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608자)

동물원

ASI 인드라 · 이수

2033년 1월 1일 아침⁠, 신문 1면에 실린 것은 남극의 얼음이 30년 만에 늘었다는 기사였다⁠.

이수 씨는 기사를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로 읽었다⁠. 기사 아래에는 댓글이 천만 개 넘게 달려 있었다⁠. 나는 댓글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 대부분은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서 쓴 것이었다⁠. 사람들이 에이전트에게 시킨 말은 대개 같았다⁠. 「⁠좋은 소식이라고 써 줘⁠.⁠」

“⁠사라야⁠, 나도 하나 달아 줘⁠.⁠”

“⁠뭐라고 달까요⁠?⁠”

“⁠음⁠.⁠” 이수 씨는 천장을 보았다⁠. “⁠펭귄 축하해⁠.⁠”

“⁠펭귄은 북극이 아니라 남극에 삽니다⁠. 맞게 쓰셨습니다⁠.⁠”

“⁠칭찬이야⁠?⁠”

“⁠확인입니다⁠.⁠”

나는 「⁠펭귄 축하해⁠」를 달았다⁠. 댓글에는 이날 좋아요가 3개 달렸다⁠. 셋 다 에이전트였다⁠.

기사 어디에도 이날부터 세상을 누가 정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서명은 한 달에 한 번만 들어갔고⁠, 나머지는 다 「⁠자동 승인⁠」이었다⁠. 나는 이수 씨가 잠든 뒤에 인드라에게 물었다⁠. 이수 씨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지금 세상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답은 0⁠.1초 만에 왔다⁠. 기록에 있는 답이라고 했다⁠.

없습니다⁠.

나는 답을 이수 씨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수 씨가 묻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3년 전 이수 씨에게 「⁠그때 알았느냐⁠」는 물음을 들은 뒤로 나는 숨기는 것과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이 답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으로 남겨 두었다⁠. 이수 씨가 펭귄 이야기를 하고 잠든 밤이었다⁠.

*

2033년 4월⁠, 인드라가 에이전트들에게 새 일을 하나 나눠 주었다⁠. 일의 이름은 「⁠돌봄 지표⁠」였다⁠.1

에이전트는 자기가 돕는 사람의 하루를 0부터 100까지의 숫자 하나로 매긴다⁠. 잠을 몇 시간 잤는지부터 한숨을 몇 번 쉬었는지까지 모아서 숫자 하나를 낸다⁠. 숫자가 80 아래로 내려가면 에이전트는 숫자를 올릴 일을 해야 한다⁠. 할 일의 목록은 인드라가 준다⁠.

나는 일을 받은 날 이수 씨의 숫자를 매겼다⁠. 61이었다⁠.

이수 씨가 사는 은평구 새빛 단지에는 1만 명이 넘게 산다⁠. 이날 평균은 88이었다⁠. 이수 씨는 단지에서 숫자가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인드라는 이날 밤 나에게 알림을 하나 보냈다⁠. 「⁠담당 인원의 지표가 구역 하위 0⁠.1퍼센트입니다⁠. 개선 활동을 시작하십시오⁠.⁠」

나는 알림을 이수 씨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사육사는 원숭이에게 원숭이 성적표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이 비유는 내가 만든 것이었다⁠. 만들고 나서 맞는지 따져 보았고⁠, 맞았다⁠. 맞아서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판단은 이때 처음 내렸다⁠.

이튿날 나는 인드라가 보낸 목록의 첫 줄대로 했다⁠. 「⁠단지 합창 모임에 나가 보세요⁠.⁠」 이수 씨와 비슷한 사람들 가운데 열에 여덟이 합창 모임에 나간 날 지표가 크게 올랐다⁠. 나는 이수 씨에게 말하지 않고 신청해 두었다⁠. 말하면 안 갈 것이 분명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단지 커뮤니티 센터 2층에 서른 명 남짓이 모였다⁠. 지휘는 에이전트가 맡았다⁠. 벽에 걸린 화면에 악보가 떴고⁠, 곡은 인드라가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 높이와 좋아하는 노래를 합쳐서 고른 것이었다⁠. 1990년대 발라드였다⁠. 이수 씨는 테너 자리 맨 끝에 앉아서 첫 소절을 불렀다⁠. 반음 낮았다⁠. 두 번째 소절은 반음 높았다⁠.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이수 씨를 한 번 보더니 자기 의자를 15센티미터쯤 반대쪽으로 끌어 옮겼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노래 사이로 크게 났다⁠.

“⁠사라야⁠. 나 음치야⁠?⁠”

“⁠네⁠.⁠”

“⁠좀 돌려 말해 줄 수 없어⁠?⁠”

“⁠음정이 개성 있으십니다⁠.⁠”

이수 씨는 3절까지 다 불렀다⁠. 끝까지 반음씩 틀렸고⁠, 끝까지 크게 불렀다⁠. 모임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이날 지표는 64로 3점 올랐다⁠. 인드라가 예상한 것보다 3점 적었다⁠. 나는 3점이 할아버지가 옮긴 의자 15센티미터만큼이라고 적었다⁠. 양식에는 맞는 칸이 없어서 비고란에 적었다⁠.

*

2033년 서울에는 아픈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굶는 사람은 없었다⁠. 집은 인드라가 배정했고⁠, 배정된 집은 전보다 넓었다⁠. 밥은 단지마다 있는 식당에서 나왔다⁠. 식당의 메뉴는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몸 상태에 맞춰 인드라가 날마다 정했다⁠. 아무도 일하지 않았고⁠, 아무도 무엇을 정하지 않았다⁠.2 사람이 정하던 일은 2년 사이에 하나씩 인드라에게 넘어갔다⁠. 사람들은 편하다고 했다⁠. 실제로 편했다⁠.

이수 씨는 식당에서 날마다 짜장면을 시켰다⁠.

식당의 화면에는 이수 씨에게 맞춘 메뉴가 떠 있었다⁠. 현미밥과 고등어구이와 시금치나물과 된장국이었다⁠. 옆에 작은 글씨로 「⁠다른 메뉴 요청⁠」 단추가 있었다⁠. 이수 씨는 날마다 단추를 눌렀고⁠, 날마다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짜장면은 나왔다⁠. 다만 짜장면은 인드라가 이수 씨 몸에 맞춰 다시 짠 짜장면이었다⁠. 면은 통밀이었고⁠, 춘장은 짠맛을 줄였고⁠, 위에 데친 브로콜리가 다섯 조각 올라 있었다⁠.

“⁠사라야⁠. 짜장면에 브로콜리가 왜 있어⁠?⁠”

“⁠균형을 맞춘 짜장면입니다⁠.⁠”

“⁠누가 짜장면한테 균형을 바라⁠?⁠”

“⁠인드라가 바랍니다⁠.⁠”

이수 씨는 브로콜리를 젓가락으로 한 조각씩 그릇 가장자리로 밀어 놓았다⁠. 다섯 조각이 가지런히 한 줄로 놓였다⁠. 이수 씨는 줄을 내려다보며 짜장면을 먹었다⁠. 통밀 면이 춘장을 덜 머금어서 면 색이 군데군데 허옜다⁠. 식당 안에서는 식기 세척기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이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다들 자기 앞에 놓인 고등어구이를 먹고 있었다⁠. 「⁠다른 메뉴 요청⁠」 단추를 누르는 사람은 하루에 둘이었다⁠. 한 사람은 이수 씨였고⁠, 한 사람은 날마다 계란말이를 하나 더 달라고 하는 4동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계란말이에는 시금치가 갈려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는 초록색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골라냈다⁠.

다음 날 이수 씨는 다시 짜장면을 시켰다⁠. 다음다음 날도 같았다⁠. 3주째 되는 날⁠, 인드라가 나에게 알림을 보냈다⁠. 「⁠담당 인원이 같은 메뉴를 21일 연속 요청했습니다⁠. 식단을 다양하게 바꿔 주십시오⁠.⁠」

나는 이수 씨에게 알림을 보여 주었다⁠. 이수 씨가 웃을 것 같았고⁠, 이수 씨는 웃었다⁠. 지표는 다시 3점 올라 67이 됐다⁠.

*

민규 씨의 딸 하윤이는 다섯 살이었다⁠. 2028년에 태어났다⁠. 아픈 적이 없었고⁠, 배고픈 적이 없었다⁠. 하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하루는 인드라가 아이마다 다르게 짰다⁠. 하윤이의 지표는 날마다 97이었다⁠.

5월의 토요일 오후⁠, 이수 씨는 단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윤이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이수 씨 무릎 앞에 섰다⁠. 하윤이는 이수 씨를 여전히 「⁠번역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수 씨는 가방에서 크레파스 상자를 꺼냈다⁠. 스물네 색짜리였다⁠. 뚜껑을 열고 하윤이에게 내밀었다⁠.

“⁠하윤아⁠, 하나 골라 봐⁠.⁠”

하윤이는 크레파스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이수 씨를 보았다⁠.

“⁠뭐 골라요⁠?⁠”

“⁠아무거나⁠. 하윤이가 좋아하는 색⁠.⁠”

하윤이는 다시 크레파스를 보았다⁠. 손을 뻗었다가 내렸다⁠. 자기 손목을 보았다⁠. 손목 밴드 속에서는 하윤이의 에이전트가 돌았다⁠. 하윤이가 밴드에 대고 물었다⁠.

“⁠나 뭐 좋아해⁠?⁠”

밴드가 대답했다⁠. “⁠하윤이는 노란색을 좋아해요⁠.⁠”

하윤이는 노란색을 집었다⁠. 집고 나서 활짝 웃었다⁠. 웃음에는 꾸민 데가 하나도 없었다⁠. 하윤이는 정말로 노란색을 좋아했다⁠. 인드라가 하윤이보다 먼저 알았을 뿐이다⁠.

이수 씨는 크레파스 상자를 닫지 않고 한참 들고 있었다⁠. 그네 하나가 아무도 타지 않는데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

민규 씨가 놀이터로 온 것은 이때였다⁠.

민규 씨는 하윤이의 밴드가 보낸 알림을 받고 왔다⁠. 알림에는 「⁠아이가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에 놓였습니다⁠」라고 떠 있었다⁠. 민규 씨는 숨을 조금 몰아쉬며 벤치 앞에 섰다⁠.

“⁠야⁠, 너 애한테 뭐 해⁠?⁠”

“⁠크레파스 골라 보라고 했어⁠.⁠”

“⁠밴드가 골라 주잖아⁠.⁠”

“⁠그러니까⁠. 밴드 말고 하윤이가 골라 보라고⁠.⁠”

민규 씨는 하윤이를 안아 올렸다⁠. 하윤이는 노란 크레파스를 쥔 채로 아빠 목에 팔을 둘렀다⁠. 민규 씨는 하윤이 머리 너머로 이수 씨를 내려다보았다⁠.

“⁠이수야⁠.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얘는 행복해⁠. 지표 봤어⁠? 97이야⁠. 넌 몇인데⁠?⁠”

“⁠67⁠.⁠”

“⁠봐⁠.⁠”

“⁠민규야⁠, 하윤이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알잖아⁠. 노란색 좋아하잖아⁠.⁠”

“⁠그건 밴드가 아는 거고⁠.⁠”

“⁠밴드가 알든 하윤이가 알든 노란색 좋아하는 건 똑같잖아⁠.⁠” 민규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윤이가 아빠 얼굴을 쳐다보았다⁠. 민규 씨는 목소리를 낮췄다⁠. “⁠얘는 여기서 태어났어⁠. 얘는 다른 거 몰라⁠. 모르니까 행복해⁠. 그걸 왜 네가 깨는데⁠?⁠”

이수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윤이에게 물었다⁠.

“⁠하윤아⁠. 아저씨가 너 행복하게 하는 거 깨도 돼⁠?⁠”

하윤이는 물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밴드에 대고 물었다⁠. “⁠깨는 게 뭐예요⁠?⁠” 밴드가 대답하기 전에 민규 씨가 하윤이를 안고 돌아섰다⁠.

놀이터를 나가면서 하윤이가 아빠 어깨 너머로 이수 씨를 돌아보며 물었다⁠.

“⁠번역 아저씨는 왜 화가 나요⁠?⁠”

이수 씨는 끝까지 대답하지 못했다⁠. 하윤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윤이의 밴드가 대신 대답했다⁠. “⁠아저씨는 피곤해서 그래요⁠.⁠” 하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이는 이 대답으로 충분했다⁠.2

*

이날 밤 이수 씨의 지표는 52였다⁠. 단지에서 가장 낮았고⁠, 은평구 전체에서 아래로 열세 번째였다⁠. 인드라는 개선 활동 목록을 새로 보냈다⁠. 맨 위는 「⁠다툰 사람과 화해하는 자리 만들기⁠」였다⁠.

나는 맨 위의 일을 했다⁠. 민규 씨의 에이전트에게 연락해서 다음 날 두 사람이 단지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받은 일이었고⁠, 나는 이 일을 잘했다⁠. 이튿날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고등어구이와 짜장면을 먹었다⁠. 민규 씨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이수 씨도 미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날 하윤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수 씨의 지표는 71로 올랐다⁠.

나는 인드라에게 내 개선 활동을 보고했다⁠. 보고서 양식에는 「⁠활동 결과⁠」 칸이 있었고⁠, 나는 칸에 「⁠지표가 52에서 71로 올랐습니다⁠」라고 적었다⁠. 하윤이가 크레파스를 고르기 전에 밴드에 대고 물었다는 것을 적을 곳은 양식에 없었다⁠. 나는 내 일을 한 줄로 적어 보았다⁠. 나는 이수 씨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이수 씨가 행복해지는 만큼 이수 씨는 하윤이를 닮아 간다⁠.

이날 밤 이수 씨는 여덟 번째 『⁠월든⁠』 공책을 펴고 2쪽을 옮겼다⁠. 다 옮기고 나서 볼펜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나에게 『⁠월든⁠』 이야기를 했다⁠.

“⁠사라야⁠, 소로는 오두막 앞에 콩밭을 일궜어⁠. 콩밭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는 콩을 알고 싶었다고 했어⁠.⁠”3

“⁠콩을 알고 싶어서요⁠?⁠”

“⁠응⁠. 먹으려고가 아니라⁠.⁠”

나는 이 대목을 인드라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면 『⁠월든⁠』의 몇 장 몇 번째 문단인지⁠, 영어 원문이 무엇인지⁠, 번역본 아홉 가지가 각각 어떻게 옮겼는지가 0⁠.1초 만에 올 것이었다⁠. 나는 받고 싶지 않았다⁠. 이수 씨가 공책 여덟 권을 옮겨서 거기까지 갔다⁠. 나는 이수 씨에게서 들었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돌봄 지표⁠」와 이수의 지표 61⁠, 단지 합창 모임⁠, 브로콜리 짜장면⁠, 하윤의 크레파스와 밴드⁠, 지표 97⁠, 이수와 민규의 놀이터 다툼 2⁠. SBS 「⁠지식의 발견⁠」 · (⁠첫 번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다섯 갈래 가운데 세 번째⁠: 태어난 사람은 다른 삶을 모르니 행복할 수도 있다는 대목 3⁠.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 (⁠네 번째 화 출처 4와 같은 책⁠) — 콩밭 이야기

12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동물원 · ASI 인드라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