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21자) · 박수 음원
일정표
박수 유도 등 · 오세림
월요일 저녁 여섯 시, 방성철이 엄마와 나를 같이 불렀다. 시청 칠 층 비서실 옆 기획관실. 보호자 동반 면담이라고 했다. 방송부 촬영 지원 관련. 엄마는 민원실 점퍼를 입은 채로 왔다. 나는 교복을 입은 채로. 엄마는 오늘도 립스틱을 두 번 발랐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 더.
기획관실은 넓었다. 가죽 소파에서 새 가구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 교장실에서 본 것과 같은 해님 탁상시계가 있었다. 여기서도 소리 없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창밖으로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의자 삼백 개가 아직 깔려 있었다. 수요일까지 안 치운다고 했다. 벽에 액자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가온시 홍보 영상 캡처. 웃는 할머니들, 박수 치는 시민들,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는 사람들. 액자 하나에 현우 할머니 얼굴이 있었다. 크게 웃는. 그 아래 금색 글씨. 이천이십이 년 대한민국 지역 홍보 대상.
방성철은 책상 앞에 서서 우리를 맞았다.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선 채로 있었다.
“강 주무관. 따님이 어제 연습 때 찍은 거, 우리가 회수했어요. 근데 은행 이 층에서 누가 또 찍었더군요. 방송부 삼 학년. 그 학생 부모님 가게가 시장에 있더라고요. 시장 상가 임대 재계약이 내년 초죠.”
엄마가 가방을 열었다. 서류철 두 개를 꺼냈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소리가 컸다.
“기획관님. 이천십일 년부터 올해까지 행복 캠페인 연출 일정표 원본이에요. 날짜, 장소, 사인 문구, 서포터즈 인원, 지급액. 제가 짰어요. 전부. 그리고 이건 드론 운영 스크립트. 반응형 명령어 포함. 이것도 제가 썼어요.”
방성철은 서류철을 펴지 않았다.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걸 왜 여기 가져왔어요. 공유 폴더에 다 있는 건데.”
“공유 폴더는 어제 밤에 비밀번호 바뀌었잖아요. 칠 년 만에. 이건 제가 출력해 둔 거예요. 제 집 옷장에 있던 거.”
엄마는 서류철 하나를 펼쳤다. 스크립트 마지막 장. 굵은 글씨로 적힌 명령어 몇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수요일 큐시트대로 사인이 켜졌는데 앞줄이 안 치면, 기체가 재시도를 다섯 번 해요. 다섯 번 다 실패하면 광장 스피커로 박수 음원을 틀어요. 삼백 명 분량 박수. 제가 이천십구 년에 녹음해 둔 거예요. 경로당 할머니들 박수로. 실사단 교수님들은 그 음원을 듣고 가온 사람들이 박수 쳤다고 적을 거예요.”
나는 엄마를 봤다. 박수 음원. 할머니들이 안 쳐도 박수가 나온다. 할머니들이 칠 년 전에 친 박수가.
방성철이 웃었다. 이번 웃음은 길었다.
“강 주무관이 만든 안전장치죠. 훌륭해요. 그래서 걱정 안 했어요. 경로당에서 안 치기 운동을 하든 말든.”
“이거 기자한테 줄 거예요. 실사 전에.”
“주세요. 누구 이름으로 나갈지 생각해 봤어요? 일정표 작성자 강미숙. 스크립트 작성자 강미숙. 수당 지급 결재 올린 사람 강미숙. 저는 결재란 두 번째 칸이에요. 기자가 쓰면 제목은 이거예요. 가온시 공무원, 칠 년간 가짜 박수 연출. 제 이름은 기사 여덟 번째 줄쯤 나오겠죠.”
엄마의 손이 서류철 위에서 멈췄다. 방성철은 나를 봤다.
“도아 학생, 엄마 이름이 신문에 나오는 거 괜찮아요? 공무원 징계 받으면 연금도 날아가요. 학생 대학 등록금은 누가 내요.”
나는 엄마 손을 봤다. 손등에 민원실 도장 인주가 조금 묻어 있었다. 서류철 위에서 떨리지 않았다. 멈춰 있기만 했다.
“기획관님.”
엄마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제 이름으로 내세요. 첫 번째 줄에. 제가 짰으니까. 그 대신 기획관님 이름도 첫 번째 줄에 넣을 거예요. 결재란 두 번째 칸이 아니라. 이천십일 년 사월에 우리 오빠를 잘랐을 때 한 말도 같이. 박자 안 맞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 말, 저도 들었어요. 오빠 옆에서.”
방성철의 웃음이 멈췄다. 이번에는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강 주무관. 오늘부로 직위해제 요청 올릴게요. 공문서 무단 반출.”
“올리세요.”
“그리고 수요일에 광장 오지 마세요. 보안 요원들한테 명단 줄 거예요. 강태식, 강미숙, 도아, 이주희, 그 치킨집 배달하는 애.”
“현우요.”
내가 말했다. 방성철이 나를 봤다.
“이름 있어요. 치킨집 배달하는 애 말고. 현우. 박말순 할머니 손자.”
기획관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가 서류철을 내 가방에 넣었다. 두 개 다.
“엄마 가방은 내일부터 검사받을 거야. 네가 들고 있어.”
“엄마.”
“응.”
“박수 음원. 이천십구 년에 녹음했다는 거. 그해 오월에 나 사거리에서 봤을 때도 그거 틀었어?”
엄마가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를 봤다. 칠, 육, 오.
“아니. 그날은 서포터즈가 진짜로 쳤어. 웃었어. 너만 안 웃었지. 그날 네 얼굴 보고 집에 와서 녹음했어. 다음에 누가 안 웃으면 틀려고. 너 같은 사람이 또 나올까 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엄마가 먼저 탔다. 나는 한 박자 늦게 탔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우리 둘이 비쳤다. 민원실 점퍼와 교복. 엄마가 거울 속 내 목덜미를 봤다. 붉은 줄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화요일 오후, 남산동 경로당에 방성철이 직접 왔다. 김 주임과 함께. 손에 과일 상자 다섯 개와 흰 봉투 한 뭉치. 보라 할매가 그 소식을 현우한테 전화로 알렸고, 현우가 배달 오토바이로 나를 태우고 갔다. 헬멧이 하나라서 나는 방송부 자전거 헬멧을 썼다.
경로당 거실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른 명 넘게 앉아 있었다. 방성철이 그 한가운데 서서 봉투를 흔들었다.
“어르신들, 수요일 앞줄 오십 분께는 특별 수당 드려요. 오만 원에 오만 원 더. 십만 원. 시장님이 직접 챙기라고 하셨어요. 우리 가온 살리는 날이잖아요.”
웅성거림이 일었다. 십만 원. 몇 사람의 손이 무릎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누군가 말했다. 「십만 원이면 무릎 주사 한 대 반이네.」 누군가 대답했다. 「반은 어디다 맞아.」 몇이 웃었다.
보라 할매가 일어섰다. 귤 봉지를 든 채로.
“기획관님. 그 돈 어디서 나와?”
“시 예산이죠. 일자리 사업.”
“일자리면 일한 만큼 줘야지. 손뼉 열여섯 번에 십만 원이면, 한 번에 육천이백오십 원이네. 나는 칠 년 동안 밭 매서 하루에 그거 못 벌었어.”
방성철이 웃었다.
“그러니까 좋은 거죠, 어르신.”
“좋은 거면 왜 몰래 줘. 왜 서약서 쓰게 해. 좋은 거면 영상에 나가지. 가온시가 할머니들한테 한 번에 육천이백오십 원씩 주고 박수 치게 했습니다, 하고.”
거실이 조용해졌다. 방성철의 봉투가 허공에서 멈췄다.
현우 할머니가 일어섰다. 검은 털신을 신은 채로. 경로당 안에서는 원래 신발을 벗는다. 할머니는 벗지 않고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민재야.”
김 주임이 움찔했다.
“너 초등학교 때 우리 밭 참외 서리한 거 내가 봐줬지. 그때 네 엄마가 너 데리고 와서 무릎 꿇렸어. 내가 일으켜 세웠어. 애가 참외 좀 먹을 수 있지, 하고. 근데 너 지금 할머니들 앞에서 봉투 흔드는 거, 그건 못 봐주겠다.”
김 주임은 봉투를 든 손을 내렸다. 방성철이 김 주임을 봤다. 김 주임은 방성철을 보지 않았다. 현우 할머니를 봤다. 입술이 달싹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방성철은 과일 상자를 거실에 두고 나갔다. 봉투는 가져갔다. 김 주임이 따라 나가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서서 현우 할머니한테 허리를 숙였다. 오래. 그리고 나갔다.
과일 상자를 열어 보니 사과였다. 상자 옆면에 가온시 행복 캠페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웃는 해님. 할머니들이 사과를 깎아 나눠 먹었다. 보라 할매가 나한테 한 쪽을 건네며 말했다.
“동그라미가 스물아홉 개 됐어. 세모는 여섯 개로 줄었고.”
화요일 밤, 문구점. 계산대를 가운데 두고 모였다. 아저씨, 엄마, 현우, 주희 언니, 보라 할매, 현우 할머니, 동생 사장님. 동생 사장님은 형네 가게에서 양념 반 마리를 사 들고 왔다. 두 번째라고 했다. 형이 이번엔 돈을 안 받았다고. 그리고 아빠. 아빠는 들어오면서 오래된 작업 가방을 들고 왔다. 문구점이 이렇게 꽉 찬 건 두 번째였다.
엄마가 스크립트 마지막 장을 계산대에 펼쳤다. 박수 음원. 재시도 다섯 번 뒤 자동 재생.
“이게 문제야. 할머니들이 안 쳐도 박수 소리는 나. 방송사 마이크는 그 소리를 잡아. 실사단은 그 소리를 들어.”
주희 언니가 말했다. 「그럼 우리 생중계에 자막 달면 되지. 이 박수는 녹음입니다.」
“자막은 사람들이 안 믿어. 소리는 믿어.”
아저씨가 계산대를 두 번 두드렸다. 조용해졌다.
“소리를 이길 수 없으면 그림으로 이겨. 음원이 나올 때 앞줄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손바닥을 붙이지 말고. 펴서. 삼백 명 분 박수가 쏟아지는데 앞줄 오십 명이 두 손을 번쩍 들고 가만히 있어. 그걸 찍으면 누가 봐도 알아. 박수는 여기서 안 나온다.”
보라 할매가 손을 들어 봤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손바닥을 펴서. 그 자세로 한참 있다가 말했다.
“이거 만세 같네.”
“만세 아니에요, 할매. 항복이에요.”
현우가 말했다. 현우 할머니가 현우 뒤통수를 쳤다.
“항복은 무슨. 이건 손 들고 벌서는 거야. 칠 년 치 벌.”
모두 웃었다. 박자가 하나도 안 맞았다.
아빠가 작업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수요일 광장 동원 명단. 산하기관 직원 이백 명. 가온시 상수도사업소 스무 명. 그중 하나가 아빠 이름이었다.
“나도 앞에서 세 번째 줄이더라.”
엄마가 아빠를 봤다. 아빠는 명단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나는 손 들고 서 있을게. 배관처럼. 뚫려 있는 거 보여 주면 되지.”
그날 밤 열한 시, 엄마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인사과. 강미숙 주무관 직위해제 심의 회부. 수요일 오전 열 시. 엄마는 문자를 읽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계산대 위 형광펜 하나를 집어 스크립트 마지막 장의 박수 음원 줄에 노란 줄을 그었다. 한 번. 형광펜 뚜껑을 닫는 소리가 딸깍 났다.
“심의가 오전 열 시고 실사가 오후 네 시네. 여섯 시간. 충분해.”
아저씨가 엄마를 봤다.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둘이 같은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아저씨가 형광펜 통을 엄마 쪽으로 밀었다. 색깔별로, 길이별로 세워 둔 통.
“미숙아. 하나 더 그어. 박자 안 맞게.”
엄마가 분홍 형광펜을 집었다. 노란 줄 위에 비스듬히 한 줄을 더 그었다. 삐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