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05자)

복도 조리 금지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끝님은 통을 가슴께로 끌어안았다⁠. 팔에 안긴 아기 산들이 엄마 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2대대장님 댁에 돌려드리러 가는 길이라예⁠.⁠”

“⁠단톡방 못 봤어요⁠? 관사에서 음식 안 돌리기로 한 거⁠.⁠”

“⁠산들이 아빠가 훈련장이라 폰 볼 시간이 없었어예⁠.⁠”

끝님의 휴대전화가 하필 바지 주머니에서 울렸다⁠. 단톡방 알림음이었다⁠. 셋이 함께 알림음을 들었다⁠. 혜옥은 끝님의 주머니를 한 번 보고 웃었다⁠.

“⁠바쁘면 그럴 수 있죠⁠. 산들이 감기 조심시키고요⁠.⁠”

혜옥은 장바구니를 고쳐 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준석과 끝님 사이를 지날 때 카디건 자락이 준석의 팔을 스쳤다⁠. 마늘 냄새 끝에 생강이 섞여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무언가를 담근 손이었다⁠.

현관 밖으로 혜옥이 사라지자 끝님이 숨을 내쉬었다⁠.

“⁠저 이제 큰일 났지예⁠?⁠”

“⁠깍두기 먼저 먹어 볼게요⁠.⁠”

준석은 통을 받아 들고 엄지만 한 깍두기 하나를 집어 먹었다⁠. 무가 덜 절어 아삭하다 못해 딱딱했고⁠, 고춧가루는 쓴맛이 났다⁠. 설탕 대신 매실청을 넣은 모양인데⁠, 넣은 양이 국자 단위였다⁠.

“⁠맛없지예⁠?⁠”

“⁠무를 소금에 한 시간만 더 재우면 돼요⁠. 그리고 매실청은 숟가락으로⁠.⁠”

“⁠국자 아이고예⁠?⁠”

“⁠숟가락이요⁠.⁠”

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매실 숟가락⁠」이라고 메모장에 적었다⁠. 메모장에는 「⁠미역 불리기 = 물⁠」 「⁠계란 = 껍질 깨고⁠」 같은 줄이 위로 줄줄이 있었다⁠.

*

점심때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준석은 단톡방에 없었으므로 끝님이 화면을 캡처해 보내 주었다⁠.

「⁠11월 김장 대회 조 편성 안내⁠. 1조 101동⁠, 2조 102동⁠, 3조 103동⁠, 4조 104동⁠. 104동 오끝님 사모는 산들이가 어려 올해는 쉬시도록 했습니다⁠.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님은 캡처 아래에 우는 얼굴 이모티콘 하나를 붙였다⁠. 준석은 답장을 쓰다 지우고 다시 썼다⁠. 「⁠깍두기 무⁠, 소금 한 시간⁠.⁠」 끝님에게서 바로 답이 왔다⁠. 「⁠넹 ㅠ⁠」

오후 세 시에는 관리관 상사가 102동 엘리베이터 앞에 종이를 붙였다⁠. 관사 시설을 맡는 부사관이었고⁠, 쉰 줄에 접어들었는데 걸음걸이가 훈련병처럼 꼿꼿했다⁠. 준석이 장바구니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관리관은 종이 네 귀퉁이를 테이프로 눌렀다⁠.

「⁠공용 복도 조리 냄새 자제 바랍니다⁠. 관사 생활 질서 유지 협조⁠. 관리관⁠.⁠」

“⁠이거 저 때문이에요⁠?⁠”

관리관은 대답하지 않고 테이프를 한 번 더 눌렀다⁠. 준석은 장바구니에서 된장 통을 꺼내 들어 보였다⁠.

“⁠관리관님⁠, 된장찌개는 냄새입니까⁠, 음식입니까⁠?⁠”

관리관이 처음으로 준석을 보더니 몸을 숙여 102동 복도 바닥 가까이에 코를 대고 두 번 들이쉬었다⁠. 꼿꼿하던 허리가 냄새를 맡는 동안만 굽었다⁠.

“⁠아직은 아무 냄새도 안 납니다⁠.⁠”

“⁠제가 된장을 끓이면요⁠?⁠”

“⁠끓이시면 나겠지요⁠.⁠”

“⁠그럼 언제부터 위반이에요⁠?⁠”

관리관은 허리를 펴고 한참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연대장 사모님 댁에서 김치 담그실 때는 저 위층에서 여기까지 마늘 냄새가 내려옵니다⁠.⁠”

관리관은 이 말만 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준석은 붙은 종이를 다시 읽었다⁠. 「⁠자제 바랍니다⁠」의 「⁠자제⁠」가 굵은 글씨였다⁠.

*

이튿날부터 끝님은 오전 열한 시마다 산들을 업고 102동으로 올라왔다⁠. 준석의 부엌은 학원 조리대만 했다⁠. 이사 때 다슬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도 부엌 크기였다⁠. 대대장 관사는 방이 셋이었고⁠, 준석은 그중 하나를 식료품 창고로 만들었다⁠.

첫날은 밥을 지었다⁠. 끝님은 쌀을 씻어 본 적이 없었다⁠.

“⁠밥솥이 다 해 주는 거 아이라예⁠?⁠”

“⁠쌀은 씻어서 넣어야 돼요⁠.⁠”

“⁠세제로예⁠?⁠”

준석은 끝님의 손에서 퐁퐁 통을 빼앗았다⁠. 산들이 포대기 안에서 박수를 쳤다⁠. 쌀을 세 번 헹구는 동안 준석은 손등으로 물 높이를 재는 법을 보여 주었다⁠. 쌀 위에 손바닥을 펴서 대고⁠, 물이 손등 첫 마디에 닿으면 된다⁠. 끝님은 손을 넣었다 뺐다를 다섯 번 했다⁠. 손이 작아 첫 마디가 낮았다⁠. 준석은 끝님의 손에 맞춰 물을 조금 덜었다⁠.

“⁠사람마다 손이 다르니까 물도 달라요⁠. 끝님 씨 밥은 끝님 씨 손으로 재는 거예요⁠.⁠”

끝님은 메모장에 적었다⁠. 「⁠밥물 = 내 손⁠.⁠」

사흘째에 계란말이를 했다⁠. 나흘째에 된장국을 끓였다⁠. 된장을 풀 때 준석은 현관문을 꼭 닫고 환풍기를 세게 틀었다⁠. 끝님은 국을 맛보더니 국자를 든 채로 울었다⁠. 짜서 운 것은 아니었다⁠.

“⁠저희 엄마가 이래 끓였어예⁠. 청도에서⁠.⁠”

끝님은 국자를 내려놓지 않고 말을 이었다⁠. 친정은 청도에서 감 농사를 지었고⁠, 이 년 전 냉해에 감이 다 얼었다⁠. 대출 이자가 밀렸고⁠, 끝님은 남편 월급의 절반을 다달이 친정에 부쳤다⁠. 사모회 회비는 한 달에 삼만 원이었다⁠. 끝님은 석 달째 못 냈다⁠.

“⁠그래서 김장 조에서 뺀 거라예⁠. 산들이 핑계지예⁠.⁠”

준석은 된장국을 국그릇에 떠서 끝님 앞에 놓았다⁠. 끝님은 국을 다 먹고 남은 국물을 보온병에 담아 갔다⁠. 남편이 오면 데워 주겠다고 했다⁠. 끝님의 냉장고에는 주황 뚜껑 통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관사촌에서 준석의 통이 들어간 냉장고는 끝님네 하나뿐이었다⁠.

*

9일은 전곡 오일장 날이었다⁠. 준석은 끝님과 산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전곡읍으로 내려갔다⁠. 장은 역 앞 골목을 따라 길게 펼쳐졌다⁠. 가을무가 수레째 쌓여 있었고⁠, 고추 말리는 멍석 위로 잠자리가 낮게 날았다⁠. 끝님은 산들의 유모차를 밀며 뻥튀기 장수 앞에서 세 번 멈췄다⁠.

반찬가게는 시장 끝 모퉁이에 있었다⁠. 예순 줄의 여자 사장이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끼고 열무를 다듬고 있었다⁠. 준석은 가게 앞에 놓인 깻잎장아찌를 하나 맛보고 바로 한 통을 샀다⁠. 간장이 덜 달고 들깨 향이 났다⁠. 사장은 준석의 앞치마를 보고 웃었다⁠.

“⁠학원 선생님이네⁠. 이 동네에 그런 앞치마 처음 봐요⁠.⁠”

“⁠백로관사로 이사 왔어요⁠.⁠”

사장이 열무 다듬던 손을 멈췄다⁠.

“⁠백로관사면 연대장 사모님 계신 데 아니에요⁠? 김장 이백 포기 하시는⁠.⁠”

“⁠이백 포기요⁠?⁠”

“⁠해마다 해요⁠. 배추는 우리 시장에서 안 사 가시고⁠.⁠”

사장은 칼등으로 열무 뿌리 흙을 털며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에서 듣는 사람은 끝님과 산들뿐이었다⁠.

“⁠포천에 사모님 남동생이 절임배추 공장을 해요⁠. 거기서 들어가요⁠. 한 상자 이만 팔천 원⁠. 우리 시장에서 같은 거 만사천 원이면 사요⁠. 관사 사모님들이 회비를 따로 걷는다던데⁠.⁠”

끝님이 유모차 손잡이를 꽉 쥐었다⁠. 준석은 깻잎장아찌 통을 받으며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나도 처음엔 거기 대 볼라고 갔었거든요⁠. 가격 들고⁠. 사모님이 웃으면서 그러시대요⁠. 관사 김장은 맛이 정해져 있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끝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산들은 뻥튀기 한 장을 두 손으로 쥐고 잠들어 있었다⁠. 신호에 걸렸을 때 끝님이 입을 열었다⁠.

“⁠회비 삼만 원 말고 김장 회비가 따로 있어예⁠. 한 집에 십오만 원⁠. 저는 작년에 그거 낼라고 산들이 돌 반지 팔았어예⁠.⁠”

“⁠김치는 받았어요⁠?⁠”

“⁠한 통 받았어예⁠. 맛있었어예⁠. 그게 더 분해예⁠.⁠”

준석은 대답하지 않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백미러 속에서 끝님이 산들의 손에서 뻥튀기를 살살 빼내 제 입에 넣었다⁠. 아기 손에 남은 부스러기까지 털어 먹고 나서야 끝님이 웃었다⁠.

“⁠이건 회비 안 내도 되지예⁠?⁠”

*

관사로 돌아오니 오후 세 시였다⁠. 놀이터 앞 벤치에 부인 넷이 앉아 있었다⁠. 정보과장 사모는 없었다⁠. 가운데 앉은 사람이 1대대장 사모였다⁠. 마흔다섯쯤이었고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올려 쓰고 있었다⁠. 환영회 때 떡을 돌리던 손이었다⁠.

준석이 트렁크에서 장바구니를 내리는 동안 1대대장 사모가 일어나 다가왔다⁠. 끝님은 유모차 손잡이를 쥔 채 준석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어머⁠, 두 분 시장 다녀오셨어요⁠? 같이⁠?⁠”

“⁠네⁠. 오일장이라서요⁠.⁠”

“⁠사흘째 같이 다니시던데요⁠. 다들 봤어요⁠. 오전에는 끝님 씨가 대대장님 댁에 올라가고⁠.⁠”

1대대장 사모는 웃으며 말했다⁠. 벤치에 앉은 세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웃음을 참는 모양이 웃는 모양보다 컸다⁠.

“⁠밥 가르쳐 드리고 있어요⁠. 쌀 씻는 거부터⁠.⁠”

“⁠그러니까요⁠. 쌀은 남편이 가르쳐야죠⁠. 남의 남편 말고⁠.⁠”

끝님의 얼굴이 귀까지 붉어졌다⁠. 준석은 장바구니에서 깻잎장아찌 통을 꺼내 1대대장 사모 앞에 내밀었다⁠.

“⁠드셔 보실래요⁠? 시장 반찬가게 거예요⁠. 간장이 덜 달아요⁠. 관사 김장은 이만 팔천 원짜리 배추로 한다던데⁠, 이건 한 통에 육천 원이에요⁠.⁠”

1대대장 사모의 웃음이 얼굴에서 멈췄다⁠. 통을 받지 않았다⁠.

“⁠우리 사모님 걱정 많이 하세요⁠. 대대장님 사모님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관사가 어수선하다고⁠. 문 중령님 진급도 앞두셨는데⁠.⁠”

1대대장 사모는 마지막 말을 끝님에게 했다⁠. 끝님의 남편은 중위였다⁠. 중위 아내가 대대장 남편과 사흘 장을 보러 다녔다는 말은 관사촌을 한 바퀴 도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101동 꼭대기 층 창가에 커튼이 반쯤 걷혀 있었다⁠. 준석이 고개를 들었을 때 커튼이 천천히 닫혔다⁠.

*

9일 밤 준석은 혼자 저녁을 먹었다⁠. 다슬은 대대에서 연대장 주관 회의가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왔다⁠. 군 간부 배우자 가운데 남편의 비율이 해마다 는다는 기사였다⁠. 기자는 남자 배우자들이 관사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화면에 나온 남자는 얼굴을 흐리게 가리고 있었는데 손에 행주를 들고 있었다⁠.

준석은 텔레비전을 끄고 통을 셌다⁠. 씻어서 엎어 둔 주황 뚜껑 마흔일곱 개가 행주 위에 줄지어 있었다⁠. 끝님네 냉장고에 들어간 하나까지 마흔여덟⁠.

밤 열한 시⁠, 초인종이 울렸다⁠. 다슬이면 비밀번호를 눌렀을 것이었다⁠. 준석은 앞치마를 맨 채 문을 열었다⁠.

복도에 군복 입은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전투복 바지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철모 끈 자국이 턱에 붉게 남아 있었다⁠. 손에 보온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끝님이 된장국을 담아 간 보온병이었다⁠.

“⁠포대 관측장교 중위 윤입니다⁠. 오끝님 남편입니다⁠.⁠”

윤 중위는 경례를 하려다 말았다⁠. 상대가 군인이 아니라는 걸 반 박자 늦게 알아챈 손이었다⁠. 손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고 보온병을 쥔 손 위로 내려갔다⁠.

“⁠대대장님 댁에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내한테 반찬 그만 주십시오⁠. 집사람 데리고 장 보러 다니시는 것도 그만해 주십시오⁠.⁠”

“⁠윤 중위님⁠, 저녁은 드셨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윤 중위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맞은편 집 현관 안쪽에서 무언가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문에 귀를 대고 있었다⁠.

“⁠오늘 포대장님이 부르셨습니다⁠. 관사 일로 말이 나왔다고⁠. 연대장님 사모님 귀에까지 들어갔다고⁠. 저는 이번 겨울에 대위 진급입니다⁠, 대대장님 댁⁠.⁠”

윤 중위가 보온병을 내밀었다⁠. 준석은 받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군화 소리가 올라왔다⁠. 일정한 박자였고⁠, 한 층마다 한 번씩 멈췄다가 다시 올라왔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대대장의 걸음이었다⁠.

윤 중위의 어깨가 굳었다⁠. 군화 소리가 계단참에서 멈췄다⁠.

“⁠윤 중위⁠.⁠”

다슬의 목소리였다⁠. 낮고 짧은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건너왔다⁠. 윤 중위가 보온병을 쥔 채로 뒤를 돌아 차렷 자세를 잡았다⁠. 준석은 아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계급장이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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