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08자)

반쪽 위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연대장은 식탁 의자에 앉기 전에 등받이를 한 손으로 짚었다⁠.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준석은 토란국을 데우다 말고 연대장의 손을 보았다⁠. 쉰다섯 살 남자가 의자에 앉을 때 등받이를 짚는 일은 드물었다⁠.

국그릇을 내려놓자 연대장은 숟가락 대신 찻숟가락을 찾았다⁠. 준석이 서랍에서 찻숟가락을 꺼내 건넸다⁠. 연대장은 국물을 찻숟가락으로 반만 떠서 입에 넣고⁠, 삼키고⁠, 숨을 한 번 쉬었다⁠. 다시 반 숟가락⁠. 숨 한 번⁠. 이마에 땀이 맺혔다⁠. 토란 한 알을 찻숟가락으로 반 갈라서 한쪽을 오래 씹었다⁠.

준석은 그렇게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학원 노년 반에 위 수술을 받고 온 수강생이 있었다⁠. 먹는 법을 다시 배운다며 죽 쑤는 법을 배우러 왔던 할아버지였다⁠.

“⁠천천히 드세요⁠. 한 그릇 다 안 드셔도 돼요⁠.⁠”

“⁠이렇게 먹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

“⁠학원에 그런 분이 계셨어요⁠. 위를 잘라 내신 분⁠.⁠”

연대장이 찻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부엌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연대장은 국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4월에 서울 민간 병원에서 했습니다⁠. 초기라서 절반만 잘랐습니다⁠. 휴가 열흘로 처리했고요⁠. 부대에서는 군의관하고 2대대장⁠, 나 이렇게 셋만 압니다⁠.⁠”

“⁠다슬이가요⁠?⁠”

“⁠그때 2대대장 발령 내정이 나 있었습니다⁠. 수술 날 병원에 와 있었습니다⁠. 문 중령이 보호자 칸에 서명했습니다⁠. 집사람은 그날 관사 김장 독을 사러 이천에 가 있었고요⁠.⁠”

준석은 아내가 잊으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들은 것도 잊어⁠. 아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연대장이 다시 찻숟가락을 들었다⁠.

“⁠올해 장군 심사입니다⁠. 몸에 칼 댄 걸 위에서 알면 끝납니다⁠. 장군은 아프면 안 됩니다⁠. 집사람은 그걸 압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전처럼 밥을 차립니다⁠. 수술 전처럼⁠. 고기 굽고⁠, 김치 찌개 끓이고⁠. 내가 그걸 다 먹으면 다시 건강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 겁니다⁠.⁠”

“⁠드세요⁠?⁠”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해서 한참 화장실에 있습니다⁠. 집사람 모르게⁠.⁠”

연대장은 남은 국물을 찻숟가락으로 끝까지 떠먹었다⁠. 그릇 바닥에 토란 두 알이 남았다⁠. 연대장은 남은 두 알을 오래 내려다보다가 일어섰다⁠.

“⁠부탁드립니다⁠. 밤에 한 그릇씩⁠. 아무도 모르게⁠. 대가는 원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대가는 됐고요⁠. 그릇만 돌려주세요⁠.⁠”

*

이튿날부터 준석은 밤마다 죽을 쑤었다⁠. 첫날은 흰죽에 북어 보푸라기를 얹었다⁠. 둘째 날은 단호박죽을 쑤었다⁠. 단호박을 쪄서 체에 내리고⁠, 찹쌀가루를 물에 개어 조금씩 풀었다⁠. 설탕은 넣지 않았다⁠. 셋째 날은 애호박을 곱게 다져 넣은 들깨죽이었다⁠. 간은 소금 대신 간장 몇 방울로 맞췄다⁠.

연대장은 밤 열한 시 반에 왔다⁠.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손에는 빈 통 하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왔다⁠. 101동 꼭대기에서 102동 사 층까지 계단으로 오는 데 십이 분이 걸렸고⁠, 연대장은 사 층 계단참에서 매번 숨을 골랐다⁠.

사흘째 밤⁠, 연대장은 들깨죽을 반 그릇 비우고 나서 처음으로 수저를 놓고 말을 꺼냈다⁠. 부엌 불은 식탁 위 등 하나만 켜 두었다⁠.

“⁠집사람 김치 드셔 보셨습니까⁠?⁠”

“⁠묵은지요⁠. 작년 거⁠.⁠”

“⁠화천에서 소대장 할 때부터 담갔습니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서요⁠. 첫 관사가 슬레이트 지붕이었는데 겨울에 물이 얼어서 집사람이 개울 얼음을 깨서 배추를 씻었습니다⁠. 소대장 마누라들 열 명이 집사람 손만 보고 따라 했습니다⁠. 그때부터 김장은 집사람 일입니다⁠.⁠”

연대장은 빈 그릇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볼이 꺼진 얼굴에 웃음이 들어가니 주름이 깊어졌다⁠.

“⁠제가 장군이 되면 집사람은 장군 사모가 됩니다⁠. 그 사람이 서른 해 동안 개울 얼음 깬 대가가 그겁니다⁠. 제 위가 반 남은 걸로 그걸 뺏을 수는 없습니다⁠.⁠”

“⁠연대장님 위는요⁠?⁠”

“⁠제 위는 제가 감당합니다⁠.⁠”

연대장은 통을 챙겨 일어섰다⁠. 현관에서 슬리퍼를 신으며 한 번 더 말했다⁠.

“⁠엘리베이터 타라고 문 중령이 그러던가요⁠? 계단이 운동이 됩니다⁠.⁠”

*

나흘째 밤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끝님과 마주쳤다⁠. 끝님은 산들이 밤잠을 안 자 업고 관사 한 바퀴를 돌던 참이었다⁠. 이튿날 아침 끝님이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사부님⁠, 어젯밤에 엘리베이터에서 경비 아저씨 만났어예⁠. 트레이닝복 입고 주황 통 들고⁠. 우리 관사에 경비 아저씨 있었어예⁠?⁠”

“⁠없어요⁠.⁠”

“⁠그럼 누군데예⁠?⁠”

준석은 쌀을 씻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끝님이 메모장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끝님은 산들을 포대기에서 내려 거실 바닥에 앉히고 조용히 말했다⁠.

“⁠묻는 거 아이라예⁠. 근데 그분 산들이한테 손 흔들어 줬어예⁠. 산들이가 울다가 그쳤어예⁠.⁠”

*

연휴가 끝나고 다슬이 집에 돌아온 날⁠, 준석은 냉장고 앞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다슬은 군복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고 물 한 컵을 마시고 나서 냉장고를 열었다⁠. 맨 아래 칸에 죽이 담긴 주황 뚜껑 통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이거 누구 거야⁠?⁠”

“⁠알잖아⁠.⁠”

다슬은 냉장고 문을 닫았다⁠.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는 소리가 컸다⁠.

“⁠언제부터⁠?⁠”

“⁠추석 밤부터⁠. 매일 밤⁠. 계단으로 오셔⁠.⁠”

“⁠준석아⁠.⁠”

다슬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남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대대장 목소리도 아니고 아내 목소리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들킨 사람의 목소리였다⁠.

“⁠병원 보호자 칸에 내가 서명했어⁠. 연대장님 부탁이었어⁠. 그날 사모님은 이천에 독 사러 가 계셨어⁠. 연대장님이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사모님이 아시면 그날로 관사에 소문 난다고⁠.⁠”

“⁠사모님이 소문을 내⁠?⁠”

“⁠소문은 사모님이 안 내도 나⁠. 사모님이 우시면 나⁠. 사모님이 장을 다르게 보면 나⁠. 관사는 그래⁠.⁠”

다슬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나 연대장님 덕에 여기 왔어⁠. 진급 심사에 연대장님 의견 들어가⁠. 연대장님이 장군 안 되시면 내 의견은 다른 연대장이 써⁠. 셰프가 그 죽 때문에 들키면⁠, 우리 둘 다 끝나⁠.⁠”

“⁠그럼 그만 쑤어⁠?⁠”

다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한 번 보았다⁠. 냉장고 안에서 모터가 웅웅 돌았다⁠.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타시라고 해⁠. 계단이 더 눈에 띄어⁠.⁠”

*

10월 첫 주⁠, 인사과장 사모가 깁스를 풀었다⁠. 깁스를 푼 다리로 제일 먼저 건너온 곳이 준석의 현관이었다⁠. 손에 주황 뚜껑 통을 들고 있었다⁠. 추석 날 받은 토란국 통 안에 도라지무침이 들어 있었다⁠.

“⁠빈 그릇 그냥 돌려주면 안 된다면서요⁠.⁠”

“⁠어떻게 아셨어요⁠?⁠”

“⁠맞은편이잖아요⁠.⁠”

인사과장 사모는 현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턱에 서서 목소리를 낮췄다⁠.

“⁠두 가지만 알려 드릴게요⁠. 하나⁠, 육군본부에서 대령 진급 심사 일정이 내려왔어요⁠. 결과 발표가 11월 26일이에요⁠. 둘⁠, 사단장 사모님이 올해 우리 관사 김장 대회에 오시는 거 확정이에요⁠. 우리 사모님이 사단에 몇 번을 전화하셨는지 몰라요⁠.⁠”

“⁠26일이 김장 날이에요⁠?⁠”

“⁠김장은 넷째 주 토요일이었는데⁠, 우리 사모님이 날짜를 만지고 계세요⁠. 사단장 사모님 일정에 맞춘다고⁠.⁠”

인사과장 사모는 돌아서기 전에 준석의 신발장 위를 보았다⁠. 주황 뚜껑 통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연대장이 아침 일찍 문고리에 걸어 두고 간 빈 통이었다⁠.

“⁠저 통은 누구 거예요⁠?⁠”

“⁠경비 아저씨요⁠.⁠”

인사과장 사모는 웃지 않았다⁠. 다만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들은 것을 다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

혜옥이 알아챈 것은 일주일 뒤였다⁠. 연대장의 트레이닝복을 빨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주황 뚜껑 하나를 찾았다⁠. 연대장이 통을 돌려주러 오다가 뚜껑만 주머니에 넣고 잊은 것이었다⁠.

뚜껑이 나온 날 오후 두 시⁠, 준석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연대장 관사로 잠깐 와 주세요⁠. 엘리베이터 타고요⁠. 권혜옥⁠.⁠」

연대장 관사 부엌은 준석의 부엌보다 두 배 넓었다⁠. 김치냉장고가 넷⁠, 베란다에 장독이 열여섯 개⁠, 조리대 위에 고무 함지박이 세 개 포개져 있었다⁠. 벽에 붙은 선반에는 서른 해 동안 옮겨 다닌 관사 이름이 적힌 기념 접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화천⁠, 양구⁠, 인제⁠, 철원⁠, 그리고 연천⁠. 접시마다 김장한 날짜가 금색으로 박혀 있었다⁠.

혜옥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식탁 가운데에 주황 뚜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앉으세요⁠.⁠”

준석은 앉았다⁠. 혜옥은 차를 내오지 않았다⁠.

“⁠우리 집 사람한테 밤마다 뭘 먹였어요⁠?⁠”

“⁠죽이요⁠.⁠”

“⁠무슨 죽이요⁠?⁠”

“⁠흰죽⁠, 호박죽⁠, 들깨죽⁠. 오늘은 전복 내장 빼고 전복죽 쑤려고 했어요⁠.⁠”

혜옥의 손이 주황 뚜껑 위에 얹혔다⁠. 뚜껑을 쥐지는 않았다⁠. 손바닥으로 덮었다⁠.

“⁠위가 반밖에 없는 사람이 먹는 죽이네요⁠.⁠”

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혜옥이 웃었다⁠. 끝을 끌지 않는 웃음이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4월에 이천 갔다 와서 집 사람 배에 붕대 감긴 걸 봤어요⁠.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나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 사람이 말 안 하면 나도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서른 해를 그렇게 살았어요⁠.⁠”

“⁠그럼 왜 날마다 고기를 구우세요⁠? 김치 찌개를 끓이고⁠.⁠”

“⁠환자 밥을 차리면 환자가 돼요⁠.⁠”

혜옥이 뚜껑에서 손을 뗐다⁠.

“⁠관사는 눈이에요⁠, 준석 씨⁠. 우리 집 부엌에서 죽 냄새가 나면 그날로 사단까지 가요⁠. 연대장 사모가 죽을 쑨다⁠, 연대장이 아프다⁠. 장군 심사는 그런 말 한 줄로 끝나요⁠. 내가 고기 굽는 냄새를 날마다 복도에 풀어야 우리 집 사람이 장군이 돼요⁠. 그 사람이 화장실에서 속 불편해하는 소리는 내가 물 틀어서 덮어요⁠.⁠”

부엌 창밖으로 포 사격 소리가 두 번 울렸다⁠. 장독 뚜껑들이 조금씩 떨렸다⁠. 혜옥은 포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거래해요⁠. 오늘부터 우리 집 사람한테 아무것도 주지 마세요⁠. 우리 집 사람이 가도 문 열지 마세요⁠. 들은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시고⁠. 그러면 김장 대회⁠, 끝님 씨 조원으로 나오셔도 돼요⁠. 내가 임원회에서 그렇게 할게요⁠.⁠”

준석은 식탁 위의 주황 뚜껑을 보았다⁠. 혜옥이 남편의 주머니에서 꺼낸 뚜껑이었다⁠. 이 거래를 받으면 연대장은 다시 고기를 먹고 화장실로 갈 것이었다⁠. 거래를 받지 않으면 혜옥은 다른 수를 둘 것이었고⁠, 혜옥의 다음 수는 다슬의 진급 위로 떨어질 것이었다⁠. 준석이 쥔 것은 남의 남편 위장이었다⁠. 쥔 것을 내놓으면 아내의 계급장이 안전해졌다⁠.

준석은 다 따져 보고 나서야 자기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이기고 싶었다⁠. 혜옥을⁠, 서른 해 김장을⁠, 기념 접시 다섯 개를⁠.

“⁠하나 더요⁠.⁠”

혜옥이 눈썹을 올렸다⁠.

“⁠쉼터 부엌 열쇠요⁠. 수요일 하루만⁠. 관사에 혼자 있는 집들 반찬 해 드리게요⁠. 문고리에 거는 거 말고⁠, 쉼터에 모여서요⁠. 사모님 말씀대로⁠.⁠”

혜옥은 오래 준석을 보았다⁠. 그러고는 일어나 부엌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 열쇠 꾸러미가 있었다⁠. 혜옥은 꾸러미에서 놋쇠 열쇠 하나를 빼냈다⁠. 열쇠 고리에 「⁠쉼터⁠」라고 적힌 작은 나무패가 달려 있었다⁠.

혜옥이 열쇠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주황 뚜껑 옆이었다⁠. 손가락이 열쇠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준석 씨⁠. 이걸 가져가면⁠, 준석 씨는 우리 집 사람을 버리는 거예요⁠. 알고 가져가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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