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30자)

앞치마

여군 대대장의 남편이 관사촌에 이사 오자 사모님들이 긴장했다 · 탁기원

혜옥은 강 하사의 경례를 받았다⁠. 손을 들어 받는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래 남의 남편들 경례를 받아 온 고개였다⁠.

“⁠강 하사⁠. 내 트럭은 아홉 시에 와요⁠. 늦지 말고⁠.⁠”

“⁠예⁠, 사모님⁠.⁠”

혜옥은 반찬가게 사장에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고무장갑 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혜옥은 끝님을 보지 않았고 준석도 보지 않았다⁠. 트럭 짐칸의 절임배추 상자를 한 번 보고⁠, 상자 틈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을 보고 나서 101동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목소리 하나가 새어 나왔다⁠.

“⁠잘 절였네⁠.⁠”

끝님이 사장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사장은 붙잡힌 채로 웃었다⁠.

*

아침 일곱 시 반⁠, 다슬은 현관에서 군화를 신었다⁠. 전투복 왼쪽 가슴에 중령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오늘이 이 계급장을 다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었고⁠, 다음 해에도 다는 날일 수도 있었다⁠. 다슬은 끈을 두 번 감고 매듭을 지었다⁠.

“⁠발표 열 시야⁠. 인사 사령 화면에 뜬대⁠.⁠”

“⁠나는 열 시에 배추에 소 넣고 있을 거야⁠.⁠”

“⁠그래⁠. 넣어⁠.⁠”

다슬은 일어서서 준석의 앞치마를 고쳐 매 주었다⁠. 남색 앞치마 가슴께의 「⁠마포 한식 요리 학원⁠」 글씨가 오래 빨아 보풀이 일어 있었다⁠.

“⁠셰프⁠. 오늘 사모님 이기지 마⁠.⁠”

“⁠왜⁠?⁠”

“⁠이기면 사모님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 연대장님 발표도 오늘이야⁠.⁠”

다슬은 준석의 이마에 이마를 댔다⁠. 군모를 쓰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군화 소리가 한 층마다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여덟 시 반에 다슬에게서 문자가 왔다⁠.

「⁠발표 오후 두 시로 미뤄짐⁠. 연대장님 건 심사위원회가 다시 봄⁠. 우리 기수 다 같이 미뤄짐⁠.⁠」

준석은 문자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쉼터 열쇠와 연대장의 쪽지와 주황 뚜껑이 맞닿았다⁠.

*

같은 시각⁠, 다슬은 대대장실 창가에 서 있었다⁠. 연병장에서 병사들이 김장용 배추를 실은 트럭에서 상자를 내리고 있었다⁠. 부대 김장도 오늘이었다⁠. 취사장 굴뚝에서 김이 올랐다⁠.

노크 소리가 났다⁠. 1대대장이 문간에 서 있었다⁠. 같은 중령⁠, 같은 기수⁠, 같은 심사였다⁠. 1대대장은 들어오지 않고 문간에서 말했다⁠.

“⁠문 중령⁠. 집사람 일⁠, 미안하다⁠.⁠”

다슬은 창가에서 돌아서지 않았다⁠. 유리창에 1대대장의 그림자가 비쳤다⁠. 어깨가 굽어 있었다⁠.

“⁠신고서는 연대장님이 사단에 들고 가셨어⁠. 감찰은 거기서 끝났대⁠. 집사람은 사흘째 집 밖에 안 나가⁠.⁠”

“⁠애들은⁠?⁠”

“⁠큰애가 밥을 해⁠. 라면⁠.⁠”

다슬은 그제야 돌아섰다⁠. 1대대장은 다슬의 눈을 보지 못하고 군화 끝을 보고 있었다⁠. 다슬은 책상 서랍에서 주황 뚜껑 통 하나를 꺼냈다⁠. 아침에 준석이 싸 준 계란말이였다⁠. 잡채가 들어 있지 않은 보통 계란말이였다⁠.

“⁠애들 갖다줘⁠. 오늘 저녁엔 우리 남편 김치도 갈 거야⁠. 그 집 문고리에⁠.⁠”

1대대장은 통을 받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경례를 했다⁠. 경례를 받으며 다슬은 생각했다⁠. 오늘 두 시에 둘 가운데 하나만 대령이 될 수도 있었고⁠, 둘 다 안 될 수도 있었다⁠.

*

아홉 시⁠, 101동 앞마당에 하얀 천막 네 개가 쳐졌다⁠. 관리관이 새벽부터 부대에서 빌려 온 천막이었다⁠. 천막 아래에 고무 함지박 여덟 개가 동그랗게 놓였다⁠. 함지박마다 앞에 종이 번호표가 붙었다⁠. 1번부터 8번까지⁠. 혜옥이 정한 방식이었다⁠. 사단장 부인은 조 이름도 집 이름도 모르고 번호만 보고 맛을 볼 것이었다⁠.

“⁠번호는 누가 붙였어요⁠?⁠”

준석이 관리관에게 물었다⁠. 관리관은 번호표 귀퉁이를 테이프로 눌렀다⁠.

“⁠사모님이 정하시고 제가 붙였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저만 압니다⁠.⁠”

“⁠우리 조는 몇 번이에요⁠?⁠”

“⁠말씀 못 드립니다⁠.⁠”

관리관은 대답하고 나서 104동 조 함지박 앞으로 걸어가 번호표를 한 번 더 눌렀다⁠. 8번이었다⁠. 관리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얼굴로 돌아섰다⁠.

마흔여덟 집 가운데 마흔여섯 집이 나왔다⁠. 1대대장 집은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1대대장 사모는 사흘째 관사촌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부연대장 집 사모는 서울에서 돌아와 1조 함지박 앞에 앉았다⁠. 부사관 관사에서 주임원사 부인과 다섯이 쪽문을 넘어와 104동 조 함지박에 둘러앉았다⁠. 장교 사모회 김장에 부사관 부인들이 배추를 나르러 온 것이 아니라 소를 넣으러 온 것은 처음이었다⁠. 몇몇 사모가 부사관 부인들의 손을 오래 보았다⁠.

준석은 소를 만들었다⁠. 시장 큰집 영양 고춧가루⁠, 강경 새우젓⁠, 쪽파와 갓⁠, 무채⁠, 찹쌀풀⁠. 설탕은 넣지 않았다⁠. 대신 배를 갈아 넣었다⁠. 주임원사 부인이 소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 이거 단맛이 배추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사모님 배추라서요⁠.⁠”

주임원사 부인이 손등의 흉터를 문지르며 웃었다⁠. 끝님은 산들을 등에 업고 배추 잎 사이사이에 소를 바르고 있었다⁠. 바르는 손이 느렸지만 고르게 발랐다⁠. 고춧가루가 한쪽으로 몰리지 않았다⁠.

“⁠사부님⁠, 이번엔 맛있지예⁠?⁠”

“⁠아직 안 먹어 봤어요⁠.⁠”

“⁠묵어 보이소⁠. 손가락으로⁠.⁠”

준석은 끝님이 소를 바른 배추 잎 하나를 찢어 입에 넣었다⁠. 배추 단맛 뒤로 고춧가루가 오래 남았다⁠. 젓갈 짠맛은 끝에서 조금⁠. 사 년⁠, 오 년 같이 살 맛이었다⁠. 준석은 대답하지 않고 끝님의 등에서 자는 산들의 볼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눌렀다⁠.

3대대장이 천막 사이를 지나가다 104동 조 함지박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배추 속 한 쪽을 몰래 집어 먹었다⁠. 3대대장 사모가 남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심사 전에 먹으면 반칙이야⁠.⁠”

“⁠잡채 때도 그러더니⁠.⁠”

정보과장 사모와 인사과장 사모가 2조 함지박에서 고개를 맞대고 웃었다⁠. 정보과장 사모가 휴대전화를 들어 단톡방 화면을 보여 주었다⁠. 이사 첫날 시작한 호칭 투표가 아직 열려 있었다⁠.

「⁠사모님 열아홉 · 사부님 스물여섯 · 셰프님 하나⁠」

“⁠셰프님은 누가 찍었어요⁠?⁠”

준석이 물었다⁠. 인사과장 사모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대대장 관사가 있는 102동을 가리켰다⁠. 다슬은 단톡방에 없었다⁠. 다슬이 정보과장 사모의 휴대전화를 빌려 찍었다는 것을 준석은 저녁에야 알았다⁠.

*

열 시 반⁠, 연대장이 천막으로 왔다⁠. 군복 대신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손에 은색 보온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어서려 하자 연대장이 손을 내저었다⁠. 연대장은 1조 함지박 옆 접이식 의자에 앉아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김이 올랐다⁠. 흰죽 냄새였다⁠. 연대 의무대 취사병이 쑨 죽이었다⁠.

천막 아래가 조용해졌다⁠. 마흔여섯 집이 연대장이 죽을 먹는 것을 보았다⁠. 연대장은 찻숟가락으로 죽을 반 숟가락씩 떠먹었다⁠. 한 숟가락에 숨 한 번⁠. 이마에 땀이 맺혔다⁠. 연대장은 땀을 닦지 않았다⁠.

혜옥이 1조 함지박에서 일어났다⁠. 고무장갑을 벗고⁠, 배추 속 한 쪽을 손으로 찢어 작은 접시에 담았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걸어가 연대장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손톱만 한 김치 한 점이었다⁠. 연대장은 죽 한 숟가락 위에 김치 한 점을 얹어 입에 넣었다⁠. 오래 씹었다⁠. 삼켰다⁠.

“⁠맛있네⁠.⁠”

천막 아래에서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군의관 사모였다⁠. 군의관 사모는 보리차 주전자를 들고 일어나 연대장의 빈 컵에 보리차를 따랐다⁠. 연대장의 수술 기록에 남편이 서명한 집이었다⁠. 군의관 사모가 주전자를 내려놓자 정보과장 사모가 귤 하나를 까서 접시 옆에 놓았고⁠, 주임원사 부인이 손수건을 건넸다⁠. 연대장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아무도 연대장의 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들 알았다⁠.

혜옥은 대답하지 않고 1조 함지박으로 돌아갔다⁠. 앉으면서 앞치마 자락으로 눈가를 한 번 눌렀다⁠. 끝님이 준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준석은 소 바르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열한 시 오 분 전⁠, 혜옥이 일어섰다⁠. 꽃무늬 앞치마를 벗어 개어 1조 함지박 옆에 내려놓았다⁠. 회색 카디건을 걸쳤다⁠.

“⁠사단장 사모님 정문에 도착하셨대요⁠. 모시고 올게요⁠.⁠”

*

열한 시⁠, 혜옥이 사단장 부인과 함께 101동 앞마당으로 들어왔다⁠. 사단장 부인은 예순쯤이었다⁠. 짧은 흰머리에 검은 패딩을 입었고⁠,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화장기가 없었다⁠. 마흔여섯 집이 일어섰다⁠. 혜옥이 사단장 부인의 반 걸음 뒤에 서서 걸었다⁠. 혜옥은 서른 해 동안 반 걸음을 지켜 왔다⁠.

사단장 부인은 천막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연대장을 보았다⁠. 연대장이 일어서려 하자 사단장 부인이 먼저 다가가 연대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앉아 계세요⁠. 우리 집 양반한테 다 들었어요⁠. 죽 드시는 거 보러 왔어요⁠.⁠”

사단장 부인은 연대장의 보온병을 들여다보고⁠, 옆에 놓인 김치 한 점 묻은 접시를 보았다⁠. 혜옥을 돌아보았다⁠.

“⁠권 사모님 김치는 어디서 드시는지 알겠네요⁠.⁠”

혜옥이 고개를 숙였다⁠. 사단장 부인은 장갑을 벗고 천막 아래로 들어갔다⁠. 관리관이 젓가락과 작은 접시 여덟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따라갔다⁠. 혜옥은 다시 반 걸음 뒤로 섰다⁠.

1번 함지박에서 사단장 부인은 배추 속 한 쪽을 젓가락으로 집어 맛보았다⁠. 오래 씹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2번⁠, 3번⁠. 4번에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5번⁠, 6번⁠, 7번⁠. 사단장 부인은 말이 없었다⁠. 마흔여섯 집이 숨을 죽였다⁠. 산들이 끝님의 등에서 깨어 칭얼거렸다⁠. 끝님이 산들을 흔들었다⁠.

8번 함지박 앞에서 사단장 부인은 배추 속을 집었다⁠. 씹다가 멈췄다⁠. 한 번 더 집었다⁠. 이번에는 잎 끝을 찢어 입에 넣고⁠, 눈을 감고 씹었다⁠. 사단장 부인이 눈을 떴다⁠.

“⁠설탕이 없네요⁠.⁠”

주임원사 부인이 끝님의 손을 꽉 잡았다⁠. 사단장 부인은 젓가락을 접시에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1번 함지박 쪽이었다⁠. 혜옥을 보았다⁠.

“⁠1번은 권 사모님 거죠⁠. 서른 해 맛이에요⁠. 사단 사모회 사람들 다 알아요⁠.⁠”

혜옥이 고개를 숙였다⁠. 사단장 부인은 다시 8번 함지박을 내려다보았다⁠.

“⁠이 배추는 서리를 두 번 맞았네요⁠. 이 김치는 처음 먹는 맛인데⁠, 오래 먹을 맛이에요⁠. 다음 달 사단 가족 행사 때 사단 사모회 김장을 새로 맡을 사람을 찾고 있어요⁠. 사단 관사가 백팔십 집이에요⁠.⁠”

천막 아래가 술렁거렸다⁠. 사단장 부인은 8번 함지박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끝님⁠, 주임원사 부인⁠, 부사관 부인 다섯⁠. 그리고 함지박 옆에서 앞치마를 벗어 무릎에 걸쳐 놓고 소를 바르던 남자 하나⁠.

“⁠이 김치 담근 사모님이 누구세요⁠?⁠”

혜옥이 사단장 부인의 반 걸음 뒤에서 준석을 보았다⁠. 혜옥의 얼굴에 웃음이 올라왔다⁠. 끝을 길게 끄는 웃음이었다⁠. 다정했다⁠. 혜옥이 입을 열기 전에 준석은 무릎에 걸쳐 둔 남색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 끈을 허리에 돌려 등 뒤에서 매듭을 지었다⁠. 학원 이름이 수 놓인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한 번 펴고⁠, 함지박 사이로 걸어 나갔다⁠.

천막 아래 마흔여섯 집의 휴대전화 가운데 여섯 개가 한꺼번에 울렸다⁠. 진급 대상자 집들이었다⁠. 준석의 앞치마 주머니에서도 휴대전화가 떨렸다⁠. 준석은 꺼내 보지 않았다⁠. 사단장 부인 앞에 섰다⁠.

“⁠제가 담갔습니다⁠. 사모님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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