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19자) · 강목 · 오월 초닷새

단오의 나루

목욕탕 장부의 이름들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오월 초사흘, 도리나루 느티나무에 방이 붙었다. 나루 사람 가운데 글을 읽는 이는 셋이었다. 서당 하던 늙은 선비는 작년에 죽었고, 쌀 되는 집 아들은 개경에 올라갔고, 나머지 하나가 강목이었다. 이름이 돌아오고 나서 강목은 제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도 같이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가 배 짓는 사람도 판자에 치수는 적어야 한다며 가르친 글이었다.

강목은 대패 밥을 털고 느티나무 앞에 섰다. 종이가 새것이라 풀 냄새가 났다. 먹이 굵었고, 맨 끝에 붉은 관인이 찍혀 있었다. 나루 사람들이 강목 등 뒤로 몰려들었다. 멸치 비린내와 땀 냄새가 뒤섞여 강목의 목덜미를 덮었다.

“뭐라고 쓰였소, 널… 아니, 강목이?”

“전민변정도감을 연다오. 권세 있는 집이 억지로 빼앗은 땅은 본래 주인에게 돌리고, 억지로 천인이 된 사람은 스스로 나서면 양인으로 돌린다오.”

“스스로 어떻게 나서오?”

강목은 방의 다음 줄을 짚었다.

“제 입으로 이름과 본래 마을을 대고, 그걸 아는 사람이 곁에서 맞다 하면 된다 하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좋은 세상이 온다고 했고, 누군가 권세가 그리 쉽게 내려놓겠느냐고 했다. 강목은 대답하지 않고 방을 오래 봤다. 사 년 전 산문 밖에 서 있던 수레가 떠올랐다. 목에 나무패를 건 둘. 물지게, 부엌. 그 둘은 제 입으로 댈 이름이 없었다. 제 이름을 아는 사람도 곁에 없었다.

“달래야.”

“응, 강목 아버지.”

달래가 느티나무 뿌리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달래는 아비를 부를 때 꼭 이름을 붙였다. 하루에 몇십 번이었다. 강목은 가끔 그게 성가시다가, 성가신 게 좋아서 웃었다.

“이틀 뒤 단오에 온수각 사람들이 내려온다. 할멈한테 가서 국수 많이 삶으라고 해라.”

*

단오는 절에서 챙기는 날이었다. 주지 각현이 온수각 일꾼들에게 한나절 말미를 주는 것은 오래된 관례였고, 원주도 그것만은 끊지 못했다. 끊으면 주지가 물을 것이고, 주지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길어진다.

오월 초닷새 아침, 온수각 열이 산을 내려왔다. 쇠돌이 따라왔고, 문간도 내려왔다. 서기는 산문까지 따라 나와 섰다. 연희는 서기에게 손을 흔들다가 멈췄다. 산문 안에 선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게 이상하게 목에 걸렸다.

나루는 이미 단오였다. 느티나무 가지에 그네가 매였고, 처녀들이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젖은 머리칼에서 풀 냄새가 났다. 모래톱에서는 사내들이 샅바를 매고 씨름판을 벌였다. 강 위로 볕이 쏟아져 물비늘이 눈을 찔렀다. 방울할멈 국숫집 평상에는 국수 사발이 스무 개 넘게 엎어져 있었다. 할멈 앞치마에는 방울이 둘이었다.

덕쇠가 제일 먼저 씨름판으로 달려갔다. 세 판을 이기고 네 번째 판에서 달래한테 다리를 걸려 넘어졌다. 달래는 그 다리 기술을 강목 아버지한테 배웠다고 자랑했고, 강목은 가르친 적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모래톱이 웃음으로 떠나갔다.

연희는 평상에 앉아 할멈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서기가 밤새 베낀 서른일곱 줄에는 이름과 맡긴 날, 그리고 알 수 있는 만큼 그 사람 마을이 적혀 있었다.

“이걸 다 나눠 드는 거야?” 할멈이 종이를 들여다봤다. 읽지는 못했지만 줄 수를 손가락으로 셌다.

“한 사람이 한 이름씩요. 불러 주고, 잊지 않고요. 잊으면 그 이름은 전보다 얇아져요. 그러니까 아무한테나 부탁 못 해요.”

“죽은 사람 것도 있지?”

“열아홉이요. 돌아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불리면 그 산에 안 매여 있게 돼요. 옥금 언니처럼요.”

할멈이 종이를 평상에 내려놓고 국자를 들었다. 솥뚜껑을 열자 멸치 국물 김이 확 올라 할멈 얼굴을 가렸다.

“나루 사람들아! 오늘 국수는 공짜다! 대신 한 그릇에 이름 하나씩 받아 가라!”

*

처음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공짜라는 말에 평상 앞으로 몰려왔던 사람들이 이름이라는 말에 한 걸음씩 물러섰다. 남의 이름을 평생 외워 불러야 한다는 게 국수 한 그릇 값으로는 무거웠다. 그런데 차돌이 모래톱 저쪽에서 걸어왔다. 밤골 사람 셋을 데리고였다. 차돌은 평상 앞에 서서 제 이름을 댔다. 차돌이오, 밤골 김 서방네 둘째요. 그러고는 연희가 든 종이를 가리켰다.

“거기 스물여덟째 줄, 우리 밤골 사람이오. 삼촌뻘이오. 열두 해 전에 온수각 갔다가 이름 못 받아 나와서 개경 어느 댁으로 갔다고만 들었소. 그 이름은 내가 들겠소.”

차돌이 국수를 받았다. 그다음은 달래였다. 달래는 아직 아이라 할멈이 못 든다고 했는데, 달래가 강목 아버지 이름도 드는데 하나 더 못 들 것이 뭐냐고 따졌다. 할멈은 졌다. 셋째는 강목이었고, 넷째는 쌀 되는 집 안주인이었다. 다섯째부터는 줄이 생겼다.

온수각 사람들이 한 사람씩 짝이 되었다. 나루 사람이 이름을 하나 받아 가면, 온수각 사람 하나가 그 나루 사람 이름을 외웠다. 셈 노인이 그 짝을 공책 없이 머리로 짰다. 서로 든다. 한쪽이 잊으면 한쪽이 얇아진다. 그러니 둘 다 잊지 않는다.

큰수건 분이의 짝은 나루에서 제일 말 많은 뱃사공 마누라였다. 둘은 이름을 주고받자마자 서로 제 영감 흉을 보기 시작했고, 국수가 불어 터질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셈 노인이 그 둘을 떼어 놓으려다 포기했다. 둘이서 이름을 하도 불러 대서 오늘 안에 백 번은 넘겠다고 했다. 작은수건 향이의 짝은 달래였다. 달래가 향이 이름을 받아 가자 향이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달래가 언니는 이름이 향기라서 향이냐고 묻자, 향이는 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저도 몰랐다.

덕쇠는 씨름판에서 넘어진 모래를 털지도 않고 와서 국수 두 그릇을 받았다. 이름도 둘을 받겠다고 했다. 할멈이 한 그릇에 하나라고 하자 덕쇠는 두 그릇을 먹었으니 둘이라고 우겼다. 셈 노인이 그건 셈이 맞다고 거들었다. 덕쇠는 이름 둘을 받아 입속으로 번갈아 굴리다가 국수를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이름 없이 먹겠다고 했다.

그때 느티나무 아래로 가마가 들어왔다. 마종이었다. 원주 탁문경이 곁에 걸었다. 쇠돌이 두 사람을 보고 어깨를 움츠렸다.

“단오에 국수 잔치를 하는구먼.” 마종이 평상 앞에 섰다. 부채로 종이를 툭 쳤다. “이게 뭐요?”

“온수각 장부 이름이오.” 강목이 대패를 든 채 앞으로 나섰다. “이 나루가 나눠 드오.”

마종이 웃었다. 이번에는 목소리를 높였다. 나루 사람들 모두가 들으라고.

“잘 들으시오. 도리나루 사람들이 온수각 짐을 져서 먹고사는 걸 아오. 절 곡식 배도 이 나루 배를 쓰고, 시중 어른 댁 소금 배도 이 나루에 대오. 원주 어른이 짐일을 다른 나루로 돌리면, 시중 어른 댁 배가 다른 나루에 대면, 여기 마흔 채가 올가을을 어찌 넘기겠소?” 마종이 종이를 부채 끝으로 집어 올렸다. “이름 하나에 국수 한 그릇이면 싸다 싶겠지. 짐일 한 해를 걸어도 싸겠소?”

평상 앞 줄이 흔들렸다. 국수 그릇을 든 손 몇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쌀 되는 집 안주인이 제 남편 옷자락을 잡았다. 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말이 거짓이 아니라서 더 무거웠다. 나루는 온수각에 기대 살았다.

방울할멈이 국자로 솥 가장자리를 쨍 쳤다. 방울 둘이 같이 울렸다.

“집사 양반, 우리 딸이 그 산에서 죽었소. 원주가 밀어서.”

느티나무 아래가 얼어붙었다. 탁문경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가 돌아왔다. 원주는 웃었다.

“할멈이 슬픔에 말을 지어내는구먼.”

“지어낸 말인지는 도감에 가서 가리지.” 할멈이 국자를 내리지 않았다. “짐일을 끊든 배를 돌리든 맘대로 해. 나는 이 국수 공짜로 계속 삶을 거야. 짐일 끊겨서 굶는 집은 여기 와서 먹어. 그래도 굶으면 그땐 나를 욕해.”

강목이 할멈 곁에 섰다. 차돌이 강목 곁에 섰다. 밤골 사람 셋이 그 곁에 섰다. 달래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섰다. 연희가 섰고, 온수각 열이 섰다. 문간이 마지막으로 섰다. 쇠돌은 원주 뒤에서 이쪽을 보다가, 손가락을 접다가, 그만두고 제 발을 내려다봤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줄 선 사람이 스물이 넘어 제 셈으로는 못 세는 수였다.

“쇠돌아.” 방울할멈이 불렀다. 쇠돌이 흠칫했다. 할멈이 쇠돌 이름을 부른 건 처음이었다. 국숫값을 떼먹을 때도 할멈은 그냥 자네라고만 했다. “자네도 한 그릇 하겠나?”

쇠돌이 원주 눈치를 봤다. 원주는 쇠돌을 보지 않았다. 쇠돌은 한참 서 있다가 평상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열 넘게는 못 외우오.”

“하나만 받아.”

쇠돌은 그릇을 받았다. 연희가 종이를 짚었다. 서른일곱 줄 가운데 점이 찍힌 일곱 줄 하나였다. 사 년 전, 수레에 태운 둘 가운데 하나였다. 쇠돌은 그 이름을 입속으로 세 번 굴렸다. 손가락은 접지 않았다.

마종은 그 줄을 한참 봤다. 그러고는 부채로 종이를 평상에 도로 떨어뜨렸다.

“도감이 유월에 이 고을을 돈다지. 이름 없는 사람은 도감도 못 푸오. 시중 어른 댁 문서에는 별칭만 있소. 별칭으로 적힌 사람이 제 이름을 어찌 대겠소?” 마종이 가마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옹기장이 딸, 송골에 아비가 있다지. 그 아비 빚문서도 내가 쥐고 있소.”

*

해 질 녘, 연희는 산길을 올랐다. 발이 저절로 빨라졌다. 셈 노인이 곁에서 헉헉대며 손가락을 접었다.

“마흔하나요. 이름을 받아 간 사람. 서른일곱 이름에 마흔하나가 붙었소. 둘이 든 이름이 넷이오.”

“영감님, 그 와중에 다 세셨어요?”

“세면 덜 무섭다니까. 아궁이도 세 보오. 오늘 몇 번 웃었는지.”

산문에 서기가 서 있었다. 한나절 내내 거기 서 있었던 것 같았다. 초록 유리 등이 아직 켜지기 전이라 저물녘 볕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닿아 있었고,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장부실 밖에서 볕을 한나절 받은 얼굴은 연희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서기가 장부를 들고 있었다. 뒤쪽 묶음을 펼쳐 보였다. 서른일곱 줄 가운데 여섯 줄이 잿빛이었다. 옥금의 줄과 강목의 줄까지 치면 여덟이었다.

“오늘 여섯이 옅어졌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 셋, 돌아가신 분 셋입니다. 살아 있는 셋은 오늘 어딘가에서 제 이름을 불리고 대답한 겁니다.”

“어떻게 알아요? 어디서 대답했는지?”

“모릅니다.” 서기가 장부를 덮었다. “모르는데도 대답한 게 보입니다. 예순한 해 동안 이런 걸 본 건 처음입니다.”

해가 넘어갔다. 연희의 발이 산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서기는 산문 안쪽에, 연희는 문턱에 섰다. 연희는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여기서는 부르면 안 되었다. 서기가 그걸 알아채고 먼저 웃었다. 아주 조금이었는데, 연희는 그 웃음을 산길 반나절보다 오래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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