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02자) · 큐시트

리허설

박수 유도 등 · 오세림

총연습 전날, 토요일 오후. 보라 할매는 경로당 순례를 돌고 있었다. 남산동, 서정동, 시장 뒤, 역전. 가온시 경로당 열네 곳. 할매는 귤 한 봉지를 들고 가서 거실 한가운데 앉았다. 그리고 순옥이 얘기를 했다. 추모식에서 이만 원 받고 일 분 서 있었던 얘기. 그날 영상에 순옥이 이름이 안 나온 얘기.

현우가 할매를 따라다녔다. 치킨 배달 오토바이 뒤에 할매를 태우고. 할매는 헬멧을 거꾸로 쓰고 탔다. 현우가 고쳐 씌워 드리자 할매가 말했다. 「이게 앞이야? 뒤통수가 더 예쁜데.」

경로당마다 반응이 달랐다. 남산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동은 화를 냈다. 오만 원이면 손주 운동화 한 켤레라고. 역전 경로당 할아버지 한 분은 한참 듣다가 말했다. 「나는 칠 년 동안 박수 쳤는데, 한 번도 뭐가 좋아서 친 적이 없어. 좋아서 한번 쳐 보고 싶네.」

저녁에 할매가 문구점 계산대에 명단을 내려놓았다. 달력 뒷장에 볼펜으로 쓴 것. 이름 스물세 개. 그 옆에 동그라미와 세모.

“동그라미는 안 치는 사람. 세모는 돈은 받고 안 치는 사람.”

“가위표는요?”

“가위표는 안 적었어. 치겠다는 사람은 그 사람 사정이 있으니까. 적으면 미워져.”

아저씨가 그 달력 뒷장을 오래 봤다. 그리고 계산대를 세 번 두드렸다.

시월 십이일 일요일 오후 세 시, 가온시청 광장. 현장 실사 사흘 전. 총연습.

광장에 접이식 의자가 삼백 개 깔려 있었다. 줄마다 번호. 의자 등받이마다 이름표. 앞 세 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 뒤로 산하기관 직원들, 맨 뒤 두 줄은 시청 공무원 가족. 광장 한쪽 천막 아래 긴 탁자에 흰 봉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김 주임이 그 탁자 앞에서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고, 확인 도장을 찍고, 봉투를 줬다. 오만 원.

시청 옥상과 광장 양쪽 건물 옥상에 드론이 이백 대 앉아 있었다. 하늘빛드론 직원 여섯이 태블릿을 들고 옥상마다 서 있었다. 작은 검은 점들이 난간을 따라 줄지어. 까마귀 떼 같았다.

나는 방송부 카메라를 목에 걸고 광장 앞쪽 무대 옆에 섰다. 학교 공문대로. 촬영 지원. 활동 정지는 오늘 하루만 풀렸다. 카메라는 지도 선생님이 직접 챙겨 줬다. 넘겨주면서 말했다. 「오늘 찍은 건 전부 시청 제출이래. 원본까지.」 그러고는 카메라 옆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예비 메모리 카드가 들어 있는 주머니.

주희 언니는 광장 건너편 은행 이 층 커피숍 창가에 앉아 있었다. 교내 봉사 중이라 촬영 지원에서 빠졌다. 대신 자기 돈으로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액션캠을 창틀에 세워 두었다.

무대 위에 방성철이 마이크를 들고 섰다. 마이크를 두 번 톡톡 쳤다. 오늘은 회색 양복 대신 행복 캠페인 로고가 박힌 노란 점퍼. 무스는 그대로.

“어르신들, 직원 여러분, 수요일이 우리 가온이 삼백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날입니다. 실사단은 서울에서 오시는 교수님들이에요. 그분들이 보시는 건 딱 하나예요. 이 도시 사람들이 행복한가. 우리가 행복하다는 걸 삼 분 안에 보여 드리면 됩니다.”

그는 무대 뒤 스크린을 가리켰다. 큐시트가 떠 있었다.

16:00:00 실사단 입장, 박수 8회 16:02:00 하늘 사인 웃음, 3초 16:03:30 하늘 사인 감동, 손수건 5초 16:05:00 하늘 사인 박수, 16회, 기립 16:06:00 시장 인사

“하늘을 보시고, 글씨가 켜지면, 옆 사람 따라 하시면 됩니다. 박자는 우리가 연습한 대로. 어르신들 잘하시잖아요.”

할머니들이 웃었다. 박자가 맞았다. 연습한 웃음이었다.

연습이 시작됐다. 드론 이백 대가 떠올랐다. 날개 소리가 광장을 덮었다. 벌 떼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소리. 점들이 하늘에 모였다. 이백 개의 점은 스무 개와 달랐다. 글씨가 선명했다. 사십오 도가 아니라 머리 바로 위에 떴다. 웃음.

삼백 명이 웃었다. 하, 하, 하. 광장 전체가 한 사람처럼 웃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서 카메라가 미끄러웠다. 뷰파인더 안에서 삼백 개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고 동시에 닫혔다. 소름이 돋았다. 무서운 소름이었다.

감동. 삼백 명이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찍었다. 오 초. 앞줄 할아버지 한 분이 손수건을 코에 대다가 재채기를 했다. 에취. 그 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옆 할머니가 웃음을 참다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감동 장면에서 어깨가 들썩였다. 방성철이 무대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르신! 감동이에요, 감동!」

박수. 삼백 명이 일어섰다. 열여섯 번. 광장이 울렸다. 비둘기들이 시청 지붕에서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방성철이 무대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섰다.

“도아 학생, 잘 찍고 있어요? 수요일에는 학생 카메라가 생중계 서브 앵글이에요. 방송사 카메라는 무대를, 학생은 앞줄 어르신들 얼굴을. 웃는 얼굴 클로즈업. 그게 제일 진짜 같거든요. 방송부 학생이 찍었다고 자막 나가요.”

“진짜 같다고요.”

“진짜예요. 웃고 있잖아요.”

나는 카메라를 앞줄에서 돌렸다. 천막 아래 탁자로. 흰 봉투 산. 김 주임이 봉투를 건네며 도장을 찍는 손. 그다음 무대 뒤 스크린. 큐시트. 16:05:00 하늘 사인 박수, 16회, 기립. 줌을 당겼다.

“학생.”

방성철의 목소리가 한 칸 낮아졌다.

“그쪽은 찍으라는 데가 아닌데.”

“촬영 지원이잖아요. 행사 전체를 찍는 거예요.”

방성철이 손을 뻗었다. 카메라 렌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부드럽게. 그리고 끈을 잡아당겼다. 목에 건 끈이 목덜미를 조였다. 나는 끈을 붙잡았다. 방성철이 웃으며 당겼다. 웃음은 박자가 맞았다. 손은 안 맞았다. 세게 당겼다.

“메모리 카드 빼서 주세요. 학교 공문에 원본 시청 제출이라고 돼 있죠.”

“수요일 거요. 오늘 건 연습이잖아요.”

“연습도요.”

김 주임이 뛰어왔다. 카메라 옆 주머니를 열었다. 예비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본체 카드도 뺐다. 둘 다 자기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방성철이 끈을 놓았다.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고마워요. 수요일에는 새 카드 드릴게요. 우리 카드로.”

그때 앞줄에서 누가 일어섰다. 검은 털신. 현우 할머니였다. 명단에서 빠졌는데 앞줄에 앉아 있었다. 누구 이름표가 붙은 의자에.

“기획관님, 애 목에서 손 떼요. 애 목이 빨개졌잖아.”

“어르신, 명단에 없으신데요. 그 자리는 옥자 어르신 자리예요.”

“옥자는 안 온대. 그래서 내가 대신 앉았어. 오만 원은 안 받을게. 구경하러 왔어. 우리 손자 친구가 찍는다길래.”

방성철은 현우 할머니를 보고, 주위를 봤다. 앞줄 할머니들이 다 이쪽을 보고 있었다. 삼백 명 가운데 앞줄 오십 명이. 그는 웃었다.

“어르신, 다 끝났어요. 앉으세요.”

그는 무대로 돌아갔다. 김 주임이 따라갔다. 현우 할머니가 앉지 않고 내 옆으로 왔다. 두꺼운 손바닥으로 내 목덜미를 문질렀다. 까끌까끌했다.

“아프냐.”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은 안 괜찮을 때 하는 거야.”

할머니는 앞줄을 돌아봤다. 오십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목소리를 낮췄다.

“보라가 경로당마다 돌고 있어. 수요일에 안 치자고. 벌써 스무 명 넘게 됐어. 근데 그중 반은 오만 원은 받고 안 친대. 돈은 받고 박수는 안 친다. 그게 되냐고 나한테 묻더라.”

“돼요?”

“모르지. 우리가 처음 해 보는 거니까.”

할머니는 웃었다. 박자 없이. 앞니 하나가 빠진 자리가 보였다. 할머니는 그걸 가리지 않았다.

연습이 끝나고 광장이 비었다. 의자 삼백 개가 빈 채로 남았다. 나는 빈 카메라를 목에 걸고 은행 건물 쪽으로 걸었다. 이 층 커피숍 창가에서 주희 언니가 손을 흔들었다. 창틀의 액션캠이 빨간 불을 켜고 있었다. 광장 전체가 들어가는 각도로.

광장 옆 도로로 치킨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갔다. 현우였다. 헬멧 바이저를 올리고 옥상의 드론 이백 대를 올려다봤다. 신호 대기 중에 나를 발견하고 경적을 짧게 두 번 울렸다. 박자가 안 맞았다. 일부러.

커피숍에 올라가자 언니가 식은 아메리카노를 밀어 주며 말했다.

“네 목 조르는 거 다 찍혔어. 봉투 탁자도. 큐시트는 줌이 안 돼서 흐리게. 그래도 박수 열여섯 번은 읽혀.”

“수요일에는 이 각도에서 생중계할 거야. 내 개인 계정으로. 방송부 계정은 비공개니까. 방송사 생중계는 무대만 비추지. 우리는 광장 전체를 비출 거야. 사인 켜지는 거, 드론, 봉투 탁자, 그리고 안 치는 사람들.”

“구독자 몇 명이에요, 언니 계정.”

“백사십 명. 대부분 우리 엄마 친구들.”

언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웃었다.

“괜찮아. 백사십 명이 한 명씩만 보내도 이만 명이야. 계산 맞지?”

계산은 안 맞았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엄마가 퇴근해서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서 내 목덜미를 봤다. 붉은 줄이 한 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그 줄을 한 번 쓸었다. 그리고 나갔다. 부엌에서 엄마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오빠. 나야. 수요일 큐시트, 내가 갖고 있어. 원본. 드론 운영 스크립트까지.”

전화기 너머에서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는 안 들렸다. 엄마가 한참 듣기만 했다. 그러다 말했다.

“알아. 십오 년 전에 오빠 혼자 두고 남은 거. 그때 나도 무서웠어. 오빠가 잘리는 걸 보니까 더 무서웠어. 그래서 더 잘했어. 박자 맞추는 거.”

엄마는 부엌 식탁에 앉는 소리를 냈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

“근데 오늘 도아 목에 줄이 났어. 기획관님 손으로. 내가 칠 년 동안 맞춘 박자가 거기까지 갔어.”

또 한참 조용했다.

“응. 수요일. 오빠는 하드 가져와. 나는 스크립트 가져갈게. 드론 운영 스크립트에는 반응형 명령어가 다 있어. 사람이 치면 켜는 거, 안 치면 다시 켜는 거. 그게 다 코드로 적혀 있어. 원래 내가 쓴 거야. 기획관님은 읽을 줄도 몰라.”

엄마가 웃었다. 작게. 전화기를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행주를 개는 소리. 탁, 탁. 두 번 접고, 한 번 더.

나는 침대에 누워 목덜미의 줄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따끔했다. 수요일까지 사흘. 나는 달력을 보며 날짜를 거꾸로 셌다. 사흘, 이틀, 하루. 세다 보니 엄마가 행주를 개는 박자와 같았다. 탁, 탁, 한 번 더.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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