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03자) · 두 손을 든 오십 명

생중계

박수 유도 등 · 오세림

시월 십오일 수요일 오전 열 시, 엄마는 시청 인사위원회 회의실에 들어갔다. 직위해제 심의. 나는 학교에 있었다. 열한 시 사십 분에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 직위해제. 오늘부터. 괜찮아. 이번엔 진짜로.

진짜로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처음 보는 말이었다.

나중에 엄마가 말해 줬다. 인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이 소명할 게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서류철을 펴지 않고 이렇게만 말했다고. 「칠 년 동안 박자 맞추는 일을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오늘부터 안 하겠습니다. 징계는 받겠습니다. 대신 기록에 제 이름을 첫 줄에 적어 주십시오.」 위원 하나가 무슨 기록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곧 알게 되실 거라고 대답했다고.

오후 세 시 반, 가온시청 광장 입구.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입구마다 검은 정장 보안 요원 둘. 손에 명단. 방성철이 준 명단. 우리 다섯 이름이 맨 위에 있을 것이다. 나는 방송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입구 앞에 섰다. 학교 공문에는 내가 촬영 지원 일 번이었다.

“학생 이름.”

“도아요. 가온고 방송부.”

보안 요원이 명단을 봤다. 손가락이 멈췄다.

“출입 제한 명단에 있네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학교 공문으로 왔는데요.”

“기획관님 지시예요.”

그때 울타리 옆으로 오토바이 두 대가 들어왔다. 치킨 배달통을 단. 앞 오토바이에 현우, 뒤 오토바이에 동생 사장님. 그 뒤로 형 사장님이 봉고 트럭을 몰고 왔다. 짐칸에 치킨 박스가 가득했다. 트럭 옆면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가온시 행복 캠페인 서포터즈 간식 납품.

형 사장님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보안 요원한테 납품서를 흔들었다.

“서포터즈 삼백 명 간식이오. 시청에서 시킨 거. 형네 양념 백오십, 동생네 후라이드 백오십. 반반이오. 이십 년 만에 처음 같이 납품하는 거요.”

“들어가세요.”

“근데 배달 인원이 모자라. 이 학생도 우리 알바요.”

형 사장님이 내 어깨에 치킨 박스 여섯 개를 얹었다. 따뜻했다. 양념 냄새와 튀김 냄새가 동시에 났다. 이 동네에서 그 두 냄새가 한 번에 나는 건 처음이었다. 현우가 내 머리에 치킨집 모자를 씌웠다. 보안 요원이 나를 봤다. 모자를 봤다. 치킨 박스를 봤다. 카메라는 박스 사이에 끼어 안 보였다.

“빨리 들어가세요. 식어요.”

광장에 들어갔다. 천막 아래 봉투 탁자 앞에 줄이 서 있었다. 김 주임이 이름을 부르고 도장을 찍었다. 오만 원. 앞줄 할머니들 차례가 오자 줄이 이상해졌다. 보라 할매가 봉투를 받지 않고 지나갔다. 그 뒤 할머니도. 그 뒤 할아버지도. 동그라미 스물아홉 명이 한 명씩 탁자 앞을 그냥 지나갔다. 김 주임이 봉투를 든 손을 멈추고 그 줄을 봤다. 세모 여섯 명은 봉투를 받았다. 받으면서 김 주임한테 말했다. 「받긴 받는데 안 칠 거야.」 김 주임이 대답하지 못했다.

삼백 개 의자가 거의 찼다. 앞 세 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현우 할머니는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옥자 할머니 이름표가 붙은 의자에. 보라 할매가 그 옆에. 산하기관 직원들 사이, 세 번째 줄에 아빠가 있었다. 상수도사업소 조끼를 입고. 나를 보고 눈썹을 한 번 올렸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제일 큰 인사였다.

은행 이 층 커피숍 창가에서 주희 언니의 액션캠이 빨간 불을 켜고 있었다. 언니 휴대폰 화면에는 생중계 시청자 수가 떠 있을 것이다. 백사십 명에서 시작해서.

아저씨는 광장 밖에 있었다. 울타리 바로 바깥. 실사단 차량이 들어올 입구 옆. 손에 외장 하드. 옆에 엄마. 민원실 점퍼를 벗고 사복을 입고. 손에 서류철 두 개. 직위해제된 공무원은 공무원 신분으로 광장에 못 들어간다. 시민으로는 서 있을 수 있다. 울타리 밖에서.

네 시 정각. 광장 시계탑이 네 번 울렸다. 실사단 차량 세 대가 들어왔다. 교수 다섯, 행정안전부 사무관 둘. 다들 서류 가방을 들었다. 무대 앞 귀빈석으로 걸어갔다. 방송사 카메라가 따라갔다. 방성철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가온시민 여러분, 서울에서 오신 실사단 교수님들입니다. 뜨거운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큐시트 첫 줄. 실사단 입장, 박수 여덟 번.

뒷줄 산하기관 직원들이 쳤다. 짝, 짝, 짝. 박자가 맞았다. 앞 세 줄은 안 쳤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십 명이 무릎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박수 소리가 광장 뒤쪽에서만 났다. 반쪽 박수. 실사단 교수 하나가 앞줄을 돌아봤다.

방성철의 웃음이 굳었다. 그는 무대 옆 김 주임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김 주임이 태블릿을 눌렀다.

네 시 이 분. 드론 이백 대가 떠올랐다. 날개 소리가 광장을 덮었다. 점들이 머리 위에 모였다. 웃음.

뒷줄이 웃었다. 하, 하, 하. 앞줄은 안 웃었다. 아빠도 안 웃었다. 세 번째 줄 가운데서 아빠 혼자 입을 다물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상수도사업소 스무 명 가운데 여섯이 아빠를 따라 입을 다물었다.

글씨가 꺼졌다. 다시 켜졌다. 재시도 일. 웃음. 뒷줄 웃음이 조금 작아졌다. 앞줄은 그대로. 재시도 이. 뒷줄에서 누가 웃다가 앞줄을 보고 멈췄다. 재시도 삼. 뒷줄 웃음이 반으로 줄었다. 사람들이 앞줄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치킨 박스를 앞줄 할머니들 발치에 내려놓고 카메라를 꺼냈다. 보라 할매가 박스 하나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이건 공짜지?」 지도 선생님이 오늘 아침 새로 넣어 준 메모리 카드. 앞줄 끝에 쪼그려 앉아 렌즈를 뒤로 돌렸다. 앞줄 오십 명의 뒷모습과, 그 너머 하늘의 글씨와, 무대 위 방성철을 한 화면에.

재시도 사. 재시도 오.

주희 언니한테서 문자가 왔다. 숫자만. 3,120. 조금 뒤에 또. 11,480. 백사십 명이 한 명씩만 보내도 이만 명이라던 언니 계산이, 틀린 방향으로 맞아 가고 있었다.

광장 스피커에서 소리가 터졌다.

박수. 삼백 명 분. 우레 같은. 광장이 흔들렸다. 비둘기가 지붕에서 날아올랐다. 칠 년 전 엄마가 녹음한 할머니들의 박수가 광장을 덮었다.

앞줄 오십 명이 두 손을 들었다. 머리 위로. 손바닥을 펴서. 박수 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오십 쌍의 손이 하늘을 향해 펴진 채로 멈춰 있었다. 현우 할머니의 두꺼운 손바닥. 보라 할매의 귤 냄새 나는 손. 세 번째 줄에서 아빠가 일어서서 두 손을 들었다. 상수도사업소 여섯이 따라 일어섰다. 뒷줄에서도 하나둘 손이 올라갔다. 박수 소리는 계속 나는데, 광장에서 박수를 치는 손이 줄어들었다. 광장 맨 뒤 치킨 트럭 옆에서 형 사장님과 동생 사장님이 비닐장갑 낀 손을 번쩍 들었다. 양념 묻은 장갑과 튀김 가루 묻은 장갑. 둘은 서로를 보지 않았지만 같은 높이로 들었다.

울타리 밖에서 엄마가 그 박수를 듣고 있었다. 칠 년 전 자기가 녹음한 박수. 딸이 사거리에서 안 웃은 날 밤에 녹음한 박수. 엄마는 두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박수 소리가 끝날 때까지.

실사단 교수 하나가 일어섰다. 흰머리에 안경을 쓴 여자 교수였다. 귀빈석에서 뒤를 돌아 광장을 봤다. 두 손을 든 사람들. 스피커. 다시 두 손을 든 사람들. 교수가 옆 교수에게 뭐라고 말했다. 옆 교수도 일어섰다.

방송사 카메라가 무대에서 광장 쪽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카메라맨이 스스로 돌렸다. 피디가 뭐라고 소리쳤는데 카메라맨은 돌아가지 않았다.

방성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손이 미끄러져 마이크가 한 번 삐 하고 울었다.

“아, 기술적인 오류로 음향이… 여러분! 박수! 박수 한 번 더!”

아무도 안 쳤다. 스피커 박수가 끝났다. 광장이 조용해졌다. 삼백 명이 다 조용해지니까 날개 소리만 남았다. 드론 이백 대가 머리 위에서 윙윙거렸다.

방성철이 김 주임을 봤다. 김 주임은 태블릿을 들고 서 있었다. 누르지 않았다. 방성철이 태블릿을 빼앗으려 했다. 김 주임이 태블릿을 등 뒤로 감췄다. 처음이었다. 김 주임이 방성철 손을 피한 것은. 김 주임이 뭐라고 말했다. 마이크에 안 잡혔지만 앞줄 끝에서 무대까지는 다섯 걸음이었다. 나는 들었다. 「기획관님, 저 이거 대학생 때 태식 형님 밑에서 케이블 잡던 사람이에요. 그때 형님이 그만하자고 했을 때 저는 가만있었어요.」

“민재야, 사인 켜!”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그 말이 광장 스피커로 나갔다. 민재야, 사인 켜. 광장 삼백 명과 실사단과 방송사 카메라와 주희 언니 액션캠이 그 말을 들었다.

그때 울타리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아저씨였다. 보안 요원이 막았다. 아저씨는 막힌 채로 울타리 너머 실사단 쪽으로 외장 하드를 높이 들었다. 엄마가 옆에서 서류철을 들었다. 두 사람이 울타리 너머로 소리쳤다. 박자가 안 맞았다.

“이천십일 년 사월 십이일 원본입니다!”

“연출 일정표와 드론 스크립트입니다! 제가 짰습니다!”

실사단 사무관 하나가 울타리 쪽으로 걸어갔다. 보안 요원이 사무관을 보고 비켰다. 사무관이 하드와 서류철을 받아 들었다. 엄마가 서류철 마지막 장을 펼쳐 노란 줄과 분홍 줄을 가리켰다. 박수 음원.

무대 위에서 방성철이 마이크를 내렸다. 광장을 봤다. 두 손을 든 오십 명. 따라 든 백 명. 드론 이백 대. 그는 웃으려고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다 멈췄다. 박자를 찾지 못한 얼굴이었다.

현우 할머니가 앞줄에서 일어나 방송사 카메라 쪽으로 걸어갔다. 검은 털신.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손을 든 채로.

“가온시 남산동 박말순이오. 칠 년 동안 한 번에 이만 원 받고 박수 쳤소. 오늘은 안 쳤소. 오늘 박수는 공짜로 칠 데가 있으면 칠 거요.”

할머니는 손을 내렸다. 두 손을 무릎 앞에서 모았다. 치기 직전의 손 모양으로. 광장 삼백 명이 할머니를 봤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아직은.

나는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뷰파인더 안에서 광장이 멈춰 있었다. 삼백 명이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사인도 없이, 큐시트도 없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박수가 나오려면 한 사람이 먼저 쳐야 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먼저 치기 실험에서 배웠다. 그런데 오늘은 누가 먼저 치든 그 사람이 드론에 찍혀 홍보 영상에 들어갈 것 같아서, 아무도 먼저 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드론 이백 대가 불을 끈 채 떠 있었다. 김 주임이 태블릿을 끝내 누르지 않았다. 점들이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옥상 난간으로. 까마귀 떼가 저녁에 둥지로 돌아가듯.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