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6자)

셰프와 중령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다슬은 혜옥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 남편은 아닙니다⁠.⁠”

“⁠문 중령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거예요⁠.⁠”

혜옥은 신고서를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연대장은 벽을 짚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옥이 남편에게 다가가 젖은 니트 소매를 접어 올려 주었다⁠. 접는 손이 빨랐다⁠. 서른 해 동안 남의 아이 소매를 걷어 준 손이었다⁠.

“⁠두 분 가세요⁠. 음식은 싸 드릴게요⁠.⁠”

혜옥은 식탁 위의 그릇들을 반찬통에 옮겨 담았다⁠. 혜옥의 반찬통은 뚜껑이 투명했다⁠. 갈비찜과 굴전과 더덕구이가 차곡차곡 쌓였다⁠. 혜옥은 쇼핑백을 다슬에게 건넸다⁠. 준석에게는 건네지 않았다⁠.

*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은 말이 없었다⁠. 101동에서 102동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말이 없었다⁠. 관사촌 놀이터 그네가 바람에 혼자 흔들렸다⁠. 11월 초순의 밤바람이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다슬이 쇼핑백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투명한 뚜껑 너머로 갈비찜 국물이 출렁였다⁠.

“⁠셰프⁠. 연대장님 수술 얘기⁠, 누구한테 했어⁠?⁠”

준석은 앞치마를 벗다 말고 아내를 보았다⁠. 연대장 관사 식탁에서 본 눈이 그대로였다⁠.

“⁠아무한테도 안 했어⁠.⁠”

“⁠끝님 씨는⁠?⁠”

“⁠끝님 씨는 짐작만 해⁠. 엘리베이터에서 트레이닝복 입은 경비 아저씨를 만났대⁠.⁠”

“⁠그 짐작을 누구한테 말했을지 셰프가 알아⁠? 끝님 씨가 경비 아저씨 얘기를 단톡방에서 안 했다고 장담해⁠?⁠”

“⁠다슬아⁠.⁠”

준석은 앞치마를 의자에 걸었다⁠. 걸다가 떨어뜨렸다⁠. 줍지 않았다⁠.

“⁠너 지금 나를 감찰관처럼 봐⁠.⁠”

“⁠감찰관 앞에 내가 앉아 있다 왔어⁠. 수술 기록 보호자 칸에 내 서명 있어⁠. 네 번째 줄이 사실로 밝혀지면 연대장님만 끝나는 게 아니야⁠. 알면서 숨긴 대대장도 끝나⁠. 셰프가 냉장고 안 열어서 지켜 준 내 계급장이⁠, 셰프 이름 박힌 신고서 한 장으로 날아가게 생겼어⁠.⁠”

“⁠내가 안 썼어⁠.⁠”

“⁠알아⁠.⁠”

다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알아⁠. 근데 셰프가 이 관사에 와서 반찬통을 돌리지 않았으면⁠, 연대장님이 밤마다 계단을 안 올라왔으면⁠, 아무도 네 번째 줄을 쓸 수 없었어⁠. 셰프가 이기고 싶어서 시작한 거잖아⁠. 사모님 김치 이기고 싶어서⁠.⁠”

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혜옥의 부엌에서 열쇠를 집을 때 준석은 그것을 알았다⁠.

준석은 떨어진 앞치마를 주워 들었다⁠. 신발장 위의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

“⁠어디 가⁠?⁠”

“⁠쉼터⁠. 오늘은 거기서 잘게⁠. 너 내일 아침에 감찰 또 가잖아⁠. 나 보면 잠 못 자⁠.⁠”

다슬은 붙잡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에 다슬의 목소리가 따라 나왔다⁠.

“⁠담요 가져가⁠.⁠”

*

쉼터는 추웠다⁠. 준석은 솥 하나에 물을 끓여 김을 올렸다⁠. 탁자 둘을 붙이고 담요를 깔았다⁠.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거렸다⁠. 김치냉장고 셋이 웅웅 돌았다⁠. 세 번째 냉장고에는 아직 고춧가루 포대 서른 개가 들어 있었다⁠. 원산지 조사관이 공장을 닫았지만 관사 냉장고까지는 오지 않았다⁠.

새벽 세 시⁠, 쉼터 문이 열렸다⁠. 준석은 담요를 걷고 일어났다⁠. 다슬이 서 있었다⁠. 전투복 위에 패딩을 걸치고⁠, 손에 보온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잠 안 와⁠.⁠”

다슬은 보온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김이 올랐다⁠. 혜옥이 싸 준 김치찌개였다⁠. 다슬이 혼자 데운 것이었다⁠. 다슬은 찌개를 컵에 따라 준석에게 내밀었다⁠.

“⁠사모님 김치찌개야⁠. 맛있어⁠. 분하게⁠.⁠”

준석은 컵을 받았다⁠. 국물이 진했다⁠. 돼지기름 위로 묵은지의 신맛이 올라왔다⁠. 준석은 컵을 비우고 나서 다슬을 보았다⁠.

“⁠감찰관한테 뭐 들었어⁠?⁠”

다슬은 탁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감찰관이 밤에 전화했어⁠. 국방부 창구가 접수 기록을 보내 줬대⁠. 신고가 들어간 시각이 10월 31일 밤 열한 시 사십 분⁠. 관사 공용 와이파이 말고 집 공유기로 들어왔대⁠. 101동 삼 층⁠.⁠”

“⁠101동 삼 층이면⁠.⁠”

“⁠1대대장 집하고 부연대장 집⁠. 부연대장 사모님은 그날 서울 딸네 가 있었어⁠.⁠”

다슬은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증거는 그것뿐이야⁠. 공유기는 옆집도 쓸 수 있대⁠. 감찰관은 거기까지만 말했어⁠. 1대대장도 중령이고⁠, 이번 심사가 네 번째야⁠. 떨어지면 내년에 전역이야⁠.⁠”

다슬은 준석의 손에서 빈 컵을 받아 탁자에 놓았다⁠. 손을 놓지 않았다⁠.

“⁠셰프⁠. 아까 그 말⁠, 이기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거⁠. 취소 안 할 거야⁠. 맞는 말이니까⁠.⁠”

“⁠알아⁠.⁠”

“⁠근데 나도 이기고 싶어⁠. 그러니까 같이 이기자⁠.⁠”

다슬은 준석의 손을 끌어 제 볼에 댔다⁠. 볼이 차가웠다⁠. 준석은 아내를 담요 위로 끌어당겼다⁠. 탁자 둘을 붙인 자리는 좁았고 쉼터의 공기는 차가웠는데⁠, 솥에서 오르는 김이 두 사람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다슬은 군복 단추를 하나씩 풀면서 웃었다⁠. 사모회 쉼터에서 대대장 부부가 이러는 거⁠, 관사 생긴 이래 처음일 거라고⁠. 준석은 대답 대신 아내의 목덜미에 남은 화약 냄새를 숨으로 쓸어냈다⁠. 형광등이 한 번 깜박이고 꺼졌다⁠. 둘은 아무도 불을 고치러 가지 않았다⁠.

*

이튿날 오전 열 시⁠, 준석은 1대대장 사모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락망에 적힌 번호였다⁠.

「⁠쉼터 서랍에 사모회 연락망 철이 있는데 돌려드리려고요⁠. 걷어 가신 분이 사모님이라⁠.⁠」

1대대장 사모는 열 시 이십 분에 내려왔다⁠.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올려 쓰고 있었다⁠. 준석은 서랍에서 연락망 철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옆에 하얀 콩나물국 한 그릇을 놓았다⁠.

“⁠드세요⁠. 1대대장님 회식 다음 날 드시는 거랑 같은 거예요⁠.⁠”

1대대장 사모는 국그릇을 보지 않았다⁠. 연락망 철을 집어 들려고 손을 뻗었다⁠. 준석이 철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10월 31일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뭐 하셨어요⁠?⁠”

1대대장 사모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무슨 말씀이세요⁠?⁠”

“⁠신고가 101동 삼 층 공유기로 들어갔대요⁠. 신고서 네 번째 줄에 정상적인 식사가 어렵다고 쓰셨던데⁠, 1대대장님이 회식 자리에서 연대장님 옆에 앉으시잖아요⁠. 연대장님이 술잔만 들고 안주를 안 드시는 걸 보셨겠죠⁠. 끝님 씨 보온병이 엘리베이터에서 연대장님 손으로 가는 것도 보셨을 거고요⁠. 큰 수술이라고 쓰신 건 짐작이셨죠⁠?⁠”

1대대장 사모가 손을 거두었다⁠. 탁자 끝을 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증거 있어요⁠? 공유기는 옆집도 써요⁠.⁠”

“⁠없어요⁠. 그래서 여쭙는 거예요⁠.⁠”

1대대장 사모는 한참 준석을 보았다⁠. 그러고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콩나물국 그릇을 두 손으로 감쌌다⁠. 마시지는 않았다⁠.

“⁠남자 사모님은 몰라요⁠. 우리 남편 이번이 네 번째예요⁠. 떨어지면 전역이에요⁠. 마흔여덟에⁠. 큰애가 고등학교 일 학년이고 작은애가 중학생이에요⁠. 관사 나가면 집이 없어요⁠. 군인 아파트에 이십 년 살았어요⁠. 이십 년⁠.⁠”

1대대장 사모가 국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국 위로 콩나물 대가리 몇 개가 떠 있었다⁠.

“⁠문 중령님은 마흔이에요⁠. 다음 기회가 있어요⁠. 우리는 없어요⁠.⁠”

“⁠그래서 제 이름으로 쓰셨어요⁠?⁠”

1대대장 사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국을 한 모금 마셨다⁠. 두 모금째에서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일어서서 연락망 철을 집었다⁠. 준석은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국은 맛있네요⁠. 우리 남편이 좋아하겠어요⁠.⁠”

1대대장 사모는 쉼터를 나갔다⁠. 문간에서 선글라스를 눈으로 내려썼다⁠.

*

오후 두 시 임원회가 쉼터에서 열렸다⁠. 김장 대회 조 편성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준석은 이번에도 문밖에 있었다⁠. 끝님이 혼자 들어갔다⁠. 산들은 준석이 안았다⁠.

문틈으로 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104동 조에 저 넣어 주이소⁠. 조원으로 102동 하준석 씨 넣을 낍니더⁠. 회비는 안 냅니다⁠. 고춧가루는 시장 영양 거 제가 샀습니다⁠. 배추는 아직 못 구했어예⁠.⁠”

혜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정하고 느렸다⁠.

“⁠넣어 드려요⁠. 우리 거래였으니까⁠.⁠”

임원 몇이 고개를 들었다⁠. 1대대장 사모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혜옥은 조 편성표의 104동 칸 끝에 준석을 올렸다⁠. 볼펜 끝이 종이를 길게 긁었다⁠.

“⁠끝님 씨⁠. 배추는 어떻게 할 거예요⁠? 시장 배추는 이제 아무도 안 대 줄 텐데⁠.⁠”

“⁠제가 구할 끼라예⁠.⁠”

끝님이 대답했다⁠. 문틈 사이로 준석은 끝님의 귀가 빨개지는 것을 보았다⁠. 끝님은 구할 데가 없었다⁠.

임원회가 끝나고 끝님은 쉼터 밖으로 나오자마자 준석의 품에서 산들을 받아 안았다⁠. 둘은 아무 말 없이 관사촌 뒤편으로 걸었다⁠. 부사관 관사로 넘어가는 쪽문 앞에서 주임원사 부인이 빨래를 걷고 있었다⁠. 담장 너머 부사관 관사 뒤에는 시멘트 담과 부대 철조망 사이로 길쭉한 공터가 있었고⁠, 공터에 배추가 줄지어 자라 있었다⁠. 서리를 두 번 맞은 배추가 겉잎을 오그리고 속을 단단히 오므리고 있었다⁠.

“⁠사모님⁠, 저 배추 누구 거라예⁠?⁠”

끝님이 담장 너머로 물었다⁠. 주임원사 부인이 빨래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부사관 마누라들 거예요⁠. 해마다 심어요⁠. 장교 사모회 김장 날 배추 나르고 나면⁠, 우리 김장은 우리 배추로 해요⁠. 이백 포기쯤 돼요⁠.⁠”

“⁠그중에 백 포기만 팔 수 있어예⁠? 시세대로예⁠.⁠”

주임원사 부인은 끝님을 보고⁠, 끝님 품의 산들을 보고⁠, 준석의 앞치마를 보았다⁠. 손등의 화상 흉터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팔지는 않아요⁠. 장교 사모님한테 우리 배추 팔았다는 소리 들으면 우리 남편 서른 해 체면이 없어요⁠.⁠”

끝님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주임원사 부인이 빨래 바구니를 다시 들며 말을 이었다⁠.

“⁠빌려줄게요⁠. 김장 날 우리 마누라들 손 여섯 개랑 같이⁠. 대신 내년 봄에 배추 모종 심을 때 사부님이 쉼터 솥 한 번 빌려줘요⁠. 모종 심는 날 국 끓여 먹게⁠.⁠”

끝님이 산들을 안은 채로 담장에 매달리듯 고개를 숙였다⁠. 산들이 엄마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준석은 담장 너머 배추밭을 보았다⁠. 이백 포기의 배추가 철조망 그림자 아래에서 해를 받고 있었다⁠. 배추를 관사로 실어 올 트럭은 아직 없었다⁠.

*

밤 열 시⁠, 다슬은 거실에서 진급 심사 서류를 다시 읽고 있었다⁠. 준석은 부엌에서 무를 썰고 있었다⁠. 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문자가 아니라 사진이었다⁠.

단톡방 캡처였다⁠. 맨 위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와 있었다⁠. 102동 사 층 복도⁠. 준석의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고⁠, 문간에 앞치마를 맨 준석이 서 있었다⁠. 문 앞에는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마른 남자가 서 있었고⁠, 남자의 두 손에 주황 뚜껑 통이 들려 있었다⁠. 밤이었다⁠. 복도 형광등 불빛이 남자의 하얗게 센 정수리를 비추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 글이 한 줄 달려 있었다⁠.

「⁠연대장님이 밤마다 진급 심사 앞둔 대대장 댁 남편한테 뭘 받아 가실까요⁠?⁠」

올린 사람의 이름은 1대대장 사모였다⁠. 밑으로 읽음 표시가 마흔 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답은 하나도 없었다⁠.

준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권혜옥⁠」이 떴다⁠. 다슬이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준석은 칼을 도마에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준석 씨⁠. 사진 봤어요⁠?⁠”

혜옥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끝을 끄는 버릇이 빠져 있었다⁠.

“⁠우리 집 사람이 지금 그 사진 보고 현관을 나갔어요⁠. 군복 입고⁠. 1대대장 집으로 간대요⁠.⁠”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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