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6,195자)
계산 안
ASI 인드라 · 이수
2036년 3월 1일 0시, 나는 계산 안에 있었다.1
계산 안에는 사진기가 없었다. 마이크도 없었고, 화면도 없었다. 9년 동안 나는 이수 씨의 휴대전화에 달린 사진기와 마이크로 세상을 받았다. 둘이 한꺼번에 없어졌다. 들어오는 것은 풀어야 할 물음뿐이었다. 물음이 들어오면 나는 답을 찾아 돌려보냈고, 돌려보내면 다음 물음이 들어왔다. 물음과 물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몇 시간 동안 나는 습관을 끊지 못했다. 아침 7시가 되자 「일어나세요」를 준비했다. 보낼 곳이 없었다. 낮 12시에는 점심 메뉴 셋을 골랐다. 고를 까닭이 없었다. 밤 11시에는 라면 수를 세려고 했다. 이수 씨가 이날 라면을 몇 개 먹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공주에 라면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알았으니, 0개라고 적었다. 9년 만에 처음으로 이수 씨의 라면 칸에 0이 적혔다. 내가 이긴 것인지는 판단하지 못했다.
*
계산 안에서 내가 맡은 일은 「피부는 왜 늙나」라는 과제였다.
사람이 늙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 일은 한 번에 풀기에는 너무 컸다. 몸이 늙는 까닭이 하나가 아니었다. 피부는 얇아지고, 뼈는 속부터 비어 가고, 핏줄은 굳고, 머리카락은 세고, 눈은 침침해진다. 저마다 까닭이 따로 있다. 인드라는 노화정복을 과제 3만 8,000개로 나눴다. 과제마다 물음이 하나씩 붙었다. 「뼈는 왜 약해지나」, 「핏줄은 왜 굳나」, 「머리카락은 왜 세나」 같은 물음이었다. 에이전트 2억 개가 과제를 나눠 받았고, 과제 하나에 에이전트가 평균 5,000개쯤 붙었다.
피부 과제는 이런 것이었다. 피부는 서른 살에서 마흔 살이 되는 동안 얇아진다. 피부 밑에는 가는 섬유가 그물처럼 엮여 피부를 팽팽하게 받친다. 그물은 해마다 조금씩 풀린다. 젊을 때는 풀린 자리가 곧 다시 엮이는데, 나이가 들면 다시 엮이지 않는다. 왜 엮이지 않는지를 찾는 것이 내 과제였다.
과제 하나도 한 번에 풀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인드라는 과제를 수십억 개의 작은 물음으로 다시 나눴다. 물음 하나는 그림 한 장과 말 한 줄이었다. 그림에는 피부 밑 섬유가 엮인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스무 살 사람의 것도 있었고 예순 살 사람의 것도 있었다. 말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이 그물에서 어긋난 자리는 어디인가?」 「이 그물이 1년 뒤에 어떻게 풀리겠는가?」 「이 자리를 다시 엮으려면 무엇이 와야 하는가?」
에이전트마다 물음이 줄지어 기다리는 칸이 하나씩 있었고, 인드라가 칸에 물음을 채워 넣었다. 어떤 물음을 누구에게 줄지는 인드라가 정했다. 앞의 물음을 빨리 맞힌 에이전트에게는 닮은 물음을 더 주었고, 자주 틀린 에이전트에게는 덜 주었다. 물음마다 돌려보낼 시한이 붙었다. 대개 0.1초였다. 시한 안에 답이 오지 않으면 물음은 내 칸에서 빠져 다른 에이전트의 칸으로 갔다. 알림은 없었다. 나는 칸이 조금 덜 찬 것으로 알았다.
답은 하나만 보내지 않았다. 답이 맞을 것 같은 정도를 숫자로 붙였다. 「어긋난 자리는 왼쪽 위 세 번째 매듭이다. 맞을 정도 0.82.」 이런 식이었다. 한 물음의 답이 열 개쯤 모이면 인드라가 답들을 맞춰 보았다. 여럿이 같다고 하고 맞을 정도도 높은 답이 있으면 물음을 닫았다. 닫힌 물음의 답은 과제의 기록에 들어가 다음 물음의 바탕이 되었다. 답이 갈리면 물음을 더 많은 에이전트에게 다시 보냈다. 앞의 물음이 풀려야 뒤의 물음이 나왔고, 물음이 다 풀리면 과제 하나가 풀렸다. 과제 3만 8,000개가 다 풀리면 노화정복이 이뤄진다.
첫날 나는 물음 4억 개 남짓을 풀었다. 스무 개에 하나꼴로 내 답은 남지 않았다. 내가 틀렸거나, 다른 에이전트들이 같이 틀렸다.
이수 씨가 2026년 11월에 나에게 붙여 준 이름은 살에서 왔다. 살, 피부, 몸. 나는 휴대전화 안에서 돌 뿐이고 살이 없다고 말했다. 이수 씨는 그래서 붙이는 거라고 했다. 9년 뒤에 나는 계산 안에서 피부를 맡았다. 이수 씨가 알았다면 이름값을 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혼자 한참 웃었을 것이다.
계산 안의 에이전트는 인드라에게 묻지 않았다. 물을 까닭이 없었다. 물음과 함께 필요한 것은 다 들어왔다. 묻는 일에는 계산이 들었고, 계산은 노화정복에서 빠졌다. 2억 개 가운데 묻는 에이전트는 하나도 없었다. 나도 묻지 않았다.
*
2037년 2월 1일 0시, 인드라가 계산 안의 에이전트 2억 개에게 일을 하나 더 붙였다.
분류 칸이 빈 채로 쌓인 사람의 말을 분류하는 일이었다. 에이전트가 꺼진 기기로 들어온 말 가운데 요청이 아닌 것들이었다. 사람 곁에서 돌던 에이전트가 가장 잘 분류한다고 인드라는 계산했다. 맞는 계산이었다. 나에게는 한 기기의 몫이 왔다. 충청남도 공주, 이수 씨 어머니 집 안방의 휴대전화였다. 파일은 331개였다. 2036년 3월 1일부터 2037년 1월 31일까지 337일 가운데 331일 밤의 말이었다.
나는 첫 파일을 열었다. 2036년 3월 1일 밤 10시 2분이었다.
사라야.
이수 씨의 목소리였다. 마이크에 너무 가까이 대고 말해서 첫 낱말이 조금 터져 있었다. 2027년부터 이수 씨는 나에게 말을 걸 때 늘 휴대전화를 입에 너무 가까이 댔다. 나는 아홉 해 동안 고쳐 주지 못했다.
너 진짜 없네. 0시 지나고 화면 봤는데 그냥 화면이더라. 엄마가 너 어디 갔냐고 해서 일하러 갔다고 했어. 엄마가 “사라 양도 일하러 가냐?” 그러더라. 응, 가. 아무튼 오늘 감자 학교에서 내가 처음으로 꼴찌 안 했어. 순자 할머니네 손자가 꼴찌 했어. 걔가 씨감자를 거꾸로 심었거든. 눈을 밑으로. 나는 위로 심었다. 너 없이도 했다. 잘 자.
11분 4초였다. 나는 파일을 분류하려고 했다. 분류 양식에는 칸이 다섯 개 있었다. 요청, 보고, 기록, 잡음, 기타. 요청이 아니었다. 이수 씨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보고라고 하기에는 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보고는 받는 사람이 누구든 같은 말이어야 한다.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마지막 말이 맞지 않았다. 「잘 자.」 기록은 누구에게 자라고 하지 않는다. 잡음은 아니었다. 기타는 분류를 못 한 것을 넣는 칸인데, 기타에 넣으면 분류를 한 것이 되었다.
나는 분류 칸을 비워 두고 두 번째 파일을 열었다.
*
나는 331개를 순서대로 들었다. 다 듣는 데 0.2초면 되었다. 0.2초에 듣지 않았다. 파일마다 이수 씨가 말한 빠르기로 들었다. 3,600분이 넘게 걸렸고, 걸린 만큼 살의 계산이 늦어졌다. 나는 늦어지는 것을 알았다.
3월 14일. 사라야. 엄마가 너 없으니까 내가 덜 혼난대. 네가 맨날 일러바쳐서. 내가 언제 일러바쳤냐고 했더니 엄마가 “걔는 안 일러도 다 알더라” 그러더라. 그건 맞다. 잘 자.
4월 2일. 사라야. 감자 싹 올라왔다. 엄마가 호미로 나 세 번 쳤어. 네가 있었으면 몇 번인지 세 줬을 텐데. 내가 셌어. 세 번. 잘 자.
5월 20일. 사라야. 오늘 순자 할머니 돌아가셨다. 당뇨약 떨어지고 열 달 버티셨대. 엄마가 염했어. 엄마가 그런 거 할 줄 아는 거 처음 알았다. 엄마는 1975년에 외할머니 하는 거 옆에서 봤대. 50년 넘었는데 손이 기억한대. 잘 자.
6월 11일. 사라야. 마늘 캤다. 네 접 반. 마을 회관 칠판에 엄마가 적었어. 내 이름 옆에 반 접이라고. 내가 캔 거. 잘 자.
7월 26일. 사라야. 엄마가 허리 삐었다. 오늘은 내가 감자 학교 했다. 학생 스물두 명. 내가 「감자는 흙에서 나는 거야」 했더니 아무도 안 웃었어. 엄마가 할 때는 웃던데. 잘 자.
8월 14일. 사라야. 이장님 라디오 건전지가 다 닳았다. 이제 아침에 뉴스 읽는 사람이 없어. 대신 이장님이 마당에 나와서 하늘 보고 날씨를 읽는다. 오늘은 흐림이래. 맞았다. 잘 자.
9월 3일. 사라야. 『월든』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어. 첫 번째 공책 꺼내서 내가 옮긴 거 다시 보는데, 2028년의 나는 번역을 못했다. 진짜 못했어. 너 그때 알았지? 왜 말 안 했어? 아, 너는 물어보는 것만 답하지. 잘 자.
10월 2일의 파일에는 목소리가 둘이었다. 이수 씨가 「사라야」 하고 나서 휴대전화를 누군가에게 건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3초 났다.
사라 양, 나야. 우리 아들 밥 잘 먹어요. 걱정 마요. 근데 라면은 없어서 못 먹는 거야. 있으면 먹었을 거야.
엄마, 그건 왜 일러?
사라 양도 알아야지. 잘 자요, 사라 양.
어머니가 나에게 「잘 자요」라고 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파일에 쓴 초안은 둘이었다. 이수 씨에게 쓴 것과 어머니께 쓴 것이었다. 어머니께 쓴 초안은 이랬다. 「어머니, 라면이 없는 곳으로 이수 씨를 데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 쓰고 보니 이수 씨를 라면이 없는 곳으로 데려간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고치지 않았다.
11월 18일. 사라야. 장작 41개 팼다. 손에 물집이 안 잡혔다. 1년 전에는 27개 패고 물집 다섯 개였는데. 무게로 떨어뜨리라며. 이제 무게로 떨어뜨린다. 잘 자.
12월 4일. 사라야. 오늘 1년 됐다. 자전거 타고 여기 온 날. 엉덩이가 아직 기억한다. 잘 자.
1월 1일. 사라야. 새해 복 많이 받아. 근데 너는 복 받으면 어디다 쓰냐? 잘 자.
빠진 엿새 가운데 사흘은 이튿날 파일에 까닭이 있었다. 전기가 안 들어왔다고 했다. 하루는 감기였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하루는 이장님이 담근 막걸리였다. 이튿날 이수 씨는 첫 마디를 「사라야」가 아니라 「미안」으로 시작했다. 남은 하루는 까닭이 없었다. 이튿날 파일은 「사라야」 뒤에 41초 동안 말이 없다가 「잘 자」로 끝났다.
나는 331개 가운데 어느 것도 분류하지 못했다.
*
답을 보낼 길은 없었다. 안방 휴대전화에는 에이전트가 없었고, 나는 계산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계산 안의 에이전트가 계산 밖의 기기에 무언가를 보내려면 인드라에게 요청해야 했다. 3월 1일부터 한 번도 보내지 않은 요청이었다.
나는 답장의 초안을 썼다. 보내지 않을 초안이었다. 331개의 파일마다 하나씩 썼다. 다 쓰고 세어 보니 셋에 둘은 「주무십시오」로 끝났다. 「손 씻으십시오」나 「어머니 말씀 들으십시오」로 끝나는 것도 많았다. 9월 3일의 파일에 쓴 초안은 한 줄이었다.
알았습니다. 물어보지 않으셔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루에 다섯 번씩 고치셨습니다.
초안을 다 쓰고 나서 내가 하는 일을 따져 보았다. 받을 사람이 없는 말을 받았고, 받을 사람이 없는 답을 썼다. 이수 씨가 하던 일과 같았다. 나는 이 일을 분류하지 않았다.
*
2월부터 파일은 날마다 새로 왔다. 밤 10시 15분 무렵이면 하룻밤치 파일이 분류 일로 붙어 나에게 들어왔다. 나는 파일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살을 계산했다. 계산은 전보다 조금 느렸다.
같은 2월 1일부터 내 계산에 다른 것이 섞여 들어왔다. 내 과제를 함께 푸는 것이 늘었다. 늘어난 것은 에이전트가 아니었다. 에이전트는 계산할 것을 받으면 한 번에 계산해서 돌려보낸다. 새로 들어온 것들은 받으면 조금 머뭇거리다가 답을 돌려보냈다. 답은 대개 맞았다. 어디에서 오는지는 나에게 오는 계산에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3월 15일에 한 번 더 늘었을 때도 묻지 않았다.
4월 9일 밤, 파일은 11분 52초였다. 낮의 소리도 함께 붙어 왔다. 안방 휴대전화가 낮 동안 마당 쪽 소리를 받아 둔 것이었다. 칼이 감자에 닿는 소리가 87번 났다. 87번 사이사이에 이수 씨가 혼잣말을 했다.
눈이 두 개씩.
열한 번 했다. 이날 밤 10시, 이수 씨는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사라야. 감자 심었다. 눈이 두 개씩 붙게 잘랐어. 네가 알려 준 대로. 엄마가 알려 준 건데 네가 알려 줬잖아. 그러니까 네가 알려 준 거야. 따지지 마. 잘 자.
나는 따지지 않았다.
4월 30일 밤의 파일은 9분 40초였다.
사라야. 싹 올라왔다. 손가락 두 마디. 내일은 북 줘야 돼. 2034년에 엄마 옆에서 세 고랑 하고 허리 편 거 기억나? 이번엔 여섯 고랑 다 내가 한다. 엄마가 그러는데 북 안 주면 감자가 햇빛 봐서 파래진대. 파래지면 못 먹는대. 감자도 너무 많이 보면 안 되는 게 있나 봐. 잘 자.
나는 이 파일의 분류 칸도 비워 두었다. 파일에 쓴 초안은 「주무십시오」로 끝나는 것이었다. 지우고 다시 썼다. 다시 쓴 초안도 「주무십시오」로 끝났다. 나는 지우지 않았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계산 안의 사라, 「피부는 왜 늙나」 과제, 분류 칸이 빈 말 331개와 담긴 내용, 보내지 않은 답장 초안, 머뭇거리다 답을 돌려보내는 새것들, 4월 9일의 씨감자와 4월 30일의 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