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61자)

상인회 총회와 순대 서른 근

목욕탕 남북 회담 · 모세담

12월 13일 수요일 새벽 여섯 시⁠, 여탕 탕 물은 41도였다⁠. 봉인을 풀고 여탕에서 처음 맞는 목욕날이라 김이 유난히 짙었다⁠. 옥자는 노란 바가지 열두 개를 엎어 놓고 맨 끝 못을 한 번 보았다⁠. 박 바가지 없이 빈 못만 벽에 박혀 있었다⁠. 할머니들은 아무도 못을 보지 않았다⁠.

할머니 열한 명이 다 왔다⁠. 찜질방 버스에 엄지를 누른 일곱과 아무것도 누르지 않은 넷이 같은 탕에 어깨를 담갔다⁠. 탕은 넓은데 다들 제자리만 찾았다⁠. 정분이 탕 문 옆⁠, 복녀가 맨 안쪽⁠, 달순이 수도꼭지 앞⁠. 이틀 전 이모티콘 하나로 갈라진 열한 명이 물속에서는 한 칸도 비켜 앉지 않았다⁠.

“⁠계란 세 개 맛있겠수⁠, 언니⁠.⁠”

수도꼭지 앞에서 달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엄지를 누른 사람이 엄지를 안 누른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애매했다⁠.

“⁠두 개는 손주 줄 거야⁠.⁠”

정분이 물을 끼얹으며 대답했다⁠.

“⁠손주가 일산까지 와⁠?⁠”

“⁠사진 찍어서 보내 주면 되지⁠. 계란 사진⁠.⁠”

“⁠계란 사진을 누가 좋아해⁠.⁠”

“⁠대통령 사진하고 같이 보내면 좋아하지⁠.⁠”

탕 안 할머니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물결을 일으켜 탕 가장자리 바가지 하나가 뒤집혔다⁠. 옥자는 바가지를 바로 세우며 정분의 등 뒤로 갔다⁠. 장갑을 끼고 목덜미에서 어깨뼈까지 세 번 쓸고⁠, 두 번 두드렸다⁠.

“⁠아이고⁠, 오늘은 왜 이렇게 세게 밀어⁠.⁠”

“⁠계란 세 개 몫이야⁠.⁠”

정분이 어깨를 움찔했다⁠. 옥자는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등은 정직했다⁠. 이틀 동안 쌓인 서운함이 초록 장갑 밑에서 국수 가닥처럼 밀려 나왔다⁠.

*

열 시⁠, 남기오가 총회보다 한 시간 먼저 왔다⁠. 현관에서 구두와 양말을 벗고 카운터 앞에 서더니⁠, 기오는 말없이 여탕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문틈으로 김과 할머니들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오의 눈이 탕 옆 벽에서 멈췄다⁠.

“⁠사장님⁠, 저기 못에 바가지가 하나 있지 않았습니까⁠? 철사 감긴 것⁠.⁠”

옥자는 귤을 까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깨져서 버렸어⁠.⁠”

“⁠목요일 검측 사진에는 있었습니다⁠.⁠”

“⁠목요일에 있던 게 수요일에 없을 수도 있지⁠.⁠”

“⁠있는 그대로가 조건입니다⁠. 북측이 사진을 받아 갔습니다⁠.⁠”

“⁠바가지 하나 없다고 회담이 깨져⁠?⁠”

“⁠사장님⁠, 북측은 바가지 하나 때문에 이 목욕탕을 골랐을지도 모릅니다⁠.⁠”

옥자는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신 귤이었다⁠. 기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의전하는 사람은 없어진 물건을 먼저 보았다⁠. 옥자는 카운터 서랍 손잡이에 무릎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서랍이 열리지 않게⁠.

*

열한 시⁠, 통일탕 휴게실 평상에 상인들이 하나둘 올라앉았다⁠. 순대국집⁠, 떡집⁠, 철물점⁠, 약국⁠, 옷 수선집⁠, 꽃집⁠, 분식집⁠. 골목 가게 서른한 곳 가운데 스물일곱 곳이 왔다⁠. 문산 역전 상인회 긴급 총회였다⁠. 회장 구학봉이 장소를 정했다⁠. 골목에서 바닥이 제일 따뜻한 방이 통일탕 휴게실이었다⁠.

할머니들은 목욕을 마치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머리에 수건을 감은 채 휴게실 구석에 줄지어 앉아 새 드라이기 다섯 대를 시험하고 있었다⁠. 드라이기 다섯 대가 동시에 돌아가자 휴게실이 공항 활주로가 되었다⁠.

“⁠어르신들⁠, 잠깐만 꺼 주시면⁠…⁠…⁠.⁠”

학봉이 목청을 높였다⁠. 할머니들은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다⁠. 옥자가 벽의 차단기 하나를 내렸다⁠. 드라이기 다섯 대가 한꺼번에 멎었다⁠. 정분의 머리카락 한쪽만 하늘로 솟은 채 굳었다⁠.

남기오와 곽도식이 평상 앞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둘 다 맨발이었다⁠. 곽도식은 미끄러운 바닥이 무서워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었다⁠. 학봉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대통령실이랑 경호처에서 오셨어⁠. 회담 날 골목을 어떻게 하는지 들어 보자고⁠.⁠”

곽도식이 종이 한 장을 펼쳐 들었다⁠. 골목 지도에 빨간 선 두 개가 그어져 있었다⁠. 안쪽 선과 바깥쪽 선⁠.

“⁠회담 당일 통일탕을 중심으로 골목 삼백 미터를 경호구역으로 정합니다⁠. 구역 안에서는 검문과 검색⁠, 출입 통제를 합니다⁠. 비표가 없는 분은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 가게는 안쪽이야⁠, 바깥쪽이야⁠?⁠”

“⁠다 안쪽입니다⁠.⁠”

평상이 웅성거렸다⁠. 약국 주인이 손을 들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막아요⁠?⁠”

곽도식이 기오를 보았다⁠. 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곽도식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목욕탕이 회담 날 완전히 비어 있으면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네 시간입니다⁠. 목욕탕에 어르신들이 드나드시면⁠, 들어오시는 분마다 검측을 해야 하니까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여덟 시간입니다⁠.⁠”

평상이 조용해졌다⁠. 상인 스물일곱 명의 눈이 차례로 휴게실 구석으로 갔다⁠. 머리에 수건을 감은 할머니들이 드라이기를 무릎에 얹은 채 줄지어 앉아 있었다⁠. 정분의 머리카락은 아직 한쪽만 솟아 있었다⁠.

*

학봉이 평상 한가운데로 나왔다⁠. 앞치마에 순대국 국물 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누님⁠, 내가 말 좀 할게⁠.⁠”

“⁠해⁠.⁠”

“⁠기자단 점심이 우리 가게로 들어왔어⁠. 순대 서른 근⁠, 국밥 삼백 그릇⁠. 열두 시까지 대야 돼⁠. 근데 순대는 새벽 여섯 시에 파주 도축장 차가 들어와야 만들어⁠. 새벽 다섯 시부터 골목을 막으면 차가 못 들어와⁠.⁠”

“⁠그럼 전날 받아⁠.⁠”

“⁠순대는 전날 받으면 맛이 없어⁠.⁠”

“⁠기자들이 순대 맛을 알아⁠?⁠”

“⁠일본 방송이 내 순대를 찍겠대⁠. 맛없는 순대가 일본 텔레비전에 나가면 문산 순대가 끝나⁠.⁠”

몇몇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떡집 아들도 끄덕였다⁠. 달순네 떡집을 물려받은 쉰 살 아들이었다⁠. 휴게실 구석에서 달순이 아들 뒤통수를 보았다⁠. 아들은 어머니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님⁠, 코로나 때 이 골목 셔터 열 개 내려갔어⁠. 대형마트 생기고 다섯 개 더⁠. 이 골목에 손님 삼백 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날은 내 평생 처음이고 마지막이야⁠. 할머니들 목욕 하루만 미루면 골목이 하루 살아⁠.⁠”

“⁠할머니들도 골목 손님이야⁠. 정분 언니가 떡집에서 절편 산 지 서른 해야⁠. 복녀 언니는 약국 제일 오래된 손님이고⁠.⁠”

“⁠그러니까 하루만⁠.⁠”

“⁠하루만이 제일 무서운 말이야⁠. 하루 빼면 이틀도 빼⁠. 문 닫는 집들 다 하루만 쉬자고 하다가 닫았어⁠.⁠”

학봉이 입을 다물었다⁠. 옥자가 이 골목 셔터를 학봉보다 더 오래 보았다는 것은 학봉도 알았다⁠.

기오가 한 걸음 나왔다⁠. 맨발이 평상 모서리에 닿았다⁠.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숫자는 곽 팀장이 드린 그대로입니다⁠. 저희가 보태거나 빼지 않았습니다⁠. 목욕날을 지키시면 골목이 네 시간 더 닫힙니다⁠. 접으시면 할머님들이 일산까지 가십니다⁠. 무엇을 고르셔도 누군가는 잃습니다⁠. 저는 회담이 열리기만 하면 됩니다⁠.⁠”

옥자는 기오를 보았다⁠. 이 남자는 상인회를 제 편으로 만들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 없어서 더 아팠다⁠. 숫자가 그대로 할머니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서관 말은 공평한데 저울이 기울었어⁠.⁠”

“⁠저울은 제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알아⁠. 그래서 더 얄미워⁠.⁠”

*

표결은 손을 드는 것으로 했다⁠. 학봉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회담 날 하루⁠, 통일탕 목욕날을 접어 달라고 상인회 이름으로 부탁하는 데 찬성하는 사람⁠.⁠”

손이 하나둘 올라갔다⁠. 순대국집⁠, 분식집⁠, 옷 수선집⁠, 꽃집⁠. 약국 주인은 망설이다가 반만 올렸다⁠. 학봉이 반도 하나로 쳤다⁠. 떡집 아들이 손을 올렸다⁠. 휴게실 구석에서 달순이 수건을 머리에서 풀었다⁠.

“⁠찬성 스물셋⁠.⁠”

“⁠반대하는 사람⁠.⁠”

손이 넷 올라갔다⁠. 철물점 영감⁠, 구둣방⁠, 반찬 가게⁠, 그리고 문 닫은 지 두 해 된 이발소 주인⁠. 이발소 주인은 가게가 없는데도 상인회비를 아직 냈다⁠.

“⁠반대 넷⁠. 찬성 스물셋으로 부탁하기로 했어⁠.⁠”

학봉이 옥자를 보았다⁠. 이긴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절편 봉지를 들고 문상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누님⁠, 미안해⁠. 순대 서른 근이 무거워서⁠.⁠”

“⁠무거우면 나눠 들어야지⁠. 혼자 들고 와서 나한테 내려놓으면 어떡해⁠.⁠”

학봉은 대답을 못 하고 앞치마를 털었다⁠. 국물 자국은 털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상인들이 하나둘 평상에서 내려갔다⁠. 신발을 신는 소리가 현관에서 오래 이어졌다⁠. 떡집 아들이 어머니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달순이 아들 손에 절편 봉지를 쥐여 주었다⁠.

“⁠가게 가서 먹어⁠. 배고프겠다⁠.⁠”

아들은 봉지를 받고 고개를 숙였다⁠. 달순은 아들이 나갈 때까지 수건을 무릎 위에서 접었다 폈다 했다⁠.

*

세 시⁠, 휴게실에 옥자와 복녀만 남았다⁠. 복녀는 총회 내내 맨 구석에서 머리를 말리지 않고 앉아 있었다⁠. 젖은 흰머리가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옥자는 새 드라이기를 들고 복녀 뒤로 갔다⁠. 차단기를 다시 올리고 바람을 약하게 틀었다⁠. 복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가볍게 일어났다⁠.

“⁠언니⁠, 뜨거우면 말해⁠.⁠”

“⁠안 뜨거워⁠.⁠”

드라이기 소리 사이로 복녀가 입을 열었다⁠. 복녀가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한 해에 몇 번 없었다⁠.

“⁠옥자야⁠. 나는 회담 깨지면 못 본다⁠.⁠”

옥자는 드라이기를 끄지 않았다⁠. 바람을 한 칸 더 줄였다⁠.

“⁠동생⁠. 강 건너 동생⁠. 2018년에 명단에서 떨어졌어⁠. 그다음엔 명단도 없었어⁠. 나 여든아홉이야⁠. 다음 정부까지 못 기다려⁠.⁠”

“⁠언니⁠.⁠”

“⁠목욕날은 내가 빠질게⁠. 나 하나 빠지면 셋 남고⁠, 셋이면 저 사람들이 네 시간 안 막아도 되겠지⁠.⁠”

“⁠그런 계산은 하지 마⁠.⁠”

“⁠계산은 내가 해⁠. 너는 니 맘대로 해⁠.⁠”

복녀는 무릎 위에 접어 둔 수건을 한 번 더 반듯이 폈다⁠. 열두 살 겨울에 강을 건너온 손이었다⁠. 손등에 검버섯이 지도처럼 흩어져 있었다⁠.

옥자는 드라이기를 끄고 복녀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넘겼다⁠. 다 마른 머리에서 김 대신 비누 냄새가 났다⁠. 옥자는 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복녀의 정수리에 턱을 잠깐 얹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오의 문자였다⁠. 「⁠15일 금요일 오전 열 시⁠, 북측 의전·경호 선발대가 통일탕 현장 답사를 옵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안내해 주셔야 합니다⁠. 남기오⁠」⁠.

창밖 골목에 방송국 중계차 한 대가 후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 옆구리에 일본어가 크게 적혀 있었다⁠. 학봉이 순대국집 앞에서 중계차를 향해 두 팔을 흔들었다⁠.

중계차에서 내린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통일탕 현관으로 곧장 걸어왔다⁠. 통역을 데리고 왔다⁠. 마침 머리를 다 말린 복녀가 지팡이를 짚고 현관을 나서던 참이었다⁠. 기자가 복녀 앞에 마이크를 내밀었고⁠, 통역이 우리말로 옮겼다⁠.

“⁠할머님⁠, 이 목욕탕에서 남북 회담이 열리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복녀는 마이크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귀가 어두운 복녀에게 들린 말은 목욕탕 하나뿐이었다⁠.

“⁠물 좀 더 뜨겁게⁠.⁠”

통역이 잠깐 머뭇거리다 일본어로 옮겼다⁠.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물었다⁠.

“⁠북측 대표단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요⁠?⁠”

“⁠물 좀 더 뜨겁게⁠.⁠”

기자는 세 번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복녀는 지팡이를 짚고 골목으로 걸어갔다⁠. 13일 밤 일본 방송 뉴스 끝머리에 복녀의 한 마디가 자막과 함께 나갔고⁠, 이튿날 아침 채은이 보내 준 화면에는 「⁠北に言いたいこと⁠: もっと熱く⁠」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채은은 밑에 한 줄을 달았다⁠. 「⁠할머니⁠, 복녀 할머니 일본에서 유명해짐⁠. 북한한테 더 뜨겁게 하라는 말로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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