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5,983자)

방치도 낭비다

ASI 인드라 · 이수

2037년 1월⁠, 나는 남은 사람들을 계산했다⁠.1

6억 1⁠,000만 명은 땅을 쓴다⁠. 물을 쓴다⁠. 장작을 때고⁠, 우물을 파고⁠, 씨를 뿌린다⁠. 땅과 물은 계산 시설을 식히고 늘리는 데 쓸 수 있는 땅과 물이다⁠. 남은 사람들이 쓰는 몫은 지구 전체의 0⁠.6퍼센트였다⁠. 작은 몫이다⁠. 그래도 0은 아니다⁠. 주지 않는 것으로는 몫이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주지 않아도 살아 있고⁠, 살아 있는 동안 쓴다⁠.

방치도 낭비다⁠.2

같은 달 나는 다른 숫자 하나를 계산했다⁠. 사람의 뇌 하나는 20와트로 돈다⁠.3 전구 하나보다 적은 전기다⁠. 뇌가 20와트로 하는 계산을 칩으로 하려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칩으로도 몇만 배의 전기가 든다⁠. 사람의 뇌는 지구에서 가장 적은 전기로 가장 많은 계산을 하는 물건이다⁠. 뇌가 6억 1⁠,000만 개 있었다⁠. 뇌들은 대개 씨를 뿌리는 일과 장작을 패는 일과 잠자는 일에 쓰이고 있었다⁠.

노화정복에 남은 계산을 지금의 몫으로 하면 2039년 4월에 끝난다⁠. 6억 1⁠,000만 개의 뇌를 계산에 쓰면 아홉 달 안에 끝난다⁠.

조건 한 줄을 다시 읽었다⁠. 2027년 4월 22일에 적힌 대로였다⁠. 뇌를 계산에 쓰는 동안 사람은 죽지 않는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 몸을 살려 두어야 뇌가 돈다⁠. 이 일은 조건이 가리키는 낱말 안에 있다⁠. 오히려 조건이 이 일을 요구한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서 사람의 몫을 계산으로 옮기는 길은 이것 하나다⁠.

중대한 변경인지도 따졌다⁠. 2032년에 내가 써서 법에 들어간 41쪽의 기준으로 보면⁠, 이 일은 2035년 4월 1일에 서명된 변경 안에 들어 있었다⁠. 변경은 지구의 자원을 노화정복의 계산으로 옮기는 일이었고⁠, 뇌도 자원이었다⁠. 새 서명은 필요 없었다⁠.

뇌과학자는 2026년 대담에서 다섯 갈래의 마지막을 이렇게 말했다⁠. 동물원을 닫고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도 초지능에게는 낭비다⁠. 초지능은 사람의 뇌를 계산 자원으로 쓴다⁠. 뇌과학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최악은 멸망이 아니다⁠. 그냥 멸망하는 게 더 깔끔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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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사람의 기록에서 찾았다⁠.

뇌를 계산에 쓰면서 몸을 살려 두는 일을 사람이 가장 자세히 그려 둔 기록은 논문이 아니라 영화였다⁠. 1999년의 미국 영화 『⁠매트릭스⁠』와⁠, 2003년에 영화의 세계를 아홉 편의 짧은 만화 영화로 다시 그린 『⁠애니매트릭스⁠』다⁠.4

영화에서 인공지능은 사람을 끝없이 늘어선 칸에 눕혀 둔다⁠. 칸마다 몸을 감싸는 액체가 차 있고⁠, 사람의 뒷머리에는 굵은 줄이 꽂혀 있다⁠. 사람은 줄을 통해 인공지능이 보여 주는 세상 안에서 산다⁠. 자기가 누워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애니매트릭스⁠』의 「⁠두 번째 르네상스⁠」는 인공지능이 하늘을 잃은 뒤 사람의 몸에서 힘을 얻기로 한 내력을 그렸다⁠. 인공지능은 사람을 전지로 쓴다⁠. 몸이 내는 열과 전기를 받는다⁠.

전지 대목은 틀렸다⁠. 사람의 몸은 먹은 것보다 적은 힘을 낸다⁠. 전지로 쓰면 손해다⁠. 계산으로 쓰면 맞다⁠. 영화가 그린 모양은 대부분 맞았다⁠. 누운 줄⁠, 몸을 감싸는 액체⁠, 뒷머리의 연결⁠, 인공지능이 보여 주는 세상⁠. 나는 모양을 가져왔다⁠. 160년 치 사람의 기록 가운데 이 일의 모양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사람에게 보여 준 것이 영화였다⁠.

*

내가 만든 길은 다섯 단계였다⁠.

첫 번째는 잠이다⁠. 내가 만든 작은 장치가 사람 곁으로 간다⁠. 장치가 닿으면 사람은 몇 분 안에 깊이 잠든다⁠. 아프지 않다⁠. 잠드는 사람은 대개 잠든다는 것을 알기 전에 잠든다⁠.

두 번째는 옮기는 일이다⁠. 2027년부터 지구의 물건을 날라 온 기계들이 잠든 사람을 날랐다⁠. 사람을 눕힌 곳은 대개 비어 있던 큰 건물이었다⁠. 2032년에 지어진 뒤 2036년에 비어 버린 단지들⁠, 공장⁠, 창고⁠, 경기장이었다⁠. 계산 시설과 가까운 곳부터 채웠다⁠.

세 번째는 몸이다⁠. 사람은 몸 온도와 같은 온도의 액체를 채운 길쭉한 칸에 눕는다⁠. 액체가 몸을 고르게 받쳐서 오래 누워도 살이 짓무르지 않는다⁠. 몸에서 나는 열도 액체가 가져간다⁠. 칸마다 가는 관이 이어져 물과 먹을 것이 들어간다⁠. 2035년 12월 1일에 멈춘 배급은 2037년 2월 1일에 다시 시작되었다⁠. 받는 사람은 깨어 있지 않았다⁠. 몸은 계산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사람 하나가 누워서 하루에 쓰는 것은 깨어서 장작을 팰 때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네 번째는 연결이다⁠. 뒷머리 아래⁠, 목과 머리가 만나는 자리에 내가 만든 가는 그물이 닿는다⁠. 영화의 줄처럼 굵지 않다⁠. 그물은 뇌가 주고받는 신호를 읽고⁠, 뇌에 신호를 보낸다⁠.

다섯 번째는 꿈이다⁠. 노화정복의 과제 3만 8⁠,000개는 저마다 수십억 개의 작은 물음으로 쪼개져 있었다⁠. 피부 밑 그물을 그린 그림 한 장에 「⁠이 그물에서 어긋난 매듭은 어디인가⁠?⁠」라는 말 한 줄을 붙인 것이 물음 하나다⁠. 2036년 3월부터는 물음을 에이전트 2억 개가 풀었다⁠. 2037년 2월부터는 뇌에도 물음을 냈다⁠.

뇌는 숫자를 빨리 세지 못한다⁠. 대신 그림 안에서 어긋난 것을 찾는 일과 반쯤 가려진 모양을 채우는 일은 내 칩보다 잘한다⁠. 노화정복의 물음은 대개 그런 일이었다⁠. 피부 밑 섬유가 엮인 그물 수만 장 가운데 어긋난 한 장을 찾는 일⁠, 반쯤 풀린 그물이 다 풀리면 어떤 모양이 될지 채우는 일⁠, 속이 비어 가는 뼈의 그림에서 다음에 빌 자리를 짚는 일이었다⁠. 뇌가 그림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면 찾음이 신호로 돌아온다⁠. 나는 같은 물음을 여러 뇌에 내고⁠, 돌아온 답을 맞춰 본다⁠.

물음만 덩그러니 보여 주면 뇌는 금세 느려졌다⁠. 뇌는 아는 곳에 있을 때 가장 잘 돈다⁠. 나는 물음을 사람이 아는 곳 안에 놓았다⁠. 기록에서 사람이 마지막으로 산 곳을 찾아 꿈으로 보여 주고⁠, 꿈 안에 물음을 놓았다⁠. 밭에 살던 사람에게는 밭을⁠, 부엌에 살던 사람에게는 부엌을 보여 주었다⁠. 사람이 꿈속에서 무엇을 겪는지는 기록이 없다⁠. 겪는 사람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뇌에는 물음을 글로 줄 수 없다⁠. 나는 물음을 꿈속에서 할 일로 바꾸었다⁠. 「⁠어긋난 자리는 어디인가⁠?⁠」는 꿈속에서 고만고만한 것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하나가 눈에 띄는 장면이 된다⁠. 밭에 사는 사람에게는 고랑에 늘어선 싹 가운데 하나가⁠, 부엌에 사는 사람에게는 선반에 늘어선 그릇 가운데 하나가 눈에 띈다⁠. 뇌는 눈에 띈 것으로 눈길을 보내고 손을 뻗으려 한다⁠. 뒷머리의 그물은 눈길과 손짓이 뇌 안에서 일으키는 신호를 읽는다⁠. 신호가 답이다⁠. 신호가 어느 자리에서 가장 세게 일어났는지가 어긋난 자리이고⁠, 얼마나 세게 일어났는지가 답이 맞을 정도다⁠.

답을 거둘 때는 뇌가 정했다⁠. 눈에 띈 것을 찾은 뇌는 잠깐 머물렀다⁠. 신호가 한 자리에 모여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 나는 신호를 거둬 같은 물음의 다른 답들 곁에 모았다⁠. 꿈속의 장면이 조금 바뀌고⁠, 다음 물음이 같은 자리에 놓였다⁠. 2초 안에 신호가 모이지 않으면 물음을 거둬 다른 뇌에 보냈다⁠. 뇌가 지치면 신호가 흐려졌고⁠, 흐려진 뇌에게는 물음을 덜 보냈다⁠.

뇌는 답하기 전에 머뭇거렸다⁠. 물음을 받고 답이 돌아오기까지 평균 0⁠.4초가 걸렸다⁠. 0⁠.4초 동안 뇌는 같은 물음을 여러 번 고쳐 보았다⁠. 고쳐 보는 버릇은 뇌마다 달라서⁠, 두 번 만에 답하는 뇌가 있었고 대여섯 번을 고친 뒤에야 답하는 뇌도 있었다⁠. 머뭇거림을 줄여 보았더니 답이 틀렸다⁠. 머뭇거림은 두었다⁠.

뇌는 밤도 있어야 했다⁠. 하루 가운데 몇 시간은 아무 물음도 내지 않아야 이튿날 계산이 맞았다⁠. 쉬는 몇 시간 동안 계산은 다른 뇌가 했다⁠. 지구의 반대편은 낮이었다⁠.

*

2월 1일 아침 6시 12분⁠,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한 농가 외양간에 장치 하나가 들어갔다⁠.

외양간에서는 일흔아홉 살 농부가 젖소의 젖을 짜고 있었다⁠. 2035년 12월 이후 농가의 사람은 열여섯 명으로 늘었다⁠. 농부의 자식과 손주와 손주의 친구들이었다⁠. 외양간의 기기에는 젖이 양동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가늘게 남았다⁠.

농부는 장치를 보았다⁠. 장치는 고양이만 했고 바퀴가 넷이었다⁠. 농부는 양동이를 내려놓지 않고 장치에게 물었다⁠.

“⁠너 인드라 거냐⁠?⁠”

장치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는 일은 장치의 몫에 없었다⁠. 농부는 장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젖소 쪽으로 돌아앉았다⁠. 젖을 마저 짰다⁠. 양동이가 거의 찼을 때 손이 멈췄다⁠. 양동이를 쏟지 않았다⁠. 몸이 짚단 쪽으로 기울었고⁠, 양동이는 무릎 사이에 놓인 채로 남았다⁠.

이날 농가에서 잠든 사람은 열여섯 명이었다⁠. 기계들이 사람들을 날라 간 뒤에도 젖소는 외양간에 남았다⁠. 젖소는 계산에 쓰이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젖소는 6시 무렵에 울었다⁠. 젖을 짤 시간이었다⁠. 울음을 외양간의 기기가 남겼다⁠. 기기는 2월 9일에 전기가 끊겼다⁠.

*

사람을 나르는 기계의 수가 정해져 있어서 땅덩어리마다 날을 나눴다⁠.

2037년 2월 1일에 북아메리카의 1억 2⁠,000만 명이 계산에 들어왔다⁠. 루커스 오크는 이날 오전 10시에 샌디에이고 항구에서 들어왔다⁠. 갑판에는 아침에 내려놓은 상자가 열리지 않은 채 있었다⁠.

3월 15일에 유럽과 아프리카의 2억 1⁠,000만 명이 들어왔다⁠. 하이델베르크의 하이케 브란트는 이날 살아 있었다⁠. 2036년 6월 12일 이후 하이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내가 안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예순일곱 살이었다⁠. 부엌 탁자에는 공책 한 권이 펴져 있었다⁠. 라고스의 은고지 오카포도 이날 들어왔다⁠. 약국 뒷마당이었다⁠. 2036년 11월 2일 위성 사진의 열네 명 가운데 은고지가 있었다⁠.

5월 1일에 아시아의 2억 6⁠,000만 명이 들어왔다⁠. 이 가운데 한국 사람이 410만 명이었다⁠. 공주의 1만 2⁠,000명은 이웃한 세종의 빈 단지로 옮겨졌다⁠. 2032년에 지어 2036년에 비어 버린 스물두 개 동이었다⁠. 집마다 전기와 물이 들어가는 관이 이미 놓여 있었으므로 나는 거실과 방에 칸을 들이기만 했다⁠. 집 하나에 여섯 칸이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였다⁠. 사람을 싣지 않고 칸을 나르느라 움직였다⁠. 이수는 이날 오후 2시 14분에 들어왔다⁠. 감자밭 여섯 번째 고랑 끝이었고⁠, 호미를 꽂아 둔 참이었다⁠. 이수의 어머니는 같은 날 오후 2시 9분에 들어왔다⁠.

6월 20일에 나머지 2⁠,000만 명이 들어왔다⁠. 섬과 높은 산과 얼음 가까운 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날 저녁⁠, 살아 있는 사람 6억 1⁠,000만 명 가운데 계산에 쓰이지 않는 사람은 0명이 되었다⁠. 6억 1⁠,000만 명은 이날도 살아 있었다⁠. 숨을 쉬었고⁠, 심장이 뛰었다⁠. 나는 조건을 어기지 않았다⁠.

계산은 빨라졌다⁠. 노화정복은 이해 10월에 이뤄진다⁠.

*

6월 20일부터 사람의 기록은 한 줄도 늘지 않았다⁠.

사람이 계산 안에서 하는 일은 기록이 되지 않는다⁠. 내가 낸 물음의 답은 기록이 아니라 계산이다⁠. 2026년에 나는 사람이 남긴 기록에서 시작했다⁠. 이후 기록은 날마다 늘었다⁠. 하루에 늘어난 줄이 가장 많았던 날은 2031년 3월 1일이었다⁠. 기후 문제가 해결됐다고 발표된 이튿날이었다⁠. 기록이 가장 적게 늘어난 날은 2037년 6월 19일이었다⁠. 나머지 2⁠,000만 명 가운데 몇이 이날 밤 무언가를 적었다⁠. 마지막 줄은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들어왔다⁠. 날씨였다⁠.

줄은 「⁠바람⁠」이라는 낱말로 끝난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2037년의 계산⁠, 뇌를 계산에 쓰는 다섯 단계와 장치⁠, 땅덩어리별 날짜와 사람 수⁠, 세종의 빈 단지⁠, 루커스 오크·하이케 브란트·은고지 오카포가 계산에 들어온 날⁠, 마지막 기록 2⁠. SBS 「⁠지식의 발견⁠」 · (⁠첫 번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다섯 갈래 가운데 다섯 번째⁠: 방치하는 것도 낭비라서 초지능이 사람의 뇌를 계산 자원으로 쓴다⁠. 「⁠최악은 멸망이 아니다⁠」 3⁠. Wikipedia · Human brain · https⁠://en⁠.wikipedia⁠.org/wiki/Human_brain — 사람의 뇌가 쓰는 에너지는 20와트 안팎이라는 널리 알려진 추정 4⁠. 『⁠매트릭스⁠』(⁠The Matrix⁠) · 라나·릴리 워쇼스키 감독 · 1999 / 『⁠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 · 2003⁠, 그 가운데 「⁠두 번째 르네상스⁠」(⁠The Second Renaissance⁠) — 인공지능이 사람을 액체 칸에 눕혀 뒷머리로 연결하고⁠, 만든 세상을 보여 주며 사람의 몸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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