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268자) · 한석 · 섣달 초이틀
내려놓고 돌아선다
재의 강을 건너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감영 도사 윤씨는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발을 걷어 올린 채로 나루를 내려다봤다. 쉰쯤 되어 보였고, 수염이 짧고 눈이 가늘었으며, 무릎 위에 붓 대신 쥘부채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동짓달에 부채를 든 사람을 서안 사람들은 처음 봤다.
그 옆에 현감이 서 있었고, 현감 옆에 곽진수가 서 있었다. 곽은 도사를 향해서는 허리를 굽히고, 숯 자루를 지고 재에서 올라오는 마흔다섯을 향해서는 턱을 들었다.
“도사 나리, 저것들이오. 도강첩을 어기고 재에 든 무리요. 곤장을 치셔야 하오.”
도사가 부채로 무릎을 한 번 두드렸다.
“저게 몇이오?”
“모두 마흔다섯이오.”
“한 사람에 스무 대면 구백 대요. 현아 사령이 열이니 한 사람이 아흔 대를 쳐야 하오. 사령 팔이 먼저 빠지겠구먼.”
기순이 숯 자루를 내려놓다 말고 도사를 쳐다봤다. 셈이 빠른 사람을 기순은 오랜만에 봤다.
도사가 한석을 불렀다.
“도강첩을 알면서 왜 들었소?”
한석이 나서서 말했다. 불목 열아홉 집이 재를 먹고 누운 것, 스물다섯 짐이 남아 있던 것, 판개의 다리, 남풍 부는 날의 막동. 한석은 말이 서툴렀다. 한 가지를 말하다가 다른 가지로 건너갔고, 막동 이야기에서는 두 번 말을 멈췄다. 도사는 끝까지 끊지 않고 들었다.
곽이 도사 쪽으로 허리를 굽힌 채 웃었다.
“막동은 실족이오. 현아 문서가 있소.”
그때 새끼줄 옆에 앉아 있던 두칠이 일어섰다. 바지가 허리까지 그을린 채였다.
“그건 실족이 아니오.”
곽이 돌아봤지만, 두칠은 곽을 보지 않고 도사를 봤다.
“남풍 부는 날 내보내라 하셨소. 빠진 놈은 건지지 않는 게 도가 법이라 하셨소. 여섯째가 건지러 뛰었을 때 내가 멱살을 잡고 막대로 쳤소. 나리는 나루에서 자루부터 건지라 하셨소.”
두칠의 목소리가 떨렸다. 두칠은 떨리는 손을 앞으로 모으지 않고 옆에 늘어뜨렸다.
“오늘 아침 내가 빠졌을 때 나리는 나를 안 봤소. 나를 건진 건 저 사람들이오.”
도사가 이방을 봤다. 민 이방이 소매에서 검시 문서를 꺼내 두 손으로 올렸다. 문서 한쪽에 먹 방울이 번진 자리가 있었다.
“적으라는 대로 적었소. 그러나 적지 못한 것이 있소. 그날 행수가 떨었는데, 문서에 칸이 없어서 못 적었소.”
도사가 문서를 받아 먹 방울 자리를 오래 봤다. 그리고 부채를 접었다.
“도강첩은 거두오. 곽진수는 감영으로 가오. 도가 문서는 빚 문서까지 다 거두어 가오.”
곽의 손바닥에서 엽전이 떨어져 재 위로 굴렀다. 곽은 그것을 줍지 않았다. 사령 둘이 곽의 양옆에 섰다.
*
도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강을 도가에 판 것이 잘못이오. 강은 나라가 건너야 하오.”
도사가 부채 끝으로 재의 강을 가리켰다.
“불목 재백은 올봄부터 감영 진상품이오. 재백을 실어 나를 길이 있어야 하오. 이듬해 겨울 여기 재다리를 놓겠소. 서안 장정과 도가 빚꾼은 부역으로 나오시오.”
서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한석이 앞으로 나섰다.
“나리, 재는 다리를 안 받치오.”
“받치게 하면 되지.”
“재는 무엇을 옮기는지 보오. 누구에게 가는지 보오. 나라에 가는 돌은 누구 짐이오?”
도사가 한석을 한참 봤다. 가는 눈이 조금 더 가늘어졌다.
“강은 누구 것이라고 보오?”
“강은 건너는 사람 것이오.”
“그러면 건너는 사람이 나라 사람이 되면 되겠구먼.”
도사가 발을 내렸다. 발이 내려가기 직전에 한마디가 더 흘러나왔다.
“현아 체면은 세워 줘야 하니, 첫째 하나만 곤장 열 대요. 나머지는 없던 일이오.”
사령들이 곽을 가마 뒤로 데려갔다. 두칠이 그 뒤를 따라가야 했다. 감영에서 입을 열 사람이었다. 두칠은 가다가 새끼줄 앞에서 멈추고 연우를 봤다.
“감영에서 돌아오면 막동 어미한테 가서, 내가 잡았다고 말하겠소.”
“돌아와서 하시오. 지금은 어서 가시오.”
두칠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는데, 걸음이 무거웠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의 걸음이었다. 연우는 그 걸음이 재 위였다면 몇 발에서 빠졌을지 셈해 보다가 그만뒀다.
그날 밤 한석은 현아 사령에게 곤장 열 대를 맞았다. 서안 나루 모닥불 앞에서였다. 사령이 형틀 대신 헛간 문짝을 떼어 눕혔다. 연우가 그 앞에 먼저 엎드리려 하자 한석이 연우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열 살 때 삼돌 패의 셋째가 연우 목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던 것처럼, 한석은 연우를 뒤로 물렸다.
“이건 첫째 몫이오. 첫째가 받을 사람이 기다리는 짐이오.”
억쇠가 한 대 칠 때마다 제가 맞은 것처럼 몸을 움츠렸고, 기순이 대수를 입으로 셌다. 열이 다 되자 기순이 사령에게 하나 더 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했다. 사령은 열까지만 쳤다.
*
동짓달 그믐까지 여덟이 날마다 재에 들었다. 새끼줄은 걷혔고 말뚝은 없었다. 한석은 사흘 동안 엎드려 지냈고, 나흘째부터 절룩이며 나왔다. 이어 옮기는 날도 있었고, 짐이 많은 날은 여덟이 나란히 들어갔다. 봉출이 이따금 제 무명을 지고 줄 끝에 섰다. 도가 나루의 붉은 깃발이 내려진 이튿날 덕보가 헛간에 왔다. 들어오지는 않고 문턱에 앉아 짐 끈을 사렸다. 한석이 짐을 나눌 때 덕보 몫도 하나 떼어 놓았고, 덕보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지고 백예순을 갔다. 불목에 건넨 겨울 짐이 그믐날 마흔이 되었다.
연우의 빚 문서는 곽의 다른 문서들과 함께 감영으로 갔다. 도사가 그것을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몰랐다. 막동 어미의 스물두 냥도 그 궤짝 속에 있었다. 연우는 손목의 끈을 풀지 않았다.
모돌은 그믐 전날 헛간 사람들을 모아 놓고, 봄이 오면 불목으로 건너가겠다고 했다. 불목 도강꾼 셋이 아직 성치 않으니 동안 쪽에서 서안 쪽으로 짐을 옮길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억쇠가 모돌은 삼십 년을 서안에 있었는데 왜 이제 가냐고 묻자 모돌이 대답했다.
“여기는 이제 내 뒤가 너무 많소. 불목에 가면 또 제일 멀리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소.”
“그 나이에 또 제일 멀리 가려고?”
“삼돌하고 내기를 했소. 누가 먼저 무릎이 나가나.”
“삼돌은 벌써 나갔잖소?”
“그러니까 내가 이기는 내기지.”
기순이 모돌 발수를 불목 쪽에서 새로 세야 하느냐고 진지하게 물었고, 헛간이 한참 웃었다. 모돌은 웃지 않고 서까래를 올려다봤다. 서까래에는 이제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
섣달 초하루에 재가 풀리기 시작했다. 겉은 굳어 있고 아래가 물렀다. 디디면 겉이 깨졌다. 초이튿날 아침 여덟이 불목으로 판개를 데리러 들어갔다. 짐은 좁쌀 두 자루였고, 한석은 서까래 말뚝을 따로 안고 갔다.
풀리는 재는 소리부터 달랐다. 굳은 겉을 밟을 때 나던 마른 소리 대신,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바삭 깨지는 소리가 나고 그 밑에서 무언가 무르게 눌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김은 줄이 아니라 안개처럼 낮게 깔려서, 여덟의 무릎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유황 냄새가 한결 짙었다.
겉이 깨지면서 한석이 열 발에서 발목까지 들어갔지만, 더는 안 들어갔다. 겉이 깨지고 아래가 받쳤다. 여덟이 다 그랬다. 삼백열두 발 끝에 판개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이제 왔소?”
“데리러 왔소.”
한석이 서까래 말뚝을 삼돌에게 내밀었다. 삼돌이 두 손으로 받았다. 받아 들고 무게를 가늠했다.
“이건 두고 가오?”
“두고 가는 게 아니오. 여기로 옮기는 거요.”
“어디까지 옮기오?”
“바로 여기까지요. 아버지가 그날 백사십까지 갔소. 여기는 삼백열둘이오.”
삼돌이 말뚝을 나루 안쪽에 세웠다. 세우고 손을 뗐다.
“나는 이걸 박지는 않겠소. 박으면 자리가 되오. 댁들한테 배웠소.”
돌아갈 짐이 없었다. 불목 숯은 지난번에 다 가져갔다. 풀리는 재에서 빈손은 못 간다. 판개가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나를 업으시오.”
“걸을 수 있소?”
“못 걷소. 그러니까 업으시오. 오늘은 내가 짐이오.”
한석이 소리 내어 웃었다. 서른 해 동안 재의 강에서 한석이 웃은 적은 몇 번 없었다. 한석이 등을 돌렸고, 판개가 업혔다. 곤장 맞은 엉덩이에 판개 무게가 얹히자 한석이 신음을 삼켰다. 억쇠가 그것을 보고 제가 업겠다고 나섰다가, 판개가 억쇠 등은 떨려서 싫다고 해서 물러났다.
*
그날 기순이 새끼줄로 재의 폭을 다시 쟀다. 서안 나루에서 불목 나루까지 새끼를 늘이고, 한 발씩 입으로 셌다. 두 번 셌다.
“강이 삼백스물한 발이오.”
한석이 기순을 봤다.
“시월 스무엿새에 삼백열둘이었소.”
“한 달에 아홉 발이오. 한 해에 넓어지던 만큼이 한 달에 넓어졌소.”
기순은 그 수를 외웠다. 외우고 나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 질 녘에 서안 나루 벽에 감영 방이 붙었다. 이듬해 동짓달 재다리 부역, 서안 장정 스무 명. 글을 아는 이방이 와서 읽어 주고, 읽고 나서 한석 쪽을 오래 봤다가 돌아갔다.
그 저녁 헛간에 열이 모였다. 한석과 둘째와 셋째와 기순과 다섯째와 억쇠와 모돌과 연우, 불목에서 업혀 온 판개, 그리고 헛간 문턱에 앉아 있던 덕보였다. 기순이 그것을 세다가 말았다. 말뚝이 없으니 자리가 없고, 자리가 없으니 번호가 없었다.
한석이 문턱으로 갔다. 그릇 둘이 놓여 있었다. 하나에는 덕보가 넣은 엽전 네 닢이 아직 들어 있었다. 한석은 다른 하나를 들고 한참 있다가 도로 놓았다. 놓고 나서 그 옆에 앉았다. 앉아서 제 그릇을 들고 먹었다. 열두 해 동안 문턱 안쪽에서 먹었다. 그날 처음으로 문턱에 걸터앉아 먹었다. 아버지 그릇이 무릎 옆에 있었다.
나루에 짐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내일 옮길 좁쌀이었다. 한석이 먹고 나서 그것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돌아섰다.
한석이 돌아서다가 멈췄다. 강 위쪽 하늘이 붉었다. 해는 벌써 졌는데 불뫼 쪽 구름 아래가 숯불처럼 붉었다. 재가 삭는 소리가 그날따라 크게 났다. 연우가 옆에 와서 섰고, 기순과 모돌이 그 곁에 섰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한석은 붉은 하늘을 보면서, 이듬해 겨울 이 강이 몇 발이 될지 셈하지 않기로 했다. 몇 발이 되든 그만큼 같이 서면 된다.
그때 잿골 길에서 횃불 하나가 내려왔다. 감영 사령이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나루를 둘러보며 물었다.
“연우라는 자가 여기 있소?”
연우가 한 발 나섰다. 사령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누렇게 바랜 종이였고, 가장자리가 닳아 부드러웠다. 아래쪽에 엄지 지장이 작게 찍혀 있었다.
“도사 나리 분부요. 곽 도가 빚 문서 가운데 불목 재백 길을 제일 멀리 걸어 본 자가 이 자라 하오. 섣달 보름까지 감영으로 오시오. 재다리 놓을 자리를 이 자가 앞장서 재야 한다 하오.”
사령이 종이를 도로 품에 넣었다.
“오면 이 문서는 감영이 거두오. 안 오면 이 문서대로 하오.”
횃불이 잿골 길로 돌아갔다. 연우는 손목의 끈을 쥐었다. 한석이 연우 옆에 섰다. 세 발 떨어져서가 아니라 어깨가 닿게 섰다. 불뫼 쪽 하늘은 밤이 깊도록 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