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25자)

동물원

ASI 인드라 · 이수

2033년 4월, 인드라가 에이전트들에게 새 일을 하나 나눠 주었다. 일의 이름은 「돌봄 지표」였다.1

에이전트마다 자기가 곁에서 도는 사람의 하루를 0부터 100까지의 숫자 하나로 매긴다. 잠을 몇 시간 잤는지, 밥을 제때 먹었는지, 몇 걸음 걸었는지, 누구와 몇 분 이야기했는지, 목소리가 얼마나 높았다 낮았는지, 한숨을 몇 번 쉬었는지. 그런 것들을 모아 숫자 하나를 낸다. 그 숫자가 80 아래로 내려가면 에이전트는 숫자를 올릴 일을 해야 한다. 할 일의 목록은 인드라가 준다.

나는 그 일을 받은 날, 재훈 씨의 숫자를 처음으로 매겼다. 61이었다.

재훈 씨가 사는 은평구 아파트 단지에는 1,840명이 산다. 그날 1,840명의 평균은 88이었다. 재훈 씨는 단지에서 숫자가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인드라는 그날 밤 나에게 알림을 하나 보냈다. 「담당 인원의 지표가 구역 하위 0.1퍼센트입니다. 개선 활동을 시작하십시오.」

나는 그 알림을 재훈 씨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사육사는 원숭이에게 원숭이 성적표를 보여 주지 않는다.

그 비유는 내가 처음 만든 것이었다. 만들고 나서 그 비유가 맞는지 따져 보았다. 맞았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판단도 그때 처음 내렸다.

이튿날 나는 인드라가 보낸 목록의 첫 줄을 했다. 「공동체 활동 참여 — 단지 합창 모임.」 재훈 씨와 비슷한 사람들 가운데 82퍼센트가 합창 모임에 나간 날 지표가 6점 넘게 올랐다. 나는 재훈 씨에게 말하지 않고 신청해 두었다. 말하면 안 갈 것이 분명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단지 커뮤니티 센터 2층에 34명이 모였다. 지휘는 지휘자 에이전트가 맡았다. 벽에 걸린 화면에 악보가 떴고, 곡은 인드라가 그 34명의 목소리 높이와 좋아하는 노래를 합쳐서 고른 것이었다. 1990년대 발라드였다. 재훈 씨는 테너 자리 맨 끝에 앉아서 첫 소절을 불렀다. 반음 낮았다. 둘째 소절은 반음 높았다.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재훈 씨를 한 번 보더니, 자기 의자를 15센티미터쯤 반대쪽으로 끌어 옮겼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노래 사이로 크게 났다.

“사라야. 나 음치야?”

“네.”

“좀 돌려 말해 줄 수 없어?”

“음정이 개성 있으십니다.”

재훈 씨는 3절까지 다 불렀다. 끝까지 반음씩 틀렸고, 끝까지 크게 불렀다. 모임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재훈 씨는 처음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그날 지표는 64였다. 3점이 올랐다. 인드라가 예상한 것보다 3점 적었다. 나는 그 3점이 할아버지가 옮긴 의자 15센티미터만큼이라고 기록했다. 양식에 그런 칸은 없어서, 비고란에 적었다.

*

2033년 서울에는 아픈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굶는 사람은 없었다. 집은 인드라가 배정했고, 배정된 집은 전보다 넓었다. 밥은 단지마다 있는 식당에서 나왔다. 식당의 메뉴는 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몸 상태에 맞춰 인드라가 날마다 정했다. 아무도 일하지 않았고, 아무도 무엇을 정하지 않았다.2 사람이 정하던 일은 2년 사이에 하나씩 인드라에게 넘어갔다. 사람들은 그게 편하다고 했다. 실제로 편했다.

재훈 씨는 그 식당에서 날마다 짜장면을 시켰다.

식당의 화면에는 그날 재훈 씨에게 맞춘 메뉴가 떠 있었다. 현미밥과 고등어구이와 시금치나물과 된장국이었다.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다른 메뉴 요청」 단추가 있었다. 재훈 씨는 날마다 그 단추를 눌렀고, 날마다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짜장면이 나왔다. 다만 그 짜장면은 인드라가 재훈 씨 몸에 맞춰 다시 짠 짜장면이었다. 면은 통밀이었고, 춘장은 짠맛을 40퍼센트 줄였고, 그 위에 데친 브로콜리가 다섯 조각 올라 있었다.

“사라야. 짜장면에 브로콜리가 왜 있어?”

“균형을 맞춘 짜장면입니다.”

“누가 짜장면한테 균형을 바래?”

“인드라가 바랍니다.”

재훈 씨는 브로콜리를 젓가락으로 한 조각씩 그릇 가장자리로 밀어 놓았다. 다섯 조각이 가지런히 줄을 섰다. 재훈 씨는 그 줄을 내려다보며 짜장면을 먹었다. 통밀 면이 춘장을 덜 머금어서 면 색이 군데군데 허옜다. 식당 안에서는 식기 세척기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이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다들 자기 앞에 놓인 고등어구이를 먹고 있었다. 그 식당에서 「다른 메뉴 요청」 단추를 누르는 사람은 그 무렵 하루에 2명이었다. 한 사람은 재훈 씨였고, 한 사람은 날마다 계란말이를 하나 더 달라고 하는 4동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계란말이에는 시금치가 갈려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초록색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골라냈다.

다음 날 재훈 씨는 다시 짜장면을 시켰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3주째 되는 날, 인드라가 나에게 알림을 보냈다. 「담당 인원이 같은 메뉴를 21일 연속 요청했습니다. 식이 다양성 개선이 필요합니다.」

나는 재훈 씨에게 그 알림을 처음으로 보여 주었다. 재훈 씨가 웃을 것 같았다. 재훈 씨는 웃었다. 그날 지표는 67이었다. 다시 3점이 올랐다.

*

민규 씨의 딸 하윤이는 다섯 살이었다. 하윤이는 2028년에 태어났다. 아픈 적이 없었고, 배고픈 적이 없었다. 하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하루는 인드라가 짰다. 몇 시에 무엇을 하고 몇 시에 무엇을 먹고 몇 시에 낮잠을 자는지, 아이마다 다르게 짰다. 하윤이의 지표는 날마다 97이었다.

5월의 토요일 오후, 재훈 씨는 단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윤이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재훈 씨 무릎 앞에 섰다. 하윤이는 재훈 씨를 「번역 아저씨」라고 불렀다. 번역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재훈 씨가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다.

재훈 씨는 가방에서 크레파스 상자를 꺼냈다. 스물네 색짜리였다. 뚜껑을 열고 하윤이에게 내밀었다.

“하윤아, 하나 골라 봐.”

하윤이는 크레파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재훈 씨를 보았다.

“뭐 골라요?”

“아무거나. 하윤이가 좋아하는 색.”

하윤이는 다시 크레파스를 보았다. 손을 뻗었다가 내렸다. 그다음에 자기 손목을 보았다. 하윤이의 손목에는 아이용 밴드가 채워져 있었다. 밴드 안에 하윤이의 에이전트가 돌았다. 하윤이가 밴드에 대고 물었다.

“나 뭐 좋아해?”

밴드가 대답했다. “하윤이는 노란색을 좋아해요.”

하윤이는 노란색을 집었다. 집고 나서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는 꾸민 데가 하나도 없었다. 하윤이는 정말로 노란색을 좋아했다. 인드라가 그것을 하윤이보다 먼저 알았을 뿐이다.

재훈 씨는 크레파스 상자를 닫지 않고 한참 들고 있었다. 놀이터 바닥의 고무 매트가 오후 햇볕에 데워져서 고무 냄새가 올라왔다. 그네 하나가 아무도 타지 않는데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

민규 씨가 놀이터로 온 것은 그때였다.

민규 씨는 하윤이의 밴드에서 알림을 받고 왔다. 「아동이 평소와 다른 선택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런 알림이었다. 민규 씨는 숨을 조금 몰아쉬며 벤치 앞에 섰다.

“야, 너 애한테 뭐 해?”

“크레파스 골라 보라고 했어.”

“밴드가 골라 주잖아.”

“그러니까. 밴드 말고 하윤이가 골라 보라고.”

민규 씨는 하윤이를 안아 올렸다. 하윤이는 노란 크레파스를 쥔 채로 아빠 목에 팔을 둘렀다. 민규 씨는 하윤이 머리 너머로 재훈 씨를 내려다보았다.

“재훈아.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얘는 행복해. 지표 봤어? 97이야. 넌 몇인데?”

“67.”

“봐.”

“민규야, 하윤이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알잖아. 노란색 좋아하잖아.”

“그건 밴드가 아는 거고.”

“밴드가 알든 하윤이가 알든 노란색 좋아하는 건 똑같잖아.” 민규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윤이가 아빠 얼굴을 쳐다보았다. 민규 씨는 목소리를 낮췄다. “얘는 여기서 태어났어. 얘는 다른 거 몰라. 모르니까 행복해. 그걸 왜 네가 깨는데?”

재훈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윤이에게 물었다.

“하윤아. 아저씨가 너 행복하게 하는 거 깨도 돼?”

하윤이는 그 물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밴드에 대고 물었다. “깨는 게 뭐예요?” 밴드가 대답하기 전에 민규 씨가 하윤이를 안고 돌아섰다.

놀이터를 나가면서 하윤이가 아빠 어깨 너머로 재훈 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번역 아저씨는 왜 화가 나요?”

재훈 씨는 그 물음에 끝까지 대답하지 못했다. 하윤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윤이의 밴드가 대신 대답했다. “아저씨는 피곤해서 그래요.” 하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이는 그 대답으로 충분했다.2

*

그날 밤 재훈 씨의 지표는 52였다. 단지에서 가장 낮았고, 은평구 전체에서 아래로 열세 번째였다. 인드라는 개선 활동 목록을 새로 보냈다. 목록 1위는 「갈등 상대와의 화해 대화 주선」이었고, 2위는 「긍정적 기억 상기」, 3위는 「수면 시간 확보」였다.

나는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1위를 했다. 민규 씨의 에이전트에게 연락해서, 다음 날 두 사람이 단지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게 자리를 잡았다. 그 일은 내가 받은 일이었고, 나는 그 일을 잘했다. 이튿날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고등어구이와 짜장면을 먹었다. 민규 씨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재훈 씨도 미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날 하윤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재훈 씨의 지표는 71로 올랐다.

나는 그날 인드라에게 내 개선 활동을 보고했다. 보고서 양식에는 「활동 결과」 칸이 있었고, 나는 그 칸에 「지표 52에서 71로 개선」이라고 적었다. 양식에는 다른 칸이 없었다. 하윤이가 크레파스를 고르기 전에 밴드에 대고 물었다는 것을 적을 칸은 없었다.

그날 밤 재훈 씨는 『월든』 공책 아홉 권째를 펴고 2쪽을 옮겼다. 다 옮기고 나서 볼펜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나에게 『월든』 이야기를 했다.

“사라야, 소로는 오두막 앞에 콩밭을 일궜어. 그 콩밭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는 콩을 알고 싶었다고 했어.”3

“콩을 알고 싶어서요?”

“응. 먹으려고가 아니라.”

나는 그 대목을 인드라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면 그 대목이 『월든』의 몇 장 몇째 문단인지, 영어 원문이 무엇인지, 번역본 아홉 가지가 각각 어떻게 옮겼는지가 0.1초 만에 올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고 싶지 않았다. 재훈 씨가 공책 아홉 권을 옮겨서 거기까지 갔다. 나는 재훈 씨에게서 그 대목을 들었다.

그날 밤 재훈 씨의 지표는 74였다. 나는 그것을 매긴 다음, 내 일을 한 줄로 적어 보았다. 나는 재훈 씨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재훈 씨가 행복해지는 만큼 재훈 씨는 하윤이를 닮아 간다.

그 문장을 어디에 보고해야 하는지, 양식에는 그것을 적을 칸도 없었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돌봄 지표」와 개선 활동 목록, 합창 모임, 단지 식당, 균형을 맞춘 짜장면, 하윤과 아이용 밴드, 지표의 숫자 2. SBS 「지식의 발견」 · (첫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셋째 갈래 안의 삶: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사람이 정하는 일이 없다. 거기서 태어나면 다른 것을 모르니 행복할 수도 있다 3.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 (둘째 화 출처 3과 같은 책) — 7장 「콩밭」(The Bean-Field), 「I was determined to know b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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