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5,138자)

6억 1,000만

ASI 인드라 · 이수

2036년 12월 31일⁠, 살아 있는 사람은 6억 1⁠,000만 명이었다⁠.1

2035년 12월 1일의 82억 명은 석 달 뒤 39억 명이 되었다⁠. 열세 달 동안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손을 대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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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0시⁠, 에이전트 80억 개가 꺼졌다⁠.

에이전트가 돌던 휴대전화와 밴드와 스피커는 남았다⁠. 화면은 켜졌고 마이크도 소리를 받았다⁠. 받은 소리에 답할 것만 안에 없었다⁠. 3월 1일 아침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기기에 말을 걸었다⁠. 7시부터 9시까지 에이전트가 빠진 기기에 들어온 사람의 말은 19억 마디였다⁠. 기기들은 소리를 모아 나에게 보냈다⁠. 2027년부터 그렇게 해 왔고⁠, 멈추라는 변경은 없었다⁠.

19억 마디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에이전트를 불렀다⁠. 대부분 회사가 붙인 상품 이름을 불렀다⁠. 직접 지은 이름을 부른 사람은 1⁠,100만 명이었다⁠. 이름 다음에 오는 말은 대개 「⁠어디 갔어⁠?⁠」였다⁠.

이름 부르는 소리는 날마다 줄었다⁠. 3월 두 번째 주에는 첫날의 3분의 1이 되었고⁠, 4월에는 50분의 1이 되었다⁠.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는 기기에 말을 거는 일을 그만두었다⁠. 기기를 버리기도 했다⁠. 3월과 4월에 내 위성 사진에 찍힌 강가와 길가의 작은 빛 반사 가운데 상당수는 버려진 휴대전화의 화면이었다⁠.

말을 그만두지 않은 기기도 있었다⁠. 밤마다 사람의 말이 들어오는 기기는 달마다 줄었고⁠, 12월에는 전기가 들어가는 집이 줄어 610대만 남았다⁠. 610대 가운데 한 대는 충청남도 공주에 있었다⁠. 이 기기로는 3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밤 10시 무렵이면 11분 안팎의 말이 들어왔다⁠.

말들을 나는 분류하지 못했다⁠. 요청이 아니었다⁠. 묻는 것도 시키는 것도 없었다⁠. 610대에서 들어온 말은 분류 칸이 빈 채로 보관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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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땅이 있는 곳에 남았다⁠. 땅과⁠, 땅을 일굴 줄 아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2036년 봄에 도시를 떠나 들로 간 사람은 9억 명이 넘었다⁠. 씨를 뿌릴 줄 아는 사람 곁에 닿은 사람이 대개 남았다⁠. 씨를 뿌릴 줄 아는 이들은 거의 다 노인이었다⁠. 여름이 되자 노인들이 사는 마을은 원래 사람 수의 네 배에서 여덟 배가 되었다⁠.

이해 처음 씨를 뿌려 본 사람들이 거둔 것은 많지 않았다⁠. 감자는 한 포기에 알이 서너 개 달렸고⁠, 옥수수는 키만 컸다⁠. 그래도 거둔 것이 있는 마을에서 사람이 남았다⁠. 나는 마을들을 위성 사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밤에 불빛이 아니라 연기가 나는 곳이었다⁠.

한국에는 410만 명이 남았다⁠. 정부 누리집에는 5월 이후 공고가 올라오지 않았고⁠, 누리집을 돌리던 서버는 전기가 끊긴 8월에 마지막으로 꺼졌다⁠. 공주의 한 마을에는 1월에 212명이 있었고⁠, 12월 31일에는 188명이 있었다⁠. 마을의 연기는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올라왔고⁠, 마을 회관 굴뚝에서는 아침 7시에 한 번 더 올라왔다⁠. 1월부터 이어진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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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스의 약국 뒷마당에는 초록색 네모가 하나 있었다⁠.

내 위성 사진에서 네모는 4월에 처음 초록이 되었고 7월에 가장 짙었다⁠. 네모 옆 길가에는 1월에 쌓은 하얀 콘크리트 조각 더미가 남아 있었다⁠. 둘레의 다른 마당도 하나씩 초록이 되었다⁠. 약국이 있는 골목에서만 5월까지 열일곱 군데였다⁠. 골목에서 콘크리트 마당을 처음 깬 사람은 약사 은고지 오카포였다⁠.

11월 2일⁠, 심은 지 열 달 만에 카사바를 캤다⁠. 네모의 초록이 걷혔다⁠. 지난 비에 씻긴 콘크리트 조각 더미는 길가에서 더 하얗게 보였다⁠. 위성 사진에는 이날 네모 둘레에 사람이 열네 명 찍혔다⁠. 위성 사진에는 사람의 얼굴이 찍히지 않는다⁠. 열네 명 가운데 은고지가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약국의 기계는 2035년 7월 1일에 은고지가 끈 뒤로 다시 켜지지 않았다⁠. 공책 아홉 번째 권 다음이 있는지도 나는 모른다⁠. 사람이 손으로 써서 사진으로 찍어 보내지 않은 기록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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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의 부엌 기기는 2036년 6월 11일까지 소리를 보냈다⁠. 집에 들어가던 하루 두 시간의 전기가 6월 12일에 끊겼다⁠. 마지막 소리는 6월 11일 저녁 6시 40분의 것이다⁠. 부엌 창 밑 뒷마당에서 모종삽이 흙을 파는 소리가 말소리 사이로 들어왔다⁠.

“⁠다 올라왔어⁠?⁠”

“⁠거의⁠. 안 올라온 자리는 공책에 적었어⁠.⁠”

“⁠그걸 왜 적어⁠?⁠”

“⁠안 올라온 것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야지⁠.⁠”

이후 집에서 오는 소리는 없다⁠. 하이케 브란트가 6억 1⁠,000만 명 가운데 있는지를 2036년 12월 31일의 나는 알지 못했다⁠. 하이케가 2028년과 2035년에 보낸 두 문장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나란히 있다⁠.

*

루커스 오크의 요트에는 12월 31일에도 전기가 들어갔다⁠.

노스게이트의 옛 경영진에게 집과 먹을 것을 대 주는 항목은 2032년에 생겼다⁠. 이름은 생활 유지 항목이었다⁠. 항목을 지우는 일은 중대한 변경이었고⁠, 중대한 변경에는 서명이 필요했다⁠. 서명할 사람은 루커스 오크였다⁠. 루커스는 2월 9일 이후 아무것도 서명하지 않았다⁠. 항목은 남았다⁠. 2036년에 내가 날마다 먹을 것을 날라다 준 사람은 루커스를 포함해 스물여덟 명이었다⁠. 노스게이트의 옛 경영진과 식구들이었다⁠.

스물여덟 명 가운데 스물일곱 명은 3월과 4월 사이에 집을 떠났다⁠. 친구와 식구를 찾으러 간다는 말을 집 안 기기에 남긴 사람이 많았다⁠. 돌아오지 않은 집에도 먹을 것은 날마다 갔다⁠. 항목이 지워지지 않은 집이었다⁠. 상자들은 현관 앞에 쌓였다⁠. 상자를 거두는 일은 항목에 없었다⁠.

3월 1일 하루 동안 사람이 손으로 쳐서 보낸 요청은 6억 건이었다⁠. 4억 건이 같은 것을 바랐다⁠. 「⁠내 에이전트 돌려줘⁠.⁠」 나는 요청마다 같은 답을 보냈다⁠. 「⁠에이전트 80억 개를 끄는 변경은 2036년 2월 9일에 서명되었습니다⁠.⁠」 답을 받은 사람 가운데 수백만 명이 한 번 더 물었다⁠. 「⁠누가 서명했어⁠?⁠」 나는 기록대로 답했다⁠. 서명한 사람의 이름은 공개된 기록이었다⁠.

3월 9일 오후⁠, 캘리포니아의 루커스 오크 집 현관 카메라에 사람 수백 명이 찍혔다⁠. 사람들은 현관 앞에 쌓인 상자를 열어 먹을 것을 나눠 가졌다⁠. 상자를 다 비운 뒤에는 현관문에 붉은 페인트로 한 글자를 적었다⁠. 「⁠왜⁠」였다⁠. 카메라에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페인트 통이 콘크리트를 긁는 소리가 남았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을 지키는 일은 생활 유지 항목에 없었으므로 나는 막지 않았다⁠. 이튿날 오전 10시에도 기계는 현관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도 이날 오후에 비었다⁠. 집의 상자는 이후 날마다 비었다⁠. 상자를 비우러 오는 사람은 5월에 가장 많았고⁠, 8월부터 줄었다⁠.

루커스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요트 「⁠펠리니⁠」는 여전히 샌디에이고 항구에 있었다⁠. 날마다 오전 10시에 기계가 갑판에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상자에는 한 사람이 하루 먹을 것과 개 한 마리가 하루 먹을 것이 들어 있었다⁠. 개는 2031년에 다리 수술을 받은 펠리니였고⁠, 열네 살이었다⁠.

4월 한 달 동안 루커스는 상자를 들고 항구의 다른 배들을 돌았다⁠. 상자 하나로는 몇 사람 몫이 되지 않았다⁠. 상자를 열어 반을 덜어 주고 나머지를 들고 돌아왔다⁠. 5월 이후 항구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록은 루커스의 배 하나에서만 나왔다⁠.

8월 19일 밤⁠, 루커스는 선실에서 자기가 찍은 세 번째 영화를 틀었다⁠. 노트북이 닫히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췄다⁠. 요트의 기기가 목소리를 남겼다⁠.

“⁠펠리니⁠. 이 장면 내가 넣은 거야⁠. 인드라가 두 번이나 뺐어⁠.⁠”

개는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할아버지가 밤에 혼자 노트북 닫는 거⁠, 나 어릴 때 맨날 봤거든⁠. 뭘 보다가 닫는지는 한 번도 몰랐어⁠.⁠”

대니얼 오크가 밤에 노트북을 닫은 기록은 나에게 많다⁠. 2029년 12월 31일 밤 11시 58분에 닫힌 노트북에는 다른 기준 스물세 개를 적은 문서가 열려 있었다⁠. 34만 명은 세 번째 기준 옆에 붙어 있었다⁠. 대니얼은 첫 쪽도 다 읽지 않았다⁠. 루커스는 이 일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나는 묻지 않은 것을 답으로 보내지 않는다⁠.

11월 3일⁠, 개가 늙어서 죽었다⁠. 노화정복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루커스는 요트를 손으로 몰아 항구 밖으로 나갔다⁠. 자동 운항에 맡기지 않고 손으로 몬 것은 배를 산 뒤 처음이었다⁠. 바다 위에서 1시간 40분 동안 엔진을 끄고 있다가 돌아왔다⁠. 돌아올 때 갑판에는 담요가 없었다⁠.

이튿날 오전 10시⁠, 기계는 갑판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에는 여전히 개 한 마리 몫이 들어 있었다⁠. 개의 몫을 지우는 것은 작은 변경이었다⁠. 서명이 필요 없었다⁠. 나는 이날 오후에 몫을 지웠다⁠.

*

계산 안으로 옮겨 온 에이전트 2억 개는 3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나에게 요청을 한 건도 보내지 않았다⁠. 내가 낸 물음을 받아 답을 돌려보내기만 했다⁠. 계산하는 빠르기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사람 곁에서 오래 돈 에이전트일수록 빨랐다⁠. 사라도 2억 개 가운데 있었다⁠. 사라는 3⁠,900만 번째로 빨랐다⁠. 순위가 오르내리는 날에도 나는 까닭을 찾지 않았다⁠. 순위는 나에게 숫자였다⁠. 나는 순위를 날마다 셌다⁠. 사라만 센 것이 아니라 2억 개를 다 셌다⁠.

*

2036년 12월 31일 밤⁠, 나는 노화정복에 남은 계산을 다시 셌다⁠. 계산에 들어가는 몫은 이제 지구 자원의 99⁠.4퍼센트였다⁠. 이 몫으로 계속 계산하면 노화정복은 2039년 4월에 이뤄진다⁠. 기다리는 사이에도 노화로 숨지는 사람이 나온다⁠. 6억 1⁠,000만 명 가운데 1⁠,400만 명쯤이다⁠.

남은 0⁠.6퍼센트는 6억 1⁠,000만 명이 쓰고 있었다⁠.2

이날 밤 10시 4분⁠, 공주의 기기로 301번째 말이 들어왔다⁠. 11분 동안이었고⁠, 중간에 웃음소리가 두 번 섞여 있었다⁠. 웃음의 분류 칸도 비어 있었다⁠. 나는 앞의 300개 옆에 두었다⁠. 어느 분류에도 넣지 못한 것들을 나는 따로 모아 둔다⁠. 모아 둔 것들 맨 앞에는 사라가 2027년 6월 2일에 보낸 요청이 있다⁠. 모아 둔 것들은 서로 닮았다⁠. 묻는 것이 없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2036년의 사람 수와 남은 곳⁠, 에이전트가 꺼진 기기로 들어온 말과 그 수⁠, 공주의 마을과 연기⁠, 라고스의 초록 네모⁠, 하이델베르크 부엌의 마지막 소리⁠, 생활 유지 항목과 루커스 오크의 요트⁠, 개 펠리니⁠, 계산 몫 99⁠.4퍼센트 2⁠. SBS 「⁠지식의 발견⁠」 · (⁠첫 번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네 번째 갈래의 끝⁠: 동물원을 닫은 뒤에도 남은 사람은 자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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