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06자) · 연희 · 사월 열사흘
나무패
이름을 맡기면 일자리를 주는 목욕탕 · 백해원
사월 초엿새 새벽, 연희는 열두 아궁이를 한 바퀴 돌며 불을 넣다가 셈을 다시 했다. 보름까지 아흐레였다. 곰보지게의 이름을 산문 밖에서 불러 줄 사람이 하나 있어야 했다. 나루에는 못 간다. 쇠돌이 산문에 서 있다. 강목을 올라오라 할 수도 없다. 쇠돌이 사 년 전처럼 멱살부터 잡을 것이다.
아궁이 속에서 소나무 옹이가 터졌다. 불티가 튀어 연희 손등에 앉았다가 꺼졌다. 연희는 그 자국을 문지르다가 손을 멈췄다. 산문 밖에 사람이 있었다. 날마다 예순 번씩. 샘에서 물을 긷는 물지게들, 수건을 헹구러 내려가는 수건들, 탕 물 온도를 보려고 찬물을 뜨러 가는 찬탕. 온수각 사람들은 낮 동안 산문 밖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날 밤 연희는 장부실에 가서 물었다.
“산문 밖에서 부르면 밖으로 기운다고 하셨죠? 그 부르는 사람이 밤에 산문 안에서 자는 사람이어도요?”
단향이 붓을 놓았다.
“어디서 부르느냐입니다. 사는 데가 아니라 부를 때 서 있는 데입니다.”
“그럼 강목 아저씨가 제 부름으로는 안 돌아왔던 건요?”
“아궁이께서 그날 한 번 부르셨습니다. 달래는 그 뒤로 하루에도 몇십 번 부를 겁니다. 이름은 많이 불리는 쪽으로 기웁니다. 그리고 대답해야 옵니다. 강목은 달래한테 대답했습니다.”
연희는 손가락을 접었다. 쇠돌처럼 굴었다는 걸 알고 얼른 폈다.
“그럼 우리끼리 샘에서 부르면 돼요. 안에서는 한 번도 안 부르고, 샘에서만요.”
단향은 한참 연희를 보았다. 그 눈에 무언가가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제 것도 한참 걸려야 떠오릅니다.”
“서기님이 아시잖아요. 장부에 다 있잖아요.”
*
열둘을 모으는 데 이틀이 걸렸다. 원주가 잠든 뒤, 아궁이채 맨 끝 열둘째 아궁이 앞이었다. 불은 사그라들어 숯이 벌겋게 앉아 있었고, 사람들 얼굴이 아래서부터 붉게 비쳤다. 흙벽에 밴 연기 냄새가 콧속을 따갑게 했고, 숯이 식으면서 이따금 틱,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대화 사이를 끊었다. 문간은 오지 않았다. 단향도 오지 않았다. 열이 모였다.
연희가 말을 마치자 한동안 숯 소리만 났다.
“그러니까 샘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자는 거지?” 큰수건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의 절반이었다. “원주 귀에 들어가면 우리 다 개동이처럼 굶어. 굶는 거야 괜찮아. 한 섬씩 더 적히면 어째? 나는 벌써 기한을 두 번 넘겼어.”
“한 섬이면 두 달이오.” 셈 노인이 말했다. “열이 한 섬씩이면 스무 달. 스무 달이면 아궁이 장작이 삼천이백 단쯤이오.”
“영감님, 그걸 지금 왜 세요?”
“세면 무서운 게 덜하오.”
큰지게가 손을 들었다.
“나는 하겠소. 그런데 이름 부를 때 떡 같은 거 주면 안 되오?”
“떡이 어디 있어요?”
“없으니까 묻는 거지.”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나 알고 싶소.” 셈 노인이 제 무릎을 짚었다. “스물두 해 전에 들어올 때 석 달이라 했소. 밥값, 옷값, 약값이 붙어서 스물두 해가 됐소. 그동안 나간 사람을 서른 넘게 셌는데, 산문 밖에서 누가 그 사람들을 부르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었소. 한 번도.”
“그러니까 이번에 들어 보시자고요.”
“내가 부르는 소리를?”
“영감님 부르는 소리도요.”
노인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무엇을 세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큰수건이 콧방귀를 뀌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우리 영감이 노름으로 날린 쌀 때문에 왔어. 두 번째 기한 넘길 때 알았지. 그 영감이 이제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도 기억이 안 나. 여보였나, 어이였나.” 큰수건이 제 앞치마 끈을 배배 꼬았다. “근데 이상하지. 그 영감이 나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드는데, 누가 불러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날마다 들어.”
작은수건이 말없이 연희 옆으로 와 앉았다. 그러고는 연희 소매를 잡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곰보지게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숯만 봤다.
“내 이름을 알면 뭐가 달라지오? 마을 이름도 모르는데.”
“이름이 돌아오면 마을도 돌아올 거예요. 이름은 혼자 안 와요. 강목 아저씨는 제 이름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가 왜 그 이름을 지었는지까지 줄줄 댔어요.”
곰보지게가 고개를 들었다. 숯불에 마마 자국이 하나하나 그늘을 지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문간이 서 있었다. 열 사람이 한꺼번에 숨을 멈췄다.
“다 들었소.” 문간이 문턱을 넘지 않고 말했다. “나는 빠지오.”
“영감님 이름도 장부에 있어요.”
“있겠지. 열한 해 전에 맡겼으니.” 문간이 연희를 봤다. 그 눈이 연희를 지나 벽 너머, 산문 밖 어딘가를 봤다. “나는 여덟 해 전에 기한이 끝났소. 이름은 안 돌아왔고. 그래도 나는 여기 있소. 못 나가는 게 아니라 안 나가는 거요. 열한 해 살았으면 여기가 집이오. 누가 내 이름을 샘에서 불러 대면 나는 집을 잃소.”
“그럼 다른 사람들은 불러도 되죠?”
문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마디 보탰다.
“샘은 벼랑 곁이오. 발밑 조심하시오.”
문이 닫혔다. 연희는 그 말이 겁을 주는 말인지 걱정하는 말인지 그날 밤 내내 가늠하지 못했다.
*
나무패는 큰지게가 만들었다. 장작 패는 자리에서 소나무 옹이 없는 토막을 골라 손바닥만 하게 켜고 대패 대신 낫으로 겉을 밀었다. 열 개였다. 송진 냄새가 진하게 났다.
사월 열하룻날 밤, 단향은 장부실 등잔 앞에 앉아 패에 이름을 적었다. 연희는 문가에서 망을 봤다. 붓이 소나무 결을 따라 미끄러졌고, 먹이 결에 빨려 들어가 글자 가장자리가 가늘게 번졌다. 단향은 장부의 이름 하나를 읽고, 입을 다문 채 패에 옮겼다. 소리는 한 번도 내지 않았다. 읽는 것은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부르는 것이 된다.
일곱 개째를 쓰는데 복도에서 등잔 불빛이 흔들렸다. 원주였다. 연희가 문가에서 발을 굴렀다. 쇠돌이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쇠돌 흉내였다.
단향은 쓰다 만 패를 먹 그릇 곁 수건 광주리에 쓸어 넣었다. 탁문경이 문턱을 넘었을 때 책상 위에는 글자 없는 패 셋과 붓만 남아 있었다.
“이게 뭐요?”
“신발 패입니다.” 단향이 붓을 닦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똑같았다. “봄 들어 탕 손님이 늘었습니다. 신이 섞인다고 탕지기들이 성화입니다. 패에 번호를 써서 신마다 걸어 두려 합니다.”
원주가 빈 패 하나를 집어 뒤집어 봤다. 앞도 뒤도 비어 있었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송진 냄새밖에 없었다.
“번호는 왜 밤에 쓰오?”
“낮에는 원주 어른 장부를 씁니다.”
탁문경이 단향을 오래 봤다. 광주리 쪽으로 눈이 한 번 갔다. 연희는 문가에서 숨을 멈췄다. 광주리 위에는 삶아서 갠 수건이 얹혀 있었고, 수건 끝에 막 쓴 먹이 한 점 배어 나오고 있었다.
“서기가 부지런해졌구먼.” 원주가 패를 내려놓았다. “번호는 스물까지만 쓰시오. 쇠돌이 그 위로는 못 세오.”
등잔 불빛이 멀어졌다. 연희는 문설주에 등을 붙이고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단향은 광주리에서 패를 꺼내 먹 번진 한 점을 소매로 닦았다.
“거짓말하셨어요.”
“예순한 해 만입니다.” 단향이 여덟째 패에 붓을 댔다.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그게 좀 무섭습니다.”
열 개를 다 쓰고 나서 단향은 차례를 정했다. 둥글게 앉을 때 누가 누구 오른쪽에 앉을지였다. 연희가 곁에서 들여다보았다. 곰보지게의 이름이 적힌 패가 개동 자리에 놓였다.
“막내지게가 들어요?”
“처음 물은 사람이 듭니다. 형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가 사흘 굶은 아이입니다. 그 아이 몫입니다.” 단향이 다른 패 하나를 연희 자리 왼쪽, 작은수건 자리에 놓았다. “아궁이 이름은 작은수건이 듭니다. 아궁이는 셈 영감 이름을 듭니다.”
“왜 작은수건이에요?”
“제일 말이 없는 사람이 제일 오래 기억합니다. 말로 안 흘리니까요.”
연희는 그 패를 보았다. 소나무 결 위에 제 이름 두 자가 있었다. 읽을 줄 아는데도 한참 걸려서야 제 것인 줄 알았다. 남의 글씨로 적힌 제 이름은 처음이었다. 붓끝이 마지막 획에서 조금 머뭇거린 자국이 있었다.
“여기 좀 떨리셨네요.”
“등잔이 흔들렸습니다.”
등잔은 흔들리지 않았다. 연희는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대신 단향의 이름은 누가 드느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열 개 가운데 단향의 패는 없었다. 단향은 산문 밖 샘에 서 있어도, 해가 지면 이 방으로 끌려 돌아온다. 예순한 해 동안 안으로 기운 이름이 샘에서 몇 번 불린다고 바로 설 리 없었다. 그걸 둘 다 알았다. 알아서 둘 다 말하지 않았다.
*
사월 열사흘 밤, 열둘째 아궁이 앞에 다시 열이 모였다. 불은 일부러 넣지 않았다. 숯도 식어 어두웠다. 연희는 패 열 개를 품에 안고 한 사람씩 앞으로 가 쥐여 주었다. 누가 누구 이름을 받는지는 단향이 정했다. 둥글게 앉은 차례대로, 제 오른쪽 사람의 이름을 쥐었다. 셈 노인이 정한 방법이었다. 둥글면 끝이 없고, 끝이 없으면 빠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연희와 셈 노인 둘뿐이었다. 그래서 패를 받아도 아무도 거기 적힌 이름을 몰랐다. 안에서는 읽어 주지 않기로 했다. 내일 해가 뜨면 샘에서, 산문 밖에서 연희가 읽는다. 그때 처음 듣는다.
어둠 속에서 패를 쥔 손들이 보였다. 큰수건은 그렇게 떠들던 입을 다물고 패를 두 손으로 감쌌다. 곰보지게는 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봤다.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소나무 결 위로 먹이 스민 자리가 아주 조금 오목했다. 작은수건은 패를 저고리 섶 안에 넣고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제 이름을 장부에 맡기던 날과 같은 손 모양이었다. 그때는 무언가 빠져나갔고, 지금은 남의 것이 들어와 있었다.
누가 코를 훌쩍였다. 누군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여기서는 묻지 않았다.
“근데 이거 뭘로 만든 거요?” 큰지게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딱, 소리가 났다. “떡은 아니구먼.”
“깨물었어요?”
“이가 하나 흔들리오.”
누가 먼저 웃었는지 몰랐다. 열이 한꺼번에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웃음이 손바닥 사이로 새어 나와 식은 아궁이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연희는 웃다가 눈물이 났다. 웃어서 나는 눈물인지 다른 눈물인지 가를 필요가 없었다.
새벽, 산문에서 쇠돌이 나무토막 밑면에 금을 긋다가 하품을 했다. 연희는 열두 아궁이에 불을 넣으며 품속의 셈 노인 패를 몇 번이나 만져 보았다. 소나무 모서리가 가슴께를 쿡쿡 찔렀는데, 그 찔리는 자리가 이상하게 따뜻했다. 보름이 하루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