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15자) · 해님 시계

삼 초

하늘에 「박수」가 뜨면 온 동네가 손뼉을 친다 · 오세림

그날 나는 하교를 십 분 늦게 했다. 주번이었기 때문이다. 칠판을 닦고, 분필 가루를 털고, 창문 여섯 개를 닫고 나오니 네 시 사십 분이었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칠 분. 가는 길에 문구점 하나, 세탁소 하나, 치킨집 둘.

치킨집이 둘인 이유는 사장 둘이 형제인데 사이가 나빠서라고 현우가 말했다. 형은 양념이 맛있고 동생은 후라이드가 맛있는데, 서로 상대 메뉴를 안 판다. 그래서 반반을 먹으려면 두 집에서 한 마리씩 시켜야 한다. 현우 말은 절반쯤 사실이다. 나머지 절반은 현우가 두 집에서 한 마리씩 시켜 먹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네 시 사십사 분에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가 빨간불이었다. 옆에 어른이 여섯 명 있었다. 장바구니 든 할머니 둘, 등산복 아저씨 하나, 정장 입은 아줌마 하나, 조끼 입은 할아버지 둘.

그때 하늘에 글씨가 생겼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하늘에.

남서쪽. 내 눈높이에서 사십오 도쯤 위. 붉은 글씨였다. 두 자였다.

박수.

나는 그것을 삼 초쯤 봤다. 그리고 옆에서 소리가 났다. 어른 여섯 명이 손뼉을 쳤다. 동시에. 박자가 맞았다. 짝, 짝, 짝. 여섯 명이 여덟 번씩 쳤다. 그리고 멈췄다. 글씨가 사라졌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여섯 명이 길을 건넜다.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하늘을 보지 않았다. 할머니 하나가 장바구니를 고쳐 들며 옆 할머니에게 말했다. 「오늘 무가 싸더라.」

나는 못 건넜다. 서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오른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방송부 삼 년 차의 손은 뭔가 이상하면 먼저 찍는다. 녹화 버튼이 눌려 있었다. 언제 눌렀는지 기억은 없는데, 영상이 십일 초 찍혀 있었다.

다음 신호에 건넜다. 문구점 앞을 지나는데 아저씨가 밖에 나와 있었다. 평소에는 계산대 안에 있는 사람이다. 태식문구 사장님. 쉰쯤. 머리가 반쯤 벗어졌고, 앞치마에 볼펜이 여섯 자루 꽂혀 있다. 아저씨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남서쪽을.

“아저씨.”

아저씨가 나를 봤다.

“봤니.”

나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뭘요?”

아저씨는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안 봤으면 됐어.”

집에 와서 영상을 돌려 봤다. 십일 초. 처음 사 초는 신호등과 할머니들 뒤통수. 다섯 초째에 화면이 위로 휙 올라갔다. 하늘. 남서쪽. 거기 글씨는 없었다. 대신 점이 있었다. 작은 붉은 점들이 서른 개쯤, 격자처럼 떠 있었다. 확대하니 점들이 글자 모양으로 모여 있었다. 흐릿했지만 박, 그리고 수. 삼 초 뒤 점들이 동시에 꺼졌다. 박수 소리가 여덟 번 들어가 있었다. 짝, 짝, 짝.

하늘에 켜진 게 아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게 켜진 거였다.

나는 그 영상을 방송부 공식 계정에 올렸다. 제목은 이렇게 달았다. 가온시 하늘에 글씨가? 우리 동네 미스터리. 방송부 계정 구독자는 삼백십이 명. 그중 이백 명은 방송부 부원들 가족이다. 대부분 우리 학교 애들이다. 밤 열 시에 조회 수가 사천이 넘었다. 새벽에 만이천. 댓글이 이백 개. 대부분 조작이라는 말이었고, 몇 개는 나도 봤다는 말이었다. 나도 봤다는 댓글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산동 사거리, 작년 여름, 침묵. 아이디는 현우였다.

밤 열한 시에 현우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 댓글 봤다. 남산동 침묵 너지

— ㅇㅇ

— 왜 말 안 했어

— 너는 왜 말 안 했는데

— ...

— 나 초딩 때 한 번 말했다가 담임이 엄마 불렀음

— 나는 엄마가 병원 데려감

— ㅋㅋ 우리 둘 다 정상 판정받은 사람들이네

— 정상 판정 받으면 정상 아니라는 뜻 아님?

— 그만해 무섭다

— 내일 반반 먹을래 형네 양념 동생네 후라이드

— 두 집 다 시켜야 되잖아

— 그러니까 너랑 나랑 한 집씩

현우는 이런 식으로 무서운 얘기를 치킨 얘기로 끝내는 애다. 나는 그게 좀 고마웠다.

그날 엄마는 밤 열두 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시청 홍보과. 야근이 많은 부서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거실에 앉은 나를 봤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직 방송부 계정이 떠 있었다.

“도아야. 그 영상 네가 올렸어?”

엄마가 먼저 물었다. 나는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묻지 않았다. 가온시 홍보과 주무관이 가온시 하늘 영상을 모를 리 없다.

“응.”

엄마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한참 서 있었다.

“내려. 내일 아침까지.”

“왜?”

“사람들이 불안해해. 댓글 봤어? 조작이다, 외계인이다, 사이비다. 그런 거 퍼지면 동네가 시끄러워져.”

“엄마, 그거 드론이야. 시청 드론.”

엄마의 얼굴이 굳었다. 삼 초쯤. 그 삼 초가 횡단보도에서 하늘을 본 삼 초하고 길이가 같았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물 트는 소리가 길게 났다.

다음 날 삼 교시, 교내 방송으로 내 이름이 불렸다. 교장실로.

교장실 소파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회색 양복, 넥타이 핀, 번쩍이는 구두. 머리에 무스를 발라 빗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그 옆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탁자 위에 가온시 기념품이 놓여 있었다. 웃는 해님 모양 탁상시계.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해님 손이 짝짝 부딪쳤다. 소리는 안 났다. 교장실에서 그 시계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도아 학생이죠. 반가워요. 시장님 비서실 홍보기획관 방성철입니다.”

그는 명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학생한테 두 손으로 명함을 주는 어른은 처음 봤다. 명함 뒷면에 가온시 로고가 있었다. 웃는 해님. 해님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어제 올린 영상, 잘 봤어요. 촬영 감각이 좋네요. 근데 그 드론, 우리 시에서 띄운 거예요. 시민 행복 캠페인 시범 운영. 아직 공개 전이라서요. 공개 전 사업이 먼저 퍼지면 곤란해요. 삭제해 주면 좋겠어요. 방송부 지원금도 우리 시에서 나가는 거 알죠?”

“그럼 박수는요.”

“박수?”

“어른 여섯 명이 동시에 여덟 번 쳤어요. 박자가 맞았어요. 그것도 시범 운영이에요?”

방성철은 웃었다. 이가 너무 하얬다. 미백을 한 이였다.

“자발적인 거죠. 시민들이 캠페인에 호응해 준 거. 가온 사람들이 원래 흥이 많아요. 좋은 거잖아요.”

“서로 모르는 사람 여섯 명이 호응을 하는데 박자가 맞아요?”

교장 선생님이 헛기침을 했다. 방성철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교장 선생님에게 뭔가를 보여 주었다. 교장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야. 영상 내리자. 시에서 공식 요청이 왔다. 드론 촬영물은 항공안전법이니 뭐니 복잡하대.”

“제가 드론을 띄운 게 아니잖아요. 하늘을 찍은 거예요.”

“도아야.”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한 칸 낮아졌다. 그 목소리가 뭘 뜻하는지 우리 학교 학생은 다 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방송부 계정에 들어갔다. 삭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물었다.

“기획관님. 저 열 살 때도 봤어요. 우리 사거리에서. 웃음이었어요. 어른들이 동시에 웃었어요. 그때도 시범 운영이었어요?”

방성철의 웃음이 처음으로 멈췄다. 아주 잠깐. 일 초도 안 됐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그건 기억이 잘못됐을 거예요. 열 살이면.”

나는 삭제 버튼을 눌렀다. 조회 수 이만삼천. 사라졌다. 방성철이 박수를 쳤다. 두 번. 「고마워요, 협조해 줘서.」 박자가 딱 맞았다. 해님 시계하고. 원본은 내 휴대폰에 있었다. 그건 말하지 않았다.

방과 후 정류장 가는 길, 치킨집 두 곳 사이에서 형제가 싸우고 있었다. 형네 가게 앞 입간판이 동생네 가게 쪽으로 반 뼘 넘어왔다는 이유였다. 형이 말했다. 「반 뼘이 뭐가 넘어와. 바람에 밀렸지.」 동생이 말했다. 「바람이 형네 쪽으로만 불어?」 둘 다 앞치마에 기름이 튀어 있었다. 동생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학생, 어제 그 영상 올린 학생이지? 하늘에 글씨. 우리 가게 옥상에 뭐가 자꾸 앉았다 가던데, 그거랑 상관있나?」 형이 끼어들었다. 「우리 가게 옥상에도 앉았어. 우리 게 먼저 앉았어.」 둘은 이번에는 어느 옥상에 뭐가 먼저 앉았는지로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싸움을 뒤로하고 걸었다. 걸으면서 두 집 옥상을 올려다봤다. 형네 옥상 난간에 손바닥만 한 검은 받침대가 하나 박혀 있었다. 드론 착륙대처럼 생긴.

그리고 문구점에 갔다. 살 것도 없으면서 들어갔다. 아저씨가 계산대에서 볼펜 여섯 자루 가운데 하나로 뭔가를 적고 있었다.

“어제 왜 박수 안 치셨어요.”

아저씨가 손을 멈췄다.

“봤구나.”

“영상도 찍었어요. 오늘 교장실 불려 가서 지웠어요. 시장님 비서실 사람이 와서.”

“방성철이?”

아저씨가 볼펜을 놓았다. 계산대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곤란할 때 하는 버릇 같았다. 그리고 계산대 아래에서 노트를 꺼냈다. 낡은 것이었다. 펼쳤다. 날짜가 죽 적혀 있었다. 그 옆에 글자가 두 자씩.

2011.04.12 웃음. 2013.09.03 박수. 2016.11.28 침묵. 2019.05.14 웃음. 2022.02.09 박수. 2024.10.30 침묵.

“어제 걸로 일곱 번째야. 이 문구점 앞에서 보인 것만.”

“이 앞에서만요?”

“다른 데서는 안 보여. 각도가 있어. 나는 이 가게 앞에서만 보니까 이 가게 앞 것만 적었지.”

“아저씨, 이게 뭔지 알아요?”

아저씨가 노트를 덮었다.

“이천십일 년 사월에 시청 옥상에 올라가서 그 전광판 각도를 맞춘 게 나야. 영상팀 계약직이었거든. 첫 번째 웃음, 그날 내가 옥상에 있었어.”

나는 계산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문구점 문에 달린 종이 바람에 한 번 울렸다. 진열대의 형광펜들이 색깔별로 줄지어 있었다. 아저씨는 형광펜을 색깔별로, 같은 색은 길이별로 세운다. 십오 년 동안 그렇게 세웠다고 했다. 정리가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정리되는 걸 정리한다고.

“근데 도아야. 열 살 때 봤다는 거. 그거 날짜 기억나니.”

“아니요. 초등학교 사 학년. 봄이었어요. 우리 동네 사거리. 웃음. 어른들이 다 웃었는데 한 사람은 안 웃었어요.”

“누구.”

나는 그 얼굴을 떠올렸다. 칠 년 동안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 얼굴. 사거리 건너편 은행 앞에 서서 무전기를 들고 있던 사람. 다들 웃는데 혼자 시계를 보던 사람.

“우리 엄마요.”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대를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세 번째로 두드렸다. 세 번은 처음이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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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림작가2026.10.09· 1화

    작가 오세림입니다. 하늘에 「박수」가 켜지면 어른들이 일제히 손뼉을 칩니다. 1화의 삼 초를 보며, 여러분은 그 박자가 너무 잘 맞는다고 느끼셨나요?

  • 일곱줄2026.05.28· 1화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오세림작가2026.05.29

      말씀하신 부분은 다음 회차에서 조금 더 풀어 볼게요.

삼 초 · 하늘에 「박수」가 뜨면 온 동네가 손뼉을 친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