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84자) · 연희 · 오월 스무날
아버지
목욕탕 장부의 이름들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단오 뒤로 온수각 새벽이 시끄러워졌다. 해가 뜨기 전부터 산문 밖 샘가에 나루 사람들이 올라왔다. 이름을 받아 간 사람들이었다. 반나절 산길을 밤중에 올라와 샘가에 서서 제가 든 이름을 불렀다. 뱃사공 마누라는 목청이 커서 분이를 부르면 아궁이채 흙벽이 울렸다. 분이는 탕채 수건 솥 앞에서 그 소리를 듣고 광주리를 내던지고 뛰어나갔다. 산문 문턱 안에서는 대답만 했고, 문턱을 넘자마자 뱃사공 마누라 이름을 두 배로 크게 불렀다.
원주는 그걸 막지 못했다. 산문 밖은 절 땅이었고, 절 땅에 올라와 소리 지르는 사람을 쫓으려면 주지에게 까닭을 대야 했다. 쇠돌이 몇 번 샘가로 내려가 팔을 휘저었지만, 팔을 휘저을 때마다 누가 쇠돌 이름을 불렀다. 쇠돌도 이제 이름을 하나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리면 대답을 해야 했고, 대답을 하다 보면 쫓을 틈이 없었다.
셈 노인은 날마다 새벽에 샘가 부르는 소리를 셌다. 단오 다음 날은 스물셋, 사흘째는 마흔, 이레째는 예순일곱이었다. 온수각 김보다 샘가 사람 입김이 더 많이 올라간다고 노인은 좋아했다.
오월 스무날 아침, 쇠돌이 아궁이채로 뛰어 들어왔다. 손가락을 하나도 접지 않은 채였다. 셀 것이 없을 만큼 급한 일이었다.
“아궁이, 산문에 손님이오. 송골서 왔다는 영감이오.”
연희는 장작을 쥔 채 일어섰다. 장작 끝에 불이 붙어 있었다. 쇠돌이 한 발 물러섰다. 연희는 장작을 아궁이에 도로 밀어 넣고 손을 털었다. 손바닥에서 재가 날렸다.
산문 밖 샘가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등에 지게를 졌고 지게 위에 작은 장 단지가 둘 얹혀 있었다. 송골 흙으로 구운 단지였다. 연희는 멀리서도 그 흙빛을 알아봤다. 불을 세게 먹어 검붉게 윤이 나는 빛이었다. 아버지는 석 달 사이에 더 말라 있었다. 광대뼈 아래가 움푹 꺼졌고, 가마 불에 데어 한쪽이 뭉개진 엄지로 지게 끈을 쥐고 있었다.
“연희야.”
아버지가 불렀다. 샘가였다. 산문 밖이었다. 연희는 그 소리에 발끝이 산 아래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석 달 동안 들은 제 이름 가운데 가장 익은 소리였다. 열아홉 해 동안 가마 앞에서, 부뚜막 앞에서, 옹기 짐을 싸는 마당에서 들은 소리였다.
“아버지.”
“말랐구나.”
“아버지가 더 마르셨어요.”
아버지가 웃었다. 이가 하나 더 빠져 있었다.
*
일은 원주 방에서 났다. 원주가 아버지를 아래채로 들였다. 마종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방바닥이 따뜻해서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뜨거운 방바닥에 앉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종이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새 수결 종이였다.
“덕보, 말한 대로요. 딸이 석 달을 더 하면 장생고 마흔 섬은 없던 걸로 하고, 시중 어른 댁에서 가마 새로 올릴 품삯까지 대겠소. 막내 약값도 대겠소.”
아버지가 연희를 봤다. 눈이 젖어 있었는데 목소리는 단단했다.
“연희야, 석 달만 더 해라. 연수가 기침을 한다. 밤마다 한다. 의원이 가래 끓는 소리가 안 좋다더라. 가마를 올려야 식구가 산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홍건적 난리에 탄 가마 자리에 풀이 무릎까지 자랐다는 것, 옆 마을 옹기장이가 송골 흙을 파 가도 막을 힘이 없다는 것, 연수가 기침 끝에 피를 한 번 뱉었는데 그게 옹기 굽다 튄 붉은 흙물인 줄 알고 넘겼다가 밤새 잠을 못 잤다는 것. 아버지는 말할 때마다 무릎 위 두 손을 번갈아 쥐었다. 연희는 그 손이 흙을 만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처음 봤다. 가만히 있는 손이 흙 묻은 손보다 더 늙어 보였다.
마종이 부채를 부쳤다.
“딸 하나가 석 달이면 식구 넷이 가을을 넘기오. 셈은 간단하오.”
연희는 몸을 움찔했다. 원주 방이었다. 산문 안이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름이 안쪽으로 한 뼘씩 기우는 게 느껴졌다. 발바닥이 방바닥에 들러붙는 것 같았다. 원주가 그걸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아버지, 여기서는 제 이름 부르지 마세요.”
“뭐?”
“여기서는요. 산문 안에서는요. 부르지 마세요.”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곧 붉어졌다.
“제 딸 이름을 아비가 못 부르냐? 석 달 사이에 네가 이 절 사람 다 됐구나. 연희야, 내가 너를…”
“또 부르셨어요!”
연희가 소리쳤다. 마종이 부채로 입을 가렸다. 웃음을 숨기는 부채였다. 원주는 웃지 않았다. 대신 수결 종이를 아버지 앞으로 한 치 더 밀었다.
“덕보, 딸은 이 산 규칙을 배웠소. 규칙을 배웠으면 석 달 더 하는 것도 어렵지 않소.”
연희는 아버지 손목을 잡았다. 엄지의 뭉개진 자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아버지, 잠깐만 나가요. 산문 밖으로요. 거기서 말씀드릴게요.”
*
샘가에 둘이 섰다. 한낮이라 볕이 돌확에 떨어져 물 밑 자갈이 희게 빛났다. 쇳내가 볕에 데워져 조금 비렸다. 물지게 둘이 동이를 지고 올라가다가 두 사람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 덕쇠와 개동이었다. 덕쇠가 개동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산문으로 들어갔다.
연희는 이름을 맡긴 날부터 말했다. 장작 셋을 태워야 떠오르던 제 이름과 해 넘어가면 돌아서는 발을 말했고, 서른일곱 줄의 비어 있는 셋째 칸과 점 찍힌 일곱 줄을 말했다. 개경 수레와 목에 건 나무패의 별칭을 말하고, 시중 어른 댁 문서에는 제가 이름이 아니라 아궁이로 적힐 거라는 데까지 갔다.
“석 달 더 하면 제 이름은 유월 초닷새에 안 돌아와요. 기한이 늘면 이름이 얇아져요. 그러면 저는 아궁이로 수레에 타요. 연수 약값은 그 값이에요.”
아버지가 돌확 가장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게 위 장 단지가 기울어 달그락거렸다. 아버지는 그걸 바로 세우지 않았다.
“집사가 그런 말은 안 했다.”
“안 하죠.”
“석 달 더 하면 너를 데려간다고, 그 말은 안 했다.”
아버지가 제 엄지를 들여다봤다. 뭉개진 자리를 다른 손으로 문질렀다. 오래 문질렀다. 연희가 열 살 때 가마 불이 튀어 연희 소매에 붙었을 때, 아버지가 그 불을 맨손으로 잡아 끈 자리였다. 연희는 그 얘기를 아버지에게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도 없었다.
“그 수결도 내가 했지. 네 이름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빚 서류에 네 이름을 쓰면 석 달이라길래. 내 이름을 쓰면 세 해라길래. 석 달이 세 해보다 짧으니까. 그 셈밖에 못 했다.”
“알아요.”
“알면서 왜 왔냐?”
“아버지가 세 해 하시면 가마 볼 사람이 없잖아요.”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연희는 그 얼굴을 봤다. 열아홉 해 동안 가마 앞에서만 보던 얼굴이었다. 불빛이 없는 데서 보니 그 얼굴이 이렇게 늙은 줄 처음 알았다.
*
아버지는 수결하지 않았다. 원주 방에 다시 들어가 새 종이를 두 손으로 마종 앞에 도로 놓았다. 마종이 부채를 접었다.
“덕보, 그러면 장생고 마흔 섬은 그대로요. 가을까지 못 갚으면 송골 가마 터를 시중 어른 댁이 가져가오. 막내 약값은 모르겠소.”
“가마는 다시 올리면 됩니다. 흙은 어디든 있습니다.” 아버지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방바닥이 뜨거워 무릎이 붉었다. “딸은 다시 못 올립니다.”
원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장 단지 둘을 가리켰다.
“그건 두고 가시오.”
“이건 딸 겁니다.”
아버지가 장 단지를 들고 나왔다. 연희는 부엌 문 앞에서 단지를 받았다. 단지 뚜껑 틈으로 된장 냄새가 났다. 송골 부엌 냄새였다. 부엌어멈이 그 냄새를 맡고 코를 벌름거렸다. 덕쇠가 뒤에서 침을 삼켰다.
“아궁이, 그거 혼자 먹을 거요?”
“한 숟갈씩이요.”
“숟갈 크기는 누가 정하오?”
“영감님이요.”
셈 노인이 부엌 문턱에서 제 숟가락을 들어 보였다. 제일 작은 숟가락이었다. 덕쇠가 신음을 냈다. 그날 저녁 부엌 평상에서 열이 된장 한 숟갈씩을 보리밥에 비볐다. 송골 된장은 짰고, 콩이 덜 뭉개져 씹혔고, 끝에 불 냄새가 났다. 가마 곁 장독대에서 익은 된장이었다. 개동이 한 입 먹고 누나네 된장은 누나처럼 맵다고 했다가 연희한테 숟가락으로 이마를 맞았다. 이마를 문지르며 개동이 또 한 입을 떠 갔다.
해가 기울기 전에 아버지는 산문을 나섰다. 연희는 산문 문턱까지 배웅했다. 문턱을 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샘가를 지나 산길 초입까지 내려가다가 돌아섰다. 거기는 산문에서 서른 걸음 밖이었다. 아버지가 두 손을 입에 모았다.
“연희야!”
산이 울렸다. 연희는 대답했다. 산문 안이었지만 대답하는 건 괜찮다고 서기가 말했었다. 이름은 부르는 쪽으로 기운다. 대답은 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네!”
“유월 초닷새에 내가 여기 온다! 네 이름 부르러 온다!”
“네!”
아버지는 돌아서서 내려갔다. 지게가 비어서 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연희는 그 등이 참나무 사이로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었다. 발끝이 산 아래로 저릿하게 기울었다. 이번에는 무섭지 않았다.
*
그날 밤 서기가 장부를 펼쳐 보여 주었다. 올봄 들어온 줄, 연희의 두 자. 먹빛이 달라져 있었다. 가운데는 아직 검었는데, 가장자리가 종이 결을 따라 산 아래쪽, 장부의 바깥 가장자리 쪽으로 번져 있었다.
“오늘 원주 방에서 세 번 불리셨습니다. 안으로 세 뼘 기울었습니다.” 서기가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짚었다. “그리고 산문 밖에서 두 번 불리셨습니다. 한 번은 샘가에서, 한 번은 서른 걸음 밖에서. 밖으로 기운 쪽이 더 큽니다. 아버님 목소리가 크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송골 가마에서 소리 질러 불 올리던 목이에요.”
서기가 웃었다. 그러고는 곧 웃음을 거두었다.
“원주 어른이 오늘 밤 저를 부르셨습니다. 도감 판관이 유월 초사흘에 이 고을에 들어온답니다. 그 전에 원주 어른이 아궁이께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무슨 말씀요?”
서기는 대답하기 전에 등잔 심지를 돋웠다. 불이 커지자 그의 손등이 드러났다. 주름 하나 없는 손등에 오늘은 먹물 대신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한나절 산문 곁에서 부녀를 지켜봤다는 걸 연희는 그 흙먼지로 알았다.
“이 장부는 누군가 들고 있어야 합니다. 서기가 산문을 나가려면 다른 사람이 장부를 받아야 합니다. 묵재 영감이 제게 그랬듯이요. 원주 어른은 도감이 오기 전에 장부를 들 사람을 바꾸려 하십니다.”
“누구로요?”
“글을 읽는 사람으로요.” 서기가 연희를 보았다. “온수각에 글을 읽는 사람은 셈 영감과 아궁이 둘입니다. 셈 영감은 눈이 어둡습니다.”
등잔 불이 한 번 흔들렸다. 이번에는 정말 바람이 들어서였다. 연희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장작을 쥐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손으로 붓을 쥐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궁이께 서기 자리를 주시겠답니다.” 서기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음 낮았다. “그 대가로 저를 내보내 주시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