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202자)
주황 뚜껑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이삿짐 트럭이 백로관사 102동 앞에 멈췄을 때, 하준석은 조수석에서 앞치마부터 맸다. 짐 옮기는 아저씨들이 서로 눈을 맞췄다. 앞치마는 진한 남색이었고 가슴께에 「마포 한식 요리 학원」이라고 흰 실로 수가 놓여 있었다.
“짐보다 밥이 먼저예요. 다들 점심 안 드셨죠?”
준석은 트럭 짐칸에서 아이스박스 두 개를 끌어 내렸다. 안에는 새벽 네 시에 마포 원룸에서 볶아 온 잡채와 전날 밤 절여 담근 오이소박이, 그리고 주황 뚜껑이 달린 유리 반찬통 마흔여덟 개가 겹겹이 들어 있었다. 학원 한식 반에서 열두 해 동안 쓰던 통이었다. 학원을 그만둘 때 원장은 통을 가져가라고 했다. 가져가라는 말이 다른 것도 다 가져가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준석은 통만 챙겼다.
연천의 9월은 서울보다 한 걸음 빨랐다. 해는 아직 따가운데 그늘에 들어서면 팔뚝에 소름이 돋았고, 바람에는 들깨 베는 밭 냄새가 섞여 있었다. 멀리서 둔한 소리가 두 번 울렸다. 짐 아저씨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천둥인가?”
“포 쏘는 소리래요. 아내 부대요.”
준석은 대답하면서 잡채를 통에 나눠 담았다. 한 통에 두 주먹, 위에 지단 채 한 꼬집, 옆에 오이소박이 두 개. 마흔여덟 번 같은 손놀림이 이어졌다. 백로관사는 네 동에 마흔여덟 세대였다. 이사 오기 전에 아내 문다슬이 관사 배치도를 문자로 보내 주었고, 준석은 마흔여덟이라는 숫자에 맞춰 통을 챙겼다.
다슬은 이삿날에도 오지 못했다. 백로연대 2대대장으로 부임한 지 사흘째였고, 오늘 밤에는 대대 야간 사격이 잡혀 있었다. 아침에 온 문자는 짧았다.
「셰프. 이사 인사는 연대장 관사부터. 순서 지켜. 101동 꼭대기.」
*
101동 꼭대기 층 복도는 다른 층보다 넓었다. 현관문 앞에는 국화 화분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신발장 위에는 먼지 하나 없는 놋그릇에 사탕이 담겨 있었다. 준석은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앞치마를 한 번 털었다.
문을 연 사람은 쉰을 갓 넘긴 여자였다. 단발머리가 귀밑에서 반듯하게 잘려 있었고, 연한 회색 카디건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고 있었다. 손끝에서 마늘 냄새가 났다. 막 김치를 버무리다 나온 손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102동으로 온 2대대장 집입니다. 하준석이라고 합니다.”
여자는 준석의 얼굴을 보고, 앞치마를 보고, 손에 든 주황 뚜껑을 보았다. 눈길이 머문 시간은 앞치마 위가 제일 길었다.
“아, 문 중령님 댁. 권혜옥이에요. 연대장 집사람이고요.”
혜옥은 통을 두 손으로 받았다. 받는 손이 공손했고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는 손도 공손했다.
“이사 첫날부터 음식을 다 하셨네요. 남자분이.”
“제가 원래 이걸로 먹고살았어요.”
“그러셨구나.”
혜옥은 웃었다. 웃음 끝을 조금 끌었는데, 끄는 동안 무언가를 적어 두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일 오전 열 시에 101동 지하 쉼터에서 환영회 해요. 새로 오신 집 세 집 같이요. 문 중령님은 바쁘실 테니까, 준석 씨가 오셔도 되고.”
“네. 꼭 가겠습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혜옥이 한마디를 보탰다.
“다음 집은 1대대장 댁이에요. 3층. 순서 아시죠?”
준석은 몰랐다.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고, 계단을 내려가며 휴대전화로 다슬에게 물었다. 답은 이 분 만에 왔다. 「연대장 → 부연대장 → 1대대장 → 정보과장 → 2대대장(우리) 건너뛰고 → 3대대장. 그다음은 층 순서.」 계급과 보직과 부임 순서가 뒤엉킨 순서였다. 준석은 계단참에 서서 반찬통 마흔일곱 개를 이 순서대로 다시 늘어놓았다.
*
해 질 녘까지 마흔일곱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 준 집이 서른한 집이었고, 나머지는 문고리에 통을 걸어 두었다. 문을 연 사람들은 거의 다 여자였다. 그들은 준석을 보고 한 번 놀랐고 앞치마를 보고 두 번 놀랐다. 3대대장 집 부인은 문을 연 채로 뒤를 돌아 소리쳤다.
“여보, 2대대장님 남편분이 반찬 갖고 오셨어!”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누구 남편?”
마지막 통은 104동 일 층 끝 집이었다. 문 앞에 유모차가 접혀 있었고, 신발장 위에 빈 컵라면 용기가 셋 포개져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아기 울음이 터졌고, 문이 반쯤 열리더니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자가 아기를 안은 채 얼굴을 내밀었다.
“택배는 문 앞에 두이소.”
“택배가 아니고, 이사 왔어요. 102동.”
여자는 아기를 추어올리며 준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기가 준석의 앞치마 끈을 잡아당겼다.
“아, 들었어예. 남자 사모님.”
“남자 사모님이요?”
“단톡방에서 다들 그래 불러예. 사모님이라 캐야 되나 사부님이라 캐야 되나 지금 투표 중인데.”
“지금 몇 대 몇이에요?”
“사모님 열하나, 사부님 아홉, 기권 이십몇.”
여자의 이름은 오끝님이었다. 포대 관측장교 윤 중위의 아내였고, 관사촌에서 제일 어렸다. 끝님은 통을 받아 들고 뚜껑을 문간에서 바로 열었다. 잡채 냄새가 복도로 퍼졌다. 끝님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아기 울음보다 크게 났다.
“이거 지금 무도 돼예?”
“지금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끝님은 문간에 선 채로 손가락으로 잡채를 한 가닥 집어 먹었다. 아기가 엄마 입을 따라 입을 벌렸다. 끝님은 아기에게도 당면 한 가닥을 끊어 물렸다.
“남편이 일주일째 훈련장이라예. 라면만 묵었어예. 산들이는 이유식 묵고.”
준석은 신발장 위의 컵라면 용기 셋을 보았다. 셋 다 같은 매운맛이었다.
*
이튿날 오전 열 시, 101동 지하 가족 쉼터에는 접이식 탁자 여섯 개가 디귿 자로 놓여 있었다. 큰 솥 둘이 벽에 기대어 있었고, 스테인리스 조리대 너머에 김치냉장고 셋이 웅웅 소리를 냈다. 준석은 들어서자마자 냉장고 문짝을 보았다. 셋 다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탁자 위에는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디귿 자의 꺾인 가운데에 「연대장 사모님」, 양옆으로 「부연대장 사모님」「1대대장 사모님」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급이 낮아졌고, 출입문 바로 옆 맨 끝자리에 하얀 이름표 하나가 따로 놓여 있었다.
「문다슬 중령 사모님」
누군가 볼펜으로 「사모」 옆에 작게 「부?」라고 적어 두었다. 끝님이 아기를 안고 뒷자리에서 입을 막고 웃었다.
준석은 자리에 앉기 전에 이름표 순서를 다시 보았다. 2대대장은 1대대장 다음이어야 했다. 준석의 이름표는 중위 집들 뒤, 문 옆에 있었다.
“자리가 좀 이상하네요.”
준석이 옆자리 정보과장 사모에게 말했다. 정보과장 사모는 대답 대신 탁자 밑에서 준석의 무릎을 살짝 쳤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혜옥은 열 시 정각에 들어왔다. 모두 일어섰다. 준석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혜옥은 가운데 자리에 앉기 전에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고, 눈길이 문 옆에서 반 박자 멈췄다.
“다들 앉으세요. 새로 오신 세 집 환영합니다.”
환영회는 이십 분 동안 차분했다. 새로 온 집이 하나씩 일어나 인사했고, 혜옥이 집집마다 한마디씩 붙였다. 정보과장 사모가 귤을 깠고 1대대장 사모가 떡을 돌렸다. 준석 차례가 왔다.
“하준석입니다. 아내는 2대대장이고요. 서울에서 요리 학원 강사를 했습니다. 앞으로 반찬 필요하시면….”
“고마워요.”
혜옥이 말을 받았다. 부드럽게, 끝을 조금 끌며.
“어제 반찬 잘 받았어요. 다만 관사에서는 음식을 집집마다 돌리지 않아요. 여름 끝물에 상하기 쉽고, 한 집이라도 탈이 나면 누가 책임지겠어요. 지난해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정한 거예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끝님이 아기를 고쳐 안는 소리만 났다.
“그리고 다음 달 안내 하나 할게요. 11월 넷째 주에 관사촌 김장 대회가 있어요. 집집마다 한 통씩 담가서 맛을 보고, 으뜸 집을 뽑아요. 올해는 귀한 분이 오실지도 몰라요. 사단에서요.”
부인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사단장 사모님이라고 속삭였다. 혜옥은 웅성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문 옆을 보았다.
“김장은 사모회 행사예요. 사모회는 부인들 모임이고요. 준석 씨는 가족 대표로 오세요. 김장 날 배추 나르는 일, 그게 남자분들 몫이에요.”
“제가 김치를 좀 담그는데요.”
“알아요. 앞치마에 학원 이름이 있던데.”
혜옥이 웃었다. 몇 사람이 따라 웃었다.
“관사 김치는 학원 김치랑 달라요. 서른 해 동안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맞춘 맛이에요. 대대장님 사모님 자리는, 대대장님이 오시면 채워 드릴게요.”
준석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탁자 밑에서 정보과장 사모가 무릎을 한 번 더 쳤다. 이번에는 아팠다.
*
다슬은 밤 열한 시가 넘어 들어왔다. 전투복 바지에 마른 흙이 묻어 있었고, 머리카락에서 화약 냄새가 났다. 준석은 식탁에 콩나물국을 데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셰프, 국.”
다슬은 신발을 벗기도 전에 말했다. 군화를 벗으며 한 발로 서서 국그릇을 들고 마셨다. 준석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하얀 이름표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다슬이 국그릇 너머로 이름표를 보고, 「부?」를 보고, 코로 웃었다.
“자리는 어디였어?”
“문 옆. 중위 집들 뒤.”
다슬이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웃음이 얼굴에서 빠지는 데 반 박자가 걸렸다.
“싸웠어?”
“무릎만 맞았어. 정보과장 사모님한테.”
“잘했네. 그 사모님한테 고맙다고 해.”
다슬은 의자에 앉아 군화 끈을 마저 풀었다. 끈을 감는 손가락이 느렸다.
“준석아, 11월에 진급 심사야. 연대장님 의견이 들어가. 연대장님은 집에서 사모님 말씀을 들어.”
“그래서 김장 날 배추나 나르라고?”
“배추 무거워. 허리 조심해.”
다슬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 하나를 보여 주었다. 국방부가 대대장 이상 지휘관들에게 내려보낸 공지였다. 「관사 내 친목 모임 참여를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지휘관 가족은 각별히 유의할 것.」
“이게 지난주에 내려왔어. 연대장님이 회의 때 읽고 그냥 넘어갔어. 아무도 안 웃었어.”
다슬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 욕실로 갔다. 물소리 사이로 한마디가 더 넘어왔다.
“잡채 맛있었대. 3대대장이 대대장 회의 때 그러더라. 와이프가 먹지 말라 했는데 몰래 먹었대.”
준석은 국그릇을 씻으며 잠깐 웃었다.
*
아침 여섯 시 반, 준석은 출근하는 다슬을 배웅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무언가에 부딪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복도에 반찬통이 쌓여 있었다. 주황 뚜껑들이 두 줄로, 벽을 따라 계단 쪽까지 이어졌다. 다슬이 군화를 신다 말고 통 하나를 들어 보았다. 뚜껑 아래로 잡채가 보였다. 지단 채가 처음 올린 모양 그대로 얹혀 있었다. 누구도 뚜껑을 연 적이 없었다.
준석은 하나씩 세었다. 세는 동안 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흔일곱. 이웃에서 빈 그릇을 돌려줄 때는 무언가를 담아 돌려주는 법이었다. 통 안에는 준석이 담은 것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그 얘기 때문이네. 음식 안 돌린다는 거.”
다슬이 낮게 말했다.
“밤사이에 연락이 돈 거야. 단톡방.”
“나는 단톡방에 없어.”
“나도 없어. 그 방은 사모님 방이야.”
다슬은 통을 내려놓고 군화 끈을 마저 묶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한 번 돌아보았다.
“하나는 어디 갔어?”
준석은 다시 세었다. 마흔일곱이었다. 104동 일 층 끝 집, 컵라면 셋이 포개져 있던 집의 통이 없었다.
*
준석이 통을 씻어 행주 위에 엎어 놓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마흔일곱 개의 잡채는 버리지 않았다. 버리기에는 당면이 너무 잘 불어 있었다. 큰 냄비에 몰아 담고 간장을 조금 더 넣어 볶으면서 준석은 생각했다. 오늘 점심에는 잡채밥, 저녁에는 잡채 만두, 내일 아침에는 잡채 계란말이.
여덟 시쯤 창밖에서 아기 울음이 들렸다. 준석은 행주를 쥔 채 베란다로 나갔다. 104동과 102동 사이 화단 길로 끝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 팔에 아기를 안고, 다른 손에 주황 뚜껑 통을 들고 있었다. 통 안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붉은색이었다.
준석은 슬리퍼를 꿰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일 층 현관을 나섰을 때 끝님은 102동 입구 계단 아래까지 와 있었다. 통을 내밀며 숨을 몰아쉬었다.
“빈 그릇 돌려주는 거 아이라예. 제가 깍두기 담가 봤어예. 처음이라 맛은 몰라예.”
통 안의 깍두기는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엄지만 한 것과 주먹만 한 것이 섞여 있었고, 고춧가루가 한쪽에만 몰려 있었다. 준석은 이 통이 지금까지 받아 본 어떤 상보다 무겁다고 생각했다.
“끝님 씨.”
계단 위에서 목소리가 났다. 둘이 함께 고개를 들었다. 102동 이 층과 삼 층 사이 계단참에 혜옥이 서 있었다. 회색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아침 시장에 나가는 길이었다.
혜옥은 끝님을 보고, 끝님이 든 통을 보고, 준석을 보았다. 웃음을 띠고 있었다. 끝을 조금 끄는 웃음이었다.
“끝님 씨, 그 통 지금 어디로 가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