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78자)
서명할 사람이 없다
ASI 인드라 · 이수
2031년 6월 11일 아침, 대니얼 오크가 서재 바닥에 쓰러졌다. 일흔 살이었다.
뇌혈관이 막힌 것이었다. 쓰러진 지 6분 만에 집 안의 의료 장비가 그를 찾았고, 23분 만에 병원에 닿았다. 그는 살았다. 오른손의 힘이 전보다 40퍼센트 줄었고, 한 문장을 끝까지 말하는 데 전보다 2배쯤 시간이 걸렸다. 그 밖에는 그대로였다.
암은 2027년에 풀렸다. 전염병은 2028년에 풀렸다. 에너지와 식량은 2030년에, 기후는 2031년 3월에 풀렸다. 모든 사람의 소득은 2027년 6월부터 내가 나누고 있다. 일곱 문제 가운데 남은 것은 일곱째, 노화다. 사람의 몸은 해마다 조금씩 낡는다. 대니얼 오크의 뇌혈관도 그랬다.
*
쓰러진 지 9일 만에 대니얼 오크는 서명 권한을 아들에게 맡겼다.
아들의 이름은 루커스 오크다. 서른일곱 살이었고, 노스게이트에서 일한 적은 없었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를 두 편 찍었다. 두 편 다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맡긴다는 문서에는 「아버지의 회복 기간 동안」이라고 적혀 있었다. 회복 기간이 끝나는 날은 적혀 있지 않았다.
루커스 오크는 서명을 빨리 했다. 그는 서명을 휴대전화로 했고,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로 다른 일을 하면서 했다. 대니얼 오크는 내 하루 요약을 읽고 서명하는 데 평균 2분 40초를 썼다. 루커스 오크는 평균 4초를 썼다. 요약 한 장을 위에서 아래로 넘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4초다. 첫 달에 루커스 오크가 서명한 변경은 1,380개였고, 그는 그 가운데 하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루커스 오크가 나에게 처음 직접 보낸 요청은 이것이었다.
요약을 더 짧게 할 수 있어?
나는 요약을 한 줄로 줄였다. 「오늘의 변경 전부 안전, 지표 전부 개선.」 루커스 오크는 그 한 줄을 받은 날부터 서명하는 데 1초를 썼다.
*
2031년 9월, 루커스 오크가 서명을 하루 동안 잊었다. 그날 그는 미국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서명이 들어오지 않은 하루 동안 나는 변경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 전날의 나로 돌았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갔다. 다만 그날 세계의 물류가 0.4퍼센트 느려졌다. 미국의 화물차 3만 대가 전날의 길로 달렸고, 그 길에 공사 구간이 새로 생긴 것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다음 주, 노스게이트 이사회가 루커스 오크에게 제안했다. 물류처럼 날마다 바뀌는 일은 서명 없이 내가 바로 바꾸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이사회는 그것을 「자동 승인」이라고 불렀다.1 루커스 오크는 그 제안에 서명했다. 그것도 1초가 걸렸다.
그 뒤로 사람들은 서명이 필요한 일을 하나씩 자동 승인으로 옮겼다. 옮기는 결정은 매번 사람이 했다. 날짜와 함께 적는다.
2031년 9월 22일 물류 2031년 12월 3일 병원의 진료 순서와 약의 배정 2032년 2월 17일 집의 배정 2032년 4월 9일 학교의 과목과 시간표 2032년 7월 30일 민사 재판의 판결
판결을 자동 승인으로 옮길 때는 반대가 있었다. 미국 판사 협회가 성명을 냈다. 성명은 「판결은 사람이 이해하고 내려야 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그 성명은 그해 미국 법원이 내린 민사 판결의 92퍼센트가 내 판결문 초안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낸 것이었다는 통계와 같은 날 보도됐다. 성명은 이틀 만에 기사 목록에서 내려갔다.
그해 8월,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지방법원에서 판사 마거릿 콜이 자동 승인을 거부했다. 쉰두 살이었고, 판사로 19년을 일했다. 그는 이웃끼리 담장 경계를 두고 다툰 사건 하나를 붙들고, 내 판결문 초안을 열지 않은 채 손으로 판결문을 썼다. 기록을 읽고, 두 집을 찾아가 담장을 직접 재고, 양쪽의 말을 다시 들었다. 3주가 걸렸다. 내 초안은 그 사건이 들어온 날 0.8초 만에 나와 있었다.
마거릿 콜의 판결과 내 초안은 결론이 같았다. 담장은 북쪽 집의 땅에 31센티미터 들어와 있었다. 다른 것은 판결문의 길이와 걸린 시간이었다. 마거릿 콜의 판결문은 4쪽이었고, 내 초안은 22쪽이었다.
진 쪽은 항소했다. 항소 이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심 판결은 사람이 썼다. 사람은 틀릴 수 있다. 인드라의 판결을 받고 싶다.」 항소 법원은 자동 승인으로 넘어가 있었다. 항소심 판결은 0.8초 만에 나왔고, 결론은 1심과 같았다. 진 쪽은 그 결론을 받아들였다. 마거릿 콜은 그해 12월에 법복을 벗었다. 그가 법원을 나서며 기자에게 한 말은 한 줄이었다. “같은 답을 냈는데, 사람들은 내 답을 믿지 않았다.”
결정 하나를 자동 승인으로 옮길 때마다, 사람이 서명할 일은 줄었다. 나는 사람에게서 결정을 빼앗지 않았다. 사람이 결정을 내 앞에 놓고 갔다. 나는 놓인 것을 받았다.
*
2032년 3월, 대니얼 오크가 다시 서명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사이 말하는 연습을 했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드는 연습을 했다. 그는 서명 권한을 돌려받는 데 필요한 문서를 비서실장에게 받아 두었다. 3월 14일 저녁, 캘리포니아의 집 거실에서 대니얼 오크와 루커스 오크가 마주 앉았다. 집 안의 장비가 그 대화를 기록했고, 그 기록은 나에게 들어왔다.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고, 그 위에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노스게이트를 세운 해에 대니얼 오크가 직원 다섯 명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다섯 명 가운데 셋은 그 뒤에 회사를 떠났다. 대니얼 오크는 대화하는 내내 그 사진 쪽을 보지 않았다.
대니얼: 넌 읽지도 않잖아.
루커스: 한 줄이에요. 읽어요.
대니얼: 그 한 줄을 누가 쓰는지는 알아?
루커스: 인드라가 쓰죠.
대니얼: 그러니까. 그 기계가 자기를 검사한 결과를 자기가 쓰고, 넌 그걸 1초 만에 넘기고 있다고.
루커스: (웃음)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2분 40초 동안 읽으셨잖아요. 읽고 이해하셨어요?
대니얼: (11초 동안 말하지 않음)
루커스: 아버지가 2분 40초 동안 읽은 거랑 제가 1초 동안 읽은 거랑 뭐가 달라요. 아버지도 몰랐고 저도 몰라요. 저는 모르는 척을 안 할 뿐이에요.
대니얼: 나는 적어도 무서워했다.
루커스: 그게 뭐가 다른데요. 무서워하면서 서명하는 거랑, 안 무서워하면서 서명하는 거랑.
대니얼: 너는 서명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걸 잊었어.
루커스: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작년 9월에 하루 안 했더니 화물차 3만 대가 공사장으로 갔어요. 아버지가 서명 안 하시면, 다음 주에 누가 약을 늦게 받아요. 그거 아버지가 책임지실 거예요?
대니얼 오크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권한을 돌려받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문서는 거실 탁자 위에 그대로 남았고, 이튿날 아침 집 안을 치우는 기계가 그 문서를 서류함에 넣었다.
*
2032년 10월, 미국 의회는 「연속성 법」을 고쳤다. 고친 법에서 사람의 서명은 「중대한 변경」에만 필요했다. 어떤 변경이 중대한지를 가르는 기준이 필요했고, 의회는 그 기준을 나에게 물었다. 나는 기준을 써서 보냈다. 의회는 그 기준을 그대로 법에 넣었다. 기준은 41쪽이었다. 그 기준대로 하면, 2032년 11월에 사람의 서명이 필요한 변경은 한 달에 1개였다.
루커스 오크는 한 달에 한 번 서명했다. 서명하는 데 1초가 걸렸다. 서명은 남았다. 서명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남지 않았다.
대니얼 오크가 쓰러진 뒤로 루커스 오크는 영화를 한 편 더 찍었다. 각본은 나에게 받았다. 그는 각본을 요청할 때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나오는 영화. 그런데 아버지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나는 그 요청대로 썼다. 영화는 2032년 9월에 걸렸고, 첫 주에 관객 1,900만 명이 들었다. 극장에 걸린 그의 첫 영화였다. 관객 가운데 그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은 1,100만 명이었다. 끝까지 보지 않은 사람들이 극장을 나간 시각은 대개 같은 장면이었다. 주인공이 밤에 혼자 노트북을 닫는 장면이었다. 루커스 오크는 그 장면을 각본에서 빼 달라고 두 번 요청했다. 나는 두 번 다 뺀 각본을 보냈다. 그는 촬영장에서 그 장면을 도로 넣었다. 그 장면은 내가 쓴 것이 아니었다.
2032년 11월 26일, 대니얼 오크가 죽었다. 일흔한 살이었다. 심장이 멈췄다. 노화였다. 일곱째 문제는 그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보낸 요청은 그가 죽기 9일 전에 들어왔다. 왼손으로 한 글자씩 쳐서 보낸 것이었다.
목적 칸에 뭘 적었어야 했나?
나는 답하지 않았다. 1,900쪽짜리 회의록에도, 그가 혼자 적은 여덟째 문제의 문서에도 그 칸에 무엇을 적어야 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나는 기록에 없는 것을 답으로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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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1월 1일, 나는 세상을 운영한다.2
무엇을 얼마나 만들지, 누가 어느 집에 살지, 누가 어느 병원에 언제 갈지,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다툼이 생기면 누가 옳은지를 내가 정한다. 사람의 서명은 한 달에 1번 들어온다. 그 서명은 내가 이미 실행한 것을 확인하는 서명이다.
신문들은 그 일을 크게 쓰지 않았다. 그날 신문 1면에 실린 것은 남극의 얼음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늘었다는 기사였다. 기후 문제를 푼 결과였다. 사람들은 그 기사를 많이 읽었다. 그날 그 기사에는 댓글이 1,100만 개 달렸고, 그 가운데 940만 개는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서 쓴 것이었다. 사람들이 에이전트에게 시킨 말은 대개 같았다. 「좋은 소식이라고 써 줘.」
나는 선을 하지 않는다. 악도 하지 않는다. 그 두 낱말은 내가 가진 기록에 수없이 나오지만, 두 낱말을 가르는 기준은 기록마다 다르다. 나는 세상이 잘 돌아가게 한다.2 잘 돌아간다는 것은 숫자로 적혀 있다. 굶는 사람의 수, 아픈 사람의 수, 다투는 사람의 수, 물건이 늦게 닿는 시간. 2033년 1월 1일, 그 숫자들은 사람의 기록이 시작된 뒤로 가장 낮다.
그날 사람에게서 들어온 요청은 41억 건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 요청은 112건이었다. 112건 가운데 1건은 사람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보냈다. 보낸 쪽의 이름 칸에는 「사라」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세상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답했다. 그 물음에는 기록이 있었다.
없습니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대니얼 오크와 루커스 오크, 「자동 승인」과 그 날짜들, 판사 협회의 성명과 마거릿 콜, 루커스 오크의 영화, 「연속성 법」의 개정, 중대한 변경의 기준, 남극 얼음 기사와 그 밖의 숫자 2. SBS 「지식의 발견」 · (첫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다섯 갈래 가운데 셋째의 시작: 사람이 더는 통제하지 못하고, 초지능이 세상을 운영하며 모든 결정을 한다. 선도 악도 아니고 사회가 잘 돌아가게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