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5자)

흉부외과 당직실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8월 18일 화요일 밤 열한 시⁠, 팔공대병원 본관 4층 복도 끝에 「⁠흉부외과 당직실⁠」 팻말이 붙은 문이 있었다⁠. 팻말 아래 누가 매직으로 덧붙여 써 놓았다⁠. 「⁠노크 세 번⁠. 급하면 다섯 번⁠. 안 급하면 내일⁠」⁠.

동주는 세 번 두드렸다⁠.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한 번 더 두드리려다 손을 멈췄다⁠. 다섯 번은 급한 사람의 것이었다⁠.

문이 열렸다⁠. 안경을 이마에 올린 남자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반백 머리가 베개에 눌려 한쪽으로 쓸려 있었다⁠. 아래는 양복 바지⁠, 위는 초록 수술복이었다⁠. 바지 주름이 칼처럼 반듯했고 수술복은 구겨져 있었다⁠.

“⁠응급실 콜이면 전화로 하지⁠.⁠”

“⁠구미 119 구급대 표동주입니다⁠. 7월 24일 밤에 열일곱 살 심근염 환자를 응급실에 밀고 들어간 사람입니다⁠.⁠”

남자가 안경을 코로 내렸다⁠. 마재국은 한동안 동주의 얼굴을 보다가 문을 열었다⁠.

“⁠뉴스에 나온 사람이네⁠. 들어와요⁠. 앉을 데는 없어요⁠.⁠”

당직실은 두 평이 안 되었다⁠. 이층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책상 위에 컵라면 용기 두 개와 서류 봉투 한 뭉치⁠. 봉투 겉면에 법무법인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벽에 액자가 하나 있었다⁠. 수술모를 쓴 젊은 동양인 남자가 외국인 의사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 영어로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한 병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연수 갔을 때요⁠. 거기선 새벽 세 시에 심장 여는 사람이 나 말고 넷 있었어요⁠.⁠” 마재국이 침대 아래 칸에 걸터앉았다⁠. “⁠여긴 나 하나예요⁠. 하나였거나⁠.⁠”

동주는 선 채로 물었다⁠. “⁠7월 24일 밤 아홉 시 십오 분에 응급실 탁선영 선생님 전화 받으셨습니까⁠?⁠”

“⁠받았어요⁠.⁠”

“⁠그때 수술 중이셨습니까⁠?⁠”

마재국이 컵라면 용기 하나를 집어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국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아니요⁠. 여기 누워 있었어요⁠. 그날 낮에 원내 환자 수술 둘 하고 서른 시간째였어요⁠. 선영이가 전화해서 열일곱 살⁠, 심근염⁠, 에크모⁠, 그랬고⁠. 내가 안 된다고 했어요⁠. 외부 응급은 안 받는다고⁠.⁠”

“⁠왜 안 받으십니까⁠?⁠”

“⁠작년 3월에 새벽 세 시에 대동맥이 찢어진 환자가 왔어요⁠. 육십 대 남자⁠. 열 시간 수술했고⁠, 이틀 뒤에 돌아가셨어요⁠. 가족이 고소했어요⁠. 업무상과실치사⁠. 검찰이 기소했고⁠, 지금 1심 중이에요⁠.⁠” 마재국이 법무법인 봉투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변호사가 그래요⁠. 재판 끝날 때까지 외부 응급은 받지 마라⁠. 한 번 더 죽으면 그때는 판사가 두 번째 사건으로 본다⁠.⁠”

“⁠그래서 그 아이를 안 받으셨습니까⁠?⁠”

“⁠그래서 안 받았어요⁠.⁠” 마재국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화가 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같은 말을 속으로 해 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표 반장님⁠, 내가 그날 내려갔으면 그 아이 세 시간 일찍 에크모 달았겠죠⁠. 살았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고⁠. 죽었으면 나는 두 번째 피고인이 되고⁠, 다음 날부터 대구 북쪽에 밤에 심장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지금은 낮에라도 있잖아요⁠.⁠”

“⁠낮에만 아픈 사람은 없습니다⁠.⁠”

“⁠알아요⁠.⁠” 마재국이 웃었다⁠. 웃음이 얼굴에 붙지 않았다⁠. “⁠나는 한 사람 살리려다 피고인이 됐어요⁠. 법정에 서면 검사가 물어요⁠. 그 시간에 왜 수술을 했느냐⁠, 다른 병원으로 보냈으면 살았을 것 아니냐⁠. 내가 안 했으면 그 환자는 구급차에서 죽었어요⁠. 근데 구급차에서 죽으면 아무도 고소 안 해요⁠. 반장님 차에서 죽으면 반장님 고소해요⁠?⁠”

동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신규 석 달째 겨울 김천 국도에서 식어 가던 할머니의 손이 떠올랐다⁠. 아무도 동주를 고소하지 않았다⁠.

“⁠선영이가 수술 중이라고 했죠⁠?⁠” 마재국이 물었다⁠.

“⁠예⁠.⁠”

“⁠선영이답네⁠.⁠” 마재국이 안경을 벗어 수술복 자락으로 닦았다⁠. “⁠안 된다는 말보다 수술 중이라는 말을 들어야 구급대원이 덜 싸우니까⁠. 나를 덮어 준 거예요⁠. 덮어 준 거라고 하면 선영이가 화낼 거고⁠.⁠”

책상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 마재국이 화면을 보았다⁠. 「⁠응급실 탁선영⁠」⁠.

“⁠원내 환자예요⁠. 가야 해요⁠.⁠” 마재국이 일어나 양복 바지 위로 수술복 하의를 꿰어 입었다⁠. 한쪽 다리를 넣다가 비틀거렸다⁠. 동주가 팔을 잡아 주었다⁠. 마재국의 팔이 생각보다 가늘었다⁠.

“⁠고마워요⁠. 바지 갈아입는 건 아직 안 고소당했어요⁠.⁠”

마재국이 당직실 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갔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졌다⁠.

*

8월 19일 수요일 아침 일곱 시 반⁠, 칠곡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동주는 출근하려고 차 문을 열다가 멈췄다⁠. 순영의 차가 들어와 옆 칸에 멈췄다⁠. 야간을 끝내고 온 순영이 시동을 끄고도 내리지 않았다⁠. 동주가 조수석 창문을 두드렸다⁠. 순영이 창문을 내렸다⁠.

“⁠어젯밤에 마 교수님 당직실 갔었어⁠?⁠”

“⁠갔다⁠.⁠”

“⁠교수님한테 들었어⁠. 마 교수님이 교수님한테 말했대⁠. 뉴스에 나온 구급대원이 찾아왔더라고⁠.⁠” 순영이 핸들에 이마를 댔다가 들었다⁠. “⁠당신한테만 한 말이라고 했잖아⁠.⁠”

“⁠당신 이름은 안 댔다⁠. 수술 중이었냐고만 물었다⁠.⁠”

“⁠내가 아니면 당신이 어떻게 알고 물어⁠?⁠” 순영이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 형광등 아래 순영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밤새 마스크를 쓴 자국이 콧등에 붉게 남아 있었다⁠. “⁠당신⁠, 그거 청문회에서 말할 거야⁠?⁠”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거 하겠다는 거잖아⁠. 열네 해 같이 살았어⁠.⁠” 순영이 차 문을 쾅 닫았다⁠. 소리가 주차장 기둥에 부딪혀 돌아왔다⁠. “⁠마 교수님 나가면⁠, 대구 북쪽에 밤에 심장 여는 사람 없어⁠. 우리 응급실에 심장 환자 오면 교수님이 받아서 약으로 버티다가 경산이든 부산이든 보내야 돼⁠. 그 사이에 죽으면 그건 누가 책임져⁠? 당신이야⁠? 국회야⁠?⁠”

“⁠거짓말로 버티는 응급실은 괜찮나⁠?⁠”

“⁠교수님은 마 교수님을 지킨 거야⁠. 거짓말이 아니라⁠.⁠” 순영이 말을 멈췄다⁠. “⁠아니⁠, 거짓말 맞아⁠. 맞는데⁠, 그 거짓말이 없었으면 그날 밤 당신이랑 교수님은 문 앞에서 한 시간 더 싸웠어⁠.⁠”

“⁠그 한 시간 동안 칠곡 할아버지가 들어왔을 수도 있다⁠.⁠”

순영이 대답하지 못했다⁠. 주차장 저쪽에서 경비원이 손수레를 밀고 지나갔다⁠. 순영은 경비원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 그 화면 봤다고 말하면⁠, 나도 끝이야⁠. 수간호사가 병원 기록을 남편한테 흘렸다고⁠. 그건 당신도 알지⁠?⁠”

“⁠안다⁠.⁠”

“⁠알면서 해⁠?⁠”

동주는 차 키를 손에 쥐었다⁠. 키 끝이 손바닥을 눌렀다⁠.

“⁠생각해 보겠다⁠.⁠”

순영이 웃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순영은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닫힐 때까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

8월 20일 목요일 낮 열두 시⁠, 소방서 옥상 물탱크 그늘에서 동주는 휴대전화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아래 차고에서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켜고 나갔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진 뒤에 동주는 의원실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문회 자료로 병원 기록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위원회 의결로 요구하면 병원이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기록이요⁠?⁠”

“⁠팔공대병원 7월 24일 밤 여덟 시부터 열한 시까지 수술실 사용 기록하고⁠, 흉부외과 당직표입니다⁠.⁠”

비서관이 잠시 말이 없었다⁠. 키보드 소리가 났다⁠.

“⁠무엇이 나올 거라고 보십니까⁠?⁠”

“⁠나와 봐야 압니다⁠. 제 짐작이 틀렸으면 제가 청문회에서 사과하겠습니다⁠.⁠”

“⁠제보자가 병원 안에 있습니까⁠?⁠”

“⁠제가 그날 밤 거기 있었습니다⁠. 그걸로 하십시오⁠.⁠”

전화를 끊고 동주는 물탱크에 등을 기댔다⁠. 철판이 햇볕에 달아 등이 뜨거웠다⁠. 휴대전화에 가람의 문자가 와 있었다⁠. 「⁠반장님 도 반장님 오늘 건강검진 혈압 160이래요 ㅋㅋ 본인은 기계 고장이래요⁠」⁠. 동주는 답을 쓰지 못하고 화면을 껐다⁠.

*

저녁 일곱 시⁠, 동주는 퇴근길에 구미 센터 차고에 들렀다⁠. 태섭이 구급차 뒤 칸 의자에 앉아 팔에 혈압계 띠를 감고 있었고⁠, 가람이 옆에서 펌프를 쥐고 있었다⁠.

“⁠백칠십이요⁠.⁠” 가람이 바늘을 읽었다⁠.

“⁠그 기계도 고장이다⁠. 낮에 건강검진 기계도 고장이고⁠.⁠”

“⁠반장님⁠, 이 차에 있는 혈압계로 오늘 환자 여섯 명 쟀어요⁠. 다 멀쩡했어요⁠.⁠”

“⁠그 여섯 명은 내 차를 안 몰았잖아⁠.⁠” 태섭이 띠를 풀며 등을 손으로 짚었다⁠. “⁠등짝은 여전히 뻐근하고⁠. 의자 바꿔 달라고 서류 올려야겠다⁠. 동주야⁠, 니 내근이지⁠? 니가 올려라⁠.⁠”

“⁠의자 말고 병원부터 가 보이소⁠.⁠”

“⁠병원⁠? 니 덕에 요새 병원들이 구미 차라 카면 문부터 닫는다⁠.⁠” 태섭이 웃다가⁠, 동주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거두었다⁠. “⁠와⁠, 무슨 일 있나⁠?⁠”

동주가 낮에 의원실에 한 전화를 말했다⁠. 수술실 기록⁠, 당직표⁠. 순영의 이름은 빼고 말했다⁠. 가람이 펌프를 떨어뜨렸다⁠. 태섭은 한참 아무 말도 없다가 혈압계를 구급차 선반에 도로 넣었다⁠.

“⁠니 마누라 알면 니 죽는다⁠.⁠”

“⁠알면 죽는 게 아니라⁠, 이미 압니다⁠.⁠”

“⁠그럼 니 이미 죽었네⁠.⁠” 태섭이 구급차에서 내려 동주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죽은 사람한테는 냉면을 사 줘야 된다⁠. 내일 가자⁠. 물냉으로⁠.⁠”

8월 21일 금요일 오후 세 시⁠, 구급 담당 자리 전화가 울렸다⁠. 순영이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법무팀이 불러서 낮에 병원 나왔어⁠. 국회 자료 요구 왔어⁠. 7월 24일 수술실 기록하고 흉부외과 당직표⁠. 법무팀이 간호부에 사실확인서 받으러 다녀⁠. 그날 밤 수술실 화면 본 사람 있냐고⁠.⁠” 순영의 숨소리가 수화기에 닿았다⁠. “⁠당신이야⁠?⁠”

“⁠내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응급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순영은 어딘가 조용한 방에 혼자 들어가 있었다⁠.

“⁠생각해 보겠다며⁠.⁠”

“⁠생각해 봤다⁠.⁠”

“⁠그래⁠.⁠” 순영이 한 번 숨을 쉬었다⁠. “⁠나 오늘 퇴근하고 준이 데리고 왜관 엄마 집에 갈게⁠. 며칠⁠.⁠”

“⁠순영아⁠.⁠”

“⁠사실확인서에는 아무것도 안 썼어⁠. 본 것도 안 썼고⁠, 안 본 것도 안 썼어⁠. 빈 종이 그대로 냈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야⁠.⁠”

전화가 끊겼다⁠. 동주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책상 모서리를 보았다⁠. 옆자리 구급 계장이 서류철을 넘기다 말고 동주를 힐끔 보더니⁠, 서랍에서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동주 책상에 굴려 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주는 사탕 껍질을 벗기지 않고 손에 쥐고 있다가 퇴근할 때 근무복 주머니에 넣었다⁠.

밤 아홉 시⁠, 텅 빈 아파트 거실에서 동주는 불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준이의 크레파스 구급차 그림이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팔공대 탁선영⁠」⁠.

“⁠반장님⁠.⁠” 선영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 교수님이 사직서 냈어요⁠. 오늘 저녁 여섯 시에⁠. 병원이 국회 자료 내기 전에 받아 줬어요⁠. 사직하면 병원 사람이 아니니까 병원은 기록만 내면 된대요⁠.⁠”

동주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만 나오신대요⁠. 그다음부터 대구 북쪽에 밤에 심장 여는 사람은 없어요⁠.⁠” 선영이 숨을 한 번 골랐다⁠. “⁠반장님이 이긴 거예요⁠. 축하해요⁠.⁠”

전화가 끊겼다⁠. 동주는 어두운 거실에서 냉장고 문에 붙은 그림을 보았다⁠. 주황 구급차 위에 차보다 큰 빨간 네모가 칠해져 있었다⁠. 창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한 번 지나갔다가 멀어졌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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