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77자)

경차 타고 열두 응급실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8월 1일 토요일 아침 여덟 시⁠, 구미 센터 앞에 민트색 경차가 한 대 들어왔다⁠. 운전석에서 여가람이 창문을 내리고 선글라스를 이마에 올렸다⁠.

“⁠반장님⁠, 타세요⁠. 조수석 의자 끝까지 밀어 놨어요⁠.⁠”

동주가 조수석에 몸을 접어 넣었다⁠. 끝까지 밀었다는 의자가 무릎을 대시보드에 붙여 놓았다⁠. 가람이 시동을 걸자 차가 작게 몸을 떨었다⁠.

“⁠이 차도 사이렌 켜면 연비 좋아지나⁠?⁠”

“⁠이 차는 에어컨 켜면 오르막을 못 올라가요⁠.⁠”

가람은 비번이었다⁠. 동주가 혼자 다니겠다고 하자 가람은 반장님 혼자 가면 병원마다 싸우고 나올 거라며 차 키를 흔들었다⁠. 대시보드 위에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7월 24일 밤 동주가 전화한 순서대로 가람이 병원 이름 열두 개를 옮겨 놓았다⁠. 맨 위가 구미 새솔병원⁠, 맨 아래가 경주였다⁠.

신호를 기다리며 가람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일본 뉴스를 번역한 짧은 영상이었다⁠.

“⁠일본도 이런 일이 있대요⁠. 거기선 ‘⁠타라이마와시⁠’라고 부른대요⁠. 빨래하는 대야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돌린다는 말이래요⁠.⁠”

“⁠우리는 뺑뺑이고⁠.⁠”

“⁠우리 말이 더 어지러워요⁠.⁠”

*

아침 아홉 시⁠, 구미 새솔병원 응급실은 병상이 여덟 개였다⁠. 접수대 옆 모니터에 대기 환자 열한 명이 떠 있었다⁠. 응급실 한가운데 책상에 반백 머리의 남자가 안경을 이마에 올리고 앉아 컵에 든 미숫가루를 마시고 있었다⁠. 가운 이름표에 「⁠응급실장⁠」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동주가 소속을 대고 7월 24일 밤 일곱 시 사십칠 분에 건 전화를 말했다⁠. 응급실장은 미숫가루 컵을 내려놓았다⁠.

“⁠기억나요⁠. 심정지 소생 후 열일곱 살⁠. 내가 안 된다고 했지⁠.⁠”

“⁠왜 안 되셨습니까⁠?⁠”

“⁠그날 밤 나 혼자였어요⁠. 의사 혼자⁠. 응급실에 스물두 명이 있었고⁠.⁠” 응급실장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지금 열한 명이죠⁠? 그날은 두 배⁠. 금요일 밤이라 술 먹고 넘어진 사람⁠, 배 아픈 사람⁠, 열 나는 애들⁠. 내가 그 열일곱 살을 받으면 그 아이 옆에 세 시간 붙어 있어야 해요⁠. 심장 약 맞추고⁠, 혈압 보고⁠, 또 멎으면 가슴 누르고⁠. 그동안 스물한 명은 누가 봐요⁠?⁠”

“⁠그 스물한 명 중에 죽을 사람이 있었습니까⁠?⁠”

“⁠모르죠⁠. 볼 사람이 없었으니까⁠.⁠” 응급실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올라갔다⁠. “⁠구급대원 양반⁠, 당신들은 거절당했다고 하지⁠. 우리는 고르는 거예요⁠. 누구를 못 볼지⁠. 매일 밤⁠.⁠”

동주는 대답하지 않고 서 있었다⁠. 가람이 뒤에서 동주의 근무복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응급실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안경을 코로 내렸다⁠.

“⁠앉아 봐요⁠.⁠”

“⁠예⁠?⁠”

“⁠내 의자⁠. 앉아 봐요⁠. 오 분만⁠.⁠”

동주가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따뜻했다⁠. 책상 위에 전화기가 있었고⁠, 옆에 진통제 한 통과 반쯤 먹은 빵이 있었다⁠. 응급실장이 서른여섯 시간째라고 말하는 동안 전화가 울렸다⁠. 응급실장이 턱으로 수화기를 가리켰다⁠.

“⁠받아요⁠. 당신이 받아요⁠.⁠”

동주가 수화기를 들었다⁠. 구급대원의 목소리였다⁠. 숨이 차 있었고⁠, 뒤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구미 구급대입니다⁠. 칠십 대 여성⁠,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 의심⁠, 의식 명료⁠, 혈압 백삼십⁠…⁠…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

동주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응급실 침대 여덟 개를 보았다⁠. 다 차 있었다⁠. 대기 의자에 아이를 안은 엄마가 열에 들뜬 아이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구급대원이 다시 물었다⁠. 여보세요⁠?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

응급실장이 수화기를 가져갔다⁠. “⁠네⁠, 오세요⁠. 정형외과는 월요일이니까 그때까지 진통제로 버팁니다⁠. 그래도 오세요⁠.⁠”

응급실장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동주를 보았다⁠.

“⁠오 분 됐어요⁠. 일어나요⁠. 내 자리예요⁠.⁠”

동주가 일어났다⁠. 무릎이 저렸다⁠. 응급실장은 다시 앉아 미숫가루를 마저 마셨다⁠.

“⁠그 열일곱 살⁠, 살았어요⁠?⁠”

“⁠경산에서 에크모 달고 버팁니다⁠.⁠”

“⁠다행이네⁠.⁠” 응급실장이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날 거절한 걸 안 미안해할 거예요⁠. 미안해하면 내일 또 못 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나한테 미안하다는 소리 듣고 싶으면 다른 데 가요⁠.⁠”

*

김천으로 가는 국도에서 가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경차가 오르막에서 숨을 몰아쉬자 가람이 에어컨을 껐다⁠. 창문을 내리자 논에서 올라온 더운 바람이 차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반장님⁠, 아까 의자에서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할 말이 없더라⁠.⁠”

“⁠받는다고 하시지⁠. 반장님 같으면 받으셨을 거 아니에요⁠.⁠”

“⁠침대 여덟 개가 다 차 있었다⁠. 대기 의자에 애 안은 엄마가 있었고⁠.⁠” 동주가 창밖을 보았다⁠. “⁠받는다 하면 그 엄마가 한 시간 더 기다린다⁠. 안 된다 하면 전화한 대원이 다음 병원에 전화한다⁠.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되는데⁠, 오 분 안에⁠.⁠”

가람이 핸들을 쥔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저 서울에서 간호사 할 때요⁠, 재작년 봄에 전공의들 다 나갔잖아요⁠. 응급실에 교수님 둘이 남았어요⁠. 밤에 전화 오면 수간호사 선생님이 받았는데⁠, 그분이 매번 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떼고 받으셨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숨소리 들으면 거절을 못 한다고⁠.⁠”

“⁠그래서 니는 구급차로 왔나⁠?⁠”

“⁠거절하는 데 있기 싫어서요⁠. 거절당하는 데로 왔죠⁠.⁠” 가람이 웃었다⁠. 웃음 끝이 짧았다⁠. “⁠반장님⁠, 이거 쇼츠 각 아니죠⁠?⁠”

“⁠아니다⁠.⁠”

*

정오⁠, 김천 청람병원 응급실은 조용했다⁠. 간호사 하나가 7월 24일 밤 상황판 기록을 보여 주었다⁠. 「⁠소아 진료 불가 — 소아청소년과 당직 없음⁠」⁠.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봄에 그만두었고⁠, 이후로 김천에서 밤에 아이를 보는 응급실이 없다고 했다⁠.

“⁠열일곱은 고등학생인데요⁠.⁠” 가람이 말했다⁠.

“⁠저희 기준은 열여덟 살까지예요⁠. 기준을 바꾸면 열일곱 살 환자가 오는 거죠⁠. 오면 누가 봐요⁠?⁠” 간호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른 보는 의사가 보면 되지 않냐고들 하는데⁠, 그러다 잘못되면 그 의사가 법정에 서요⁠. 소아 전문의도 아닌데 왜 봤냐고⁠.⁠”

나오는 길에 가람이 자판기에 오백 원짜리를 넣었다⁠. 동전이 들어가더니 음료도 동전도 안 나왔다⁠. 가람이 자판기를 두 번 쳤다⁠.

“⁠이 병원은 자판기도 안 받네요⁠.⁠”

동주가 웃었다⁠. 웃고 나서 웃은 것이 미안해 자판기 옆에 붙은 고장 신고 번호를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오후 두 시⁠, 칠곡 다온병원 지하 창고에서 직원이 비닐 덮개를 걷었다⁠. 바퀴 달린 기계가 형광등 아래 반짝였다⁠. 에크모였다⁠. 작년에 들여놓았고⁠, 기계를 돌릴 체외순환사가 겨울에 서울 병원으로 옮겨 간 뒤로 한 번도 켜지 않았다고 했다⁠.

“⁠기계는 있는데 사람이 없어요⁠. 사람 하나 구하는 데 기계 하나 사는 것보다 오래 걸려요⁠.⁠”

동주는 기계의 덮개를 도로 덮어 주었다⁠. 덮개 위에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

8월 2일 일요일⁠, 둘은 대구를 돌았다⁠. 침산병원은 7월 24일 밤 응급실 침대가 다 찼다는 기록을 보여 주었고⁠, 앞산대병원은 소아 심장 의사가 학회에 간 날이라고 했다⁠. 칠성의료원 응급실장은 동주를 보자마자 커피부터 내밀었다⁠. 심장내과 의사가 7월 24일 밤 다른 환자의 막힌 혈관을 뚫고 있었다고 했다⁠. 커피는 자판기 커피였고⁠, 이번에는 잘 나왔다⁠.

남천대병원 중환자실 유리 너머로 윤솔이 보였다⁠. 굵은 관 두 개가 허벅지에서 나와 침대 옆 기계로 이어졌고⁠, 기계 안에서 검붉은 피가 돌았다⁠. 아흐레째였다⁠. 유리 앞 의자에 남경희가 공장 작업복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경희는 동주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조금씩 짜기 시작한대요⁠. 다음 주에 기계 뗄지 본대요⁠.⁠”

“⁠다행입니다⁠.⁠”

“⁠그 할아버지 아들이 어제 우리 집에 왔었어요⁠.⁠” 경희가 무릎 위의 카디건 자락을 쥐었다⁠. “⁠화내러 온 줄 알았는데⁠, 윤솔이 사진 한 번 보여 달래요⁠. 보여 줬더니 한참 보다가 갔어요⁠.⁠”

동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천대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순영의 전화가 왔다⁠. 응급실 소음이 수화기 너머로 밀려왔다⁠.

“⁠당신 오늘 열두 군데 다 돈다며⁠. 가람 선생님이 단톡방에 올렸어⁠. 경차 사진이랑⁠.⁠”

“⁠가람아⁠, 니 그걸 올렸나⁠?⁠”

가람이 운전석에서 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 “⁠반장님 무릎이 대시보드에 붙은 사진이요⁠. 반응 좋아요⁠.⁠”

순영이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를 내더니 곧 목소리를 낮췄다⁠.

“⁠팔공대 오지 마⁠. 교수님 오늘 이틀째야⁠. 그리고 들었는데⁠, 국회에서 응급실 청문회 한다는 얘기가 있어⁠. 교수님한테 증인으로 나와 달라는 연락이 왔대⁠.⁠”

“⁠알았다⁠. 안 들어갈게⁠.⁠”

“⁠들어오지 말라는 거지⁠, 오지 말라는 건 아니야⁠.⁠” 순영이 잠깐 말을 끊었다⁠. “⁠앞에 국밥집 있잖아⁠. 우리 처음 만난 데⁠. 거기 다진 양념 많이 넣지 마⁠. 당신 혈압⁠.⁠”

전화가 끊겼다⁠. 가람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사모님 지금 병원 안에서 반장님 혈압 걱정하시는 거예요⁠?⁠”

“⁠수간호사라서 그렇다⁠.⁠”

저녁 일곱 시⁠, 마지막 열두 번째는 팔공대였다⁠. 응급실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진입로 건너편 국밥집에서 기자 반도섭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흔 중반⁠, 반소매 와이셔츠에 노트북 가방을 멘 남자였다⁠. 국밥 세 그릇이 나왔다⁠. 가람은 자기 그릇에 다진 양념을 세 숟가락 넣었고⁠, 동주는 반 숟가락만 넣었다⁠.

“⁠대구는 소방 쪽 자료가 있습니다⁠.⁠” 반도섭이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현장에 도착해서 병원으로 출발하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 이송이 2023년 1⁠,078건에서 2025년 2⁠,728건으로 늘었어요⁠. 대구 안에서 병원을 못 찾아 다른 시도로 나간 이송은 144건에서 494건이 됐고요⁠. 국회 의원실에서 올봄에 낸 숫자입니다⁠.⁠”

동주는 숫자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국밥집 창밖으로 빨간 「⁠응급실⁠」 간판이 보였다⁠.

“⁠내년에 나오는 숫자에는 우리 차도 들어가겠네요⁠.⁠”

“⁠이 숫자는 아무도 안 봅니다⁠. 7월 24일 밤 열두 곳은 봅니다⁠.⁠” 반도섭이 노트북을 닫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법안이 하나 있어요⁠. 병원을 못 정하면 상황실이 병원을 지정한다⁠, 거절해도 되는 이유를 법에 적는다⁠, 중환자를 받아서 최선을 다한 의사는 형사 처벌을 면해 준다⁠. 세 가지가 한 법에 들어 있는데⁠, 의사들은 지정이 무섭고 환자 단체는 면책이 무섭고⁠, 그래서 여름 내내 서랍에 있어요⁠. 위원회에서 청문회를 열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열려면 사람들이 봐야 해요⁠.⁠”

“⁠그래서 우리 차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반장님 얼굴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목소리만 나가면 아무도 안 믿어요⁠. 대신 나오시면 징계 더 커지실 거고요⁠. 공무원이 허가 없이 방송에 나오면⁠.⁠”

가람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반장님⁠, 안 하셔도 돼요⁠. 우리 그냥 쇼츠로 올려요⁠. 얼굴 빼고⁠.⁠”

동주는 국밥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새솔병원 응급실장의 따뜻한 의자가 떠올랐다⁠. 수화기 너머에서 받아 줄 수 있느냐고 묻던 목소리⁠, 거기에 아무 대답도 못 하던 자기 입이 함께 떠올랐다⁠.

“⁠열두 곳 이름은 빼 주십시오⁠.⁠”

반도섭이 눈썹을 올렸다⁠. “⁠병원 이름을 빼요⁠?⁠”

“⁠그 사람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름 대신 이유를 내 주십시오⁠. 얼굴은 제 거 내겠습니다⁠.⁠”

반도섭이 한참 동주를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동주가 반도섭의 손을 잡았다⁠. 가람이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동주의 눈을 보고 도로 내려놓았다⁠. 창밖에서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끄고 빨간 간판 아래로 천천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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