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25자)

김치찌개 식탁의 교수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8월 7일 금요일 저녁 여덟 시⁠, 칠곡 석적의 아파트 거실 텔레비전에 지역 방송 저녁 뉴스가 나왔다⁠. 준이가 소파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순영은 비번이었고⁠, 식탁 의자를 거실 쪽으로 돌려 앉아 있었다⁠. 동주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척했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떴다⁠. 「⁠구급차 안의 한 시간 반 — 응급실 열두 곳이 거절했다⁠」⁠.

구급차 뒷문이 열리는 장면이 나왔다⁠. 가람이 찍어 둔 영상이었고⁠, 얼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들것 위의 작은 손⁠, 주황 활동복 등판⁠, 휴대전화를 귀에 댄 뒤통수⁠. 이어서 소방서 주차장에서 남색 근무복을 입은 동주가 카메라 앞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그대로 나왔다⁠.

“⁠아빠다⁠! 아빠 텔레비전⁠!⁠” 준이가 소파에서 뛰어내렸다⁠. “⁠할머니한테 전화해야 돼⁠!⁠”

화면 속 동주가 말했다⁠.

“⁠열두 곳이 다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혼자였고⁠, 기계를 돌릴 사람이 없었고⁠, 아이를 볼 의사가 그 도시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탓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그 이유가 왜 매일 밤 똑같은지 묻고 싶습니다⁠.⁠”

순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화면이 국회 의원실 숫자로 넘어가고⁠, 팔공대 진입로 사진이 간판을 흐리게 지운 채 나왔다⁠. 병원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교수님 얼굴은 안 나왔네⁠.⁠” 순영이 말했다⁠.

“⁠이름도 안 냈다⁠.⁠”

“⁠이름 안 내도 다 알아⁠.⁠” 순영의 휴대전화가 식탁 위에서 연달아 몸을 떨었다⁠. 순영이 화면을 동주에게 돌려 보여 주었다⁠. 응급실 간호사 단톡방이었다⁠.

「⁠뉴스 봤어요⁠? 우리 병원 얘기 아니에요⁠?⁠」 「⁠병원 이름 안 나왔어요⁠」 「⁠구미에서 밀고 들어온 그 차 맞죠⁠」 「⁠근데 수쌤 남편분 잘생기셨네요⁠」

동주가 마지막 줄을 보고 고무장갑을 낀 채 헛기침을 했다⁠. 순영이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마지막 줄은 내가 답 안 할 거야⁠.⁠”

준이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놓고 소리쳤다⁠. “⁠할머니⁠, 아빠 연예인 됐어⁠! 근데 웃지는 않았어⁠!⁠”

*

8월 10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소방서 2층 구급 담당 자리에 앉자마자 내선 전화가 울렸다⁠. 본부 징계 담당이었다⁠. 허가 없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건이 징계 사유에 더해진다고 했다⁠. 징계위원회는 8월 마지막 주였다⁠. 동주는 예⁠, 하고 받아 적었다⁠.

열 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 의원실의 비서관이었다⁠. 9월 16일에 응급실 미수용 청문회가 열리고⁠, 병원 지정·거부 사유·형사 면책을 담은 개정안을 앞두고 현장의 말을 듣는다고 했다⁠.

“⁠표동주 반장님을 참고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소방본부에는 저희가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증인은 누가 나옵니까⁠?⁠”

“⁠병원 쪽에서 몇 분 나오십니다⁠. 대구에서는 응급의학과 탁선영 교수님이 증인으로 나오세요⁠.⁠”

열한 시 반⁠, 칠곡 센터 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 가던 날 진입로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표 반장⁠, 뉴스 잘 봤다⁠. 근데 하나 알고 있어라⁠. 오늘 새벽에 팔공대에 전화했더니 환자 정보 듣지도 않고 끊더라⁠. 김천도 그렇고⁠. 다들 뉴스 보고 몸 사린다⁠.⁠”

“⁠예⁠.⁠”

“⁠니 잘못이라는 거 아이다⁠. 그냥 그렇다고⁠.⁠”

전화가 끊겼다⁠. 동주는 책상 서랍을 열어 청진기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옆자리 구급 계장이 모니터를 보는 척하며 말했다⁠.

“⁠동주야⁠, 니가 판을 키웠으니 니가 끝까지 해라⁠. 중간에 내려오면 현장 애들만 욕먹는다⁠.⁠”

*

8월 11일 화요일 저녁⁠, 동주는 퇴근길에 물냉면 세 그릇을 포장해 구미 센터에 들렀다⁠. 차고 앞 플라스틱 의자에서 태섭이 셔츠 단추를 두 개 풀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가람은 구급차 뒷문을 열어 놓고 산소통 압력을 확인하고 있었다⁠.

“⁠징계받는 사람이 냉면을 사 오네⁠.⁠” 태섭이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봐라⁠, 내가 니 징계 끝나고 사 준다 캤는데 니가 먼저 샀다⁠. 이건 니 잘못이다⁠.⁠”

“⁠반장님 약은 드셨습니까⁠?⁠”

“⁠가람이가 알람을 세 번 울려서 먹었다⁠. 첫 번째는 내가 껐고⁠, 두 번째는 가람이가 내 손등을 꼬집었고⁠.⁠”

“⁠세 번째는 제가 약을 반장님 입에 넣어 드렸어요⁠.⁠” 가람이 산소통을 닫으며 말했다⁠. “⁠쇼츠로 올리면 백만 각인데 참았어요⁠.⁠”

셋이 차고 앞에서 냉면을 먹었다⁠. 태섭이 육수를 그릇째 들이켜다가 등을 손으로 짚었다⁠.

“⁠요새 등짝이 자꾸 뻐근하다⁠. 운전석 의자가 낡아서⁠.⁠”

“⁠병원 한번 가 보이소⁠.⁠”

“⁠병원⁠? 니 뉴스 나가고 병원들이 우리 전화를 더 빨리 끊는다⁠. 내가 아프다 캐도 안 받아 줄 기다⁠.⁠” 태섭이 웃었다⁠. 웃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 새벽에 김천 가서 진입로에서 사십 분 기다렸다⁠. 의사가 나와서 구급대 얼굴을 한 사람씩 보더라⁠. 구미에서 왔나⁠, 하고⁠.⁠”

가람이 냉면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동주는 대답할 말을 찾다가 육수만 마셨다⁠. 육수는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했다⁠.

“⁠반장님⁠, 저 청문회 나가면 현장 애들 더 힘들어집니까⁠?⁠”

태섭이 빈 그릇에 젓가락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안 나가도 힘들다⁠. 나가면 적어도 왜 힘든지는 남들이 안다⁠. 대신 니는 끝까지 서 있어야 된다⁠. 중간에 앉으면 우리만 얼굴 팔린 채로 남는다⁠.⁠”

가람이 구급차 뒷문을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가 차고 안에서 크게 울렸다⁠.

*

8월 12일 수요일 저녁 일곱 시⁠, 순영이 김치찌개를 끓였다⁠. 돼지고기를 평소보다 두 배 넣었고⁠, 계란말이에 파를 다져 넣었다⁠. 동주가 냄비 뚜껑을 열어 보고 물었다⁠.

“⁠누가 오는데 고기를 이래 넣노⁠?⁠”

“⁠교수님⁠. 사흘째 집에 못 가셨대⁠. 청문회 전에 당신이랑 얘기하고 싶으시대서⁠, 밥 먹으면서 하라고 했어⁠.⁠”

“⁠우리 집에서⁠?⁠”

“⁠병원 근처에서 하면 다 들어⁠. 단톡방에 또 올라오고⁠.⁠”

일곱 시 반에 초인종이 울렸다⁠. 탁선영이 흰 경차 열쇠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가운은 벗었는데 셔츠 가슴 주머니에 칫솔이 꽂혀 있었다⁠. 다른 손에 복숭아 한 상자를 들었다⁠.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요⁠. 병원 앞 노점에서 샀어요⁠.⁠”

준이가 현관에 나와 선영을 올려다보았다⁠. 선영의 셔츠 주머니를 오래 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왜 칫솔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집에 못 가서⁠.⁠”

“⁠왜 집에 못 가요⁠?⁠”

“⁠집에 가면 고양이가 화내서⁠.⁠” 선영이 신발을 벗었다⁠. “⁠사흘 동안 밥을 동생이 줬거든⁠. 내가 가면 등 돌리고 앉아 있어⁠.⁠”

준이가 깔깔 웃었다⁠. 선영도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식탁에 넷이 앉았다⁠. 선영은 김치찌개를 세 숟가락 연달아 떠먹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순영이 선영의 그릇에 고기를 더 얹었다⁠. 준이는 계란말이를 공룡 모양으로 뜯어 먹었다⁠. 밥이 반쯤 줄었을 때 선영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반장님⁠, 뉴스 봤어요⁠. 병원 이름 빼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이름 빼도 다 알아요⁠.⁠”

“⁠압니다⁠.⁠”

“⁠다음 날부터 저희 응급실에 항의 전화가 하루 마흔 통 와요⁠. 간호사들이 그 전화 받느라 환자를 못 봐요⁠. 거절하는 병원이라고 욕먹는 동안⁠, 어젯밤에도 저희는 심정지 넷을 받았어요⁠.⁠”

동주는 숟가락을 든 채 듣고 있었다⁠.

“⁠청문회에서 반장님이 열두 곳 얘기를 하면⁠, 위원들은 거절한 병원을 혼내는 법을 만들 거예요⁠. 병원을 지정하는 법⁠. 지정하면 받아야 하는 법⁠.⁠” 선영이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지정된 병원에 흉부외과가 없으면⁠, 그 아이는 두 번 옮겨져요⁠. 우리한테 한 번⁠, 에크모 있는 데로 한 번⁠. 옮기는 동안 또 멎어요⁠.⁠”

“⁠두 번 옮겨지는 게 열두 번 거절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 두 번 사이에 누가 책임져요⁠?⁠” 선영의 목소리는 김치찌개 냄비처럼 낮게 끓었다⁠. “⁠올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오십육 퍼센트예요⁠. 전문의 시험 보는 의사가 반 토막이라는 거예요⁠. 5월에 뇌경색 환자 본 전공의들이 유죄 받았어요⁠. 진단을 늦게 했다고요⁠. 그 판결 나오고 우리 응급실 전임의 하나가 사표 냈어요⁠. 반장님⁠, 나는 지정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지정받고 받았는데 못 살리면⁠, 그다음 날 의사가 또 하나 나가는 게 무서워요⁠.⁠”

“⁠그럼 선생님 말씀은⁠, 받지 말라는 겁니까⁠?⁠”

“⁠최종 치료를 못 하는 걸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예요⁠. 거절이 아니라⁠.⁠” 선영이 숨을 골랐다⁠. “⁠아니⁠, 거절이 맞아요⁠. 거절을 해도 되는 때를 법에 써 달라는 거예요⁠. 그리고 받아서 최선을 다한 사람은 감옥에 보내지 말라는 거고요⁠.⁠”

준이가 공룡 계란말이를 손에 든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순영이 준이의 손을 끌어 휴지로 닦았다⁠.

동주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가람이 구급차 단말기에서 보여 주던 빨간 글자가 생각났다⁠.

“⁠선생님⁠,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상황판에 팔공대 흉부외과 응급수술 불가가 여름 내내 밤마다 떠 있었습니다⁠. 7월 24일 밤에 흉부외과 선생님⁠, 정말 수술 중이셨습니까⁠?⁠”

선영이 동주를 보았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네⁠.⁠”

식탁 아래로 숟가락 하나가 떨어졌다⁠. 순영의 숟가락이었다⁠. 쇠 숟가락이 마루에 부딪혀 두 번 튀었다⁠. 순영이 허리를 숙여 주웠다⁠. 일어나면서 동주를 보지 않았다⁠. 선영도 보지 않았다⁠.

“⁠손이 미끄러워서⁠.⁠” 순영이 싱크대로 가서 숟가락을 씻었다⁠. 물을 오래 틀어 놓았다⁠.

선영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저 열 시까지 들어가야 해요⁠. 잘 먹었어요⁠. 진짜로요⁠. 사흘 만에 처음 앉아서 먹었어요⁠.⁠”

현관에서 신발을 신던 선영이 허리를 펴고 동주를 돌아보았다⁠.

“⁠청문회에서 저는 반장님이 밀고 들어온 얘기 할 거예요⁠. 소생실 세 칸이 어떻게 찼는지⁠. 그리고 열 시 십 분에 칠곡 구급대 전화를 제 손으로 끊은 얘기도 할 거예요⁠. 둘 다 할 거예요⁠.⁠”

“⁠하십시오⁠.⁠” 동주가 말했다⁠. “⁠저도 다 하겠습니다⁠. 문 앞에서 거절당한 거⁠, 밀고 들어간 거⁠, 그 사이에 칠곡 할아버지가 돌아선 거⁠.⁠”

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가 현관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었다⁠.

“⁠고양이한테 화내지 말라고 해요⁠.⁠”

“⁠그건 고양이 마음이야⁠.⁠”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소리가 복도에서 작게 들렸다⁠.

*

밤 열 시⁠, 싱크대 앞에서 순영이 아직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릇은 진작 다 씻겼는데 순영은 같은 냄비를 세 번째 헹구고 있었다⁠. 동주가 뒤에서 행주를 집었다⁠.

“⁠당신 아까 왜 숟가락 떨어뜨렸노⁠?⁠”

“⁠말했잖아⁠. 손이 미끄러워서⁠.⁠”

“⁠김치찌개 먹다가 손이 미끄러울 일이 있나⁠.⁠”

순영이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소리가 끊기자 거실 벽시계 초바늘 소리가 들렸다⁠. 순영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닦고 나서도 손을 앞치마에서 떼지 않았다⁠.

“⁠나 내일부터 야간 고정이야⁠. 교수님이 부탁하셨어⁠. 9월 청문회 끝날 때까지 밤에 응급실 지켜 달라고⁠.⁠”

“⁠그거 말고⁠.⁠”

“⁠그거 말고는 없어⁠.⁠”

순영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지 않고 반쯤 열린 채 남았다⁠. 동주는 냄비를 건조대에 엎었다⁠. 냄비 바닥에서 물방울이 한 줄로 떨어져 고였다⁠. 식탁 위에는 선영이 두고 간 복숭아 상자가 열린 채 있었고⁠, 복숭아 하나가 꼭지 옆에 손가락 자국처럼 멍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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