 태식아. 큰애가 내년 봄에 시집간다.”
영달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대신 문에 기댄 등이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갔다. 태식은 그것을 보았다. 쉰 먹은 사람이 쇠문에 등을 대고 천천히 주저앉는 것을 보았다.
“명부를 내놓으면 내가 산다.”
“내놓으면 여섯 극장 영사실이 불려 갑니다. 문 선생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형님도 들으셨잖습니까?”
“들었다. 그래서 무섭다. 나는 그 계단 열두 개 내려가면 두 개째에서 다 불 거다. 나는 그런 놈이다.”
영달이 고개를 떨구었다. 전구가 흔들리며 그의 정수리에 난 흰머리를 비췄다가 도로 어둠에 넣었다. 태식은 한 걸음 다가가 영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두 사람의 무릎이 거의 닿았다.
“형님, 팔 년 동안 왜 도장 찍어 주셨습니까?”
영달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니 처음 봤을 때, 니가 드럼통 앞에서 필름을 들고 서 있었다. 칠십 년 봄이었다. 불을 붙이려다가 안 붙이고 손에 든 걸 보고 있더라. 우는 여자 얼굴이었제?”
태식은 숨을 들이마셨다. 창고의 찬 공기가 폐 끝까지 내려갔다.
“내가 그걸 봤다. 니가 그걸 도로 품에 넣는 걸 봤다. 그러고 나는 도장을 찍었다. 내가 찍은 게 아니다. 내 손이 찍었다. 내 손이 영사기사 손이라서.”
영달이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선반 맨 아래 칸으로 갔다. 거기 작품 이름이 안 붙은 통이 둘 있었다. 녹이 슬었고 테이프로 뚜껑을 감아 놓았다.
“나도 영사기사였다.”
영달이 통 하나의 테이프를 뜯었다. 식초 냄새가 선반 사이로 퍼졌다.
“지사에 반납 들어오는 것 중에, 극장이 진짜로 태우라고 보낸 게 있다. 울산 극장 하나, 동래 극장 하나. 그 기사들은 자기 손으로 못 태우고 나한테 넘겼다. 나도 못 태웠다. 넘겨받은 걸 여기 뒀다. 「젖은 계단」 계단도 이 안에 있다. 울산에서 칠월에 올라온 거다.”
*
두 통에서 계단 토막 두 개가 나왔다. 태식은 창고 전구 밑에서 확대경으로 칸을 셌다. 영달이 옆에서 전구 줄을 잡아 흔들리지 않게 붙들었다. 울산 것은 앞부분이 상했고 동래 것은 뒷부분이 상했는데, 둘 다 지금까지 모은 이백열두 칸이 비어 있던 자리를 반쯤 메웠다.
“일흔여덟 칸입니다. 이백구십이 됐습니다.”
“삼백육십에 이백구십이면, 몇 초 남았노?”
“칠십 칸이요. 삼 초가 조금 안 됩니다.”
“삼 초.”
영달이 전구 줄을 놓았다. 전구가 다시 흔들렸다.
“태식아, 이거 들고 나가라. 그리고 명부는 곽 형사한테 안 간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뭡니까?”
“내 이름도 적어라. 나영달. 한영흥업 부산 지사 관리계. 제일 앞에 적어라. 그 사람이 명부를 가져가게 되면 제일 먼저 내 이름을 보게. 그래야 내가 명부 안 준 놈이 된다.”
“형님, 따님은요?”
“큰애는 시집간다. 신랑 쪽에 아버지가 가짜 도장 찍은 놈인 거보다는, 명부 안 준 놈인 게 낫다. 둘째하고 셋째는 아직 모른다. 모르는 채로 커도 된다.”
태식은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맨 앞 장에 날짜를 쓰고, 이미 적힌 이름 여섯 위에 칸을 하나 비워 영달의 이름을 적었다. 볼펜이 차가워서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두 번 덧썼다.
“이제 일곱입니다. 울산 기사하고 동래 기사까지 적으면 아홉입니다.”
“울산하고 동래는 적지 마라. 그 사람들은 태웠다고 믿고 산다. 믿는 채로 두자.”
“그럼 이름 없이 한 칸으로 셉니다. 영사실 여덟입니다.”
“이름 없는 칸도 세나?”
“칸이 있으면 셉니다. 이름은 나중에 붙여도 됩니다.”
영달이 쇠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가 들어오며 창고의 찬 기운이 문턱에서 흩어졌다. 계단 위로 늦은 오후 햇빛이 한 줄 내려와 있었다.
“십일월 삼십일 아침에 창선 마지막 소각 입회가 있다. 곽 형사가 온다. 도장은 내 손에 있다. 그날 내가 도장을 한 번 더 찍으마. 뭘 찍을지는 그날 가서 정한다.”
*
태식은 계단 토막 두 개를 필름 통 하나에 합쳐 넣고 보자기에 쌌다. 중앙동에서 창선극장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었다. 부둣길을 따라 걷는 동안 태식은 보자기를 옆구리에 끼지 않고 두 손으로 앞에 들었다. 옆구리에 끼면 누가 뭘 숨긴다고 보았고, 앞에 들면 누가 뭘 배달한다고 보았다. 팔 년 동안 필름을 들고 다니며 배운 셈이었다.
광복동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검은 지프 한 대가 옆에 섰다. 창문이 내려왔다. 운전석의 순경이 태식을 보았고, 조수석은 비어 있었다. 순경은 태식의 얼굴을 보고, 보자기를 보고, 다시 얼굴을 보았다.
“그거 뭐요?”
“필름입니다. 창선극장 다음 주 거요.”
“극장 필름을 기사가 직접 들고 다니나?”
“배급사 차가 고장 났답니다. 필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순경은 한참 보자기를 보다가 하품을 했다. 창문이 올라가고 지프가 떠났다. 태식은 신호가 두 번 바뀔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바닥에 밴 땀이 보자기 매듭을 적셨다. 세 번째 신호에서야 발이 떨어졌다.
*
그날 밤 영사실에서 문경섭이 수첩을 넘겨 보다가 말했다.
“기사님, 이거 태웁시다.”
“태우면 못 모읍니다.”
“태우기 전에 옮겨 적읍시다. 이름 말고 다른 걸로요.”
경섭은 왼손에 붓을 들고 창고 옆 빈터로 내려갔다. 지난봄까지 걸었던 간판 하나가 뒷면을 위로 하고 누워 있었다. 간판은 버리지 않는다. 뒤집어서 앞면만 새로 칠해 다시 쓴다. 부산 간판쟁이들끼리 합판을 돌려 쓰는데, 뒷면은 누구도 칠하지 않는다.
경섭은 그 뒷면에 산을 그렸다. 여덟 개였다. 산마다 아래에 집을 하나 그리고, 집마다 다른 나무를 한 그루씩 세웠다. 대구는 감나무, 진주는 대나무, 마산은 동백, 광주는 배롱나무, 대전은 은행나무, 부산 창선은 소나무, 영달은 버드나무였다. 여덟 번째 산에는 나무를 그리지 않았다. 이름 없는 칸이었다.
“이거 누가 봅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간판쟁이가 뒷면에 산수화를 그린 겁니다.”
“아는 사람이 보면요?”
“아는 사람은 자기 나무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편지 보낼 때 나무 이름만 적어 보내면 됩니다.”
“왼손으로 그리신 것치고는 잘 그리셨습니다.”
“왼손이라 잘 그려집니다. 오른손은 너무 잘 그려서 탈입니다. 없는 계단까지 그리니까요.”
경섭은 붓을 물통에 헹구었다. 물이 파랗게 흐려졌다. 오른손은 붕대를 풀었지만 가운뎃손가락이 아직 굽혀지지 않아서, 물통을 드는 것도 왼손이 했다.
“서울에 편지 부쳤습니다. 선배한테요. 날짜부터 썼습니다.”
“뭐라고 쓰셨습니까?”
“대도 됐다고요. 그 말 하나 쓰는 데 종이를 여섯 장 버렸습니다.”
태식은 버린 여섯 장이 어디 있는지 묻지 않았다. 빈터 구석 드럼통 안에 구겨진 종이가 쌓여 있었다. 그 종이들에는 불이 붙어 있지 않았다.
태식은 영사실로 올라가 수첩을 한 장씩 뜯었다. 기계를 켜고 램프 하우스 문을 열었다. 탄소봉 사이에서 흰 불이 탔다. 태식은 종이를 불 가까이 댔다. 이름 여덟이 차례로 갈색이 되었다가 까매졌다. 두 달 전 드럼통 앞에서는 사 분이 걸렸다. 수첩은 삼십 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장을 태우기 전에 한 번 더 보았다. 나영달이라는 이름이 두 번 덧쓴 볼펜 자국으로 굵게 남아 있었다. 태식은 그 장을 태우지 않고 접어서, 옅은 마루판 밑 계단 판자 뒤에 끼워 넣었다. 그 이름 하나만은 불에 넣을 수가 없었다.
창밖 빈터에서 경섭이 여덟 번째 산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왼손에 붓을 든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태식은 그 산에 무슨 나무가 들어갈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