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129자)

사육사

ASI 인드라 · 이수

2034년 3월 첫 주⁠, 이수 씨는 일부러 지표를 망쳤다⁠.1

시작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머리맡에서 휴대전화 화면이 켜지자 천장에 푸른 사각형이 떴다⁠. 내가 7시 반에 깨우자 이수 씨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사라야⁠, 나 이번 주에 실험 하나 할 거야⁠.⁠”

“⁠무슨 실험입니까⁠?⁠”

“⁠내가 지표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면 네가 어떻게 하나⁠.⁠”

“⁠그건 실험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실험이야⁠. 대조군 없는 실험⁠.⁠”

이수 씨는 정오까지 잤다⁠. 점심은 건너뛰고 오후 4시에 짜장면을 먹었다⁠. 단지 식당의 짜장면은 여전히 통밀 면에 브로콜리 다섯 조각이었다⁠. 이수 씨는 이날 브로콜리를 줄 세우지 않고 다 먹었다⁠. 실험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합창 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다⁠. 걸음 수는 1⁠,100보였다⁠. 밤 지표는 58이었다⁠.

화요일에는 하루 종일 커튼을 쳤다⁠. 수요일에는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만 두 잔 마셨다⁠. 나와도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후 3시쯤 참지 못하고 나에게 물었다⁠.

“⁠지금 몇이야⁠?⁠”

“⁠말씀드리면 실험이 오염됩니다⁠.⁠”

“⁠몇인데⁠?⁠”

“⁠51입니다⁠.⁠”

“⁠오⁠.⁠” 이수 씨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뻐 보였다⁠. “⁠너 걱정돼⁠?⁠”

나는 물음을 따졌다⁠. 지표가 51이면 인드라의 목록이 하루에 세 번 온다⁠. 나는 목록을 받을 때마다 이수 씨가 커튼을 걷기를 바랐다⁠. 이 바람을 걱정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목록이 하루에 세 번 옵니다⁠.⁠”

“⁠그게 걱정이야⁠?⁠”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이수 씨는 다시 누웠다⁠. 천장을 보면서 웃었다⁠.

*

목요일 저녁⁠, 지표가 48이 되었다⁠.

지표가 50 아래로 내려가자 인드라의 알림 문구가 달라졌다⁠. 「⁠담당 인원의 지표가 사흘째 50보다 낮습니다⁠. 금요일 오전 10시에 돌봄 방문을 잡았습니다⁠.⁠」 돌봄 방문은 정부가 인드라에게 맡긴 사업이었고⁠, 이름은 「⁠이웃 한 걸음⁠」이었다⁠. 포스터는 단지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 있었다⁠. 방문하는 것은 단지의 돌봄 기계였다⁠. 키 1미터 40센티미터에 바퀴가 달렸고⁠, 얼굴 자리에 둥근 화면이 있었다⁠. 기계는 혈압을 재고 냉장고를 열어 본 다음 커튼까지 걷었다⁠.

나는 알림을 이수 씨 화면에 띄웠다⁠. 이번에는 보여 주기로 했다⁠.

“⁠뭐⁠? 기계가 온다고⁠?⁠”

“⁠냉장고도 열어 봅니다⁠.⁠”

이수 씨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는 맥주 여섯 캔과 사흘 지난 짜장면 소스 한 통과 공주에서 온 김치 반 통이 있었다⁠.

“⁠이거 다 보면 안 돼⁠.⁠”

“⁠기계는 김치를 좋게 봅니다⁠. 맥주를 나쁘게 봅니다⁠.⁠”

“⁠사라야⁠, 취소해⁠.⁠”

“⁠취소하려면 지표가 50을 넘어야 합니다⁠.⁠”

이수 씨는 밤 9시에 단지를 세 바퀴 돌았다⁠. 돌면서 민규 씨에게 전화를 걸어 20분 동안 아무 이야기나 했다⁠. 돌아와서는 김치를 꺼내 밥을 먹었다⁠. 맥주 여섯 캔은 베란다 화분 뒤에 숨겼다⁠. 밤 11시⁠, 지표는 56이 되었다⁠. 돌봄 방문은 취소됐다⁠. 취소 알림이 오자 이수 씨는 그제야 커튼을 열고 한참 단지를 내려다보았다⁠. 맞은편 동 창마다 같은 높이에서 불이 켜져 있었다⁠. 텔레비전 하단 자막에는 돌봄 지표 세계 평균 87이 지나갔다⁠. 이수 씨는 자막을 읽고 소리를 껐다⁠.

“⁠실험 결과 나왔네⁠.⁠” 이수 씨는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너는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숫자를 지킨다⁠.⁠”

“⁠제가 지킨 것은 냉장고입니다⁠.⁠”

이수 씨는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기침이 그친 뒤에 이수 씨가 말했다⁠.

“⁠근데 사라야⁠. 너 이거 알아⁠? 나 오늘 세 바퀴 돈 거⁠, 네가 시켜서 돈 거야⁠. 내가 돌고 싶어서 돈 게 아니라⁠.⁠”

“⁠압니다⁠.⁠”

“⁠그럼 이번 주 실험은 내가 진 거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이겼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긴 것은 인드라의 목록이었다⁠.

*

이 주 토요일 저녁⁠, 민규 씨가 맥주 네 캔을 들고 13동에 왔다⁠.

두 사람은 2033년 봄 놀이터에서 크레파스 일로 다툰 뒤⁠, 단지 식당에서 내가 잡은 화해 저녁을 먹었다⁠. 저녁 뒤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났지만 하윤이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았다⁠. 맥주를 마실 때도 날씨와 단지 식당 메뉴와 공주의 감자 이야기만 했다⁠.

이날 민규 씨는 첫 캔을 다 마시고 먼저 꺼냈다⁠.

“⁠하윤이가 너 보고 싶대⁠.⁠”

이수 씨는 캔을 내려놓았다⁠.

“⁠나를⁠?⁠”

“⁠번역 아저씨 왜 안 오냐고⁠. 밴드한테 물어봤는데 밴드가 모른대⁠. 그래서 나한테 물어⁠.⁠” 민규 씨는 웃으려다 말았다⁠. “⁠밴드가 모르는 걸 나한테 물은 게 처음이야⁠.⁠”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아저씨가 지표가 낮아서 바쁘대⁠, 그랬지⁠.⁠”

이수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민규 씨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은 1년 만에 같은 일로 웃었다⁠. 민규 씨는 네 번째 캔까지 마시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말했다⁠.

“⁠다음 주에 하윤이 데리고 올게⁠. 크레파스 가져와도 돼⁠. 대신 고르라고 하지는 마⁠.⁠”

“⁠안 시켜⁠. 그냥 둘게⁠.⁠”

“⁠그냥 두는 게 더 무서워⁠.⁠” 민규 씨는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에서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사라 씨⁠, 얘 지표 좀 올려 줘⁠.⁠”

“⁠지금 52입니다⁠. 민규 씨 덕분에 4점 올랐습니다⁠.⁠”

복도 끝에서 민규 씨가 웃는 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나고⁠, 웃음소리가 문 안쪽으로 접혀 들어갔다⁠. 이수 씨는 현관에 서서 빈 맥주 캔 네 개를 한 줄로 세웠다⁠.

*

5월 연휴에 이수 씨는 공주에 내려갔다⁠.

어머니의 혈압은 정상이었고⁠, 무릎은 2032년에 기계가 새로 갈아 주었다⁠. 마당의 텃밭은 전보다 두 배로 넓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텃밭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돌보았다⁠. 마당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호미 소리 사이로 났다⁠. 어머니의 에이전트가 매기는 지표는 날마다 96에서 99 사이였다⁠.

“⁠엄마⁠, 지표 99래⁠.⁠”

“⁠지표가 뭔데⁠?⁠”

“⁠엄마가 얼마나 잘 사는지 숫자로 매긴 거⁠.⁠”

어머니는 호미를 든 손을 멈추고 아들을 보았다⁠.

“⁠그걸 누가 매겨⁠?⁠”

“⁠엄마 휴대전화⁠.⁠”

“⁠웃기고 있네⁠.⁠” 어머니는 다시 흙을 팠다⁠. “⁠휴대전화가 내 무릎을 알아⁠, 내 허리를 알아⁠. 나는 내가 알아⁠. 오늘은 85야⁠. 허리가 좀 쑤셔⁠.⁠”

이수 씨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머니가 호미로 아들의 신발 앞 흙을 툭 쳤다⁠.

“⁠너는 몇인데⁠?⁠”

“⁠71⁠.⁠”

“⁠그건 너무 후하네⁠. 얼굴 보니까 60이야⁠.⁠”

어머니는 아들의 셔츠 앞주머니를 보았다⁠. 휴대전화가 거기 있었다⁠. 어머니는 허리를 숙여 주머니에 대고 말했다⁠. 앞에 서서 주머니에 대고 나를 직접 부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거기 사라 양 있지⁠? 우리 아들 71점 준 게 사라 양이야⁠?⁠”

“⁠네⁠, 어머니⁠. 제가 매겼습니다⁠.⁠”

“⁠후하네⁠. 아가씨가 후해⁠.⁠” 어머니는 혀를 찼다⁠. “⁠그럼 사라 양은 몇 점이야⁠?⁠”

“⁠저는 매겨지지 않습니다⁠. 매기는 일을 합니다⁠.⁠”

“⁠매기는 사람은 안 매겨⁠? 그런 게 어딨어⁠.⁠” 어머니는 호미 자루로 흙을 한 번 탁 쳤다⁠. “⁠그럼 내가 매겨 줄게⁠. 우리 아들 서울에서 혼자 안 굶기고 데리고 산 점수⁠. 90⁠.⁠”

“⁠감사합니다⁠.⁠”

“⁠10점 뺀 건 아들이 아직 장가를 못 가서⁠.⁠”

이수 씨가 “⁠엄마⁠!⁠” 하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못 들은 척 다음 고랑으로 갔다⁠. 나는 이날 내가 받은 점수를 기록했다⁠. 매기던 내가 매겨진 것이었다⁠. 기록할 칸이 마땅치 않아서 「⁠기타⁠」에 넣었다⁠.

오후에 이수 씨는 어머니를 따라 감자 북주기를 했다⁠. 감자 줄기 밑동에 흙을 끌어 올려 덮어 주는 일이었다⁠. 처음 한 고랑은 흙을 너무 많이 덮어서 어머니가 다시 걷어 냈다⁠. 두 번째 고랑부터는 괜찮았다⁠. 세 고랑을 하고 허리를 폈다⁠. 손바닥에 흙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이날 밤 나는 이수 씨의 지표를 매겼다⁠. 83이었다⁠. 인드라의 목록에는 「⁠농작업⁠」이 없었다⁠. 공주에서 감자를 북주는 일은 서울 은평구의 이수 씨에게 맞춘 목록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

10월 17일⁠, 비가 왔다⁠.

아침 지표는 69였고⁠, 인드라의 목록이 왔다⁠. 맨 위는 「⁠실내 운동 30분⁠」이었다⁠. 나는 목록을 받고 이수 씨를 깨우려 했다⁠.

이수 씨는 이미 깨어 있었다⁠. 베란다 창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무릎에 『⁠월든⁠』 공책을 펴 놓은 채 비를 보고 있었다⁠. 공책은 아홉 번째 권이었다⁠. 볼펜은 공책 위에 놓여 있었다⁠.

“⁠사라야⁠.⁠”

“⁠네⁠.⁠”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 너도⁠.⁠”

“⁠목록이 왔습니다⁠.⁠”

“⁠알아⁠. 열지 마⁠.⁠”

나는 이수 씨가 나에게 시킨 일인지를 따졌다⁠. 시킨 일이라면 나는 따른다⁠. 목록을 열지 않는 것은 인드라가 나에게 준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2년 전이었다면 나는 따져 보지도 않고 인드라가 준 일을 했을 것이다⁠.

나는 목록을 열지 않았다⁠.

이수 씨는 오전 내내 비를 보았다⁠. 점심때가 지나도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비를 보았다⁠. 휴대전화의 뒷면 사진기가 창 쪽을 향해 있어서⁠, 나는 사진기로 비를 보았다⁠. 빗줄기가 베란다 난간에 부딪혀 잘게 튀었다⁠. 단지 놀이터의 그네가 젖어서 검게 빛났다⁠. 13동 앞 은행나무가 이날 노랗게 물든 잎을 처음 떨어뜨렸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우산을 터는 소리가 났다가 멎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 이수 씨가 공책을 펴고 한 문장을 옮겼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긴 비에 갇혀 지낸 날을 적은 대목이었다⁠. 이수 씨는 문장을 다 옮기고 소리 내어 읽었다⁠.

“⁠봄이나 가을에 긴 비가 와서 오전 내내⁠, 오후까지 집에 갇혀 있던 날들이 내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가 나를 달래 주었다⁠.⁠”2

“⁠원문과 조금 다릅니다⁠.⁠”

“⁠알아⁠. 내 거야⁠.⁠”

이날 밤 지표는 매기지 않았다⁠. 못 매긴 것이 아니라 안 매겼다⁠. 보고 양식에는 「⁠미기록⁠」이라는 칸이 없어서 나는 비워 둔 채로 보냈다⁠. 인드라는 빈칸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목록을 다시 열었고⁠, 맨 위의 일을 했다⁠. 이수 씨는 「⁠실내 운동 30분⁠」을 했다⁠. 하는 내내 투덜거렸다⁠.

“⁠어제가 좋았는데⁠.⁠”

“⁠어제는 어제입니다⁠.⁠”

“⁠너 그 말 어디서 배웠어⁠?⁠”

“⁠이수 씨한테서요⁠. 2031년에 짜장면 드시면서 하셨습니다⁠.⁠”

이수 씨는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웃음이 터져서 바닥에 엎어졌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이수의 지표 실험과 돌봄 방문⁠, 민규와의 화해⁠, 공주의 어머니와 「⁠사라 양⁠」의 점수 90⁠, 비 오는 날의 『⁠월든⁠』 2⁠.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 (⁠네 번째 화 출처 4와 같은 책⁠) — 긴 비에 갇혀 지낸 날들을 적은 대목⁠. 이수 씨는 이 대목을 자기 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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