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03자)

갑질 신고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연결음이 두 번 울리고 끊겼다⁠. 휴대전화 스피커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충성⁠! 수송부 하사 강⁠…⁠.⁠”

반찬가게 사장이 고무장갑 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시장 골목의 소음이 한꺼번에 멀어졌다⁠. 혜옥은 휴대전화를 제 귀로 가져가며 부드럽게 말했다⁠.

“⁠강 하사⁠, 연대장 집사람이에요⁠. 바쁜데 미안해요⁠. 다른 게 아니라 26일 관사 김장 날 배추 실어 올 트럭 운전 좀 부탁하려고요⁠. 수송부장님께는 내가 말해 둘게요⁠. 그리고 겨울에 중사 심사 있죠⁠? 미리 축하해요⁠.⁠”

혜옥은 전화를 끊고 사장을 보았다⁠. 사장은 칼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장갑 낀 손이 앞치마 위에서 갈 곳을 몰라 서로를 쥐었다⁠.

“⁠사부님⁠. 미안해요⁠.⁠”

사장이 준석을 보지 않고 말했다⁠.

“⁠고춧가루는 드릴게요⁠. 큰집 거라 내 마음대로 해요⁠. 배추는 안 되겠어요⁠. 관사에 들어가는 트럭을 우리 아들이 몰아요⁠.⁠”

준석은 손에 든 쪼개진 배추를 수레 위에 내려놓았다⁠. 혜옥의 동생은 트럭 짐칸의 방수포를 끌어 내려 물 빠지는 상자를 덮었다⁠. 혜옥은 장바구니에 시장 무 두 개를 담고 동생 차에 올랐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갔다⁠.

“⁠준석 씨⁠, 고춧가루 맛있는 거 사세요⁠. 사단장 사모님이 정하신다면서요⁠.⁠”

트럭이 장꾼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끝님이 메모장에서 「⁠배추⁠」 줄을 볼펜으로 그었다⁠. 볼펜 끝이 종이를 찢었다⁠.

*

11월 2일 월요일 아침⁠, 다슬은 출근하자마자 연대 감찰 장교의 전화를 받았다⁠. 열 시까지 연대 본부 감찰실로 오라고 했다⁠. 다슬은 대대장실 의자에 군모를 내려놓고 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신고 들어감⁠. 국방부 군 가족 고충 창구⁠. 피신고인 연대장 사모님⁠. 신고자 하준석⁠.⁠」

준석은 쉼터에서 솥을 닦다가 문자를 읽었다⁠. 세 번을 읽었다⁠. 신고자 하준석⁠. 준석은 국방부에 군 가족 고충 창구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안 했어⁠.⁠」

「⁠알아⁠. 감찰도 알 거야⁠. 근데 이름은 셰프야⁠.⁠」

열 시 반에 다슬에게서 문자가 다시 왔다⁠. 감찰실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신고 내용⁠. ① 김장 회비 강요 ② 원산지 속인 고춧가루를 비싸게 팜 ③ 남자 배우자를 모임에서 배제 ④ 연대장이 건강 문제로 지휘를 제대로 못 하는데 사모님이 숨김⁠. 네 번째가 문제야⁠.⁠」

준석은 솥 앞에 주저앉았다⁠. 네 번째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

연대 본부 감찰실은 창이 하나뿐인 방이었다⁠. 창밖으로 연병장의 플라타너스가 잎을 다 떨군 채였다⁠. 다슬은 철제 책상 앞에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감찰 장교는 소령이었고⁠, 다슬보다 다섯 살 어렸다⁠. 소령은 신고서 출력물을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고 다슬 쪽으로 돌렸다⁠.

“⁠대대장님⁠. 신고자가 배우자분이십니다⁠. 배우자분께서 직접 쓰셨는지 여쭙니다⁠.⁠”

“⁠아닙니다⁠.⁠”

“⁠확인하셨습니까⁠?⁠”

“⁠남편은 단톡방에도 없습니다⁠. 국방부 창구 주소도 모릅니다⁠. 남편이 아는 주소는 강경 젓갈집하고 영양 고춧가루 집뿐입니다⁠.⁠”

소령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소령은 네 번째 항목에 펜 끝을 댔다⁠.

“⁠이 내용은 사실입니까⁠?⁠”

다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병장에서 구령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다슬은 병원 보호자 칸에 쓴 제 서명을 떠올렸다⁠. 볼펜이 종이를 눌러 뒷장까지 자국이 났던 서명이었다⁠.

“⁠감찰관님⁠. 연대장님 건강은 군의관 소관입니다⁠. 저는 대대장입니다⁠. 제 대대 일만 대답하겠습니다⁠.⁠”

소령은 펜을 내려놓았다⁠. 다슬이 일어서서 경례를 할 때 소령이 한마디를 보탰다⁠.

“⁠대대장님⁠, 이번 심사 대상자 중에 이 신고로 덕 볼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다슬은 경례를 마치고 감찰실을 나왔다⁠. 복도 끝 창가에 1대대장이 서 있었다⁠. 같은 중령⁠, 같은 심사였다⁠. 1대대장은 다슬을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슬도 고개를 숙였다⁠. 둘 다 웃지 않았다⁠.

*

신고 소식은 점심때가 되기 전에 관사촌을 한 바퀴 돌았다⁠. 단톡방에 누군가 「⁠대대장님 남편분이 국방부에 신고했대요⁠」라고 올렸고⁠, 밑으로 답이 줄줄이 달렸다⁠. 끝님이 캡처를 보내 주었다⁠. 맨 아래 끝님의 답이 있었다⁠.

「⁠사부님 신고 안 했어예⁠. 그분은 냉장고 열쇠 있는데도 안 연 사람이라예⁠. 신고할 사람이면 그때 열었어예⁠.⁠」

끝님의 답 아래로는 아무도 답을 달지 않았다⁠.

수요일 쉼터 솥 앞의 줄이 짧아졌다⁠. 104동 중위 집 둘이 오지 않았고⁠, 103동 포대장 집이 오지 않았다⁠. 부사관 관사에서는 주임원사 부인 혼자 쪽문을 넘어왔다⁠. 오지 않은 집들은 통을 돌려보냈다⁠. 현관 손잡이에 쇼핑백이 걸려 있었고⁠, 쇼핑백 안의 통은 씻어져 있었다⁠. 빈 통이었다⁠. 관사촌에서 빈 통이 돌아온 것은 이사 첫날 아침 이후로 처음이었다⁠.

끝님이 냉장고마다 들어간 주황 뚜껑과 귤색 뚜껑을 다시 세었다⁠. 서른한 집에서 스물여섯 집이 되었다⁠.

주임원사 부인은 국을 다 먹고 그릇을 씻으며 말했다⁠.

“⁠우리 남편이 그래요⁠. 장교들 싸움에 부사관 마누라가 끼면 남편이 다친다고⁠. 근데 나는 국 먹으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거 아니에요⁠.⁠”

주임원사 부인은 손등의 화상 흉터를 행주로 한 번 훔쳤다⁠.

“⁠이건 화천에서 김장할 때 생긴 거예요⁠. 소금물 끓이다가⁠. 연대장 사모님이 그때 소대장 사모님이셨어요⁠. 내 손에 된장 발라 주셨어요⁠.⁠”

*

월요일 밤 끝님과 인사과장 사모가 준석의 부엌에 모였다⁠. 인사과장 사모가 처음으로 맞은편 현관을 건너 준석의 식탁에 앉았다⁠. 끝님은 산들을 재우고 아기 모니터를 들고 올라왔다⁠. 식탁 위에 귤 한 봉지가 놓였다⁠.

“⁠신고 창구는 이름만 치면 아무나 낼 수 있어요⁠. 본인 확인을 휴대전화 문자로 하는데⁠, 남의 번호로도 돼요⁠.⁠”

인사과장 사모가 귤을 까며 말했다⁠. 남편이 인사과장이라 그런 것을 알았다⁠.

“⁠그럼 누가 사부님 번호를 알아예⁠?⁠”

“⁠사부님 번호 아는 사람이 관사에 몇 명이에요⁠?⁠”

준석은 휴대전화 연락처를 열었다⁠. 관사촌 사람 가운데 준석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끝님⁠, 정보과장 사모⁠, 인사과장 사모⁠, 3대대장 사모⁠, 군의관 사모⁠, 주임원사 부인⁠. 그리고 이사 첫날 환영회 때 사모회 연락망에 번호를 적어 낸 일이 있었다⁠. 연락망을 걷어 간 사람은 1대대장 사모였다⁠.

끝님이 귤 껍질을 손톱으로 잘게 찢었다⁠.

“⁠1대대장님도 중령이지예⁠? 대대장님이랑 같은 심사 맞지예⁠?⁠”

인사과장 사모는 대답하지 않고 귤 한 쪽을 입에 넣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인사과장 사모의 대답이었다⁠. 아기 모니터에서 산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

목요일 오후⁠, 준석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지난번과 같은 번호였다⁠.

「⁠오늘 저녁 일곱 시 연대장 관사에서 저녁 드세요⁠. 문 중령님도 같이요⁠. 권혜옥⁠.⁠」

연대장 관사 식탁에는 그릇이 열두 개 놓여 있었다⁠. 갈비찜⁠, 홍어무침⁠, 더덕구이⁠, 낙지볶음⁠, 굴전⁠, 동치미⁠, 그리고 묵은지⁠. 가운데에 큰 뚝배기가 김을 올리고 있었다⁠. 김치찌개였다⁠. 돼지고기가 두껍게 썰려 들어가 있었다⁠. 식탁 한쪽에 사모회 국그릇 대신 혜옥 집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릇마다 테두리에 금빛 줄이 둘 둘려 있었다⁠.

연대장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군복이 아니라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니트 목둘레가 헐렁했다⁠. 한 달 사이에 더 마른 얼굴이었다⁠. 다슬과 준석이 들어서자 연대장은 일어서려다 의자 팔걸이를 짚었다⁠. 다슬이 먼저 경례를 하고 연대장을 앉혔다⁠.

“⁠앉아⁠. 앉아요⁠. 다 집에서 먹는 밥이니까⁠.⁠”

혜옥이 앞치마를 벗으며 식탁에 앉았다⁠. 혜옥이 앞치마를 벗는 모습을 준석은 처음 보았다⁠. 혜옥의 앞치마는 꽃무늬였고⁠, 준석의 남색 앞치마보다 오래 빨아 색이 바래 있었다⁠.

“⁠드세요⁠. 준석 씨 음식만큼은 못 해도⁠.⁠”

연대장이 수저를 들었다⁠. 혜옥이 연대장의 밥그릇 위에 갈비 한 점을 올렸다⁠. 연대장은 갈비를 젓가락으로 집어 오래 들여다보다가 입에 넣었다⁠. 씹는 속도가 느렸다⁠. 준석은 연대장의 이마를 보았다⁠.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맛있네⁠.⁠”

연대장이 말했다⁠. 혜옥이 김치찌개를 떠서 연대장의 국그릇에 부었다⁠. 돼지고기 두 점이 국물과 함께 들어갔다⁠. 연대장은 찌개를 한 숟가락 떠 마셨다⁠. 두 숟가락째에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보⁠, 천천히 드세요⁠. 국물 식으면 맛없어요⁠.⁠”

혜옥이 웃으며 말했다⁠. 다슬이 수저를 쥔 채로 굳어 있었다⁠. 준석은 혜옥을 보았다⁠. 혜옥은 준석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식탁에서 연대장에게 무엇을 먹이는지 혜옥은 알았다⁠. 알고 먹였다⁠. 준석은 그것을 보라고 이 식탁에 불렸다⁠.

연대장이 식탁을 짚고 일어섰다⁠.

“⁠잠깐 실례합니다⁠.⁠”

연대장은 화장실로 갔다⁠. 문이 닫히자 혜옥이 일어나 부엌 개수대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가 세게 났다⁠. 물소리가 화장실의 소리를 덮었다⁠. 혜옥은 개수대 앞에 등을 돌리고 서서 물을 틀어 놓은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다슬이 낮게 말했다⁠.

“⁠사모님⁠. 연대장님 속이 불편하십니다⁠. 죽을 드시는 게⁠…⁠.⁠”

“⁠알아요⁠, 문 중령님⁠.⁠”

혜옥은 돌아서지 않고 대답했다⁠. 물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작았다⁠.

“⁠다 알아요⁠. 죽 드시는 게 좋은 거⁠. 그런데 우리 집 부엌에서 죽 냄새가 나는 날⁠, 우리 집 사람은 장군이 못 돼요⁠. 이 신고서 보세요⁠.⁠”

혜옥은 수도를 잠그고 식탁으로 돌아와 앞치마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국방부 고충 창구 접수 화면을 인쇄한 것이었다⁠. 혜옥은 종이를 펼쳐 김치찌개 뚝배기 옆에 놓았다⁠. 신고자 칸에 「⁠하준석⁠」이 찍혀 있었다⁠. 네 번째 항목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연대장은 올봄 큰 수술을 받아 정상적인 식사와 지휘가 어려운 상태이나⁠, 연대장 부인이 이를 숨기고 관사 행사를 강행하고 있음⁠.⁠」

“⁠사단 감찰이 이 줄 하나로 다음 주에 우리 집 사람 건강 기록을 떼 본대요⁠. 장군 심사가 이 주 남았어요⁠.⁠”

혜옥은 손가락으로 네 번째 줄을 눌렀다⁠. 손톱 끝이 하얗게 질렸다⁠.

“⁠동생 공장은 원산지 조사로 영업 정지 맞았어요⁠. 그건 동생 잘못이니까 할 말 없어요⁠. 그런데 이건 아니에요⁠. 준석 씨⁠.⁠”

화장실 문이 열렸다⁠. 연대장이 나왔다⁠. 얼굴이 하얬고 니트 소매가 물에 젖어 있었다⁠. 연대장은 식탁으로 오지 않고 거실 벽을 짚고 서서 식탁 위의 종이를 보았다⁠.

“⁠우리 집 사람 배에 칼 댄 걸 아는 사람이⁠, 이 연대에 넷이에요⁠. 군의관⁠, 문 중령님⁠, 나⁠, 그리고 밤마다 죽을 쑤어 준 준석 씨⁠.⁠”

혜옥은 종이에서 손가락을 떼고 준석을 보았다⁠.

“⁠군의관은 이 사람 수술 기록에 서명한 사람이고⁠, 나는 이 사람 아내예요⁠. 문 중령님은 진급 심사에 우리 집 사람 의견이 들어가는 사람이고요⁠. 이 줄을 써서 득 볼 사람이 이 식탁에 누가 있어요⁠?⁠”

준석이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벽을 짚고 선 연대장이 다슬을 보았다⁠. 다슬이 연대장의 눈길을 받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보았다⁠. 다슬의 눈 안에서 무언가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대대장의 눈이었다⁠. 준석이 이런 눈을 아내에게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