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98자) · 연우 · 동짓달 스무날

같이 건넌다

재의 강을 건너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동짓달 스무날 새벽, 서안 나루에 새끼줄이 쳐져 있었다.

말뚝 둘을 재 가장자리에 박고 그 사이에 굵은 새끼를 두 겹으로 걸었다. 새끼에는 붉은 무명 조각이 한 뼘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고, 새벽바람에 그 조각들이 일제히 북쪽으로 누웠다. 새끼 앞에 사령 넷이 육모 방망이를 짚고 섰고, 그 옆에 민 이방이 도포 소매에 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곽진수는 조금 떨어진 둔덕 위에 말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두칠이 말고삐를 쥐고 그 옆에 있었다.

연우는 헛간 앞에서 그 새끼줄을 봤다. 재의 강에 줄이 쳐진 것을 처음 봤다. 서른 해 동안 이 강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건너갈 사람과 건너갈 재만 있었다. 연우는 손목의 끈을 한 번 더 감아 매듭을 지었다. 막동이 지었던 모양 그대로 지으려고 했는데, 두 번을 풀었다가 세 번째에야 비슷하게 됐다.

한석이 판개를 등에 업고 헛간에서 나왔다. 판개는 한석의 목에 두 팔을 감고, 다친 다리를 한석 옆구리에 붙이고 있었다. 모돌이 서까래 말뚝을 안고 뒤따랐다. 기순과 억쇠와 둘째와 셋째와 다섯째가 짐을 하나씩 멨다. 불목에 보낼 좁쌀과 무명이었다. 연우가 마지막으로 솥 뚜껑 하나를 등에 멨다. 어제 판개가 끝까지 안고 온 솥의 뚜껑이었다.

이방이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읽었다.

“오늘부터 재의 강 도강은 잿골 도가가 맡는다. 서안 도강꾼이 재에 들면 곤장 스무 대다.”

한석이 새끼줄 앞에 섰다.

“판개가 다리를 못 쓰오. 불목 의원한테 가야 하오.”

둔덕 위에서 곽이 말했다.

“삯은 두 냥이오.”

“그런 돈은 없소.”

“그럼 못 가오.”

한석이 새끼줄을 넘어 한 발을 내딛자 짚신이 재에 닿았다. 사령 둘이 방망이를 들었다가 그대로 멈췄다. 한석의 등에 판개가 업혀 있었다. 사람을 업은 사람을 치는 법을 사령들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때 마을 쪽 길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

봉출이 앞장섰다. 등에 무명 한 필을 지고 있었다. 그 뒤로 서른 몇이 줄지어 내려왔는데, 저마다 등이나 품에 무언가를 하나씩 안고 있었다. 말린 무청 한 두름, 장 한 단지, 짚신 세 켤레, 누비 저고리 한 벌, 좁쌀 한 됫박이었다. 동이를 안고 왔던 계집아이는 제 손으로 뜬 털버선 한 켤레를 가슴에 꼭 쥐고 있었다. 버선은 한 짝이 다른 한 짝보다 컸다.

봉출이 새끼줄 앞에 와서 섰다. 사령들을 한 번 둘러보고, 이방을 보고, 둔덕 위의 곽을 봤다.

“도강꾼이 재에 들면 곤장이라 했소?”

“분명히 그렇소.”

“그런데 우리는 도강꾼이 아니오.”

봉출이 새끼줄을 들어 올리고 그 밑으로 허리를 굽혀 들어갔다. 재에 발을 디뎠다. 늙은 발이 재 위에서 한 번 흔들렸다. 봉출 뒤로 서안 사람들이 하나씩 새끼줄 밑을 지나갔다. 사령들이 서로 얼굴만 봤다. 이방은 붓 대신 소매 속 두 손을 꽉 쥐었다.

“모두 서른여덟이오.”

기순이 입속으로 셌다. 셈이 끝나기도 전에 연우가 앞으로 나섰다.

“세 발씩 떨어지시오. 앞뒤로 서지 말고 옆으로 서시오. 옆에 선 사람을 보면서 걸으시오.”

서안 사람들이 재 위에 옆으로 퍼졌다. 도강꾼 여덟이 그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줄이 아니라 강과 나란한 줄이 섰다. 마흔여섯이 세 발 간격으로 한 줄로 섰고, 그 한가운데 한석의 등에 판개가 업혀 있었다.

둔덕 위에서 곽이 두칠에게 말했다.

“잡아 오게. 첫째 놈 하나만 잡으면 되네.”

두칠이 곽을 봤다.

“재에 들라는 말씀이오?”

“도가 행수가 재가 무섭나?”

두칠이 말고삐를 놓았다. 빈손으로 재에 들어섰다. 한석을 잡으러 가는 걸음이었다. 곽의 명이었고, 곽에게 가는 짐도 없었다. 열 발을 갔다. 스무 발에서 발목이 들어갔다. 서른 발에서 허리까지 빠졌다.

두칠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막동이 빠졌던 날처럼 재 위에서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어디까지 가는지 두칠은 알았다.

줄이 멈추고, 한석이 두칠 쪽을, 기순이 한석을 봤다.

“저 사람이 여섯째 멱살을 잡았소. 막동을 못 건지게 했소.”

“나도 아오.”

한석이 연우를 봤다. 연우는 손목에 감은 끈을 한 번 만졌다. 그리고 두칠 쪽으로 걸어갔다. 기순이 이를 악물고 따라갔다. 억쇠가 겁먹은 얼굴로 따라갔다. 셋이 두칠 둘레에 세 발씩 떨어져 섰다. 두칠의 허리 아래가 굳었다. 셋이 두칠을 끌어냈다.

두칠은 나루까지 끌려 나와 새끼줄 앞에 엎드렸다. 바지가 허리까지 그을려 있었다. 두칠이 고개를 들어 연우를 봤다.

“나를 왜 건졌소?”

연우가 손목의 끈을 쥔 채 대답했다.

“빠진 사람은 건지오. 그게 서른 해 법이오.”

기순이 돌아서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셈에는 안 넣겠소.”

*

마흔여섯이 옆으로 나란히 재를 건넜다.

강과 나란히 선 줄은 한 사람이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려면 한참 걸릴 만큼 길었다. 마흔여섯의 짚신이 굳은 겉을 한꺼번에 밟자 눈 밟는 것보다 낮고 마른 소리가 한 덩어리로 났다. 김이 줄 앞에서 올라와 사람들 무릎께에서 흩어졌고, 흩어진 김 사이로 유황 냄새와 짚신 바닥 눋는 냄새가 섞였다. 해가 동안 언덕 위로 막 올라와서, 재 위에 마흔여섯의 그림자를 서쪽으로 길게 눕혔다. 그림자끼리 세 발씩 떨어져 있었고, 아무도 앞서지 않았다.

새끼줄 앞에서 두칠은 엎드린 채로 그 줄이 멀어지는 것을 봤다. 둔덕 위의 곽은 두칠 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두칠은 한참 뒤에야 일어나 앉았고, 앉아서 제 손바닥을 오래 들여다봤다.

한석이 판개를 업고 백 발까지 갔다. 둘째가 받아 백육십, 셋째가 이백, 기순이 이백이십, 다섯째가 이백사십, 억쇠가 이백육십까지 업었다. 모돌이 받아 이백구십까지 갔다. 업은 사람이 바뀔 때마다 줄 전체가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서안 사람들은 한 번도 재에 들어와 본 적이 없었는데, 옆 사람이 걸으면 걸었고 옆 사람이 서면 섰다. 발밑에서 김이 오르면 옆 사람을 봤다. 봉출은 백 발쯤에서 발목까지 빠졌는데, 옆에 선 계집아이가 털버선을 쥔 채 봉출을 올려다보자 발이 빠져나왔다.

이백구십에서 연우가 판개를 받았다. 받는 순간 연우가 무릎까지 빠졌다. 줄이 다 멈췄다. 판개가 연우 귀에 대고 말했다.

“이제 나를 내려놓으시오.”

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한석이 연우 오른쪽에, 모돌이 왼쪽에 서고 봉출이 그 옆에 섰다. 마흔여섯이 연우를 가운데 두고 둘러섰다. 연우가 한 발을 떼어 보니 발이 재에서 쑥 빠져나왔다.

삼백열둘에서 불목 나루였다.

불목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열아홉 집에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나와 있었다. 마 의원이 맨 앞에서 판개의 무릎을 짚어 보고, 뼈는 안 갔다고 했다. 서안 사람들이 저마다 지고 온 것을 불목 사람들 손에 건넸다. 계집아이가 털버선을 불목 아이 하나에게 내밀었다. 불목 아이가 버선 두 짝을 들어 크기를 대 보고 웃자 계집아이도 따라 웃었다. 불목에 건넨 겨울 짐이 스물여섯이 되었다.

봉출은 불목 나루에 올라서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일흔 해를 서안에 살면서 강 건너를 처음 밟았다. 재가 덮은 땅은 멀리서 볼 때보다 희었고, 집들은 서안 집보다 낮았고, 굴뚝마다 오르는 연기에서 숯 냄새가 났다. 봉출이 삼돌 앞에 가서 섰다. 둘은 서로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댁이 그 삼돌이오?”

“그러는 댁은 누구요?”

“봉출이오. 서안 우물 판 집 손자요.”

“아, 그 목소리 큰 집.”

“우리 집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소?”

“동지 무렵 바람 불면 들렸소. 할멈하고 싸우는 소리.”

봉출이 얼굴이 붉어져서 헛기침을 했다. 삼돌이 입꼬리 한쪽을 올리고 웃었다. 일흔 해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기만 보며 산 두 늙은이가, 처음 마주 선 자리에서 남의 집 부부 싸움 이야기로 서로를 알아봤다. 옆에서 기순이 웃다가 숯 자루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

한석은 나루 끝의 궤 앞에 섰다. 궤는 이제 둘이었다. 셋째 궤는 사십 발 자리 재 속에 모서리만 남기고 가라앉아 있었다.

삼돌이 절룩이며 와서 옆에 섰다.

“열두 해 전에도 댁이 거기 섰소.”

한석이 궤 뚜껑에 손을 얹었다.

“나는 기억이 없소.”

“알아. 그러니 들으시오.”

삼돌이 나루 기둥을 짚었다.

“그날 댁 아비가 백사십에서 빠졌소. 댁이 빈손으로 거기까지 가서 업었소. 업고 뒤로 안 가고 앞으로 왔소. 여기 의원이 있으니까. 그게 밤이었소. 삼백열두 발을 업고 왔는데 한 번도 안 빠졌소.”

한석이 손바닥을 궤 뚜껑에 댄 채로 서 있었는데, 손바닥이 아팠다.

“의원이 값을 말했소. 댁한테는 아무것도 없었소. 그래서 댁 아비가 먼저 이 뚜껑을 들었소. 제 몫이 여기 있었소. 열여덟 해 치가 있었소. 한참 들고 있다가 닫았소. 이걸 지면 오늘 못 돌아간다고 했소. 못 돌아가면 내일 짐을 누가 옮기느냐고 했소.”

“그다음에 내가 들었소?”

“댁도 한참 들고 있었소. 닫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했소. 그리고 아비를 도로 업고 삼백열두 발을 도로 걸어갔소. 스무날 뒤에 서안에 초상이 났다고 들었소.”

한석이 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으니 뚜껑이 눈높이에 왔다.

“그날 밤 댁이 나한테 한 마디 하고 갔소.”

“무슨 말이었소?”

“밥그릇을 두 개 놓겠다고 했소. 아비가 못 먹은 밥을 댁이 날마다 놓겠다고.”

한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궤 뚜껑에서 손을 떼지도 않았다. 손바닥 밑으로 참나무 결이 느껴졌다. 열두 해 동안 까닭 없이 아프던 손바닥이, 아버지의 무게가 쏠렸던 그 자리가 뚜껑 모서리에 꼭 맞았다. 모돌이 서까래 말뚝을 안고 와서 한석 옆에 내려놓았다. 한석은 그 말뚝을 오래 봤다.

한석이 궤 뚜껑을 들자 힘없이 들렸다. 엽전 녹 냄새가 올라왔다. 아버지의 열여덟 해와 한석의 서른 해가 그 안에 섞여 있었다. 한석은 뚜껑을 든 채로 한참 있었다. 뒤에서 마흔다섯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연우가 그 등을 봤고, 기순이 봤고, 삼돌이 봤다.

한석이 뚜껑을 닫았다. 닫으면서 이번에는 말을 했다.

“내일 또 옮겨야 하오.”

삼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해 전 그 밤에 못 들은 말을 이제 들었다는 끄덕임이었다.

그날 돌아가는 짐은 불목 숯이었다. 서안에 보내는 것이었다. 마흔다섯이 숯 한 자루씩을 지고 나란히 재에 들어섰다. 판개는 불목에 남았다. 억쇠가 숯 자루를 메면서 이번에는 제 몫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둘을 지면 무서움이 반으로 준다고 했다. 기순은 그런 셈은 세상에 없다고 했지만 억쇠에게 자루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서안 나루가 가까워졌을 때 새끼줄 앞에 사람이 늘어 있었다. 사령이 넷에서 열로 늘어 있었고, 둔덕 위에는 곽의 말 옆에 처음 보는 가마 하나가 서 있었다. 가마 앞에 감영 깃발이 꽂혀 있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같이 건넌다 · 재의 강을 건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