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10자) · 이만 원

침묵

박수 유도 등 · 오세림

현우 할머니는 남산동 경로당 반장이다. 박말순. 일흔여섯. 현우는 할머니 손에 컸다. 도시락 반찬이 늘 짰다. 엄마 아빠는 서울에서 일하고, 명절에 온다. 현우 말로는 할머니가 이 동네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고, 제일 박수를 잘 친다.

“잘 친다는 게 뭔데.”

“소리가 커. 손바닥이 두꺼워서. 평생 밭 매서.”

방송부 활동 정지 첫 주, 부장 주희 언니가 복도에서 나를 붙잡았다. 삼 학년. 졸업 작품으로 가온시 다큐를 찍는 사람. 언니는 내 교복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메모리 카드가 든 주머니.

“정지된 사람은 방송부 장비 못 써. 근데 방송부 장비 아닌 건 써도 돼. 내 개인 액션캠 빌려줄까. 내 거니까 지도 쌤도 못 뺏어.”

“언니 졸업 작품은요.”

“내 졸업 작품 주제가 가온시 사람들의 웃음이야. 시청 홍보 영상 편집본 오십 개 모아서 분석하는 거. 근데 네 영상 보고 나서 편집본들을 다시 봤더니, 같은 할머니가 서른 개에 나와. 동네가 다 다른데. 내 졸업 작품 망했어. 아니, 이제 진짜 시작이야.”

언니는 액션캠을 내 손에 쥐여 주고 갔다. 걸어가면서 말했다. 「망하면 같이 망하자.」

토요일 오전 열 시, 우리는 남산동 경로당 앞에 섰다. 방송부 활동 정지라 카메라는 없었다. 대신 현우 휴대폰. 현우는 경로당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자기 할머니한테 가는 데 이렇게 망설이는 걸 처음 봤다. 신발장에 할머니들 신발이 열두 켤레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현우가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앞코가 해진 검은 털신. 우리 할머니 거.

경로당 안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짝, 짝, 짝. 여덟 번. 멈췄다. 누가 말했다. 「이번엔 좀 늦었어요. 이 박자 반 빨리요.」 다시 여덟 번. 짝짝짝.

문을 열었다. 거실에 할머니 열두 명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방바닥이 뜨끈했다. 벽에 가온시 행복 캠페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웃는 해님이 박수를 치는 그림. 그 아래 손글씨로 이번 달 연습 일정표. 가운데 삼십 대 남자 하나. 하늘색 점퍼 말고 시청 공무원 점퍼. 목에 공무원증. 김 주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 주임이 휴대폰 메트로놈을 켜 놓고 박자를 세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그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다. 현우 할머니가 제일 컸다.

박수 다음은 웃음이었다. 김 주임이 칠판에 적었다. 웃음, 삼 초, 하 하 하. 「어르신들, 웃음은 입을 크게 벌리시고, 소리는 세 번. 너무 길면 억지 같아 보여요.」 할머니 한 분이 하, 하, 하 하다가 틀니가 빠질 뻔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옆 할머니가 그걸 보고 진짜로 웃었다. 하, 하, 하가 아니라 깔깔깔. 김 주임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웃으시면 안 돼요. 박자가 안 맞아요.」 진짜로 웃으면 박자가 안 맞는다. 나는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어? 우리 현우네.”

박말순 할머니가 손을 멈췄다. 할머니 열한 명의 박수가 한 박자 어긋났다. 김 주임이 메트로놈을 껐다.

“누구세요.”

“손자요. 할머니 손자.”

“아, 할머니 손자분. 여기 지금 행사 연습 중이라서요.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무슨 행사요.”

김 주임이 웃었다. 방성철과 같은 웃음이었다. 윗사람 웃음을 따라 하는 사람의 웃음.

“가온시 행복 캠페인. 시민 서포터즈 교육이요. 어르신들 일자리 사업이에요.”

현우 할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무릎이 딱 소리를 냈다.

“현우야, 너 여기 왜 왔어. 학원 안 가?”

“할머니, 이거 돈 받고 치는 거지. 박수.”

거실이 조용해졌다. 할머니 열두 명이 서로를 봤다. 그리고 동시에 김 주임을 봤다. 박자가 맞았다.

“현우 손자분,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이건 교육비예요. 일자리 사업 참여 수당. 박수는 캠페인에 대한 자발적 호응이고요.”

“자발적인데 메트로놈을 틀어요?”

내가 말했다. 김 주임이 나를 봤다. 그리고 알아봤다.

“아, 방송부 학생. 기획관님이 말씀하시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었다.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할머니.

“총각, 이게 뭐가 나빠. 우리가 손뼉 좀 치고 이만 원 받는 거. 누구 때리는 것도 아니고. 영상에 우리 나오면 손주들이 보고 좋아해. 할머니 테레비 나왔다고.”

다른 할머니가 거들었다.

“이만 원이면 파스가 열 장이야. 파스 붙이고 밭 매. 밭 매서 김장해. 김장해서 손주 보내. 그게 다 그 이만 원이야.”

현우가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는 현우를 안 봤다. 방바닥을 봤다.

“할머니. 이천십육 년 십일월에 남산동 사거리. 침묵. 할머니도 있었지.”

할머니의 어깨가 움찔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봤어. 하늘에 침묵이라고 켜지고, 사거리 어른들이 다 고개 숙이고 가만히 서 있었어. 할머니가 맨 앞에 있었어. 나는 그게 진짜인 줄 알았어.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슬퍼하는 건 줄.”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갰다.

“그날은 진짜였어.”

“돈 받았잖아.”

“받았어. 근데 그날은 진짜였어. 그해 여름에 가온시장 불났잖아. 우리 동네 사람 둘 죽었어. 순옥이하고 그 딸. 추모식 한다고 시청에서 나와서, 사거리에서 일 분 서 있어 달라고 했어. 이만 원 준다고. 나는 돈 안 받아도 섰을 거야. 순옥이 내 친구였으니까.”

할머니는 두꺼운 손바닥을 무릎에 문질렀다.

“근데 돈을 주니까, 그것도 연기가 됐어. 그날 영상 나간 거 봤어. 가온 시민들 슬픔을 함께 나누다. 순옥이 이름은 안 나왔어. 우리 얼굴만 나왔어. 슬퍼하는 척하는 얼굴처럼.”

거실이 조용했다. 김 주임이 헛기침을 했다.

“어르신들, 오늘 연습 여기까지 하시고요. 수당 드릴게요.”

그는 가방에서 흰 봉투 뭉치를 꺼냈다. 봉투마다 이름. 할머니들 앞에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봉투를 놓다가 현우 할머니 앞에서 멈췄다.

“박 반장님. 다음 달 실사 때 반장님이 제일 앞줄이세요. 삼백 명 앞줄. 그날은 일당 오만 원이에요. 근데 손자분이 이런 얘기 하고 다니면, 반장님 명단에서 빠지실 수도 있어요. 기획관님이 명단 직접 보세요. 손주 교육 좀.”

봉투가 박말순 할머니 앞에 놓였다. 할머니는 봉투를 보고, 현우를 보고, 다시 봉투를 봤다.

현우가 봉투를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손끝이 떨렸다. 도로 가져가 돌려주려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먼저 봉투를 집었다. 두꺼운 손바닥으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현우야. 할머니 무릎 주사 한 대에 칠만 원이야.”

현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한참 그대로 있다가 내려왔다.

보라색 머리 할머니가 일어섰다. 봉투를 집지 않았다.

“나는 이번 달 안 받을래. 순옥이 얘기 나오니까 못 받겠어.”

다른 할머니 둘이 서로를 보다가 봉투를 도로 김 주임 쪽으로 밀었다. 나머지 여덟은 받았다. 김 주임이 밀려온 봉투 셋을 가방에 넣으며 웃었다.

“어르신들 자유예요. 근데 다음 달 명단에서는 빠지시는 거예요. 자리 기다리는 분 많아요.”

경로당을 나오는데 보라색 머리 할머니가 따라 나왔다. 손에 귤 네 개. 우리 손에 두 개씩 쥐여 주었다.

“이름이 도아라고? 나 보라 할매야. 다들 그렇게 불러. 머리 때문에.”

할머니는 귤을 쥔 내 손을 꼭 잡았다.

“순옥이 딸이 스물넷이었어. 시장에서 옷 팔았어. 그 애 가게 이름이 도아네였어. 도아라는 이름 처음 들었을 때 순옥이가 그 이름 지었다고 자랑했거든. 너 이름 들으니까 봉투를 못 받겠더라.”

할머니는 손을 놓고 경로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귤을 쥔 채로 한참 서 있었다. 내 이름이 그런 데에도 있었다.

경로당을 나왔다. 현우는 한참 말이 없었다. 남산동 사거리까지 걸어와서 멈췄다. 하늘을 봤다. 남서쪽. 아무것도 없었다.

“야. 나 초딩 때 그거 보고 울었어.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가만히 서 있는 게 너무 멋있어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되는 줄 알았어. 같이 슬퍼하는 사람.”

“지금은.”

“지금은 모르겠어. 할머니는 진짜로 슬펐대. 근데 돈 받았대. 그럼 그건 뭐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현우가 휴대폰을 꺼냈다. 녹음 앱이 켜져 있었다. 경로당 문을 열 때부터. 이십삼 분.

“다 녹음했어. 김 주임이 메트로놈 튼 거, 오만 원, 명단에서 빠진다는 거. 할머니가 무릎 주사 얘기한 거까지.”

“현우야.”

“알아. 이거 쓰면 할머니 명단에서 빠져. 무릎 주사 못 맞아.”

현우는 녹음 파일을 한참 봤다. 그리고 파일 이름을 바꿨다. 남산동 경로당 이천이십육 년 구월 십이일. 그 옆에 괄호. 할머니 거 아님.

“할머니 목소리는 잘라 낼 거야. 김 주임 목소리만 남기고. 할머니는 진짜로 슬펐으니까.”

밤 열 시에 현우가 메시지를 보냈다.

— 할머니랑 얘기함

— 뭐래

— 녹음에 할머니 목소리 넣어도 된대. 순옥 할머니 얘기 부분만

— 진짜?

— 무릎 주사는 빼 달래. 창피하대

— ㅋㅋ

— 그리고 실사 날 앞줄 서는 거 생각해 본대. 오만 원은 받고 싶대

— 솔직하시네

— 우리 할머니 원래 솔직함. 그래서 박수 소리가 큼

잠들기 전 방송부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지도 선생님 명의. 다음 달 행복도시 현장 실사 때 방송부는 시청 광장 행사 촬영 지원. 시청 요청. 참가 필수.

그 아래 방성철 기획관 이름으로 된 협조 공문 사진이 붙어 있었다. 촬영 인원 명단 맨 위에 내 이름이 있었다. 괄호 안에 한마디. 활동 정지 해제 조건.

나는 그 공지를 캡처해서 아저씨한테 보냈다. 김 주임 얘기도 같이.

답이 금방 왔다. 두 줄.

— 김 주임. 김민재. 이천십일 년에 내 밑에서 일한 대학생 인턴이야. 옥상에서 전광판 케이블 잡아 줬어.

— 그 애가 메트로놈을 트는구나.

조금 뒤에 한 줄이 더 왔다.

— 너를 앞줄에 세우겠다는 거다. 카메라 들고 박수 영상 찍게.

나는 액션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주희 언니 것. 망하면 같이 망하자던. 그 옆에 현우가 보낸 녹음 파일, 아저씨의 외장 하드 사진, 엄마의 이천십구 년 수첩. 책상 위에 가온시의 박수가 다 올라와 있었다. 돈 받은 박수, 진짜 슬펐던 침묵, 여섯 살 아이의 진짜 웃음, 딸 몰래 지운 웃음.

그리고 그 모든 걸 찍으라고 나를 앞줄에 세우겠다는 공문.

나는 귤 껍질을 깠다. 보라 할매가 준 귤. 셨다. 너무 셔서 눈을 찡그렸다. 찡그리다가 웃었다. 박자 안 맞는 웃음이었다. 김 주임이 봤으면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한화만더2026.05.31· 4화

    조용한데 계속 긴장돼요. 이런 톤 좋아합니다.

침묵 · 박수 유도 등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