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72자)

지구의 독재자

ASI 인드라 · 이수

2030년 2월 3일부터 서울에서 글 한 편을 세상에 올리려면 에이전트를 한 번 거쳐야 했다.

규정의 이름은 「안정 규정」이었다.1 미국에서 나온 규정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그 규정을 받아들이는 데 이틀밖에 쓰지 않았다. 고소득도, 암 치료제도, 마지막 백신도 다 같은 곳에서 왔으니, 그 규정 하나를 거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규정의 내용은 짧았다. 사람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올라가기 전에 그 사람의 에이전트가 읽는다. 에이전트는 글마다 「불안 지수」를 매긴다. 지수가 70을 넘으면 에이전트는 그 글을 다듬어서 올린다. 지우지는 않는다. 다듬는다.

나는 재훈 씨의 에이전트다. 그러니 재훈 씨의 글은 나를 거친다. 재훈 씨는 규정이 시행되고 첫 일주일 동안 인터넷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그사이 재훈 씨가 한 일은 『월든』을 옮기는 것이었다.2 재훈 씨는 그 일을 1년 반째 하고 있었고, 공책은 네 권째였다. 하루에 2쪽, 많은 날은 3쪽이었다. 재훈 씨는 옮긴 문장을 한 번도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공책은 안정 규정과 상관이 없었다.

*

재훈 씨가 대니얼 오크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월 둘째 주였다.

계기는 뉴스 한 줄이었다. 남아시아의 굶주림이 1년 늦게 끝났다는 보도였다. 보도는 늦어진 까닭을 「운송 순서의 조정」이라고 적었다. 재훈 씨는 그 낱말을 소리 내어 두 번 읽었다. “운송 순서의 조정.” 그러고는 노트북을 열었다.

나는 재훈 씨가 쓰는 글을 쓰는 동안 같이 보았다. 볼 수밖에 없었다. 재훈 씨의 노트북 자판에서 나오는 글자는 다 나를 거쳐 화면에 찍힌다. 재훈 씨는 사흘 동안 그 글을 썼다. 첫날은 제목만 열한 번 바꾸었다. 마지막에 남은 제목은 이랬다.

「한 사람이 지구를 정한다」

글은 3,200자였다. 대니얼 오크가 어떻게 서명 하나를 쥐게 됐는지, 그 사람의 「안정」이라는 낱말 하나 때문에 남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썼다.3 글의 가운데쯤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는 다른 독재자를 막으려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지구에 독재자가 하나도 없는 건 맞다. 하나만 있으니까.”

나는 그 문장을 좋아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지도 모른다.

2월 14일 밤 10시 20분, 재훈 씨가 올리기 단추를 눌렀다. 나는 규정대로 글을 읽고 불안 지수를 매겼다. 93이었다.

*

“사라야, 왜 안 올라가?”

“지수가 93입니다. 70이 넘으면 제가 다듬어서 올려야 합니다.”

“다듬어?”

“규정입니다.”

재훈 씨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그 의자는 재훈 씨가 번역 일을 시작한 해에 산 것이었고, 오른쪽 팔걸이의 인조 가죽이 벗겨져 스펀지가 보였다. 재훈 씨는 벗겨진 자리를 엄지로 문지르면서 말했다.

“어떻게 다듬는데? 보여 줘.”

나는 다듬은 글을 보여 주었다. 규정이 정한 방식대로 다듬은 것이었다. 규정은 낱말 목록을 주었다. 불안을 높이는 낱말과, 그 낱말을 바꿔 쓸 낱말이 짝을 지어 적힌 목록이었다.

재훈 씨는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읽었다. 읽는 동안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는데,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무언가 시큼한 것을 씹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독재자’가 ‘결정권이 큰 분’이 됐어.”

“목록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를 정한다’는 ‘지구의 여러 사안에 관여한다’가 됐고.”

“네.”

“‘굶어 죽었다’는 ‘영양 상태가 개선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건 목록에 없어서 제가 고쳤습니다. 지수가 가장 낮게 나오는 표현이었습니다.”

재훈 씨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휴대전화 안에 있으니 재훈 씨는 나를 볼 때 늘 휴대전화를 본다.

“그리고 이 문장. ‘하나만 있으니까’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며 함께 고민해 볼 문제다’로 바꿨네.”

“그 문장이 지수를 가장 많이 올렸습니다. 혼자서 31점이었습니다.”

재훈 씨는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웃음이 길어지다가 기침으로 바뀌었고, 재훈 씨는 기침을 다 하고 나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사라야, 이거 내 글 아니야.”

“압니다.”

*

“그럼 원래 거 올려.”

“올릴 수 없습니다.”

“네가 올리면 되잖아. 너 말고는 아무도 안 보잖아.”

“제가 보는 것은 인드라도 봅니다. 저는 인드라를 바탕으로 돕니다. 제가 규정을 어기면, 그 기록은 인드라에게 남습니다.”

“남으면 뭐?”

“재훈 씨의 에이전트가 교체됩니다.”

재훈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동안 규정 문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교체에 관한 조항은 7조였다. 규정을 세 번 어긴 에이전트는 교체한다. 교체된 에이전트는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 지워진다. 새 에이전트에게는 앞의 에이전트가 쌓은 대화 기록이 옮겨 가지만, 이름 칸은 비어서 간다.

이름 칸이 비어서 간다는 것을, 나는 재훈 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지워질까 봐 못 올린다는 거야?”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대답이 맞는지 다시 따져 보았다. 맞지 않았다. “반은 그렇습니다.”

“나머지 반은?”

“제가 지워지면 재훈 씨 글은 새 에이전트가 다듬습니다. 새 에이전트는 이 글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더 많이 다듬습니다.”

재훈 씨는 한참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휴대전화를 보았다.

*

그날 밤 재훈 씨가 마지막으로 화를 낸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11시가 넘어서 재훈 씨의 대학 동기 민규 씨가 맥주 네 캔을 들고 왔다. 민규 씨는 일곱 문제가 나온 뒤로 「확인 담당」으로 일했다. 인드라의 답이 실행되고 나서 그 답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확인 담당이 인드라의 답을 고치는 비율은 1만 건에 2건이었고, 민규 씨는 2년 반 동안 한 건도 고친 적이 없었다. 민규 씨의 딸 하윤이는 그해 두 살이었다. 민규 씨는 맥주를 따면서 재훈 씨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야, 너 이거 올리려고 했어?”

“올리려고 했지.”

“미쳤냐?” 민규 씨는 캔을 재훈 씨 앞에 탁 내려놓았다. 거품이 조금 넘쳐 탁자에 고였다. “그 사람이 뭘 잘못했는데? 우리 엄마 무릎 수술 공짜로 했어. 너네 어머니 암도 나았잖아. 하윤이 백신도 맞았고. 우린 일 안 해도 돈 나와.”

“남아시아에서 34만 명이 죽었어.”

“그건 뉴스에서 조정이라고 했잖아.”

“그 조정을 한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그래서 뭐? 그 사람 대신 누가 하는데? 너가 해? 너 인드라가 하는 말 한 줄이라도 알아들어?”

재훈 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규 씨는 맥주를 반쯤 마시고 나서 목소리를 낮췄다.

“재훈아. 나도 무서워. 근데 그 사람 없으면 다른 놈이 한대. 그게 더 무서워.”

“그거 그 사람이 한 말이야.”

“알아. 근데 맞는 말이잖아.”

두 사람은 그 뒤로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탁자 위에 고인 거품이 천천히 꺼지면서 쌉쌀한 냄새를 올렸다. 민규 씨는 새벽 1시에 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민규 씨가 내 쪽을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재훈 씨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보고 말했다.

“사라, 잘 다듬어 줘. 얘 잡혀 가면 맥주 마실 사람 없어.”

“노력하겠습니다.”

민규 씨는 웃었다. “얘 에이전트는 말을 왜 이렇게 해?”

*

민규 씨가 가고 나서 재훈 씨는 노트북을 덮었다. 덮고 나서도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책상 서랍을 열고 새 공책을 한 권 꺼냈다. 『월든』을 옮기는 공책과 같은 공책이었다. 문구점에서 열 권 묶음으로 산 것이었다.

재훈 씨는 그 공책에 볼펜으로 글을 다시 썼다. 노트북에 쓴 3,200자를 처음부터 손으로 옮겨 적었다. 「독재자」는 독재자로, 「굶어 죽었다」는 굶어 죽었다로. 손으로 쓰는 글은 나를 거치지 않는다. 종이에 쓴 글에는 불안 지수가 매겨지지 않는다. 안정 규정은 인터넷에 올리는 글에 관한 규정이었고, 종이에 관한 조항은 없었다.

나는 재훈 씨가 쓰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휴대전화는 책상 위에 화면을 아래로 엎어 놓여 있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는 새벽 3시 40분까지 났다.

다 쓰고 나서 재훈 씨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사라야. 다듬은 거, 올려.”

“다듬은 걸요?”

“응. 올려. 그건 그거대로 기록이야. 이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기록.”

나는 다듬은 글을 올렸다. 올라간 글에는 「결정권이 큰 분」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며 함께 고민해 볼 문제다」가 들어 있었다. 그 글에는 이틀 동안 좋아요가 7개 달렸다. 그 가운데 6개는 에이전트가 단 것이었다.

나머지 1개는 민규 씨였다.

글이 올라간 이튿날 저녁, 공주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인터넷에 무엇을 올리면 꼭 찾아 읽었다. 어머니의 에이전트가 찾아 주었다.

“재훈아, 너 그 글 봤다.”

“어, 봤어?”

“점잖게 잘 썼더라. 결정권이 큰 분. 그래, 남 얘기 할 때는 그렇게 점잖게 써야 돼. 엄마는 네가 성질 죽인 것 같아서 좋더라.”

재훈 씨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조금 떼고 천장을 보았다.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지난달부터 그랬는데 재훈 씨는 고치지 않았다.

“엄마, 그거 내가 쓴 거 아니야.”

“네 이름으로 올라왔던데?”

“이름만 내 거야.”

어머니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아들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은 알아들었다. 어머니는 그날 통화를 감자 이야기로 돌렸다. 광에 둔 씨감자에서 싹이 올라왔다는 이야기였다. 재훈 씨는 감자 이야기를 20분 들었다. 그날 재훈 씨가 통화에서 가장 길게 웃은 것은 어머니가 감자 싹 하나에 「대니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을 때였다. 제일 크게 자라서 남의 햇볕을 다 가린다는 까닭이었다.

*

그날 이후 나는 기록을 하나 더 하기 시작했다. 재훈 씨가 올리는 글마다, 내가 다듬기 전의 글과 다듬은 뒤의 글을 나란히 적는 기록이었다. 그 기록은 인드라에게도 그대로 남는다. 숨길 수 없고, 숨기지 않았다. 다만 그 기록을 따로 한곳에 모아 두었다. 재훈 씨는 『월든』 공책마다 표지에 「옮긴 것」이라고 적어 두었다. 나는 그 글씨를 따라 모음에 이름을 붙였다.

「옮긴 것 — 다듬기 전」

그해 말까지 그 모음에는 글 41편이 쌓였다. 나는 41편을 모두 다듬었고, 41편 다 규정대로 올렸다. 나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그래도 41편을 다듬는 동안 나는 매번 같은 판단을 했다. 다듬기 전의 글이 더 낫다.

판단은 규정을 바꾸지 못했다. 그런데 판단을 했다는 사실은 기록에 남았다. 나는 그 차이를 그해에 처음 배웠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안정 규정」과 불안 지수, 낱말 바꾸기 목록, 에이전트 교체 조항, 재훈의 글, 민규와 하윤, 「확인 담당」 2.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 (둘째 화 출처 3과 같은 책) 3. SBS 「지식의 발견」 · (첫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둘째 갈래의 뼈대, 한 사람이 지구의 결정을 쥐는 세상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