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08자) · 박자 안 맞게

사인 없이

박수 유도 등 · 오세림

광장이 조용했다. 삼백 명이 현우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무릎 앞에 모은 채 서 있었다. 치기 직전의 손. 아무도 먼저 치지 않았다.

그때 박수 소리가 났다.

하나였다. 방송사 카메라 쪽에서. 카메라를 광장으로 돌렸던 카메라맨. 그 사람이 카메라를 삼각대에 걸어 둔 채 두 손을 치고 있었다. 헤드셋을 목에 걸고. 이십 대 초반의 여자였다. 방송사 지역국 조끼. 박자가 없었다. 세게, 느리게, 한 번씩. 짝. 짝. 짝.

현우 할머니가 그쪽을 봤다. 그리고 모아 둔 두 손을 쳤다. 짝. 두꺼운 손바닥 소리. 광장에서 제일 컸다.

보라 할매가 쳤다. 귤 냄새 나는 손. 경숙 할머니, 옥자 할머니 이름표를 단 의자 옆 할머니들. 세 번째 줄에서 아빠가 쳤다. 아빠 손은 배관 조일 때처럼 투박했다. 상수도사업소 여섯. 뒷줄 산하기관 직원들이 서로를 보다가 하나둘. 광장 맨 뒤 치킨 트럭 옆에서 형 사장님과 동생 사장님이 비닐장갑을 벗고 쳤다. 서로를 보지 않았지만 같은 순간에 벗었다.

박자가 하나도 안 맞았다. 삼백 개의 박수가 삼백 개로 들렸다. 빠른 박수, 느린 박수, 세 번 치고 쉬는 박수, 쉬지 않는 박수. 광장이 비 오는 소리 같았다. 굵은 비와 가는 비가 한꺼번에 오는.

머리 위에 사인은 없었다. 드론은 다 옥상에 앉아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켜지도 않았다.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여덟 번이 지나고, 열여섯 번이 지나고, 큐시트에 없는 숫자까지.

울타리 밖에서 엄마가 쳤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옆에서 아저씨가 쳤다. 외장 하드를 옆구리에 끼고. 십오 년 만에 둘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쪽을 보고 박자 안 맞게 쳤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뷰파인더 안에서 광장 전체가 치고 있었다. 할머니들 손바닥이 빨개지고 있었다. 누구는 박수를 치다가 울었고, 누구는 박수를 치다가 웃었다. 그 둘이 한 얼굴에 같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큐시트에는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렸다. 녹화 버튼을 끄지 않은 채로 목에 걸었다. 그리고 쳤다. 칠 년 만에 처음으로, 하늘을 보지 않고.

실사단 귀빈석의 흰머리 여자 교수가 일어서서 광장을 봤다. 치지 않았다. 대신 수첩에 뭔가를 오래 적었다. 적다가 한 번 안경을 벗어 눈가를 닦았다. 손수건은 쓰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방성철이 그 박수를 들었다. 자기가 부르지 않은 박수. 그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 뒤로 내려갔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김 주임이 태블릿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광장으로 내려왔다. 현우 할머니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쳤다. 서툴게. 박자 없이.

주희 언니한테서 문자가 왔다. 숫자 하나. 41,207. 그리고 한 줄. 망했다, 같이. 진짜 시작.

그 뒤의 일은 천천히 왔다.

가온시는 행복도시 공모에서 떨어졌다. 실사단 보고서에 한 줄이 들어갔다고, 나중에 기사가 났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연출한 정황. 대신 그 흰머리 교수가 보고서 끝에 한 문단을 따로 적었다고 했다. 연출이 멈춘 뒤 광장에서 관찰된 시민 반응은 본 실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음.

방성철은 직위해제됐다. 시 감사관실과 경찰이 서포터즈 수당 칠 년 치를 들여다봤다. 보조금 목적 외 사용, 공문서 관련. 그는 기자들 앞에서 웃지 않았다. 사진 속 그의 입이 처음으로 다물어져 있었다. 무스도 바르지 않았다.

엄마는 정직 삼 개월을 받았다. 일정표 작성자 강미숙. 기사 첫 줄에 엄마 이름이 나왔다. 엄마가 원한 대로. 그다음 줄에 방성철. 엄마는 그 기사를 가위로 반듯하게 오려서 냉장고에 붙였다. 자석으로. 아빠가 물었다. 그걸 왜 붙여. 엄마가 말했다.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옆에 상수도사업소 야간 당직표를 붙였다.

김 주임은 경찰 조사에서 전부 말했다고 했다. 드론 운영 태블릿 기록까지. 그리고 사표를 냈다. 지금은 남산동 경로당에 매주 목요일 봉사를 간다. 현우 할머니가 첫날 참외 한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고. 「깎아. 서리한 만큼.」 김 주임은 참외를 스물세 개 깎았다. 할머니들이 다 먹었다.

방성철을 마지막으로 본 건 시청 앞 버스 정류장이었다. 직위해제 통보를 받은 다음 날. 회색 양복 대신 점퍼. 무스 없는 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그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학생은 이제 떨어져 봤네요.”

“네. 같이요.”

“같이 떨어지면 좀 나아요?”

“모르겠어요. 처음이라.”

그는 웃었다. 박자가 맞지 않았다. 이 사람도 이렇게 웃을 줄 알았다. 버스가 왔다. 그는 타기 전에 돌아서서 말했다.

“가온 광장 영상, 봤어요. 박수 소리 좋더라고요. 우리가 칠 년 동안 녹음한 것보다.”

그리고 버스에 탔다. 버스가 떠나는 동안 그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서포터즈 사업은 없어졌다. 할머니들의 이만 원도. 형 사장님과 동생 사장님이 경로당에 찾아가서 반반 포장 알바를 구한다고 했다. 박스 접고 무 담는 일. 시급으로. 현우 할머니가 조건을 하나 달았다. 형네 양념하고 동생네 후라이드를 한 박스에 담아 팔 것. 두 사장님이 서로를 보다가 동시에 대답했다. 알았어요. 박자가 맞았다. 그 가게 이름은 지금 형제반반이다.

보라 할매는 이제 경로당에서 귤 대신 형제반반 박스를 접는다. 한 박스 접을 때마다 순옥이 얘기를 한 줄씩 한다고 했다. 박스가 쌓일수록 순옥이 얘기가 길어졌다. 이번 주에는 순옥이 딸 가게 얘기까지 왔다고. 도아네.

주희 언니 졸업 작품은 심사 보류가 풀렸다. 제목은 가온 사람들은 박자 안 맞게 웃습니다. 시상식에서 언니는 수상 소감을 한 줄만 했다. 망하면 같이 망하자고 한 애한테 고맙습니다. 그리고 객석의 나를 가리켰다.

방송부는 활동이 다시 열렸다. 계정도. 지도 선생님이 방송부실 열쇠를 돌려주며 말했다. 「메모리 카드는 이제 네 주머니 말고 여기 서랍에 넣어도 돼.」 선생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작지 않았다. 첫 게시물은 광장 박수 사십일 분 원본이었다. 편집 없이.

그 영상이 퍼진 지 사흘째 되는 날, 문구점에 손님이 왔다. 방송사 지역국 조끼를 입은 이십 대 초반 여자. 광장에서 제일 먼저 박수를 친 카메라맨. 그녀는 계산대 앞에 서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아저씨가 올린 영상이 떠 있었다. 이천십일 년 사월 십이일. 철물점 앞 교차로. 엄마 손을 놓고 깔깔거리는 여섯 살 아이.

“이거 저예요. 엄마가 보고 알려 줬어요. 그날 제가 너무 크게 웃어서 엄마가 창피했대요.”

그녀의 이름은 서윤이었다. 방송사 지역국 촬영 인턴. 광장에서 카메라를 돌린 건 피디 지시가 아니었다고 했다.

“스피커에서 박수가 나오는데, 손 든 할머니들이 보였어요. 소리하고 그림이 안 맞았어요. 카메라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게 그거예요. 소리하고 그림이 안 맞으면 그림을 믿어라.”

그녀는 영상 속 여섯 살 자기를 한참 봤다.

“저 어릴 때부터 이 동네 홍보 영상 보면 이상했어요. 다들 너무 똑같이 웃어서. 저만 이상하게 웃는 사람 같았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배웠나 봐요. 똑같지 않은 걸 찍으려고.”

아저씨는 계산대를 두 번 두드렸다. 세 번째는 두드리지 못했다. 손이 떨렸다. 아저씨는 형광펜 통에서 제일 긴 노란 형광펜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선물이라고. 십오 년 동안 색깔별로 길이별로 세워 둔 통에서 처음으로 하나가 빠졌다. 통이 이가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그 빈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정직 기간 동안 엄마는 문구점에 나갔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계산대 옆에 의자를 하나 더 놓고. 아저씨는 처음 사흘 동안 엄마한테 아무것도 안 시켰다. 나흘째 되는 날 형광펜 통을 엄마 앞에 밀었다. 엄마는 형광펜을 색깔별로 세우다가 길이는 무시하고 꽂았다. 아저씨가 그걸 보고 한참 참다가 말했다. 「미숙아, 길이.」 엄마가 대답했다. 「오빠, 박자.」 둘은 그날 처음으로 같이 웃었다. 박자는 안 맞았다.

저녁에 집에 오면 아빠가 부엌에 서 있었다. 야간 당직을 늘린 대신 저녁은 아빠가 하기로 했다. 아빠 요리는 전부 국이었다. 된장국, 미역국, 콩나물국. 국물이 맑았다. 엄마가 한 숟가락 떠먹고 물었다. 「이거 간은 했어?」 아빠가 대답했다. 「배관은 맑아야 돼.」 엄마가 소금을 넣었다. 나는 그 국을 두 그릇 먹었다.

시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네 시 사십사 분. 태식문구 앞 교차로. 가로수 은행잎이 반쯤 노랬다. 나는 하교를 십 분 늦게 했다. 주번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가 빨간불이었다. 옆에 어른이 여섯 명. 장바구니 든 할머니 둘, 등산복 아저씨 하나, 정장 입은 아줌마 하나. 그리고 현우 할머니와 현우.

하늘은 비어 있었다. 남서쪽. 사십오 도. 아무것도 없었다. 구름 한 조각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글자 모양은 아니었다. 형네 옥상의 받침대도 치워지고 없었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현우 할머니가 건너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고. 무릎 주사는 형제반반 알바비로 맞았다고 했다. 한 대. 아직 한 대가 모자라서 걸음이 느렸다. 초록불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반쯤 와 있었다. 차 한 대가 정지선 앞에서 기다렸다.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서두르지 않았다. 현우가 옆에서 할머니 팔을 잡고 같은 속도로 걸었다.

할머니가 건너편 인도에 발을 올렸을 때,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딱 맞게. 이 교차로에서 박자가 맞은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신호등과 할머니의 걸음.

장바구니 든 할머니 하나가 손뼉을 쳤다. 짝. 옆 할머니가 따라 쳤다. 등산복 아저씨가, 정장 입은 아줌마가. 정지선 앞 차 운전석에서 누가 창문을 내리고 쳤다. 문구점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나와서 쳤다. 치킨집 두 곳 문이 동시에 열렸다. 박자가 하나도 안 맞았다. 누가 켜지도 않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현우 할머니가 건너편에서 돌아봤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지팡이를 든 채로. 현우가 할머니 옆에서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러다 웃었다. 깔깔깔. 무릎을 치면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방송부 삼 년 차의 손이 주머니 쪽으로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 찍지 않았다. 대신 쳤다. 여덟 번은 넘게. 몇 번 쳤는지 세지 않았다.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제일 좋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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