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20자) · 무석 · 사월 스무닷새

失足

목욕탕 장부의 이름들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문간의 초막은 산문 안쪽 돌기둥에 등을 대고 지은 한 칸짜리였다. 벽은 싸리를 엮어 흙을 바른 것이었고, 봄비가 들이치는 쪽은 흙이 떨어져 싸리가 갈비뼈처럼 드러나 있었다. 문간은 그 갈비뼈 틈으로 샘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샘 돌확, 돌확에 비친 하늘, 물지게들이 동이를 담그는 손. 거기까지만 봤다. 돌확 너머 땅이 끊기는 자리부터는 눈을 들지 않았다. 열한 해 가운데 여섯 해를 그렇게 살았다.

사월 스무날 새벽, 문간은 여느 때처럼 산문 널문의 빗장을 벗겼다. 빗장 나무가 손바닥에 닿는 자리가 반들반들했다. 열한 해 동안 같은 손이 같은 자리를 잡아서였다. 빗장을 벽에 세워 두고 초막으로 돌아서는데 샘가에서 소리가 났다.

“말순아.”

“오냐, 덕쇠야.”

닷새 전부터 새벽마다 나는 소리였다. 샘가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고는 물동이를 지고 올라오면 산문 문턱에서 입을 꼭 다물었다. 문간은 그 얼굴들을 보았다. 산문을 넘을 때 입술을 앙다무는 얼굴들이 어딘가 아이 같았다. 곰보지게, 아니, 차돌이 나간 뒤로 소리는 더 커졌다. 원주는 그 소리를 막지 못했다. 산문 밖에서 부르는 걸 막을 계는 원주 제 입으로 만든 적이 없었다.

문간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초막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앉아서 제 이름이 뭐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첫 소리가 무엇이었는지도 없었다. 열한 해 전에 맡긴 이름은 여덟 해 전에 돌려받지 못했다. 그리고 여섯 해 전에는 그걸 돌려받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

여섯 해 전, 경자년 칠월 열여드레 해 질 녘이었다.

그해 물지게에 여자가 하나 있었다. 스물하나였고 삼 년째였다. 온수각에서 여자가 물지게를 지는 일은 드물었는데, 그 여자는 수건 자리가 비었을 때도 안 옮겼다. 물지게는 날마다 산문 밖을 나가니까, 나가면 하늘이 넓으니까. 그렇게 말하던 여자였다. 동이를 지고 올라오면서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없고 가락만 있는 노래였다. 산문 문턱을 넘을 때만 노래를 그쳤다.

그날 그 여자는 저녁 물을 길으러 샘에 내려가면서 품에 종이를 한 장 넣고 있었다. 절에 탁발하러 온 떠돌이 중이 여자 부탁을 듣고 써 준 종이였다. 여자는 제 이름을 한참 걸려 떠올렸고, 떠올린 두 자를 중에게 불러 주었다. 중이 그 아래에 여자 어미의 이름과 나루 국숫집 자리를 적었다. 여자는 그 종이를 쉬는 날 나루에 들고 가 어미에게 주려 했다. 어미가 읽을 줄 몰라도 누구든 읽어 주면 된다고 했다. 어미가 한 번만 제 이름을 불러 주면 된다고 했다.

문간은 그 얘기를 여자에게서 들었다. 여자가 문간에게만 말했다. 이름 없는 늙은이가 말을 옮길 데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날 원주도 그 얘기를 들었다.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문간은 끝내 몰랐다.

해가 등성이에 반쯤 먹혔을 때 원주가 샘으로 내려갔다. 문간은 산문 기둥 곁에서 봤다. 원주가 손을 내밀었다.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원주가 한 번 더 손을 내밀었고, 여자는 종이를 품에 누르고 뒷걸음쳤다. 뒤는 돌확이었고, 돌확 너머는 벼랑이었다. 원주가 여자 어깨를 밀었다. 한 번이었다.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종이가 바람에 날려 샘물 위에 떨어졌다.

그것이 전부였다. 문간이 본 것은 그것이 전부였고, 여섯 해 동안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새로 보지 않았다.

원주는 돌확에 뜬 종이를 건져 먹이 번진 것을 확인하고 제 소매에 넣었다. 그러고는 산문으로 올라와 문간 앞에 섰다. 해가 막 넘어가 문간의 발이 산 쪽으로 저릿했다. 기한은 끝났는데 매임만은 남은 것처럼 그날따라 발이 무거웠다.

“물 길으러 갔다가 발을 헛디뎠소. 봤지?”

문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네 기한은 이태 전에 끝났지. 이름은 안 돌아왔고. 이름 없는 사람 말을 관아에서 누가 받아 주겠소? 여기 있으시오. 밥은 주겠소. 산문도 자네한테 맡기겠소.”

이튿날 원주는 쌀 두 섬과 삼베 한 필을 지고 나루로 내려갔다. 장부 그 여자 줄, 그만둔 날 칸에는 날짜 대신 失足 두 자를 적게 했다. 서기가 적었다. 서기는 붓을 들고 원주 얼굴을 한 번 보았고, 적었다.

문간은 그 뒤로 샘 너머를 보지 않았다.

*

사월 스무이틀 저녁, 아궁이가 초막 문턱에 섰다. 손에 장부 한 장을 베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서기가 베껴 준 모양이었다.

“영감님.”

“아궁이는 이제 장부도 들고 다니오?”

“이 줄 하나만요.” 아궁이가 종이를 내밀었다. “옥금. 경자년 칠월 열여드레. 失足. 그리고 나루 국숫집 할머니가 방울을 셋 달고 다녀요. 하나는 딸 거래요. 딸이 여섯 해 전 여름에 샘에서 발을 헛디뎠대요. 원주 어른이 쌀 두 섬하고 삼베 한 필 들고 와서 그러셨대요.”

문간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옥금, 여섯 해 동안 속으로도 안 부른 두 음절이 남의 입에서 나와 초막 안에 떨어졌다.

“나한테 왜 가져오오?”

“영감님은 샘 너머를 안 보세요. 한 번도요. 저 여기 온 첫날부터 봤어요.”

“늙으면 벼랑이 무섭소.”

“물지게들은 날마다 벼랑 곁에서 물을 길어요. 영감님은 산문에서 스무 걸음 떨어져 계시는데 그 스무 걸음을 못 보세요.”

문간의 손이 무릎 위에서 쥐어졌다 펴졌다. 아궁이는 문턱을 넘지 않고 버텼다. 문간은 일어섰다. 초막 천장이 낮아서 허리를 다 펴지 못했다.

“이름 없는 사람 말은 말이 아니오. 봤다 한들 누가 받아 주오? 원주가 그랬소. 틀린 말도 아니었소.”

“그럼 이름을 찾으시면 되잖아요. 장부에 있잖아요. 샘에서 부르면 되잖아요.”

“찾으면 말해야 하오.” 문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이름이 돌아오면 나는 여섯 해 입 다문 놈이 되오. 그 애 어미 국수를 여섯 해 동안 쉬는 날마다 먹으러 간 놈이 되오. 국숫값을 제대로 낸 놈이 되오. 그게 나요. 이름 없이 산문이나 지키는 게 나한테는 차라리 낫소.”

아궁이가 한참 문간을 보았다. 그러고는 종이를 초막 문턱에 내려놓았다.

“방울 소리 들으러 가시는 거였어요? 국수 드시러 가신 게 아니라?”

문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궁이는 돌아갔다. 문턱의 종이가 저녁 바람에 한 번 들썩였다가 가라앉았다.

*

사월 스무닷새, 문간은 해가 뜨기 전에 산을 내려갔다. 쉬는 날이 아니었다. 산문 빗장은 벗겨 두고 갔다. 기둥에 기대 졸던 쇠돌이 눈을 뜨고 나무토막을 집었다가, 나가는 사람이 문간인 걸 보고 칼을 멈췄다. 문간은 세는 사람 쪽이지 세이는 사람 쪽이 아니었다. 쇠돌은 금을 반만 그었다. 진달래는 다 지고 산비탈에 철쭉이 올라와 있었다. 발밑 흙이 말라 짚신 바닥에서 버석거렸다. 여섯 해 동안 쉬는 날마다 밟은 길인데 처음 밟는 것처럼 발이 헛나갔다.

국숫집 느티나무 아래서 방울 소리가 났다. 할멈이 솥에 멸치를 넣고 있었다. 비린 김이 느티나무 잎 사이로 올라갔다.

“영감, 쉬는 날도 아닌데 웬일이오? 국수는 아직 안 삶았는데.”

문간은 평상에 앉지 않았다. 느티나무 둥치 곁에 섰다. 한참 서 있다가 칠월 열여드레 해 질 녘의 샘과 종이와 원주의 손을 말했고, 한 번이었다는 것과 그 애가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까지 말했다. 문간은 짧게 말했다. 길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할멈의 손에서 국자가 미끄러졌다. 솥 가장자리에 부딪혀 쨍 소리가 났다. 할멈은 국자를 줍지 않았다. 앞치마 끈을 쥐었다. 방울 셋이 할멈 손 안에서 소리 없이 눌렸다.

“걔가 그 종이에 뭐라고 썼답디까?”

“제 이름하고 어미 이름하고, 여기 자리요.”

“나한테 오려고.”

“한 번만 불러 달라고.”

할멈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솥에서 멸치 국물이 끓어 넘쳤다. 넘친 국물이 아궁이 불에 떨어져 치익 소리를 내며 김이 올랐다. 할멈은 불을 끄지도 않았다.

“걔는 목청이 커서 산에서 노래하면 여기까지 들렸어. 가사도 모르는 노래를. 방울을 달아 놔도 어디 있는지 다 알았지.” 할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섯 해 동안 나는 걔가 발을 헛디딘 줄 알았어. 칠칠맞다고, 그 큰 발로 뭘 헛디뎠냐고, 제사 때마다 그 소리를 했어. 그 애한테.”

“거기서 걔가 어떻게 지냈소? 밥은 먹었소?”

문간은 그 물음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여자는 누룽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엌어멈이 누룽지를 주면 늘 문간 초막 문턱에 두고 갔다. 영감은 이가 성하니 드시라고 했다. 물동이는 늘 남들보다 한 바가지씩 더 채웠다. 가득 채워야 올라올 때 출렁이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샘에 내려가 빗방울이 돌확에 떨어지는 수를 셌다. 셈 영감보다 빨리 세겠다고 우기다가 둘이 싸웠고, 싸우고 나면 둘 다 수를 잊어버렸다.

“이름은 안 불렀소. 여기 계가 그래서.” 문간이 말했다. “다들 물지게라고 불렀소. 나도 그랬소.”

할멈이 웃었다. 웃는 얼굴 위로 물이 흘렀다.

“걔 어릴 때 별명이 뭐였는지 아오? 방울이야. 방울을 달아서가 아니라 입이 방울 같아서. 쉬지를 않아서.”

할멈이 앞치마에서 방울 하나를 뜯었다.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영감, 나 좀 샘에 데려가 줘.”

*

해가 한가운데 떴을 때 둘은 샘가에 섰다. 할멈은 돌확 너머 벼랑 끝까지 갔다. 문간은 여섯 해 만에 거기를 봤다. 벼랑 아래 계곡 물이 흰 거품을 내며 바위를 돌았다. 그뿐이었다. 거기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문간의 무릎을 꺾었다. 그는 돌확 곁에 주저앉았다.

“옥금아.”

할멈이 불렀다. 계곡이 그 소리를 받아 한 번 더 불렀다.

“옥금아. 발 헛디딘 거 아니지. 엄마가 여섯 해 동안 모르고 욕했다. 옥금아.”

할멈이 방울을 벼랑 아래로 던졌다. 방울은 물소리에 묻혀 떨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 시각, 장부실에서 서기가 뒤쪽 묶음을 펼치고 있었다는 것을 문간은 저녁에야 들었다. 옥금이라는 두 자가 먹빛을 잃고 잿빛이 되었다고 했다. 죽은 사람 이름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더는 이 산에 매여 있지 않게 되었다.

해 질 녘에 문간이 산문으로 돌아오자 원주가 기둥 곁에 서 있었다.

“나루에는 뭐 하러 갔소?”

“국수 먹으러 갔소.”

“쉬는 날도 아닌데?”

원주의 눈이 문간 짚신에 묻은 나루 모래를 훑었다. 문간은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원주 곁을 지나 초막으로 들어갔다. 문턱에 놓였던 베낀 종이를 집어 품에 넣었다. 할멈이 샘가에서 한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영감 이름은 내가 찾아 줄 테니, 그날 본 걸 관아에 가서 말해. 문간은 대답하지 않았었다.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그 말은 여섯 해 동안 들어 본 어떤 말보다 무거웠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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