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36자) · 순임 · 8월 18일

사십일만 장

검은 화면 십오 초 · 윤재하

만 19세 이상 이용가

등기는 팔월 십팔일 금요일 오후 두 시에 왔다. 우체부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고 추만길 사장이 직접 나와 도장을 찍었다. 사장은 누런 봉투를 가슴에 안고 아무한테도 안 보이게 사무실로 도로 들어갔다. 주순임은 매표소 유리 너머로 그 봉투가 사장의 러닝셔츠 위에서 땀에 젖어 가는 것을 보았다.

순임이 무엇이든 알아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사장실 청소를 십구 년째 순임이 했다.

저녁 회차가 들어가고 나서 순임은 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위장약 병이 세 개 있었고, 재떨이에는 꽁초 대신 은단 껍질이 쌓여 있었다. 사장은 지난봄부터 속이 안 좋다며 담배를 끊고 은단을 씹었다. 등기 봉투는 서랍 두 번째 칸에 있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사장은 뭘 잠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그면 열쇠를 어디 뒀는지 잊어버려서 더 속이 상한다고 했다.

매매 계약서였다. 사는 쪽은 대양개발이었고, 이 자리에 삼 층 상가를 올린다고 적혀 있었다. 잔금 지급일은 십일월 삼십일. 그 아래 특약 한 줄이 연필로 밑줄 그어져 있었다.

폐관일까지 영업상 사고 없이 명도할 것.

순임은 그 줄을 두 번 읽고 계약서를 봉투에 넣고 서랍을 닫았다. 걸레로 책상을 훔쳤다. 서랍 손잡이도 훔쳤다. 손잡이에 남은 제 손자국을 지우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책상 옆 벽에 붙은 편성표가 눈에 들어왔다. 십일월 마지막 주 칸에 사장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앙코르 「젖은 계단」. 마지막은 제일 잘 팔린 걸로.

*

사장이 순임을 부른 것은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주 여사, 앉아 봐라.”

순임은 앉지 않았다. 사장실 의자는 앉으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사장이 은단을 한 알 씹었다.

“다 알제? 청소하는 사람이 모를 리가 없고.”

“뭘 말입니까?”

“팔았다. 십일월 삼십일에 문 닫는다. 주 여사는 그날까지만 나와 주면 된다. 퇴직금은 잔금 들어오면 준다.”

“잔금은 사고 없이 문 닫아야 들어오지예?”

사장이 은단을 씹다 말고 순임을 보았다. 순임은 그 얼굴이 계약서 특약 줄처럼 한 번 밑줄 그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매표소 서랍에 공책 있제? 주 여사가 표 판 거 적는 거. 그거 나 다오.”

“그건 와예?”

“사는 쪽에서 장부를 본단다. 내 장부랑 주 여사 공책이 숫자가 다르면 안 된다 아이가.”

순임은 알았다. 사장의 장부는 세무서에 내는 장부였다. 사장 장부에는 십구 년 동안 이 극장에 손님이 순임 공책의 삼분의 이만 들었다. 나머지 삼분의 일은 사장의 딸 혼수와 은단과 위장약이 되었을 것이다. 순임은 그것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공책을 내줄 생각도 없었다.

“사장님, 사장님 장사 셈은 사장님 공책에 하시소. 그건 내 공책입니다.”

“주 여사, 월급 내가 줬다.”

“표는 내가 팔았습니다.”

사장이 배를 문질렀다. 속이 또 안 좋은 모양이었다.

“하나만 더 하자. 영사실에 형사 드나드는 거 안다. 태식이 그놈 뭐 하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고 싶다. 잔금 들어올 때까지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주 여사가 단디 잡아라.”

“태식이는 사장님이 잡으시지예. 팔 년 동안 사장님 극장 영사기 돌린 사람입니다.”

“나는 요새 아프다 아이가.”

사장은 진심으로 아픈 얼굴을 했다. 순임은 그 얼굴을 십구 년 보아 왔다. 탈 날 일이 생기면 사장은 꼭 그 전날부터 아팠다. 칠십이 년 가을 계엄이 선포되던 주에는 치질이 도졌고, 작년 세무 조사 때는 이가 세 개 한꺼번에 흔들렸다.

“사장님, 이번엔 어디가 아프십니까?”

“속이다. 속이 제일 오래간다.”

사장은 은단 병을 흔들어 한 알을 더 꺼냈다. 순임은 문을 닫고 나오면서 문고리를 걸레로 한 번 더 훔쳤다.

*

그날 밤 순임은 매표소 불을 끄지 않고 기다렸다. 마지막 회가 끝나자 태식과 경섭이 창구 앞으로 왔다. 순임은 유리 창구를 활짝 열고 두 사람을 들어오게 했다. 매표소 안은 둘이 서면 꽉 찼다. 셋이 서니 누구 팔꿈치가 누구 옆구리에 닿는지 알 수 없었다.

“십일월 삼십일에 문 닫는다. 마지막 주에 사장이 「젖은 계단」을 다시 건다. 제일 잘 팔렸다고.”

경섭이 먼저 알아들었다. 그의 눈이 태식에게 갔다가 순임에게 왔다.

“그러면 마지막 날 마지막 회 오십삼 분에 그 까만 자리가 한 번 더 옵니다.”

“그래, 한 번 더 온다.”

태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임은 서랍을 열어 공책 여섯 권을 꺼내 유리 앞에 쌓았다. 표지가 다 닳아서 색이 없었다. 맨 위 공책을 펴니 한 장에 한 달이 들어 있었다. 날짜마다 숫자가 있었고, 어떤 날은 숫자 옆에 비, 눈, 정전, 추석 같은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이건 와 적으셨습니까?”

경섭이 짚은 것은 정전이었다.

“손님이 적은 날은 까닭이 있다. 까닭을 안 적으면 내가 장사를 못한 게 된다.”

“몇 장입니까, 전부?”

순임은 맨 마지막 장을 폈다. 거기에 십구 년을 더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 숫자를 오늘 아침 처음으로 끝까지 더했다.

“사십일만 삼천이백육십 장.”

태식이 고개를 들었다.

“사십일만 명이 여기 앉았다. 그 사람들이 다 뭔가 빠진 걸 봤다. 까만 건 삼 년 치고, 그 전에는 뚝 끊기고 다음 장면으로 튀었다. 사람들이 편집 참 거칠다 캤다. 나는 표를 팔았다. 그 빠진 걸 사십일만 번 팔았다.”

순임은 공책을 덮었다. 덮는 손이 표지 위에 오래 얹혀 있었다.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가 가라앉았다.

“태식아. 니 마루판 밑에 그 계단은 이제 없제?”

“없습니다. 제가 태웠습니다.”

“그라믄 딴 데서 가져와야겠네.”

*

두 사람이 올라가고 나서 순임은 매표소에 혼자 앉아 공책 맨 앞 장을 폈다. 쉰아홉 년 여름이었다. 첫 장의 글씨는 지금보다 크고 삐뚤었다. 그때 사장은 지금 사장의 형이었는데, 서른일곱 먹은 과부를 매표소에 앉히면서 딱 한 가지를 시켰다. 매일 몇 장 팔았는지 적어라. 적는 사람이 있으면 돈이 안 샌다. 그 사장은 오 년 전에 극장을 동생에게 넘기고 김해로 내려갔다. 그 뒤로는 적으라는 사람이 없었는데 순임은 계속 적었다.

삼 년 전 여름이 공책에 있었다. 칠월 이십삼일 옆에 작게 쓴 글씨가 있었다. 기사 쓰러짐.

그날 영사실에서 쿵 소리가 났고 필름이 멈췄다. 객석에서 야유가 터졌다. 순임은 그 계단 열아홉 개를 처음으로 뛰어 올라갔다. 태식은 기계 옆에 모로 누워 있었고 얼굴이 벌겋게 익어 있었다. 순임은 젖은 수건을 태식 목에 감고 부채질을 하다가, 태식이 넘어지면서 발로 차 들뜬 마루판 한 장을 보았다. 그 밑에 녹슨 깡통이 줄지어 있었다. 식초 냄새가 났다. 순임은 태식이 눈을 뜨기 전에 판을 도로 발로 밀어 덮었다. 그리고 공책에는 기사 쓰러짐이라고만 적었다.

적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순임은 그 공책 여섯 권 어디에도 깡통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

순임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다. 주순길은 대구 문화극장 영사실에 있었고 쉰이었다. 순임이 열아홉에 남의 집 쌀을 훔쳐 먹인 동생이었다. 그 쌀 한 되 때문에 순임은 주인 할머니한테 빗자루로 세 대를 맞았고, 맞고 나서 할머니 집 부엌에서 삼 년 동안 밥을 했다. 순길은 그 쌀로 죽을 끓여 먹고 살아났다. 둘은 그 얘기를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순임은 그날 밤 매표소에서 편지를 썼다. 맨 위에 날짜를 먼저 썼다.

팔월 이십일. 순길이 봐라. 「젖은 계단」 2권 오십삼 분 자리, 니 거기서 자른 거 있나? 있으면 보여 도. 여기 미친놈이 하나 있다. 누나.

쓰고 나서 순임은 편지를 오래 보았다. 미친놈이 하나라고 썼다가, 연필 끝으로 하나 옆에 작게 점을 찍었다. 점 하나를 찍었을 뿐인데 둘로 읽혔다.

닷새 동안 경섭은 하루에 두 번씩 매표소 창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누님, 대구에서 뭐 온 거 없습니까?”

“대구가 코앞이가? 기차로 네 시간이다.”

“편지는 기차 안 타고 날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날아가는 건 니 입이다. 표나 받아라.”

경섭은 표를 받으면서도 골목 입구를 보았다. 우체부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목이 길어졌다. 사흘째에는 우체부가 먼저 경섭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순임은 그 꼴을 보고 공책 그날 칸 옆에 작게 적었다. 간판쟁이 목 늘어남. 적고 나서 혼자 웃었다. 공책에 웃긴 일을 적은 것은 십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답장은 닷새 만에 왔다. 누런 서류 봉투였다. 풀칠이 안 되어 있었고 겉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 순임은 그것을 뜯지 않고 영사실 철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계단은 올라가지 않았다. 반쯤 올라가 봉투를 밀어 넣고 도로 내려왔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

한 시간 뒤에 태식이 매표소로 내려왔다. 경섭이 뒤에 있었다. 태식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필름 토막이 놓여 있었다.

“누나, 세 칸입니다.”

순임은 안경을 이마에서 내려 쓰고 그 토막을 전등 밑에 비췄다. 작은 사각형 세 개에 젖은 돌과 세 번째 단과 치맛자락이 들어 있었다. 태운 것과 같은 칸이었다. 그 아래 연필로 네 줄이 적힌 종이가 딸려 있었다.

대구 문화극장 영사실. 우리도 가지고 있다. 여섯 깡통. 그 계단은 초산이 먹어서 반쯤 상했다. 어떻게 할 거냐?

순임은 그 종이를 읽고 코로 한 번 웃었다.

“그놈도 미친놈이네.”

경섭이 웃음을 참다가 못 참았다. 웃음소리가 좁은 매표소 유리에 부딪혀 두 배로 커졌고, 순임이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골목 건너 여인숙 이 층 창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태식은 웃지 않고 세 칸을 보고 있었다. 삼백육십 칸 가운데 세 칸이었다. 일 초의 팔분의 일이었다.

“세 칸이면 뭘 합니까?”

순임이 물었다. 태식은 대답 대신 창구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팔 년 동안 이 극장 영사실 말고는 어느 영사실에도 편지 한 장 보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대구에 편지 쓰겠습니다. 제가요.”

“니가?”

“그쪽이 여섯 깡통을 가졌다고 먼저 밝혔습니다. 가진 걸 먼저 밝힌 사람한테는 가진 쪽이 답을 해야 합니다. 제가 써야 그쪽도 답을 합니다. 누나 동생한테 누나가 쓰면 그건 집안일이지요. 제가 써야 영사실 일이 됩니다.”

순임은 안경을 도로 이마에 올렸다. 그러고는 공책 여섯 권 가운데 맨 아래 것을 빼서, 빈 뒷장을 한 장 찢어 태식에게 내밀었다.

“날짜부터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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