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14자)

거짓말 못 하는 막내 주무관

목욕탕 남북 회담 · 모세담

12월 16일 토요일 새벽 여섯 시⁠, 여탕 탕에는 할머니가 셋뿐이었다⁠. 복녀가 맨 안쪽에⁠, 반찬 가게 할머니와 구둣방 할머니가 복녀 옆에 앉았다⁠. 단톡방 공지에 반응을 누르지 않았던 넷 가운데 셋이었다⁠. 노란 바가지 열두 개 중 아홉 개가 엎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옥자는 장갑을 끼고 복녀 등부터 밀었다⁠. 복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등이 묻는 등보다 무거웠다⁠. 세 번 쓸고 두 번 두드리는 동안 복녀가 딱 한 마디를 했다⁠.

“⁠물이 41도네⁠.⁠”

“⁠수요일 아니어도 41도로 했어⁠.⁠”

“⁠잘했다⁠.⁠”

여섯 시 반⁠, 현관 유리문이 열리고 정분이 들어왔다⁠. 뒤로 달순과 나머지 넷이 줄줄이 따라왔다⁠. 목욕 바구니를 든 사람도 있고 빈손인 사람도 있었다⁠. 정분은 신발을 벗고 곧장 여탕 탈의실로 들어와⁠, 옷도 벗지 않고 탕 문 앞을 막았다⁠. 손에는 바구니 대신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옥자야⁠, 나와 봐⁠.⁠”

옥자는 장갑을 낀 채 탕에서 나왔다⁠. 장화에서 물이 흘렀다⁠.

“⁠말도 안 하고 문 닫을라 그랬어⁠?⁠”

“⁠닫는 날 말하려고 했어⁠.⁠”

“⁠닫는 날⁠? 닫는 날 말하면 우리는 그다음 날 어디서 씻어⁠?⁠”

“⁠언니들 일산 찜질방 간다며⁠. 계란 세 개⁠.⁠”

정분의 얼굴이 빨개졌다⁠. 탈의실 거울 속에서 할머니 일곱의 얼굴이 동시에 빨개졌다⁠.

“⁠그건 하루잖아⁠! 하루랑 평생이랑 같아⁠?⁠”

“⁠같지 않으니까 말 못 했어⁠.⁠”

옥자는 장갑을 벗지 않고 평상 끝에 앉았다⁠. 할머니들이 옥자를 둘러쌌다⁠. 옷을 입은 할머니 일곱과 맨몸으로 탕에서 나온 할머니 셋이 한 평상을 둘러쌌다⁠.

“⁠지난달 가스 요금이 육백십만 원이야⁠. 목욕날 사천 원 받아서 열한 명이면 사만 사천 원⁠. 보일러는 1982년에 들인 거라 부속을 파는 데가 없어⁠. 내 무릎은 쇠고⁠. 문 닫고 건물 허물려면 철거비가 억이 넘는대⁠. 그래서 안 허물고 그냥 잠그기로 했어⁠. 재국이가 그러자고 했고⁠, 나도 그러자고 했어⁠.⁠”

“⁠그럼 목욕날 지킨다고 정부랑 싸운 건 뭐야⁠?⁠”

“⁠남은 목욕날 다 지키려고⁠.⁠”

옥자는 손가락을 펴서 셌다⁠. 장갑 낀 손가락이 하나씩 올라갔다⁠.

“⁠16일 오늘⁠, 20일 수요일⁠, 23일 토요일⁠, 27일 수요일⁠, 30일 토요일⁠. 다섯 번 남았어⁠. 다섯 번은 다 하고 닫으려고 했어⁠. 회담 날 하루 빼면 넷이야⁠. 넷이랑 다섯은 달라⁠.⁠”

할머니들이 말이 없었다⁠. 달순이 수건을 접었다 폈다 했다⁠. 정분은 휴대전화를 쥔 손을 내렸다⁠.

“⁠그럼 말을 했어야지⁠. 다섯 번 남았다고⁠.⁠”

“⁠말하면 언니들이 말릴 거고⁠, 말리면 내가 못 닫아⁠.⁠”

정분은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갔다⁠. 혼자 바가지로 물을 끼얹고⁠, 혼자 등을 밀었다⁠. 각질 제거기를 꺼내 등 뒤로 팔을 돌렸지만 어깨뼈 사이에 손이 닿지 않았다⁠. 옥자가 장갑을 끼고 다가가자 정분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내가 밀어⁠.⁠”

서른 해 동안 처음이었다⁠. 옥자는 장갑 낀 손을 허공에 든 채 멈췄다가 내렸다⁠. 정분의 손이 닿지 않는 어깨뼈 사이에 빨간 자국이 남았다⁠.

*

열 시⁠, 카운터 앞에 남기오와 채은이 나란히 왔다⁠. 기오는 어제와 같은 정장이었고 넥타이만 달랐다⁠. 밤새 넥타이를 바꿀 시간만 있었던 얼굴이었다⁠. 채은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서류철을 가슴에 안았다⁠.

“⁠사장님⁠, 새벽에 연락 채널로 북측 통지문이 왔습니다⁠.⁠”

기오가 종이를 카운터에 놓았다⁠. 옥자는 장갑을 벗고 읽었다⁠.

「⁠통일탕이 이달 말 문을 닫는다면 회담 장소의 뜻이 달라진다⁠. 장소를 다시 정하자⁠. 남측의 답을 16일 오후 네 시까지 기다린다⁠.⁠」

“⁠네 시가 왜⁠?⁠”

채은이 대답했다⁠. “⁠판문점 연락 채널은 아침 아홉 시에 열고 오후 네 시에 닫아⁠. 네 시 마감 통화 때 답을 줘야 해⁠.⁠”

옥자는 통지문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어제 기오가 한 말이 오늘 아침 판문점을 넘어갔다⁠.

“⁠비서관이 말해서 이렇게 됐네⁠.⁠”

“⁠예⁠. 제가 말씀드려서 이렇게 됐습니다⁠.⁠”

기오는 피하지 않았다⁠.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그래서 사장님께 제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통일탕을 회담 장소로 보존하는 사업을 정부가 맡겠습니다⁠. 가스 요금 일 년 치와 보일러 교체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신 문을 계속 열어 주십시오⁠.⁠”

옥자는 종이를 읽지 않았다⁠.

“⁠정부 돈으로 열면 정부 목욕탕이지⁠. 할머니들은 정부 목욕탕에서 사천 원 내고 씻어⁠? 일 년 뒤에는⁠?⁠”

“⁠일 년 뒤에는 그때 다시⁠…⁠…⁠.⁠”

“⁠있는 그대로라며⁠. 정부가 보일러 갈아 준 목욕탕이 있는 그대로야⁠?⁠”

기오가 입을 다물었다⁠. 옥자는 종이를 기오에게 밀어 돌려주었다⁠. 기오는 받지 않고 카운터 위에 그대로 두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거절로 듣겠습니다⁠.⁠”

“⁠내일도 거절이야⁠.⁠”

*

열한 시 반⁠, 기오는 휴게실 평상 끝에 채은을 불러 앉혔다⁠. 옥자는 카운터에서 귤을 까며 귀를 열었다⁠. 휴게실과 카운터 사이는 유리 한 장이었다⁠.

“⁠봉 주무관⁠, 네 시 회신 초안입니다⁠. 연락관께 넘겨 주십시오⁠.⁠”

채은이 종이를 받아 읽었다⁠. 읽는 동안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통일탕은 정부 지원으로 회담 이후에도 계속 운영될 예정이다⁠. 회담 장소는 그대로 두기 바란다⁠.⁠」

“⁠비서관님⁠, 사장님은 방금 거절하셨습니다⁠.⁠”

“⁠압니다⁠. ‘⁠예정⁠’이라고 썼습니다⁠. 정부는 지원할 예정이고⁠, 사장님을 계속 설득할 예정입니다⁠. 이 문장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사장님 동의 없는 예정은 거짓말입니다⁠.⁠”

“⁠주무관⁠, 이 한 줄로 회담이 삽니다⁠.⁠”

“⁠이 한 줄이 들키면 다섯 해가 또 갑니다⁠.⁠”

채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데 작아지지 않았다⁠.

“⁠어제 비서관님이 할머니 말씀을 끊고 사실대로 말씀하셨잖아요⁠. 거짓말이 회담 기록에 들어가면 나중에 다 깨진다고⁠, 그래서 끊으신 거잖아요⁠.⁠”

“⁠어제는 사장님이 ‘⁠있다⁠’고 하시려던 겁니다⁠. 오늘 문장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할머니가 지켜야 하는 말이에요⁠.⁠”

기오는 안경을 벗었다⁠. 김도 없는데 알을 닦았다⁠. 닦은 안경을 다시 쓰고 채은을 보았다⁠.

“⁠주무관⁠, 이건 지시입니다⁠.⁠”

채은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찢지 않았다⁠. 반으로 접어 서류철에 넣고⁠, 기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옥자는 귤을 까던 손을 멈췄다⁠. 손녀가 알겠다고 할 때 눈을 내리깔지 않는 것을 처음 보았다⁠. 다섯 살 때 꽃병을 깨고 안 깼다고 우기던 아이는 바닥만 보았다⁠. 지금 아이는 비서관의 눈을 보았다⁠.

*

오후 두 시⁠, 순대국집 학봉이 앞치마 바람으로 뛰어 들어왔다⁠. 장화도 벗지 않고 현관 매트를 넘었다가 옥자의 눈빛에 한 발 물러나 장화를 벗었다⁠.

“⁠누님⁠, 회담이 판문점으로 간다며⁠? 골목에 소문이 다 났어⁠.⁠”

“⁠아직 안 갔어⁠.⁠”

“⁠순대 서른 근은 어떡해⁠? 도축장에 벌써 주문 넣었어⁠. 국밥 삼백 그릇 그릇도 빌렸어⁠.⁠”

“⁠사흘 전에 나보고 목욕날 접으라고 손 든 사람이 누구야⁠?⁠”

학봉이 앞치마 끈을 만지작거렸다⁠.

“⁠그건 회담을 살리자고 든 거지⁠. 회담이 없으면 나도 손 들 데가 없잖아⁠.⁠”

“⁠그럼 이번엔 뭐 하자고⁠?⁠”

“⁠누님이 문을 계속 연다고 한마디만 해 줘⁠. 상인회가 가스 요금 좀 보탤게⁠. 십시일반⁠. 골목 셔터 스물일곱 개가 한 달에 만 원씩⁠.⁠”

“⁠이십칠만 원으로 육백만 원짜리 가스를 데워⁠?⁠”

학봉은 대답하지 못하고 휴대전화 계산기를 두드렸다⁠. 두드리다 말고 계산기를 껐다⁠. 숫자는 학봉 편이 아니었다⁠. 학봉은 순대국 국물 자국이 번진 앞치마를 벗어 손에 둘둘 감고⁠, 카운터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누님⁠, 문 닫지 마⁠. 우리 엄마도 여기서 씻었어⁠. 내가 일곱 살 때까지 여탕 따라 들어왔잖아⁠. 누님이 나 쫓아냈어⁠. 다 컸다고⁠.⁠”

“⁠네가 여덟 살이었어⁠. 거짓말하지 마⁠.⁠”

학봉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다가 콧물이 나서 앞치마로 닦았다⁠. 옥자는 귤 하나를 학봉 손에 쥐여 주었다⁠. 일곱 살 사내아이가 어머니 따라 여탕에 들어오던 겨울을⁠, 옥자는 학봉 말고도 하나 더 알고 있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들은 것이었다⁠.

*

오후 네 시⁠, 채은은 통일탕에 없었다⁠. 판문점 연락사무소에 있었다⁠. 옥자는 네 시 무렵 카운터 텔레비전을 켜 두고 시계만 보았다⁠. 네 시 십오 분⁠, 기오의 휴대전화가 휴게실에서 울렸다⁠. 기오는 전화를 받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듣는 동안 왼손이 넥타이 매듭을 천천히 풀었다⁠.

전화를 끊고 기오가 카운터로 왔다⁠.

“⁠봉 주무관이 연락관께 넘긴 회신이 제 초안이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보냈는데⁠?⁠”

기오는 휴대전화 화면을 옥자에게 보여 주었다⁠. 연락관이 사진으로 찍어 보낸 종이였다⁠. 채은의 글씨체를 옥자는 알았다⁠. 초등학교 일기장 글씨가 서른이 다 되도록 그대로였다⁠.

「⁠통일탕 주인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목욕날은 문을 닫는 날까지 그대로 열린다⁠. 회담 날도 목욕날이다⁠. 남측은 사실만 전한다⁠.⁠」

옥자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남측은 사실만 전한다⁠」에서 눈이 멈췄다⁠.

“⁠지시를 어겼습니다⁠. 봉 주무관은 오늘부로 지원단에서 빠집니다⁠. 월요일에 경위서를 쓰게 됩니다⁠.⁠”

“⁠잘렸다는 거야⁠?⁠”

“⁠지원단에서 빠졌습니다⁠. 통일부 일은 계속합니다⁠.⁠”

“⁠그게 그거지⁠.⁠”

기오는 넥타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쉰 살 비서관의 목이 맨살로 드러났다⁠. 옥자는 드러난 맨 목을 보고 어제 정분이 남자 때수건을 비닐째 끌어안던 손을 떠올렸다⁠. 사람이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는 목이나 손이 먼저 드러났다⁠.

“⁠비서관은 우리 애 원망해⁠?⁠”

“⁠원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북측 답이 오늘 밤에 옵니다⁠.⁠”

*

밤 아홉 시⁠, 채은이 상자 하나를 들고 통일탕에 들어왔다⁠. 상자 안에 머그잔⁠, 탁상 달력⁠, 노트북 충전기⁠, 판문점 기념 볼펜이 들어 있었다⁠. 출입증은 목에 없었다⁠. 채은은 상자를 카운터에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여탕으로 들어갔다⁠.

옥자가 따라 들어갔을 때 채은은 옷을 벗고 탕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녀의 등이 김 속에서 하얗게 떴다⁠. 옥자가 이 등을 마지막으로 민 것은 채은이 고등학교 졸업하던 날이었다⁠.

옥자는 말없이 장갑을 꼈다⁠. 채은 뒤에 쪼그려 앉아 목덜미에서 어깨뼈까지 세 번 쓸고⁠, 두 번 두드렸다⁠.

“⁠할머니⁠, 나 잘렸어⁠.⁠”

“⁠들었어⁠.⁠”

“⁠할머니 때문 아니야⁠. 내가 거짓말을 못 해서야⁠.⁠”

“⁠알아⁠. 다섯 살 때 꽃병 깨고 안 깼다 그랬을 때⁠, 너 바닥만 봤어⁠. 오늘은 안 그랬다며⁠.⁠”

“⁠누가 그래⁠?⁠”

“⁠내가 봤어⁠. 유리 너머로⁠.⁠”

채은이 웃다가 울었다⁠. 웃음과 울음이 김 속에서 같은 소리로 났다⁠. 옥자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등은 우는 사람도 밀어야 했다⁠. 우는 사람 등에서 때가 더 잘 나왔다⁠.

카운터에서 옥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옥자는 장갑을 벗지 않고 탕을 나가 전화를 받았다⁠. 기오였다⁠.

“⁠사장님⁠, 북측 답이 왔습니다⁠. 회담 장소를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되돌리는 것을 검토하겠답니다⁠. 월요일 오후 네 시 마감 통화가 마지막입니다⁠. 그 전에 통일탕이 어떻게 되는지 말해 달랍니다⁠.⁠”

옥자는 전화를 귀에 댄 채 여탕 문을 보았다⁠. 김 너머로 손녀가 혼자 바가지를 들어 등에 물을 끼얹고 있었다⁠. 노란 바가지였다⁠. 탕 옆 벽의 빈 못이 김 속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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