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17자)

소금물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101동 삼 층 복도에는 불이 다 켜져 있었다⁠. 집집마다 현관문이 조금씩 열려 있었고⁠, 문틈마다 사람 얼굴이 하나씩 있었다⁠. 준석과 다슬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을 때 연대장은 1대대장 집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전투복에 대령 계급장을 달고⁠, 군모까지 쓰고 있었다⁠. 한 달 사이 헐렁해진 전투복이 어깨에서 조금 처져 있었다⁠.

1대대장이 현관문을 열고 서 있었다⁠. 러닝셔츠 위에 전투복 상의를 급하게 걸친 차림이었다⁠. 뒤로 1대대장 사모가 휴대전화를 쥐고 서 있었다⁠. 거실 안쪽에서 중학생 아들이 방문을 반쯤 열고 내다보았다⁠.

연대장은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1대대장⁠. 사진 내려⁠.⁠”

“⁠연대장님⁠, 집사람이 실수를⁠…⁠.⁠”

“⁠내리라고 했다⁠.⁠”

1대대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1대대장 사모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화면 위에서 떨렸다⁠. 화면을 몇 번 눌렀다⁠. 단톡방에서 사진이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알림이 준석의 휴대전화에도 떴다⁠. 마흔두 명이 이미 읽은 뒤였다⁠.

연대장은 1대대장 사모를 보았다⁠.

“⁠사모님⁠. 내가 밤마다 2대대장 집에서 받아 간 건 죽입니다⁠. 내가 봄에 위를 절반 잘라 냈습니다⁠. 그래서 죽밖에 못 먹습니다⁠. 2대대장 남편분이 쑤어 준 겁니다⁠. 돈은 한 푼도 안 받았습니다⁠. 그릇만 돌려 달랍디다⁠.⁠”

복도의 문틈들이 조용해졌다⁠. 연대장의 목소리가 계단통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연대장은 군모를 벗어 손에 들었다⁠.

“⁠내일 아침에 사단장님께 내 입으로 보고하겠습니다⁠. 수술도⁠, 숨긴 것도⁠. 진급 심사 중인 대대장 집이 내 위 때문에 뇌물 준 집이 되는 건 안 됩니다⁠. 1대대장 집도 마찬가지요⁠. 사모님이 쓴 신고서도 내가 들고 가겠습니다⁠.⁠”

계단 아래에서 슬리퍼 소리가 급하게 올라왔다⁠. 혜옥이었다⁠. 카디건도 걸치지 않고 잠옷 바람이었다⁠. 혜옥은 복도 끝에서 멈춰 서서 남편을 보았다⁠. 남편이 군모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혜옥은 앞으로 걸어가 남편의 팔을 잡았다⁠.

“⁠여보⁠. 들어가요⁠. 이 주 남았어요⁠.⁠”

“⁠서른 해 됐소⁠.⁠”

연대장은 아내의 손을 팔에서 떼지 않았다⁠. 대신 제 손을 아내의 손 위에 얹었다⁠.

“⁠화천 개울 얼음 깬 대가를 내 위가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소⁠. 근데 남의 집 남편 이름으로 가져가는 건 더 안 되겠소⁠.⁠”

혜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준석을 보았다⁠. 혜옥의 눈에서 서른 해 동안 남을 다정하게 보던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연대장은 사단으로 갔다⁠. 다슬은 대대장실에서 전화를 기다렸다⁠. 점심때 연대 참모장에게서 짧은 연락이 왔고⁠, 다슬이 준석에게 그대로 옮겼다⁠.

「⁠사단장님이 들으셨음⁠. 심사위원회 판단에 맡긴다고 하심⁠. 연대장님은 오늘부터 연대 의무대 식단으로 식사하심⁠. 죽⁠.⁠」

준석은 문자를 받고 쉼터 솥 앞에 섰다⁠. 솥에 물을 받았다⁠. 연대 의무대 취사병이 쑨 죽이 어떤 맛일지 생각했다⁠.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이제 연대장의 죽은 준석이 쑤는 죽이 아니었다⁠. 준석은 솥에 받은 물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불을 켰다⁠. 끓일 것이 없었다⁠.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준석은 내일 쓸 무를 꺼내 씻었다⁠.

오후에 혜옥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번호 끝에 이름도 없었다⁠.

「⁠준석 씨 이겼어요⁠. 우리 집 사람 이제 아무것도 안 숨겨요⁠.⁠」

준석은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세 번 쓰고 세 번 지웠다⁠.

*

김장 전날⁠, 11월 25일 저녁⁠. 쉼터에 고무 함지박 여덟 개가 놓였다⁠. 일곱 개는 사모회 조들 것이었다⁠. 1조부터 4조까지 동마다 둘씩⁠. 혜옥이 새로 구한 강원도 절임배추 상자가 함지박 옆에 쌓여 있었다⁠. 1대대장 사모는 오지 않았다⁠. 1조는 부연대장 사모가 맡았다⁠.

여덟 번째 함지박은 104동 조였다⁠. 끝님과 준석⁠, 그리고 부사관 관사 부인 여섯⁠. 배추는 부사관 관사 뒤 텃밭에서 왔다⁠. 트럭이 없어서 손으로 날랐다⁠. 저녁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쪽문을 백 번 넘게 넘었다⁠. 녹슨 쪽문은 관리관이 기름을 친 뒤로 한 번도 끼익 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임원사 부인이 맨 앞에서 배추 두 포기를 양팔에 끼고 걸었고⁠, 끝님이 산들을 업은 채로 한 포기씩 안고 따라왔다⁠. 준석은 배추 넷을 안았다⁠. 배추 겉잎에서 흙냄새와 서리 냄새가 났다⁠.

“⁠사부님⁠, 이거 다 몇 포기라예⁠?⁠”

“⁠백 포기요⁠.⁠”

“⁠백 포기를 손으로 날랐어예⁠? 우리가⁠?⁠”

끝님은 마지막 포기를 함지박 옆에 내려놓고 쉼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산들이 포대기 안에서 깔깔 웃었다⁠. 엄마가 주저앉는 것이 재미있었다⁠.

배추를 반으로 가르고 소금물에 담그는 일은 부사관 부인들이 맡았다⁠. 서른 해 동안 장교 사모회 김장 날 배추를 날라 온 손들이었다⁠. 주임원사 부인이 천일염을 바가지로 퍼서 물에 풀었다⁠. 준석은 염도를 보려고 손가락을 담갔다가 혀에 대려 했다⁠. 주임원사 부인이 준석의 손목을 잡았다⁠.

“⁠사부님⁠, 이건 우리가 해요⁠. 우리 배추예요⁠.⁠”

준석은 손을 거두었다⁠. 밤 열한 시⁠, 배추 백 포기가 소금물에 잠겼다⁠. 부사관 부인들은 쪽문을 넘어 돌아갔다⁠. 끝님도 산들을 재우러 갔다⁠. 준석은 쉼터 열쇠를 잠그지 않고 집으로 올라갔다⁠. 아침 일곱 시에 내려와 배추를 건지기로 했다⁠.

*

새벽 두 시⁠, 준석은 잠이 깼다⁠. 손가락 끝이 아렸다⁠. 낮에 배추를 가르다 칼끝에 살짝 베인 자리였다⁠. 준석은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왔다가 창밖을 보았다⁠. 101동 지하 쉼터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준석은 앞치마를 매지 않고 내려갔다⁠. 쉼터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바닥이 젖어 있었다⁠. 슬리퍼 밑창에 물이 스몄다⁠. 짠 냄새가 확 올라왔다⁠.

여덟 번째 함지박이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소금물이 쉼터 바닥을 따라 배수구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반으로 가른 배추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노란 속이 젖은 바닥 위에서 형광등 빛을 받았다⁠.

소금물 한가운데 혜옥이 서 있었다⁠. 꽃무늬 앞치마를 매고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한 손에 배추 반 포기를 들고 있었다⁠.

“⁠사모님⁠.⁠”

“⁠짜요⁠.⁠”

혜옥은 배추 반 포기를 준석 쪽으로 내밀었다⁠. 준석은 받지 않았다⁠. 혜옥은 배추 잎 한 장을 뜯어 제 입에 넣고 씹었다⁠. 씹다가 뱉었다⁠.

“⁠주임원사 사모님 소금은 부사관 김장 소금이에요⁠. 서른 해 동안 남의 집 김장 배추 날라 주고 제 집 배추는 밤에 급하게 절이던 손이에요⁠. 그래서 소금을 세게 쳐요⁠. 하룻밤에 숨 죽이려고⁠. 아침 일곱 시까지 두면 이 배추는 소금덩어리가 돼요⁠. 다 버려요⁠.⁠”

준석은 바닥의 배추 잎 하나를 주워 혀에 댔다⁠. 짰다⁠. 소금이 혀를 찌르고 쓴맛이 뒤따랐다⁠. 혜옥의 말이 맞았다⁠. 일곱 시까지 두었으면 백 포기를 다 버렸을 것이었다⁠.

“⁠그래서 엎으셨어요⁠?⁠”

“⁠그래서 엎었어요⁠. 내 김장에서 짠 김치는 안 나가요⁠.⁠”

“⁠사모님 김장이 아니잖아요⁠. 우리 조 거예요⁠.⁠”

혜옥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벗은 장갑을 함지박 가장자리에 걸쳐 놓았다⁠. 손등이 붉었다⁠. 소금물에 오래 담근 손이었다⁠.

“⁠준석 씨⁠. 앉아 봐요⁠.⁠”

혜옥은 젖은 바닥을 피해 탁자 끝에 걸터앉았다⁠. 준석은 서 있었다⁠. 혜옥은 준석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바닥에 흩어진 배추를 보았다⁠.

“⁠스물두 살에 화천 슬레이트 관사로 시집왔어요⁠. 우리 집 사람이 소위였어요⁠. 첫 김장 날 개울 얼음을 깼어요⁠. 열 집이 내 손만 보고 따라 했어요⁠. 그때부터 서른 해예요⁠. 양구에서는 한 집 사모님이 아이를 잃었는데 내가 미역국을 끓였어요⁠. 인제에서는 한 집 남편이 지뢰를 밟았어요⁠. 영안실에 그 집 사모님 대신 내가 들어갔어요⁠. 철원에서는 소대장 하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집 사모님은 지금도 해마다 김장 날 나한테 전화해요⁠. 그런 집들을 다 붙잡고 있는 게 김장이에요⁠, 준석 씨⁠. 배추 이백 포기로 마흔여덟 집을 하루 동안 한 부엌에 묶어 두는 거예요⁠.⁠”

혜옥은 앞치마 끈을 풀었다가 다시 맸다⁠.

“⁠우리 집 사람 장군 되면⁠, 나는 그런 집들을 사단만큼 붙잡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몰라요⁠. 준석 씨가 반찬통 돌리던 첫날⁠, 나는 그게 무서웠어요⁠. 서른 해 묶은 매듭을 학원 앞치마가 하루 만에 푸는 거요⁠.⁠”

준석은 젖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배추를 하나씩 주워 함지박에 담았다⁠. 손가락의 베인 자리가 소금에 쓰렸다⁠.

“⁠사모님⁠. 내일 연대장님 오세요⁠?⁠”

“⁠오시겠죠⁠. 사단장 사모님 오시는데⁠.⁠”

“⁠그럼 내일 쉼터에서 연대장님 죽 드시게 해요⁠. 모두 보는 데서⁠. 사모님 손으로 쑤어서요⁠. 숨길 게 이제 없잖아요⁠. 마흔여덟 집이 다 알아요⁠. 다 아는데 사모님만 고기 굽고 계시면⁠, 그게 더 무서워요⁠.⁠”

혜옥이 고개를 들었다⁠.

“⁠준석 씨가 나한테 죽 쑤는 법 가르치겠다는 거예요⁠?⁠”

“⁠사모님이 저보다 잘 쑤실 거예요⁠. 들기름 쓰시잖아요⁠.⁠”

혜옥은 한참 준석을 보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끝을 끌지 않는 웃음이었다⁠. 웃다가 그쳤다⁠.

“⁠안 해요⁠. 내일 우리 집 사람은 내 김치 먹어요⁠. 장군이 못 돼도⁠.⁠”

혜옥은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다⁠. 쉼터 문을 향해 걸었다⁠. 문간에서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그 배추⁠, 새로 절이면 아침까지 안 돼요⁠. 일곱 시간은 있어야 해요⁠. 내 강원도 배추 남는 거 열 상자 있어요⁠. 쓰려면 쓰세요⁠.⁠”

“⁠안 써요⁠.⁠”

“⁠알아요⁠.⁠”

혜옥이 나갔다⁠. 준석은 바닥에 앉아 소금물을 걸레로 밀었다⁠. 배추 백 포기 가운데 쓸 만한 것이 예순 포기쯤이었다⁠. 새로 절이면 아침 아홉 시였다⁠. 김장은 열 시에 시작이었다⁠. 사단장 부인은 열한 시에 온다고 했다⁠.

*

다섯 시 반⁠, 하늘이 희부옇게 밝아 왔다⁠. 준석은 새 소금물에 예순 포기를 담그고 시계를 보고 있었다⁠. 쉼터 밖에서 트럭 엔진 소리가 났다⁠. 엔진 소리가 101동 앞에서 멈추고 문 닫히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쉼터 문이 열렸다⁠. 끝님이 들어왔다⁠. 산들을 업지 않았다⁠. 볼이 추위에 빨갰다⁠.

“⁠사부님⁠! 나와 보이소⁠!⁠”

준석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101동 앞마당에 흰 일 톤 트럭 한 대가 멈춰 있었다⁠. 혜옥의 동생 트럭이 아니었다⁠. 옆면에 「⁠전곡시장 반찬⁠」이라고 적혀 있었다⁠. 짐칸에 절임배추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상자 틈으로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았다⁠. 어제 절인 배추였다⁠.

운전석 옆에 반찬가게 사장이 서 있었다⁠. 고무장갑을 낀 채였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전투복을 입은 젊은 하사였다⁠. 명찰에 「⁠강⁠」이 박혀 있었다⁠.

“⁠사부님⁠. 우리 아들이 그러대요⁠. 연대장님이 사단장님한테 직접 가셨다고⁠. 그 얘기 듣고 밤새 절였어요⁠. 백 포기⁠. 우리 가게 뒷마당에서⁠. 간은 사부님이 보세요⁠.⁠”

사장이 상자 하나를 열었다⁠. 노란 배추 속이 새벽 공기 속에서 김을 냈다⁠. 끝님이 상자 앞에서 팔짝 뛰었다⁠.

강 하사가 거수경례를 붙였다⁠. 경례가 향한 곳은 준석이 아니었다⁠. 준석의 뒤였다⁠. 준석이 돌아보았다⁠. 101동 현관 앞에 혜옥이 서 있었다⁠. 회색 카디건을 걸치고⁠,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오늘 아침 김장 트럭을 몰 사람으로 혜옥이 정해 둔 하사가⁠, 다른 트럭을 몰고 와서 혜옥에게 경례를 하고 있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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