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58자)

중위의 밥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윤 중위⁠, 지금 몇 시야⁠?⁠”

다슬은 계단참에서 한 칸도 더 올라오지 않았다⁠. 복도 형광등 아래에서 다슬의 중령 계급장이 무디게 빛났다⁠. 윤 중위의 턱 아래 철모 끈 자국이 더 붉어졌다⁠.

“⁠스물세 시 십이 분입니다⁠.⁠”

“⁠포대장한테 내일 아침 일곱 시까지 대대장실로 오라고 전해⁠. 같이⁠.⁠”

윤 중위가 경례를 붙이려고 보온병을 왼손으로 옮겼다⁠. 손이 올라가기 전에 준석이 끼어들었다⁠.

“⁠여보⁠. 들어와서 밥 먹어⁠. 윤 중위님도요⁠.⁠”

다슬이 준석을 보았다⁠. 집에서 남편을 볼 때 쓰는 눈이 아니었다⁠. 대대 연병장에서 늦게 뛰어오는 병사를 볼 때의 눈이었다⁠.

“⁠이건 부대 일이야⁠.⁠”

“⁠아니야⁠. 이건 관사 일이야⁠. 반찬 얘기잖아⁠. 반찬은 내 일이고⁠.⁠”

맞은편 집 현관 안쪽에서 또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다슬이 맞은편 문을 한 번 보았다⁠. 계급장을 단 사람이 복도에서 남편과 다투면 이 대화가 아침 단톡방에 올라간다는 것을 다슬은 알았다⁠. 다슬은 숨을 한 번 내쉬고 마지막 계단을 올라왔다⁠.

“⁠윤 중위⁠. 들어와⁠. 대대장 명령이야⁠. 밥 먹어⁠.⁠”

*

준석은 식탁에 냄비 셋을 올렸다⁠. 하나는 윤 중위가 들고 온 보온병의 된장국을 데운 것이었다⁠. 끝님이 남편에게 데워 주겠다며 담아 간 국이었는데⁠, 윤 중위는 뚜껑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열지 않은 채로 들고 와서 돌려주려 했다⁠. 나머지 둘은 잡채 계란말이와 무생채였다⁠.

윤 중위는 처음에 의자 끝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앉았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다슬을 보았고⁠, 다슬이 먼저 국을 떠먹자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다⁠. 첫술을 넘기고 나서 윤 중위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두 번째 술부터는 숟가락이 쉬지 않았다⁠. 밥 한 공기가 사라지는 데 삼 분이 안 걸렸다⁠.

“⁠더 드릴게요⁠.⁠”

준석이 밥을 푸는 동안 윤 중위는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안에 들어간 게 잡채입니까⁠?⁠”

“⁠잡채예요⁠. 마흔일곱 통이 돌아와서요⁠. 버릴 수가 없어서⁠.⁠”

윤 중위는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씹다가 웃음이 터질 뻔해서 입을 손등으로 막았다⁠. 다슬이 처음으로 웃었다⁠. 관사에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보는 아내의 웃음이었다⁠.

두 공기째 밥을 비우고 나서 윤 중위가 말했다⁠.

“⁠일주일 동안 훈련장에서 전투식량만 먹었습니다⁠. 집에 오면 라면입니다⁠. 집사람이 요리를 못 해서요⁠.⁠”

“⁠이제 해요⁠. 밥은 할 줄 알아요⁠. 손등으로 물 재서⁠.⁠”

윤 중위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포대장님이 오늘 그러셨습니다⁠. 연대장님 사모님이 걱정을 하신다고⁠. 중위 집사람이 대대장 댁에 드나드는 게 보기에 좋지 않다고⁠. 사모님 걱정은 연대장님 걱정이고⁠, 연대장님 걱정은 포대 평가라고⁠.⁠”

다슬이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연대장님 요즘 어떠셔⁠?⁠”

다슬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윤 중위는 잠깐 머뭇거렸다⁠.

“⁠점심을 안 드십니다⁠. 간부식당에 오셔서 식판만 받고 국만 조금 뜨시다가 그대로 내놓으십니다⁠. 조리병들이 연대장님 식판은 따로 버립니다⁠. 거의 그대로라서요⁠.⁠”

준석은 다슬의 얼굴을 보았다⁠. 다슬은 윤 중위의 빈 그릇에 무생채를 덜어 주며 다른 말을 했다⁠.

“⁠윤 중위⁠. 포대장한테는 내가 얘기할게⁠. 집사람이 대대장 남편한테 밥 배우는 걸로 평가 깎는 포대장이면 그 포대장 평가를 내가 깎아⁠.⁠”

윤 중위가 일어나 경례를 했다⁠. 이번에는 손이 갈 곳을 찾았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윤 중위는 보온병을 다시 챙겼다⁠. 빈 보온병이 아니었다⁠. 준석이 남은 된장국을 데워 채워 넣었다⁠. 주황 뚜껑 통에 잡채 계란말이 다섯 개를 담아 보온병 옆에 끼워 주었다⁠.

“⁠빈 그릇은 그냥 돌려주지 마세요⁠. 끝님 씨가 뭐라도 담아 올 거예요⁠.⁠”

“⁠집사람이 담으면 맛이 없을 텐데요⁠.⁠”

“⁠그래도 담아 오세요⁠.⁠”

*

다슬은 샤워를 하고 나와서 준석이 행주에 엎어 둔 통들을 세었다⁠. 마흔여섯 개였다⁠.

“⁠둘이 나갔네⁠.⁠”

“⁠끝님 씨네 하나⁠, 윤 중위 하나⁠. 같은 집이니까 한 집⁠.⁠”

“⁠연대장님 얘기는 듣지 마⁠. 들은 것도 잊어⁠.⁠”

다슬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그렇게 말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준석은 아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다 알지는 못했다⁠. 다만 아내가 잊으라고 한 것은 대개 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

이튿날 아침 여덟 시⁠, 준석이 분리수거장에서 상자를 접고 있을 때 정보과장 사모가 다가왔다⁠. 환영회 때 탁자 밑에서 준석의 무릎을 두 번 친 사람이었다⁠. 마흔 중반이었고⁠, 눈 밑이 거뭇했다⁠. 손에 든 봉지에서 맥주 캔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정보과장 사모는 캔을 하나씩 수거함에 넣으며 준석을 보지 않고 말했다⁠.

“⁠무릎 아프셨죠⁠.⁠”

“⁠두 번째가 좀 셌어요⁠.⁠”

“⁠세게 쳐야 가만히 계실 것 같아서요⁠.⁠”

정보과장 사모는 마지막 캔을 넣고 빈 봉지를 접었다⁠. 접은 봉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통 하나만 주실 수 있어요⁠? 비어 있는 거 말고⁠. 남편이 매일 연대장님 회식 가요⁠. 아침마다 속이 불편해해요⁠. 해장국 같은 거⁠.⁠”

“⁠콩나물국 괜찮으세요⁠?⁠”

“⁠빨간 거 말고 하얀 거요⁠. 빨간 거 끓이면 냄새가 복도로 나가요⁠. 그럼 다 알아요⁠.⁠”

준석은 열 시에 하얀 콩나물국을 끓였다⁠. 마늘을 빼고⁠, 새우젓으로만 간을 하고⁠, 대파는 흰 부분만 넣었다⁠. 냄새가 덜 나는 국이었다⁠. 통에 담아 쇼핑백에 넣고⁠, 쇼핑백을 정보과장 집 현관 손잡이에 걸었다⁠. 초인종은 누르지 않았다⁠. 한 시간 뒤 현관 손잡이를 다시 보았을 때 쇼핑백이 없었다⁠.

국이 끓는 동안 관리관이 102동 복도를 지나갔다⁠. 준석은 현관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았다⁠. 관리관은 엘리베이터 앞 종이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지난번처럼 허리를 굽혀 코를 바닥 가까이 댔다⁠. 두 번 들이쉬고 세 번째에 오래 들이쉬었다⁠. 허리를 펴고 나서 관리관은 준석의 현관 쪽을 보았다⁠.

“⁠무슨 국입니까⁠?⁠”

“⁠콩나물국이요⁠. 하얀 거⁠.⁠”

“⁠냄새가 안 납니다⁠.⁠”

관리관은 냄새가 안 나는 게 아쉽다는 듯 입맛을 한 번 다시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준석은 국자를 든 채 현관문을 닫았다⁠. 다음에는 한 그릇 더 끓여서 관리관 사무실에도 걸어 둘 생각이었다⁠.

관사촌 냉장고에 들어간 주황 뚜껑이 두 집이 되었다⁠.

*

오후 두 시⁠, 초인종이 울렸다⁠. 준석은 끝님인 줄 알고 문을 열었다⁠. 혜옥이 서 있었다⁠. 회색 카디건 대신 남색 원피스를 입고⁠, 손에 작은 유리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지나가다 들렀어요⁠. 들어가도 될까요⁠?⁠”

지나가는 길이 아니었다⁠. 101동 꼭대기 층에서 102동 사 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타야 했다⁠. 준석은 앞치마를 고쳐 매고 옆으로 비켜섰다⁠.

혜옥은 현관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았다⁠. 거실을 지나 부엌까지 걸어가는 동안 눈이 쉬지 않았다⁠. 식료품 창고로 만든 방문이 열려 있었다⁠. 선반에 장독 여섯 개와 젓갈 병 열두 개⁠, 마른 고추 포대가 놓여 있었다⁠. 혜옥이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게 다 서울에서 가져오신 거예요⁠?⁠”

“⁠젓갈은 강경에서 받아요⁠. 고춧가루는 영양이고요⁠.⁠”

혜옥은 젓갈 병 하나를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병 안에서 새우가 분홍빛으로 떠 있었다⁠. 혜옥의 얼굴에 잠깐 무언가가 지나갔다⁠. 싸우러 온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같은 일을 오래 한 사람이 남의 연장을 볼 때의 얼굴이었다⁠. 병을 내려놓을 때는 얼굴이 사라져 있었다⁠.

혜옥은 식탁에 앉아 가져온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병 안에 묵은지 한 쪽이 들어 있었다⁠.

“⁠우리 집 거예요⁠. 작년 거⁠.⁠”

준석은 젓가락을 두 벌 놓고⁠, 냉장고에서 깍두기 통을 꺼냈다⁠. 끝님에게 보여 주려고 어제 다시 담근 깍두기였다⁠. 둘은 서로의 김치를 맛보았다⁠. 말이 없었다⁠.

혜옥의 묵은지는 시었는데 끝이 달았다⁠. 단맛이 설탕이 아니라 배추 속에서 올라왔다⁠. 한 해를 묵어도 무르지 않았고⁠, 씹을 때마다 갓 냄새가 났다⁠. 준석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말했다⁠.

“⁠맛있어요⁠.⁠”

혜옥은 깍두기 하나를 오래 씹었다⁠. 씹다가 삼키지 않고 멈췄다⁠.

“⁠설탕 넣으셨네요⁠.⁠”

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매실청 숟가락에 설탕을 반 숟가락 보탠 것은 끝님도 다슬도 몰랐다⁠. 학원 수강생들도 열두 해 동안 아무도 몰랐다⁠.

“⁠학원 김치는 다 그래요⁠. 처음 먹는 사람 입에 맞추니까⁠. 관사 김치는 처음 먹는 사람 김치가 아니에요⁠. 사 년⁠, 오 년 같이 사는 사람 김치예요⁠.⁠”

혜옥은 깍두기를 마저 삼키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눌렀다⁠.

“⁠준석 씨⁠. 끝님 씨 가르치시는 거 좋은 일이에요⁠. 다만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어요⁠. 윤 중위 겨울에 진급이고⁠, 문 중령님도 진급이고⁠. 나는 서른 해 동안 관사에서 이런 소문 하나로 진급이 날아가는 걸 세 번 봤어요⁠.⁠”

“⁠세 번 다 누가 퍼뜨렸는데요⁠?⁠”

혜옥은 대답 대신 웃었다⁠. 끝을 길게 끌었다⁠.

“⁠김장 대회는 사모회 회원만 나가요⁠. 회원은 부인들이고요⁠. 그게 우리 규칙이에요⁠. 준석 씨가 김치를 잘 담그시는 건 아는데⁠, 김장은 김치 솜씨로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으로 하는 거예요⁠.⁠”

혜옥이 일어섰다⁠. 유리병은 두고 갔다⁠.

*

사흘 뒤 쉼터에서 사모회 임원회가 열렸다⁠. 혜옥과 부연대장 사모⁠, 1대대장 사모⁠, 각 동 반장 넷이 모이는 자리였다⁠. 준석은 임원이 아니었으므로 쉼터 문밖 복도에 있었다⁠. 끝님이 불러냈다⁠. 끝님은 이 회의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사모님한테 말할 거예예⁠. 김장 조에 저 다시 넣어 달라고⁠. 조원으로 사부님 넣겠다고⁠.⁠”

“⁠사부님은 누가 정했어요⁠?⁠”

“⁠투표 바뀌었어예⁠. 사부님 스물둘⁠. 사모님 열여섯⁠.⁠”

끝님은 산들을 준석의 품에 안기고 쉼터 문을 밀었다⁠. 문이 반쯤 열린 채로 멈췄다⁠.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그쳤다⁠. 준석은 산들을 안은 채 문틈으로 안을 보았다⁠. 디귿 자 탁자의 가운데에 혜옥이 앉아 있었고⁠, 끝님은 탁자 끝에 선 채로 숨을 들이쉬었다⁠.

“⁠사모님⁠. 저 올해 김장 할라꼬예⁠. 104동 조에 넣어 주이소⁠. 그라고 제 조원으로 102동 2대대장님 댁 남편분 넣을 낍니더⁠. 조원은 회원 아니라도 된다꼬 작년에 사모님이 그러셨어예⁠. 친정 엄마 데려와서 한 집도 있었잖아예⁠.⁠”

임원들이 서로를 보았다⁠. 작년 일은 사실이었다⁠. 1대대장 사모가 무언가 말하려 하자 혜옥이 손을 들어 막았다⁠. 혜옥은 끝님을 다정하게 올려다보았다⁠.

“⁠끝님 씨⁠, 앉아요⁠. 다리 아프잖아요⁠.⁠”

“⁠괜찮아예⁠.⁠”

“⁠그럼 서서 들어요⁠. 끝님 씨가 회비 석 달 못 낸 거⁠, 내가 지난주에 대신 넣었어요⁠. 김장 회비 작년 거 돌 반지 팔아서 낸 것도 알고⁠. 청도 친정 감 농사가 냉해로 다 얼어서 다달이 윤 중위 월급 절반을 부치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올해는 쉬라고 한 거예요⁠. 다 산들이 엄마 생각해서⁠.⁠”

쉼터가 조용해졌다⁠. 반장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끝님의 어깨가 떨렸다⁠. 문틈으로 끝님의 어깨를 보던 준석의 품에서 산들이 엄마 쪽으로 팔을 뻗었다⁠.

혜옥은 손가방을 열었다⁠.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끝님 앞으로 밀었다⁠.

“⁠이건 올해 김장 회비예요⁠. 십오만 원⁠. 내가 끝님 씨 이름으로 낼게요⁠. 대신 끝님 씨는 올해 쉬어요⁠. 조원 얘기도 없던 걸로 하고⁠.⁠”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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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가자리2026.10.31· 3화

    집에서 남편 보는 눈이 아니었다는 문장에서 다슬이 확 보였어요. 둘이 싸우는 건가요?

    • 탁기원작가2026.10.31

      싸운다기보다 서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밥상 위에서 결판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