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17자) · 도아 것은 적지 않는다

두 개의 목록

박수 유도 등 · 오세림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물어볼 타이밍을 세 번 놓쳤다. 반찬은 가지볶음, 계란말이, 된장국. 엄마는 가지를 싫어하는 나 때문에 가지를 늘 잘게 썬다. 오늘은 크게 썰려 있었다.

첫 번째는 엄마가 국을 뜨고 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아빠가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돌릴 때였고, 세 번째는 그냥 겁이 나서였다. 아빠는 가온시 상수도사업소에 다닌다. 이십 년째 배관을 본다. 우리 집에서 제일 말이 없는 사람이다. 뉴스에서 가온시 행복도시 공모 얘기가 나오자 아빠가 말했다. 「이번에 되면 우리 사업소 배관도 싹 바꾼대.」 엄마가 대답했다. 「되겠지. 시장님이 올인했으니까.」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엄마는 그 공모 서류를 석 달 동안 썼다. 나는 그걸 안다. 엄마 책상 위에 행복도시라는 글자가 박힌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설거지를 하면서 물었다. 등을 보이고 있으면 물어보기가 쉽다.

“엄마. 나 초등학교 사 학년 때, 우리 사거리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웃은 적 있잖아.”

접시 놓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런 적 없어.”

“있었어. 엄마도 거기 있었어. 은행 앞에. 무전기 들고.”

엄마가 수도를 잠갔다. 물소리가 끊기니까 부엌이 이상하게 넓어졌다. 아빠는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행복도시 공모 현장 실사가 다음 달이라고 앵커가 말했다.

“도아야. 그거 그만 생각해.”

“그날 밤에 내가 얘기했잖아. 사람들이 다 같이 웃었다고. 그다음 주에 엄마가 나 병원 데려갔잖아.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했고.”

엄마가 나를 봤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그때 너 밤마다 악몽 꿨어. 기억 안 나? 사람들이 웃는 꿈. 그래서 데려간 거야.”

“엄마는 그날 안 웃었어.”

“…엄마도 웃었어.”

그리고 엄마는 부엌을 나갔다. 행주를 개지 않고 나갔다. 우리 엄마는 십칠 년 동안 행주를 안 개고 부엌을 나간 적이 없다.

다음 날 나는 엄마 방에 들어갔다.

이건 잘못한 일이다. 나도 안다. 변명하자면 나는 삼십 분 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들어갔고, 들어가서도 화장대 서랍은 안 열었고, 옷장 아래 칸만 열었다. 거기 겨울 이불이 있고 이불 아래에 상자가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앨범을 꺼내 보다가 혼난 적이 있어서다.

상자 테이프는 누렇게 바래 있었다. 뜯으면 티가 난다. 손톱으로 한쪽 끝만 살살 들었다. 이런 걸 잘하게 된 것도 좀 슬픈 일이다.

앨범 세 권 아래에 수첩이 열한 권 있었다.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고무줄이 삭아서 손을 대자 툭 끊어졌다. 시청 홍보과 업무수첩. 해마다 한 권. 이천십육 년부터 이천이십육 년까지. 그 위에 더 낡은 수첩이 두 권. 이천십일 년, 이천십삼 년.

한 권을 폈다. 날짜와 장소와 두 글자. 그리고 숫자.

2013.09.03 박수 · 태식문구 앞 교차로 · 서포터즈 6 · 영상 확보 2014.08.02 박수 · 시장 입구 · 서포터즈 12 · 영상 확보 2016.11.28 침묵 · 남산동 사거리 · 서포터즈 8 · 추모 행사용

글씨가 엄마 글씨였다. 반듯하고 작은. 내 가정통신문 회신란에 늘 적혀 있던 그 글씨. 확인했습니다, 강미숙. 수첩마다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열다섯 해 동안 예순 개가 넘었다. 가온시 어디선가 몇 달에 한 번씩 하늘에 글씨가 켜졌고, 그때마다 엄마가 거기 있었다. 문구점 아저씨 노트의 여섯 개는 그중 태식문구 앞에서 켜진 것만이었다. 현우의 남산동 침묵도 여기 있었다. 서포터즈 여덟.

이천십구 년 수첩을 폈다. 사월, 오월, 육월. 오월 칸이 비어 있었다. 오월 십사일. 문구점 아저씨 노트에 웃음이라고 적혀 있던 날. 내가 열 살이던 봄. 그날 칸만 비어 있었다. 대신 수첩 맨 뒷장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도아 것은 적지 않는다.

나는 그 줄을 다섯 번 읽었다. 다섯 번 읽고 나서 수첩을 덮었는데 손이 떨렸다. 옷장 안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올라왔다. 겨울 이불 냄새.

엄마는 그날 거기 있었다. 무전기를 들고. 딸이 사거리 건너편에서 그걸 보고 있는 걸 봤다. 그리고 그날 기록을 지웠다. 그다음 주에 딸을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말하게 했다. 그 말을 나는 칠 년 동안 믿었다. 믿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믿어서 사거리를 건널 때마다 하늘을 안 봤다.

오후에 수첩 몇 장을 찍어서 문구점에 갔다. 아저씨는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봤다.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이천십삼 년 구월 삼일, 태식문구 앞 교차로, 서포터즈 여섯. 자기 노트의 두 번째 줄과 같은 날이었다.

“미숙이 글씨네.”

아저씨는 엄마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나는 삼촌이 엄마 이름을 부르는 걸 처음 들었다. 명절에도 둘은 서로 이름을 안 불렀다. 오빠, 너. 그게 다였다.

“이천십일 년에 내가 옥상에서 그 전광판 각도를 맞췄다고 했지. 첫 번째 웃음. 그날 서포터즈를 모아 온 게 미숙이야. 홍보과 막내였어. 우리 둘이 같이 시작했어.”

“그런데요.”

“두 번째 할 때 내가 그만하자고 했어. 이건 거짓말이라고. 사람들한테 돈 주고 웃게 하고, 그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웃었다고 내보내는 거라고. 기획관이 그 말을 듣더니 나를 영상팀에서 뺐어. 계약 만료. 미숙이는 남았어. 남아서 그다음 것부터 혼자 했어. 나는 그해 겨울에 이 문구점을 차렸고. 그 교차로 앞에.”

“일부러 여기 차리셨어요?”

“보이는 데 있으려고. 미숙이가 또 하면, 내가 봤다는 걸 걔가 알게.”

아저씨는 계산대를 두 번 두드렸다.

“미숙이 원망하지 마라, 라고는 안 할게. 나도 십오 년 원망했으니까. 근데 걔가 남아서 한 일 중에 하나는 알아 둬. 내가 잘리고 나서 기획관이 나를 고소하려고 했어. 영상 원본 빼돌렸다고. 미숙이가 막았어. 자기가 원본 다 갖고 있다고, 오빠는 안 가져갔다고. 그러고 칠급 됐지.”

저녁에 나는 수첩 열세 권을 식탁 위에 펴 놓고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여덟 시 십 분에 들어왔다. 신발을 벗다가 식탁을 봤고, 신발을 다 벗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빠는 아직 안 왔다.

“도아야.”

“엄마 거야, 이거.”

엄마가 현관에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나는 재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십 초쯤이었다. 엄마가 와서 앉았다.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엄마 방에 들어갔어?”

엄마 목소리가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들킨 사람의 목소리였다.

“응. 미안해. 근데 엄마가 먼저 미안해야 돼.”

엄마는 이천십구 년 수첩을 집어 들었다. 뒷장을 폈다. 자기 글씨를 오래 봤다.

“그날 네가 건너편에 서 있는 걸 봤어. 서포터즈들이 웃는데 너 혼자 나를 보고 있었어. 무전기 든 나를. 그날 밤에 네가 저녁 먹다가 말했지. 사람들이 다 같이 웃었다고. 엄마는 무서웠어.”

“뭐가?”

“네가 학교 가서 말하면, 친구들한테 말하면, 선생님이 듣고, 학부모가 듣고. 그러면 엄마가 하는 일이 알려져. 알려지면 엄마 잘리고, 기획관님 잘리고, 그 사업 접히고.”

“그래서 병원 데려갔어? 내가 헛것을 봤다고 믿게 하려고?”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대답이었다.

“엄마. 나 칠 년 동안 하늘 안 봤어. 사거리 건널 때마다 땅만 봤어. 내가 미친 줄 알았으니까.”

“알아.”

“알면서.”

엄마가 가방끈에서 한 손을 뗐다. 식탁 모서리를 잡았다. 손톱이 하얘졌다.

“알면서 그랬어. 도아야, 엄마 그 일로 칠급 달았어. 너 학원비, 이 집 대출. 그 박수가 다 그거였어.”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면서도 작지 않았다. 엄마는 가방끈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퇴근한 사람이 아직 퇴근하지 못한 손이었다.

“그리고 나쁜 일만 한 거 아니야. 그 영상 덕분에 가온시 관광객이 삼 년 동안 두 배가 됐어. 시장 상인들 매출도 올랐어. 할머니들은 한 번에 이만 원씩 벌었고. 다들 웃는 영상 보고 기분 좋아했어. 그게 그렇게 나빠?”

“그럼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좋은 거면.”

엄마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때 엄마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이름이 떴다. 방성철 기획관님. 엄마가 받았다. 스피커가 아닌데도 부엌이 조용해서 소리가 다 들렸다.

“강 주무관님, 따님 건 들으셨죠. 학교 쪽은 정리했어요. 근데 따님이 삼촌 문구점에 드나든다던데. 그 양반 아직 노트 들고 다녀요? 이번 실사 전까지는 조용해야 돼요. 강 주무관님이 좀 단속해 주세요. 가족이니까.”

엄마가 나를 봤다. 수첩 열세 권 너머로.

“네. 알겠습니다.”

엄마의 네는 반 박자 늦었다. 기획관은 그 반 박자를 못 들었을 것이다. 나는 들었다.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수첩을 하나씩 집어 상자에 도로 넣기 시작했다. 이천십구 년 수첩만 빼고. 그것만 식탁 위에 남겨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행주가 아니라 수첩이었다. 개지 않고 두고 간 것.

아빠는 아홉 시에 들어왔다. 식탁 위 수첩을 보고, 내 얼굴을 보고, 닫힌 안방 문을 봤다. 아빠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 대신 배관 얘기를 잘한다.

“엄마랑 싸웠냐.”

“응.”

“배관이 막히면 말이야, 억지로 뚫으면 터져.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야 돼. 기름때는 녹아.”

아빠는 그 말을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거실로 갔다. 안방 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가 그냥 지나갔다. 나는 그게 조언인지 그냥 배관 얘기인지 끝까지 몰랐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나는 그 수첩의 빈 오월 칸을 오래 봤다. 그리고 내 노트를 꺼내 첫 장에 적었다. 방송부 삼 년 치 촬영 일지 맨 뒤에.

2019.05.14 웃음 · 우리 동네 사거리 · 엄마 있었음 · 기록 없음 2026.09.04 박수 · 태식문구 앞 · 영상 있음 · 삭제당함 · 원본 있음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나만 몰랐다.

자기 전에 현우한테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이천십육 년 수첩. 남산동 사거리, 침묵, 서포터즈 여덟, 추모 행사용.

— 너 초딩 때 본 거 이거지

한참 답이 없었다. 그러다 왔다.

— 서포터즈가 뭐임

— 돈 받고 치는 사람들. 웃고, 박수 치고, 조용히 하고

또 한참. 그리고 한 줄.

— 우리 할머니 경로당에서 가끔 이만 원 받아 옴. 일당이라고 함

— ...

— 반반 먹는 거 취소. 입맛 없어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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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05.29· 2화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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