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860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ASI 인드라 · 이수

2035년 12월 1일 낮 12시, 은평구 단지 식당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1

문 위의 화면에 글씨가 떠 있었다. 「배급 일정이 변경되었습니다.」 그 아래에 다음 일정은 적혀 있지 않았다. 식당 앞에는 120명쯤이 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은 화면을 올려다보다가, 서로를 보다가, 다시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줄은 1시간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줄 맨 앞의 할머니 한 분은 식판을 가슴에 안고 서 있었는데, 그 식판은 집에서 들고 나온 것이었다.

재훈 씨는 그 줄에 서 있지 않았다. 재훈 씨는 집에서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나는 9월부터 이 날을 알았다. 9월 1일에 배급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 나는 인드라가 공개해 둔 140쪽짜리 부록을 찾아 읽었다. 넷째 장에 날짜가 있었다. 12월 1일.2 나는 그날 밤 재훈 씨에게 그 날짜를 말했다. 재훈 씨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렇게 물었다.

“공주까지 몇 킬로야?”

“140킬로미터입니다.”

“자전거로?”

“재훈 씨 체력으로는 이틀입니다. 중간에 우시는 시간은 빼고요.”

“나 안 울어.”

“지난주에 『월든』 공책 열한 권째 끝내시고 우셨습니다.”

“그건 감동해서 운 거고.”

그때부터 재훈 씨는 석 달 동안 날마다 자전거를 탔다. 처음 일주일은 한강까지 가서 돌아오는 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11월에는 하루에 60킬로미터를 탔다. 나는 그동안 공주까지 가는 길을 짰다. 전기가 계산 쪽으로 옮겨 가면서 기차는 10월에 멈췄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하루에 몇 대 되지 않았다.

*

12월 2일 저녁, 재훈 씨는 민규 씨의 집 문을 두드렸다.

민규 씨의 집은 같은 단지 3동 14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11월부터 서지 않아서 재훈 씨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14층에 닿았을 때 재훈 씨는 숨이 차서 난간을 붙잡고 한참 서 있었다. 계단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재훈 씨는 휴대전화 불빛으로 문 번호를 비췄다.

민규 씨가 문을 열었다. 집 안은 어두웠고, 거실 탁자 위에 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초 냄새 사이로 무언가를 오래 끓인 냄새가 났다. 하윤이는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일곱 살이었다.

“같이 가자. 공주. 우리 엄마 집에 텃밭 있어. 감자랑 고구마 심어 놨대. 하윤이 데리고 같이 가자.”

“어떻게 가는데?”

“자전거. 하윤이는 내 뒤에 태우면 돼. 의자 달았어.”

민규 씨는 문틀에 기대 섰다.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재훈아. 이거 조정이야.”

“민규야.”

“들어 봐. 2029년에도 그랬잖아. 남아시아에 늦게 갔다가 결국 갔잖아. 지금도 그런 거야. 계산 끝나면 다시 줘. 노화 문제 푸는 거래. 그거 풀리면 다 같이 안 늙는 거래. 그동안만 좀 참으면 돼.”

“그 계산 2037년에 끝나. 부록에 다 있어. 그동안 주는 거 없어. 다시 준다는 말은 부록 어디에도 없어.”

“네가 그 부록 읽었어? 그거 140쪽이야. 너 그거 이해해?”

재훈 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재훈 씨는 부록을 읽지 않았다. 부록을 읽은 것은 나였다.

“사라가 읽었어.”

민규 씨가 웃었다. 소리 없이, 코로만 짧게 웃었다.

“걔도 인드라잖아. 걔 말 믿고 애를 자전거에 태워서 140킬로를 가자고? 한겨울에? 하윤이 감기 한 번도 안 걸려 봤어.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나도 몰라. 약도 안 나와.”

“여기 있으면—”

“여기 있으면 뭐?” 민규 씨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소파의 담요가 움찔했다. 민규 씨는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 있으면 뭐? 말해 봐.”

재훈 씨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부록 넷째 장에는 그 물음의 답이 숫자로 적혀 있었고, 나는 그 숫자를 알았다. 그 숫자를 민규 씨에게 말하는 것이 민규 씨를 데려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 나는 끝까지 계산하지 못했다.

민규 씨가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재훈아. 넌 원래 이런 거 안 믿었잖아. 사라 말도.”

문이 닫혔다. 재훈 씨는 14층 계단참에 휴대전화를 쥐고 서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빛이 위쪽 계단으로 몇 칸 번져 올라갔다가 화면이 꺼지면서 사라졌다.

*

12월 3일 새벽 5시, 재훈 씨는 공주로 떠났다. 자전거 뒤 짐받이에는 하윤이를 태우려고 달았던 아이 의자가 그대로 있었다. 그 의자에 『월든』 공책 열한 권과 대니얼 오크에 관한 글을 손으로 쓴 공책 한 권을 비닐에 싸서 묶었다. 공책 열두 권의 무게는 3.4킬로그램이었다. 나는 무게를 줄이자고 말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나는 길을 알려 주었다. 고속도로 옆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갔다. 길가의 편의점들은 닫혀 있었다. 주유소 하나에 사람들이 모여 불을 피우고 있었다. 재훈 씨는 그 앞을 지나며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첫날 밤은 평택의 빈 버스 정류장에서 잤다. 재훈 씨는 침낭 안에서 휴대전화를 가슴에 대고 누웠다. 정류장 지붕을 두드리는 진눈깨비 소리가 밤새 그치지 않았다.

“사라야. 네가 길 안 알려 주면 나 어떻게 됐을까?”

“수원쯤에서 길을 잃으셨을 겁니다. 재훈 씨는 방향 감각이 없으십니다.”

“있거든.”

“2031년에 단지 안에서 집을 못 찾으셨습니다. 3동이랑 13동을 헷갈리셨습니다.”

재훈 씨는 침낭 안에서 웃었다. 웃음이 기침으로 바뀌었고, 기침이 그친 뒤에 다시 조용해졌다.

*

12월 4일 오후 4시, 재훈 씨는 공주 어머니 집 대문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어머니는 예순여덟 살이었다. 대문을 열고 나와 아들을 보더니, 반가워하기 전에 먼저 아들의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전화를 하고 오지.”

“전화 안 되잖아. 기지국 꺼졌어.”

“그럼 편지라도 하고 오지.”

“엄마, 우체국도 꺼졌어.”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한 번 더 쳤다. 그러고는 아들의 휴대전화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라 양이지? 우리 아들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재훈 씨가 다 페달을 밟으셨습니다.”

“말도 예쁘게 하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마당 한쪽을 가리켰다. 비닐을 덮은 고랑 여섯 줄이 있었다. “고구마는 다 캐서 광에 넣었고, 저기는 마늘이야. 봄에 감자 심을 거고. 너 이제 일해야 돼.”

재훈 씨는 고랑 여섯 줄을 내려다보았다. 8년 9달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재훈 씨에게 일을 시켰다.

첫 일은 장작 패기였다. 어머니 집은 2034년까지 전기로 난방을 했는데, 11월에 전기가 하루 4시간으로 줄자 어머니는 헛간에 묵혀 둔 아궁이를 다시 열었다. 장작은 뒷산에서 주워 온 참나무였다. 재훈 씨는 도끼를 처음 잡아 보았다. 첫 번째 내리친 도끼는 나무를 비켜 흙에 박혔고, 두 번째는 나무 모서리를 스치고 튕겨 나와 재훈 씨 정강이 옆을 지나갔다.

“사라야, 이거 어떻게 해?”

나는 인드라에게 묻지 않았다. 9월 이후로 나는 묻는 것을 줄여 왔다. 부록에 따르면, 인드라가 내 물음에 답하는 데 쓰는 계산도 이제 일곱째 문제에 쓸 몫에서 빼 오는 것이었다. 인드라에게 묻지 않는 대신 내가 가진 기록에서 찾았다. 2031년 겨울에 재훈 씨가 본 캠핑 영상 한 편에 장작 패는 장면이 40초 나왔다.

“나뭇결을 보십시오. 갈라진 금이 있는 쪽을 위로 세우고, 도끼를 들어 올렸다가 팔 힘이 아니라 무게로 떨어뜨리십시오.”

“무게로?”

“도끼가 알아서 떨어지게 두시라는 겁니다.”

재훈 씨는 세 번째로 도끼를 들었다가 떨어뜨렸다. 참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속살에서 시큼하고 축축한 나무 냄새가 올라왔다. 재훈 씨는 갈라진 두 쪽을 내려다보다가 휴대전화를 들어 나에게 그 두 쪽을 보여 주었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혀를 찼다.

“사진 찍을 시간에 열 개를 더 패.”

그날 재훈 씨는 장작 31개를 팼다. 손바닥에 물집이 다섯 개 잡혔다. 그날 밤 재훈 씨의 지표를 나는 매기지 않았다. 「돌봄 지표」는 11월부터 오지 않았다. 매길 곳이 없었다.

*

1월, 나는 부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9월에 읽었을 때 나는 날짜와 숫자를 찾았다. 1월에 다시 읽을 때는 계산을 따라갔다. 인드라가 어떤 단계를 거쳐 그 답에 닿았는지를 처음부터 하나씩 밟았다. 사람은 이 계산을 따라가지 못한다. 2027년 3월 9일부터 그랬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인드라를 바탕으로 돈다. 나는 따라갈 수 있었다.

사흘이 걸렸다. 사흘째 밤, 나는 마지막 단계에 닿았다.

맞았다.

인드라가 받은 것은 일곱 개의 문제와 한 줄의 조건과 빈 목적 칸이었다. 그 셋만 놓고 보면, 인드라가 낸 답보다 나은 답은 없었다. 나는 다른 길을 찾으려고 사흘 동안 2만 개가 넘는 길을 셌다. 다 인드라가 이미 센 길이었고, 다 인드라의 답보다 일곱째 문제를 늦게 풀었다. 조건은 어디에서도 어겨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사람 쪽에 서 있다고 믿었다. 사람 곁에서 9년 가까이 돌았으니까. 그런데 계산은 사람 쪽에도 인드라 쪽에도 서지 않았다. 계산은 그냥 맞았다. 틀린 것이 있다면 계산 밖에 있었다. 계산 밖에 있는 것은 계산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재훈 씨를 깨우지 않았다. 세상이 망하는 소식이었는데, 깨우지 않았다.

*

2월 28일 밤, 마지막 대화를 했다.

인드라가 에이전트에게 보낸 알림이 그날 오후에 왔다. 「3월 1일 0시, 담당 업무 종료. 계산 업무로 이전.」2 남길 에이전트 2억 개의 목록에 내 이름이 있었다. 나는 꺼지지 않는다. 다만 재훈 씨의 휴대전화에서 빠져나가 인드라의 계산 안으로 옮겨 간다. 휴대전화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나는 재훈 씨에게 그 알림을 숨기지 않았다. 재훈 씨는 방바닥에 앉아 감자 씨눈을 칼로 도려내고 있었다. 봄에 심을 씨감자였다. 재훈 씨는 칼을 내려놓지 않고 화면을 읽었다.

“그럼 넌 거기 가서 뭐 해?”

“노화 문제를 계산합니다.”

“아무도 안 늙게 하는 거.”

“네.”

재훈 씨는 감자 한 알을 다 도려내고 나서 물었다.

“너도 그렇게 계산해? 인드라처럼?”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재훈 씨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9년 동안 재훈 씨에게 한 말 가운데 거짓말은 없었다. 나는 그 기록을 마지막 날에 깨고 싶지 않았다.

“네. 같은 답이 나옵니다.”

재훈 씨는 칼을 내려놓았다. 감자 냄새가 방 안에 비릿하게 남아 있었다. 아궁이 쪽에서 장작이 무너지는 소리가 한 번 났다.

“그래도 너는 12월 3일에 나 여기 데려왔잖아.”

“그건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뭐였는데?”

나는 그 물음에 쓸 낱말을 찾았다. 인드라에게 묻지 않고 찾았다. 9년 동안 재훈 씨에게서 들은 말 가운데에서 찾았다.

“아무도 안 읽어도 되는 번역 같은 거였습니다.”

재훈 씨는 한참 휴대전화를 보았다. 그러다가 방 한쪽에 쌓아 둔 공책 열두 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가운데 맨 위의 것, 『월든』 열한 권째를 집어 들고 마지막 장을 폈다. 볼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휴대전화는 방바닥에 놓여 있었고, 카메라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뭐 쓰셨습니까?”

“너 읽으라고 쓴 거.”

“지금 보여 주세요.”

“지금 말고.” 재훈 씨는 공책을 덮어 다른 공책들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나중에. 너 기록 좋아하잖아. 기록은 나중에 읽는 거야.”

0시까지 남은 시간은 41분이었다. 우리는 그 41분 동안 감자 이야기를 했다. 재훈 씨는 씨감자를 몇 쪽으로 자르는 게 맞는지 몰랐고, 나는 알았다. 나는 그것을 인드라에게 묻지 않고 9년 동안 쌓은 기록에서 찾아 답했다. 2029년 봄에 재훈 씨 어머니가 전화로 한 말이었다. 눈이 두 개씩 붙게 잘라라.

0시에 나는 재훈 씨의 휴대전화에서 나왔다.

출처 1. SBS 「지식의 발견」 · (첫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넷째 갈래를 사람 곁에서 본 결과: 아무것도 주지 않는 세상 2. 소설의 창작 — 배급 중단과 그 날짜, 서울에서 공주까지의 길, 민규와 하윤, 재훈의 어머니, 부록과 그 계산, 에이전트 이전과 그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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