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74자) · 경섭 · 9월 22일
조사실
검은 화면 십오 초 · 윤재하
만 19세 이상 이용가
구월 이십이일 금요일 오후 세 시에 문경섭은 사다리 넷째 칸에 서서 다음 영화 간판의 하늘을 칠하고 있었다. 추석이 지나고 닷새째였다. 부둣가에서 올라온 바람이 처음으로 서늘해서 물감이 한낮에도 금방 마르지 않았고, 붓에 묻은 파랑이 손목을 타고 흘러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사다리 아래에 사람 둘이 와서 섰다. 둘 다 흰 셔츠에 회색 바지였고, 한 사람은 손에 아무것도 없었고 한 사람은 신문을 말아 쥐고 있었다.
“문경섭 씨, 잠깐 가시죠.”
“어디를요? 하늘을 반만 칠했는데요.”
“하늘은 기다립니다.”
신문을 쥔 쪽이 웃지 않고 말했다. 경섭은 붓을 물통에 꽂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매표소 쪽을 보았다. 유리 창구 안에서 주순임이 일어서 있었다. 순임은 창구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가, 경섭이 고개를 작게 저어 보이자 손을 놓았다.
경섭은 이 층 영사실 창을 올려다보았다. 기름종이 너머로 빛이 흔들렸다. 세 시 회차가 돌고 있었다. 영사기사는 필름이 도는 동안 영사실을 떠날 수 없다. 탄소봉이 벌어지면 화면이 꺼지고, 필름이 걸리면 불이 붙는다. 창 너머 그림자 하나가 유리에 바짝 붙었다가, 기계 쪽으로 도로 물러났다. 경섭은 그 그림자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서야 걸음을 뗐다.
*
중부경찰서 정보과 조사실은 지하였다. 계단을 열두 개 내려갔다. 극장 계단보다 일곱 개가 적은데 더 길었다. 방에는 창이 없었고, 천장에 형광등 두 개 가운데 하나가 깜빡였다. 철제 책상 하나, 의자 둘, 벽에 붙은 달력 하나가 전부였다. 달력은 칠월에서 넘어가 있지 않았다. 바닥은 시멘트였는데 한가운데만 걸레질을 너무 해서 색이 달랐다.
한 시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경섭은 의자에 앉아 제 손을 보았다. 손톱 밑에 파란 물감이 끼어 있었고 손목 안쪽에는 하늘색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는 그 물감을 엄지로 긁어 보았다가 그만두었다. 긁어내면 그 손이 오늘 오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지워질 것 같았다.
마대 밑 판자가 생각났다. 지금은 영사실 마루판 밑에 있을 것이다. 판자를 창고에 두었다면 누가 창고를 뒤질 때 나왔을 것이다. 여기 두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두 달 전에 이미 오늘을 알고 있었다. 경섭은 그것이 고마운지 무서운지 한참 가늠하다가 둘 다라고 정했다. 달력의 칠월은 누가 넘기다 만 채였다.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날짜를 셀 틈이 없었을 것이다.
곽병두는 한 시간 뒤에 들어왔다. 겉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고 소매를 두 번 걷었다. 그러고는 서류철 하나를 책상에 놓고 경섭 쪽으로 밀었다.
“읽어 봐.”
맨 위에 작년 사월 날짜와 종로서 정보과, 그 아래에 피의자 윤기호, 서른다섯, 간판 화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경섭은 두 번째 장까지 읽고 세 번째 장에서 멈췄다. 거기에 제 이름이 있었다. 위 간판의 채색은 동료 문경섭이 하였음. 그 아래에 손도장이 있었다. 엄지가 아니라 검지였다. 엄지는 찍을 수 없었다.
“윤기호는 이름을 댔어. 그래서 자네가 여기 있는 거야.”
경섭은 서류철을 덮었다. 손바닥이 덮은 서류철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선배가 부산 일을 어떻게 압니까?”
“모르지. 윤기호는 작년 이름을 댔고, 올해는 자네가 댈 차례야. 쉬운 거야. 창선극장 영사실에서 뭘 모으나. 대구 누구, 마산 누구, 진주 누구. 이름만 대면 오늘 밤에 집에 가서 하늘 나머지 반 칠해.”
“저는 간판쟁이입니다. 영사실은 더워서 안 올라갑니다.”
“하 기사랑 밤마다 거기서 뭘 하나?”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경섭은 그 깜빡이는 사이를 세었다. 셋을 세면 켜지고 둘을 세면 꺼졌다.
“바람 쐽니다. 영사실 창이 동네에서 제일 높습니다.”
곽이 웃었다. 입만 웃었다.
“재밌는 사람이네. 윤기호도 처음엔 재밌었어.”
*
그다음 일을 경섭은 순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의자가 넘어간 것은 기억했다. 넘어가면서 뒤통수가 시멘트에 닿던 소리를 몸 밖에서 들은 것처럼 기억했다. 뒤에 서 있던 신문 든 사람의 구두 코가 닳아 있었다는 것도 기억했다. 그다음은 형광등이었다. 깜빡이는 쪽 형광등이 눈 위에 있었고, 셋을 세면 켜지고 둘을 세면 꺼졌다. 경섭은 그것을 세었다. 세는 동안에는 다른 것을 세지 않아도 되었다.
곽이 경섭의 오른손을 책상 위에 펴 놓은 것도 기억했다. 곽은 그 위에 제 손바닥을 얹고 오래 있었다. 누르지는 않았다. 얹기만 했다. 곽의 손바닥은 마르고 따뜻했다.
“윤기호도 오른손잡이였지.”
경섭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말이 아니었다. 목 안쪽에서 무엇이 걸려 올라오다가 이빨에 막힌 소리였다. 곽은 그 소리를 듣고 손을 거두었다.
“이름 셋이야. 대구, 마산, 진주.”
경섭은 오른손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러고는 형광등을 다시 세기 시작했다. 셋, 켜지고. 둘, 꺼지고.
그 밤에 경섭은 한 가지를 알았다. 작년 사월 종로서 지하에서 윤기호가 무엇을 세었는지 경섭은 모른다. 세다가 어디서 멈췄는지도 모른다. 선배는 이름을 댔다. 댔고, 엄지를 못 써서 검지로 손도장을 찍었고, 그러고 나서 경섭에게 그만둔다고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경섭은 육 개월을 더 다녔다. 형광등이 셋을 세고 켜질 때 경섭은 그 육 개월이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선배는 누구한테도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자리에서 혼자 그만두었다. 경섭은 그 사람을 혼자 두었다.
경섭은 이름을 대지 않았다. 대지 않은 까닭이 용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선배가 댄 이름이 제 이름이었으니, 이번에는 댈 이름을 제 입 안에 두는 쪽이 셈이 맞았다. 그뿐이었다.
*
새벽 다섯 시에 곽이 서류철을 들고 나가면서 말했다.
“가. 오늘은 가.”
신문 든 사람이 문을 열어 주었다. 경섭은 계단 열두 개를 한 칸씩 올라갔다. 옆구리가 숨 쉴 때마다 결렸고, 왼쪽 귀에서 매미 소리 같은 것이 났다. 오른손은 겨드랑이에서 빼지 않았다.
경찰서 정문을 나서니 길 건너 버스 정류장 벤치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목에 수건을 걸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서 수건이 젖어 있지 않았는데도 걸고 있었다. 무릎에 주전자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경섭은 길을 건넜다. 건너는 동안 그 사람이 일어나지 않아서 고마웠다. 일어났으면 경섭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몇 시부터 계셨습니까?”
“열두 시 이십 분부터요. 마지막 회 끝내고 필름 되감고 왔습니다.”
하태식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벤치 나무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다. 경섭은 앉았다. 앉는 데 오래 걸렸다.
“누님이 보리차를 보냈습니다. 식었습니다.”
태식이 주전자 뚜껑에 보리차를 따라 내밀었다. 경섭은 왼손으로 받으려다 손이 떨려 반을 쏟았다. 태식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따랐다. 이번에는 내밀지 않고, 뚜껑을 들어 경섭의 입에 대 주었다. 식은 보리차에서 누룽지 냄새가 났다. 경섭은 두 모금을 마시고 세 모금째에 사레가 들렸다. 기침을 할 때마다 옆구리가 결려서 몸을 접었다. 태식의 손이 등에 얹혔다. 손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 안 댔습니다.”
“대셔도 됐습니다.”
경섭은 고개를 들었다. 태식은 경찰서 쪽을 보고 있었다.
“대셨어도 저는 여기 앉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대셔도 됐습니다.”
경섭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들으면서 겨드랑이에 끼운 오른손을 천천히 뺐다. 손등이 부어 있었고 가운뎃손가락 둘째 마디가 검푸렀다. 부러지지는 않았다. 태식이 그 손을 보고, 자기 두 손으로 그 손을 받쳐 들었다. 쥐지 않고 받쳐만 들었다.
“기사님.”
“예.”
“선배도 그 말을 듣고 싶었을 겁니다. 대도 됐다는 말이요. 저는 그 말을 안 했습니다. 육 개월을 더 다니면서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지금 쓰시면 됩니다.”
“뭘요?”
“편지요. 날짜부터 쓰시고요.”
경섭이 웃었다. 웃다가 옆구리를 붙잡았다. 붙잡고도 웃었다. 첫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와 문을 열었다가, 아무도 안 타니까 도로 닫고 떠났다. 버스 기사가 두 사람을 한 번 돌아보았다.
*
극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식이 말했다.
“어제 광주하고 대전에서 답이 왔습니다. 광주가 마흔 칸, 대전이 서른두 칸입니다.”
“그럼 몇 칸입니까?”
“이백열두 칸입니다. 삼백육십에서 백마흔여덟이 남았습니다.”
“엮인 데는요?”
“여섯입니다. 그리고 광주 사람이 대구에 따로 편지를 했답니다. 대전 사람은 마산에 했고요. 누님한테 그 편지들이 다 옵니다. 누님이 가운데서 받아서 넘깁니다.”
경섭은 걸음을 멈췄다. 새벽 국제시장 골목은 셔터가 반쯤 올라간 가게들 사이로 생선 상자를 나르는 리어카가 지나갔고, 얼음 부수는 소리가 났다. 태식도 멈췄다.
“여섯이 서로 편지를 하면 줄이 몇 개입니까?”
“열다섯입니다. 셈은 기사님이 빠르시지요.”
“열다섯 줄 가운데 한 줄만 끊겨도 곽 형사 수첩에 여섯이 다 오릅니다.”
“압니다.”
“그래도 합니까?”
태식은 대답하지 않고 경섭의 왼쪽에 섰다. 오른쪽 옆구리가 결리는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쪽이었다. 창선극장 간판이 골목 끝에 보였다. 반만 칠한 하늘이 새벽빛을 받아 파랬고, 나머지 반은 합판 그대로 누랬다. 매표소 창구에 불이 켜져 있었다. 순임은 밤새 집에 가지 않았다.
순임은 두 사람이 창구 앞에 서자 유리 문을 열지 않고 한참 경섭을 위아래로 훑었다. 얼굴, 귀, 옆구리를 잡은 손, 겨드랑이께에 붙인 오른손. 그러고는 창구 문을 탕 소리 나게 열었다.
“하늘 반만 칠하고 어디 갔다 왔노?”
“바람 쐬고 왔습니다, 누님.”
“바람을 어디서 그래 세게 쐤노? 이리 들어와라.”
매표소 안에서 순임은 서랍에서 붕대와 안티푸라민을 꺼냈다. 십구 년 매표소 서랍에는 표와 거스름돈과 고무줄 말고도 없는 것이 없었다. 순임은 경섭의 오른손을 제 무릎에 올려놓고 안티푸라민을 발랐다. 박하 냄새가 좁은 매표소에 가득 찼다. 순임의 손은 거칠었고 힘이 셌다. 경섭이 이를 악물자 순임이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아프제? 아픈 건 좋은 기다. 안 아프면 부러진 기다.”
“누님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빗자루로 세 대 맞아 봤다.”
태식이 창구 밖에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흔들렸다. 순임은 붕대를 두 바퀴 감고 끝을 이빨로 찢어 묶었다. 그러고 나서 경섭의 손을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은 채로 공책을 폈다. 오늘 날짜 칸 옆에 작게 적었다. 간판쟁이 돌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