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07자)

병동 휴게실의 문제집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8월 16일 일요일 오후 두 시⁠, 경산 남천대병원 심장내과 병동 5층 복도 끝 병실 창가 침대에 백윤솔이 앉아 있었다⁠. 환자복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왔고⁠, 쇄골 아래 반창고가 두 장 붙어 있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기도에 관을 꽂았다 뺀 지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다⁠.

가람이 비닐봉지를 침대 식판 위에 올려놓았다⁠. 참치마요 삼각김밥 세 개였다⁠.

“⁠어머니가 이것만 먹는다 하셔서⁠.⁠”

윤솔의 눈이 커졌다⁠. 손을 뻗는 순간 병실 문에서 간호사가 들어왔다⁠.

“⁠심장 환자는 염분 조절식이에요⁠. 그건 보호자분 드세요⁠.⁠”

간호사가 삼각김밥 세 개를 집어 가람의 손에 도로 쥐여 주었다⁠. 윤솔이 간호사 등 뒤에 대고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구급대원님들은 사람을 살려 놓고 이렇게 괴롭혀요⁠?⁠”

“⁠우리가 산 거 아니다⁠. 저 선생님이 뺏은 거다⁠.⁠” 동주가 말했다⁠.

윤솔이 웃다가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아⁠, 웃으면 갈비뼈 아파요⁠. 누가 제 갈비뼈를 이렇게 눌렀어요⁠?⁠”

“⁠편의점 사장님⁠.⁠”

“⁠그 아저씨요⁠? 그 아저씨 삼각김밥 할인 한 번도 안 해 줬는데⁠.⁠” 윤솔이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다음엔 해 주겠죠⁠?⁠”

7월 24일 밤의 일은 학원 문을 나서 정류장 의자에 앉은 데까지만 떠오른다고 했다⁠. 그다음은 남천대 중환자실 천장이었다⁠. 동주는 연두색 매니큐어가 다 벗겨진 윤솔의 손톱을 보았다⁠. 엄마가 지웠다고 했다⁠. 병원에서 손톱 색을 봐야 한다고⁠.

윤솔이 이불 끝을 손가락으로 말았다⁠.

“⁠엄마가 그러는데⁠, 저 그날 들어간 병원에서요⁠. 같은 시간에 할아버지 한 분이 못 들어가서 돌아가셨대요⁠. 그 할아버지 아들이 우리 집에 왔었대요⁠.⁠”

가람이 삼각김밥 봉지를 바스락거리다 멈췄다⁠.

“⁠저 때문이에요⁠?⁠”

“⁠니 때문 아니다⁠.⁠” 동주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내가 밀고 들어갔다⁠. 니는 누워만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는 어른이 하는 거다⁠. 니는 밥 먹고 문제집 풀어라⁠.⁠”

윤솔이 침대 옆 탁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수학 문제집이 한 권 놓여 있었다⁠. 표지에 「⁠고2 수학Ⅰ⁠」이라고 적혀 있고⁠, 모서리가 새것처럼 빳빳했다⁠.

“⁠그거 사 오신 분 있어요⁠. 일요일마다 와요⁠. 지금 휴게실에 계세요⁠.⁠”

*

병동 휴게실 창가 테이블에서 탁선영이 종이컵 커피를 앞에 두고 문제집 한 권을 펴 놓고 있었다⁠. 윤솔의 것과 같은 문제집이었다⁠. 연필로 여백에 풀이가 빽빽했다⁠. 가운 대신 회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는데 가슴 주머니에 여전히 칫솔이 꽂혀 있었다⁠.

“⁠비번이세요⁠?⁠”

“⁠세 시간이요⁠. 다섯 시에 들어가야 해요⁠.⁠” 선영이 연필을 내려놓았다⁠. “⁠윤솔이가 2학기 모의고사 걱정을 해서요⁠. 문제를 미리 풀어 놓고 막히는 데를 표시해 줘요⁠. 저 의대 다닐 때 과외로 학비 벌었어요⁠.⁠”

“⁠일요일마다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받은 환자예요⁠. 들어온 환자는 끝까지 봐요⁠.⁠” 선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반장님이 밀고 들어온 환자라도요⁠.⁠”

휴게실에는 환자복 차림의 노인 둘이 텔레비전으로 바둑을 보고 있었다⁠. 동주는 목소리를 낮췄다⁠. 선영도 낮췄다⁠. 둘은 바둑 해설 소리 아래로 말을 주고받았다⁠.

“⁠선생님⁠, 지난번 식탁에서 여쭤본 거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청문회에서 얘기해요⁠.⁠”

“⁠청문회에서 하시면 거짓말을 하시든 참말을 하시든 국회 기록에 남습니다⁠. 지금 저한테 하시면 저만 압니다⁠.⁠”

선영이 연필을 다시 집었다⁠. 문제집 여백에 숫자 하나를 고쳐 썼다⁠.

“⁠반장님만 알면⁠, 반장님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동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선영이 문제집을 덮었다⁠.

“⁠그날 밤에 수술방에 누가 있었는지보다⁠, 매일 밤 수술방에 사람이 없는 게 먼저예요⁠. 대구 북쪽에 밤에 심장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아세요⁠? 둘이었어요⁠. 하나는 작년에 서울로 갔고요⁠. 하나 남았어요⁠.⁠”

“⁠그 한 분은요⁠?⁠”

“⁠우리 병원에 있어요⁠. 작년 3월에 새벽 세 시에 대동맥 수술을 했어요⁠. 환자가 돌아가셨고⁠, 가족이 고소했어요⁠. 업무상과실치사⁠. 지금도 재판 중이에요⁠. 한 달에 한 번 법원에 가요⁠. 수술복 벗고 양복 입고⁠.⁠” 선영이 종이컵을 구겼다⁠. “⁠반장님은 그 사람한테 그날 밤 왜 안 왔냐고 묻고 싶으시죠⁠? 저는 그 사람이 아직 우리 병원에 있는 게 고마워요⁠.⁠”

복도에서 남경희가 휴게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공장 작업복이 아니라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손에 복숭아 한 봉지를 들었다⁠. 선영을 보고⁠, 동주를 보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문제집 두 권을 보았다⁠.

“⁠두 분 같이 계시네요⁠.⁠”

“⁠우연히요⁠.⁠” 선영과 동주가 동시에 말했다⁠. 경희가 웃음을 참으며 복숭아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구본철 씨가 어제 또 왔어요⁠. 이번엔 국수 사 왔어요⁠. 우리 윤솔이 퇴원하면 먹으라고⁠.⁠” 경희가 의자에 앉았다⁠. “⁠9월에 국회에서 청문회 한다면서요⁠. 본철 씨가 같이 보러 가자고 하네요⁠. 방청석이라는 데 앉을 수 있대요⁠.⁠”

선영의 손에서 구긴 종이컵이 다시 펴졌다⁠. 동주는 경희의 꽃무늬 원피스를 보았다⁠. 장례식장 접객실에서 소주잔을 넘어뜨리던 굵은 팔뚝이 국수 봉지를 들고 이 여자의 집 현관에 서 있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

오후 네 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술복 위에 가운을 걸친 남자가 선영을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남천대 흉부외과 교수⁠, 윤솔의 다리에 에크모 관을 꽂은 사람이었다⁠.

“⁠탁 교수⁠, 또 왔어⁠? 우리 환자 빼앗아 가려고⁠?⁠”

“⁠빼앗아 갈 수 있으면요⁠.⁠”

흉부외과 교수가 웃었다⁠. 동주와도 악수를 했다⁠. 7월 24일 밤 들것을 받아 간 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흉부외과 교수가 선영에게 말했다⁠.

“⁠마 선배는 잘 계셔⁠? 요즘 외부 환자는 아예 안 받는다며⁠. 작년 그 일 있고⁠. 학회에서 보니까 얼굴이 반쪽이더라⁠.⁠”

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선영이 먼저 탔다⁠. 동주가 뒤따라 타자 선영이 닫힘 단추를 눌렀다⁠. 문이 닫히는 동안 흉부외과 교수가 한 마디를 보탰다⁠.

“⁠7월 그날 밤에도 마 선배가 받았으면 우리까지 안 왔을 텐데⁠. 하긴 그날 마 선배 당직이었나⁠?⁠”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선영은 층 표시 숫자만 보았다⁠. 오⁠, 사⁠, 삼⁠. 동주도 숫자를 보았다⁠. 일 층에서 문이 열리자 선영이 먼저 내렸다⁠. 돌아보지 않았다⁠.

*

저녁 아홉 시⁠, 칠곡 아파트 작은방에서 준이가 엎드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장모가 저녁을 먹이고 막 돌아간 참이었다⁠. 도화지 한가운데 주황색 구급차가 있었고⁠, 구급차 위에 빨간 네모가 차보다 크게 그려져 있었다⁠. 네모 안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응급실⁠」⁠.

“⁠간판이 차보다 크네⁠.⁠”

“⁠크게 그려야 구급차가 안 헷갈리지⁠.⁠” 준이가 빨간 크레파스로 네모를 한 번 더 칠했다⁠. “⁠이거 윤솔 누나 줄 거야⁠. 누나 집에 가면 문에 붙이라고⁠.⁠”

“⁠누나 집 문에 응급실 붙이면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그럼 아빠가 막으면 되지⁠. 아빠 막는 거 잘하잖아⁠. 할머니가 그러던데⁠, 아빠가 병원 문 막았다고⁠.⁠”

“⁠아빠는 문을 연 거다⁠.⁠”

“⁠그게 그거 아니야⁠?⁠”

동주는 대답 대신 준이의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준이는 크레파스를 쥔 채 잠들었다⁠. 도화지 구석에 작은 사람 셋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주황 옷 하나⁠, 흰 옷 둘⁠. 흰 옷 하나는 가슴에 작대기 하나를 꽂고 있었다⁠. 칫솔이었다⁠.

밤 열두 시 사십 분⁠, 팔공대병원 직원 주차장 맨 끝에 동주의 차가 시동을 끈 채 있었다⁠. 순영이 야간 근무 쉬는 시간에 나와 조수석에 앉았다⁠. 동주가 사 온 김밥을 은박지째 무릎에 올려놓았다⁠. 주차장 가로등 아래 매미 한 마리가 아직 울고 있었다⁠.

“⁠오늘 남천대 갔다며⁠. 윤솔이 어때⁠?⁠”

“⁠삼각김밥 뺏겼다⁠.⁠”

순영이 김밥을 하나 집어 먹다가 웃었다⁠. “⁠가람 선생님이 단톡방에 올렸어⁠. 간호사한테 혼나는 사진⁠.⁠”

“⁠그 아이는 다 단톡방에 올리네⁠.⁠”

“⁠그 단톡방에 나도 있어⁠. 당신이 넣었잖아⁠.⁠”

“⁠요새 응급실은 어떻노⁠?⁠”

“⁠간호사 둘이 이번 달에 그만둬⁠. 하나는 서울 가고⁠, 하나는 그냥 쉰대⁠. 교수님은 어제 당직실 의자에서 주무셨어⁠. 침대가 하나라 전임의 선생님 드리고⁠.⁠” 순영이 김밥 꽁지를 집었다⁠. “⁠마 교수님은 지난주에 법원 다녀오시고 당직실에서 문 잠그고 한 시간 안 나오셨어⁠. 나오셨을 때 눈이 빨갰어⁠. 다들 못 본 척했어⁠.⁠”

둘은 한동안 김밥만 먹었다⁠. 순영의 신발 끝이 차 바닥 매트를 톡톡 쳤다⁠. 동주가 은박지를 접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그날 밤 흉부외과 수술 중이었다고 하셨다⁠. 식탁에서 한 번⁠, 오늘 한 번 더 물었는데 오늘은 대답 안 하시더라⁠. 남천대 흉부외과는 마 교수가 외부 환자를 안 받는다 하고⁠. 그날 당직이었냐고 묻고⁠.⁠”

순영이 김밥을 내려놓았다⁠.

“⁠나한테 묻는 거야⁠?⁠”

“⁠아니다⁠. 당신 곤란한 거 안다⁠.⁠”

“⁠묻는 거잖아⁠.⁠” 순영이 창밖을 보았다⁠. 응급실 진입로의 빨간 간판이 직원 주차장 끝까지 희미하게 비쳤다⁠. “⁠당신⁠, 청문회에서 그거 물을 거야⁠?⁠”

“⁠모르겠다⁠. 물으면 마 교수가 다친다⁠. 안 물으면 그날 밤이 그냥 그날 밤으로 끝난다⁠.⁠”

“⁠그날 밤이 그날 밤으로 끝나면 안 돼⁠?⁠”

“⁠그 아이가 열두 군데서 거절당하고⁠, 할아버지가 안동까지 갔다⁠. 그게 그냥 그런 밤이면 다음 주에 또 그런 밤이 온다⁠.⁠”

순영이 무릎 위의 은박지를 손가락으로 펴고⁠, 다시 접고⁠, 다시 폈다⁠. 응급실 진입로로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끄고 들어갔다⁠. 순영은 구급차가 빨간 간판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보았다⁠.

“⁠수간호사 자리 컴퓨터에 수술실 현황 화면이 있어⁠. 방마다 수술 중인지⁠, 비었는지⁠, 청소 중인지 떠⁠.⁠” 순영의 목소리가 김밥 은박지처럼 얇았다⁠. “⁠7월 24일 밤 여덟 시 십오 분에 당신 전화 받고 교수님 바꿔 드릴 때⁠, 나 그 화면 보고 있었어⁠. 흉부외과 방 두 개⁠, 둘 다 「⁠비어 있음⁠」이었어⁠.⁠”

동주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지 않았다⁠.

“⁠아홉 시 십오 분에 교수님이 소생실에서 마 교수님한테 전화하셨지⁠? 마 교수님은 당직실에 계셨어⁠. 내가 콜했으니까 알아⁠. 교수님이 수화기 들고 유리 벽 쪽으로 돌아서서⁠, 네⁠, 네⁠, 알겠습니다⁠, 하셨잖아⁠. 그리고 당신한테 수술 끝나려면 새벽이라고 하셨어⁠.⁠”

“⁠그럼 마 교수가 안 온다 한 기가⁠?⁠”

“⁠그건 몰라⁠. 나는 화면만 봤어⁠.⁠” 순영이 동주를 처음으로 똑바로 보았다⁠. “⁠그날 밤 수술방은 비어 있었어⁠. 교수님은 그걸 알고도 수술 중이라고 하셨어⁠.⁠”

차 안에 매미 소리만 들어왔다⁠. 순영의 손에서 은박지가 구겨져 작은 공이 되어 있었다⁠.

“⁠이 말 한 거⁠, 당신한테만 한 거야⁠.⁠” 순영이 차 문손잡이를 잡았다⁠. “⁠나 쉬는 시간 끝났어⁠.⁠”

순영이 차에서 내려 직원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동주는 운전석에 앉은 채 아내의 등이 빨간 간판 불빛 속으로 들어갔다가 자동문 너머 하얀 형광등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조수석 위에 순영이 남기고 간 은박지 공이 있었다⁠. 동주는 은박지 공을 집어 펴 보았다⁠. 김밥 한 줄 반을 쌌던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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